[특파원 리포트] ‘주독 미군 감축’과 ‘전략적 유연성’…인도·태평양 지역 미군은 어떤 방향으로?

입력 2020.08.04 (02:01) 수정 2020.08.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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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더 안내는' 벨기에로 '미 유럽군 사령부' 이전】

미국 현지시간으로 7월29일 오전,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주독 미군 만2천명을 빼내겠다고 발표했을 때 감축되는 병력이 당초 알려졌던 9천 5백명보다도 2천 5백명이 더 많았는데요.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독일 기자가 질문합니다. "이번 발표가 독일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병력을 빼는 건가요?" 그러자 에스퍼 장관이 화상으로 연결돼 있던 월터스(Wolters) 미 유럽군 사령관에게 답변을 부탁합니다.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만 현재 (독일)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미 유럽군사령부(EUCOM)를 벨기에 몽스로 이전하려고 합니다...특수작전 사령부도 같은 장소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에스퍼 미 국방장관(사진 왼쪽)이 미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주독 미군 감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화면 오른쪽 스크린은 월터스 미 유럽군 사령관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에스퍼 미 국방장관(사진 왼쪽)이 미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주독 미군 감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화면 오른쪽 스크린은 월터스 미 유럽군 사령관
월터스 사령관의 이 답변이 놀라웠던 것은 독일 주둔 유럽군사령부를 옮긴다고도 했지만 이전될 예정지가 벨기에라고 말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독일 국방비가 국내총생산의 2퍼센트가 안된다고 비난해 왔었죠. 그런데 벨기에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중이 독일의 1.24 퍼센트 보다도 훨씬 적은 1퍼센트 미만(0.93퍼센트)이었기 때문입니다. 벨기에 당국자가 "정권 바뀌기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2퍼센트 달성이 힘들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기준으로 볼때 '한참 미달한' 벨기에로 유럽군 사령부를 옮긴다고 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퍼 장관의 기자회견이 있고 몇 시간도 채 안된 29일 오후에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독일이 돈을 더 안내서' 주독 미군을 감축한다고 했습니다. "독일은 돈을 더 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30개의 NATO 국가들 가운데 방위비가 국내총생산(GDP)의 2퍼센트에 달하는 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영국과 에스토이니아 등 6개 나라 밖에 없습니다. 과거 독일도 '2퍼센트'를 맞추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미국을 제외한 NATO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내는 독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벨기에는 더 어려웠던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본다면 '돈을 더 안내는' 벨기에로의 이전, 괜찮은 일일까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독일 주둔 미군 감축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지난달 29일(현지시각)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독일 주둔 미군 감축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NATO국 회원국 가운데 과거 구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다가 유럽에서 냉전이 끝난 뒤 NATO로 옮겨간 나라가 10개 나라입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은 아니였지만 몬테네그로나 크로아티아처럼 구 유고슬라비아를 중심으로 모였던 나라들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회원국이 과거 NATO의 '견제대상' 이었던 셈이죠. 이런 나라들까지 모여서 NATO회원국이 확대된 마당에 독일은 더이상 유럽의 최전방이 아닌 것이었죠. 유럽군 사령부의 전략적 입지로서 독일의 중요성도 그리 크게 부각될 이유도 없게 된 것입니다.

왼쪽 독일 슈투트가르트 / 오른쪽 벨기에 몽스왼쪽 독일 슈투트가르트 / 오른쪽 벨기에 몽스

그럼 벨기에는? 사실 군사전략적 입지로서의 중요성 보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다는 상징성에, 미국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 더 고려된 듯 합니다. 지난 2018년 벨기에가 EU 회원국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차세대 전투기로 유럽산 유로파이터가 아닌 미국의 F-35를 선정하자, 당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벨기에의 선택은 EU의 이익에 어긋나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라고 비난까지 했었죠. 그런 벨기에와 비교하면 사안마다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독일은 꼭 국방비 문제 뿐이 아니라도 주둔지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주독 미군 빼내면서 다시 등장한 개념 '전략적 유연성'】


하지만 이번 독일 주둔 미군 감축과 사령부 이전 등을 '돈 문제'나 '트럼프 미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간의 불화' 때문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에스퍼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비용 효율성' 도 고려됐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돈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거시적인 국방전략 차원의 조치임을 여러차례 강조했습니다. 이틀 뒤에는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직접 기고까지 해서 이번 주독 미군 감축조치를 설명했는데요, 앞서 기자회견까지 포함해 열번 넘게 언급한 말이 '군사력 최적화'와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이라는 말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퍼 장관의 설명을 보면, 독일에서 빼내는 만2천명 가운데 5천6명은 NATO 회원국 내 재배치, 6천4백명은 미국으로 귀환시켰다가 신속대응군 '스트라이커 부대'로 편성해서 다시 흑해 연안 등에 배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폴란드와 발틱해 등 NATO의 방위선 내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전력을 증강하겠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에스퍼 장관의 설명대로라면 독일에서 병력 감축은 있겠지만 유럽에 투입되는 미군 전체 병력 수는 현재로선 큰 변화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주목되는 점은 에스퍼 장관이 이런 병력 재배치 과정에서 바로 '전략적 유연성'이 강화된다고 한 부분입니다. 전체 병력 수의 변화는 없더라도 이쪽 저쪽의 미군 병력을 기동성있게 각 지역 상황변화에 따라 투입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지금 당장은 독일에서 빼내는 병력을 유럽 이외의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신속대응군 '스트라이커 부대'로 편성된 부대는 전 세계 어느 전장에나 투입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군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출처: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United States Indo-Pacific Command (USINDOPACOM)) 홈페이지 https://www.pacom.mil/출처: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United States Indo-Pacific Command (USINDOPACOM)) 홈페이지 https://www.pacom.mil/

사실 미군 수뇌부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년 전이지만 최근에 부쩍 미 국방부의 공식 발표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한국에 있던 주한 미 2사단 병력 가운데 일부가 철수해 미 본토에서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 부대가 미국에서 재편성을 마친 뒤 이라크 등 전쟁 및 분쟁지역에 파견됐을 당시 한국에도 이 '전략적 유연성'이란 개념이 널리 각인된 바 있습니다. 즉 '인 앤 아웃(IN & OUT)'이 손쉬운, 즉 어느 지역이든 들어오고 나가는 작업이 '가벼운' 신속대응군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발표하면서 다시 이 개념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일에서 빠진 병력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NATO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순환 재배치 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주요 전장이나 국가 등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만큼 이번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돈 문제 뿐 아니라 그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온 전 세계 미군 재편 전략의 일환이기도 한 셈입니다. 미군 6천4백명을 본토로 귀환시켜서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해 다시 유럽에 파견하려면 그 비용은 독일에 가만히 주둔하고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붙박이 병력'였던 6천 4명이 전 세계에 신속 배치될 수있는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되면 병력 운용에서의 기동성과 효율성은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죠.

사실 독일에서 빼내는 미군 병력의 순환 재배치를 언급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는 했지만 NATO 권역 동쪽에 증강 배치되는 병력이 언제까지 '러시아 견제'를 명문으로 주둔 할지도 두고 볼 일입니다. 에스퍼 국방장관 스스로도 "그동안 NATO의 71년 역사에 변화가 많았다" 면서 "NATO에 새로운 동맹국이 합류해 NATO 국가와 러시아의 국경에 변화"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요. 듣기에 따라서는 '구 NATO 국가들과 러시아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해줄 국가들도 많이 생겼으니 그동안 핵심 역할을 해오던 미군의 역할과 위상, 규모도 바뀔 수 있다'는 함의도 있어 보입니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도 순환·재배치 이뤄질까...'대 중국 전략'이 핵심】

미 국방전략 안내 홈페이지 첫 화면미 국방전략 안내 홈페이지 첫 화면

2차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이 두 나라를 상대로 동시에 군사적인 대립각을 세운 적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럴 여력이 있더라도 불필요한 국력의 소진이고 전략적 이득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유럽에서 이른바 냉전(Cold War)이 끝나기 전까지는 소련이 미국의 대결 상대였고, 냉전이 끝나고 구 소련이 해체된 뒤 지금은 중국입니다. 소련과 대결할 때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는 물론 경제협력관계를 강화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중국과의 전방위적인 경쟁과 대결이 확산되는 지금, 러시아와의 갈등 확대는 미국에게 부담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난 2016년 선거국면에서 '러시아 스캔들'이 터진 이후 이번 2020 대선까지도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건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도 부담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2018년 미 국방전략 보고서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상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관계와는 별도로 미 군사력의 예봉이 중국을 더 정조준해 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에스퍼 장관의 기자회견 이틀 뒤, 맥콘빌 미 육군참모총장은 미 육군이 40년 주기로 큰 변화를 해왔다고 전제하면서, "미 육군이 장거리 고정밀 타격능력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했습니다. 또 "(중국의)반접근·반거부 전략에 효과적 대응이 가능한 극초음속, 중거리 미사일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화상출연에서 한 말입니다.

맥콘빌 미 육군참모총장 CSIS 화상출연 맥콘빌 미 육군참모총장 CSIS 화상출연


맥콘빌 총장의 발언은 미 육군 군사력의 향상이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게 핵심인데요, 여기서 중국의 '제1도련선'까지 언급하면서 "일본 필리핀 한국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들과 파트너십을 강력히 하고 함께 협력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는 언급까지 내놨습니다. 주요 협력국 가운데 하나로 한국도 언급됐습니다. 여기에 "태평양을 '인도·태평양'으로 정의할 때 이미 방위협정을 맺은 일본, 호주와 더불어 (방위협정국에) 인도가 추가된다면 역내 안보와 안정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팽창을 기존 동맹국과 협력국, 그리고 인도까지 묶어서 견제하자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중국이 만든 '제1도련선' 이라는 개념은 맥콘빌 총장의 언급 그대로 'First island chain'이고 쿠릴 열도를 따라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지나 인도네시아 섬 위쪽을 돌아 길게 이어진, 중국이 설정한 가상의 선입니다. 이 선을 경계로 미국 등 해양세력의 진출을 차단하고,이어서 외곽으로 제2, 제3의 도련선을 설정해 점차 남중국해를 벗어나 태평양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맥콘빌 총장의 발언은 중국의 움직임을 역내 동맹 및 협력국과의 공조를 통해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미군 고위관계자들은 유럽에 이어 조만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최적화'도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에도 미국과 방위비 협상은 물론 전시작전권 전환 등 굵직하고 민감한 현안들이 많지만, 큰 틀에서 이뤄지는 이 같은 흐름에도 고민해야 할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는 셈입니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미군 전략 변화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NATO 국가들이나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었던 만큼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이 지난 7월 공개한 외교정책 보고서 초안에서 사실상 바이든의 대선 외교안보 공약의 일단을 볼 수 있는데요,여기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존 방위비 협상 방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동맹을 쥐어짜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동맹을 회복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선 '조정된 외교'와 '장기적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돈을 더 내라'는 노골적 압박은 상당부분 완화되더라도 '전 세계 미군 재배치 전략'이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완전히 바뀔지는 현재로선 단언하기 힘듭니다. 신중히 지켜봐야 할 부부입니다.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병력을 '붙박이 군대'로 한 곳에서 오래 전개시키지 않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은 오래전부터 '미군 재배치' 사업과 '신속기동군화'의 논리였던 만큼, 미국에서 이런 논리가 새삼 다시 떠오르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현재도 미 대선 결과를 예측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만약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트럼프 시대 헝클어졌던 NATO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세계보건기구(WHO) 재가입과 국제기구 자금지원 등 '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강화하는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외교전략에서 트럼프와 구별돼 보이는 지향성과 달리 바이든 진영이 이른 시일 내 군사전략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일지는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움직임, 특히 이를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군사전략이나 '최적화 전략'을 바꾸는 일이 현재로선 그렇게 빨리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 2000년대 초 주한미군을 포함해 전 세계 미군 재배치 작업을 추진할 당시의 'G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 미군 재배치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뜻으로 읽히는 부분입니다.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30일 기자회견 첫 일성으로 "자신이 취임한 이래, 최우선의 관심사를 NDS (National Defense Strategy (신)국방전략 ) 실행에 둬왔다"면서 '최적화' '효율화'를 언급했습니다. 군사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한다는 논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군 수뇌부의 지향점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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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주독 미군 감축’과 ‘전략적 유연성’…인도·태평양 지역 미군은 어떤 방향으로?
    • 입력 2020-08-04 02:01:19
    • 수정2020-08-04 09: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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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더 안내는' 벨기에로 '미 유럽군 사령부' 이전】 미국 현지시간으로 7월29일 오전,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주독 미군 만2천명을 빼내겠다고 발표했을 때 감축되는 병력이 당초 알려졌던 9천 5백명보다도 2천 5백명이 더 많았는데요.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독일 기자가 질문합니다. "이번 발표가 독일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병력을 빼는 건가요?" 그러자 에스퍼 장관이 화상으로 연결돼 있던 월터스(Wolters) 미 유럽군 사령관에게 답변을 부탁합니다.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만 현재 (독일)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미 유럽군사령부(EUCOM)를 벨기에 몽스로 이전하려고 합니다...특수작전 사령부도 같은 장소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에스퍼 미 국방장관(사진 왼쪽)이 미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주독 미군 감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화면 오른쪽 스크린은 월터스 미 유럽군 사령관 월터스 사령관의 이 답변이 놀라웠던 것은 독일 주둔 유럽군사령부를 옮긴다고도 했지만 이전될 예정지가 벨기에라고 말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독일 국방비가 국내총생산의 2퍼센트가 안된다고 비난해 왔었죠. 그런데 벨기에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중이 독일의 1.24 퍼센트 보다도 훨씬 적은 1퍼센트 미만(0.93퍼센트)이었기 때문입니다. 벨기에 당국자가 "정권 바뀌기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2퍼센트 달성이 힘들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기준으로 볼때 '한참 미달한' 벨기에로 유럽군 사령부를 옮긴다고 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퍼 장관의 기자회견이 있고 몇 시간도 채 안된 29일 오후에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독일이 돈을 더 안내서' 주독 미군을 감축한다고 했습니다. "독일은 돈을 더 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30개의 NATO 국가들 가운데 방위비가 국내총생산(GDP)의 2퍼센트에 달하는 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영국과 에스토이니아 등 6개 나라 밖에 없습니다. 과거 독일도 '2퍼센트'를 맞추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미국을 제외한 NATO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내는 독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벨기에는 더 어려웠던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본다면 '돈을 더 안내는' 벨기에로의 이전, 괜찮은 일일까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독일 주둔 미군 감축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 NATO국 회원국 가운데 과거 구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다가 유럽에서 냉전이 끝난 뒤 NATO로 옮겨간 나라가 10개 나라입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은 아니였지만 몬테네그로나 크로아티아처럼 구 유고슬라비아를 중심으로 모였던 나라들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회원국이 과거 NATO의 '견제대상' 이었던 셈이죠. 이런 나라들까지 모여서 NATO회원국이 확대된 마당에 독일은 더이상 유럽의 최전방이 아닌 것이었죠. 유럽군 사령부의 전략적 입지로서 독일의 중요성도 그리 크게 부각될 이유도 없게 된 것입니다. 왼쪽 독일 슈투트가르트 / 오른쪽 벨기에 몽스 그럼 벨기에는? 사실 군사전략적 입지로서의 중요성 보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다는 상징성에, 미국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 더 고려된 듯 합니다. 지난 2018년 벨기에가 EU 회원국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차세대 전투기로 유럽산 유로파이터가 아닌 미국의 F-35를 선정하자, 당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벨기에의 선택은 EU의 이익에 어긋나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라고 비난까지 했었죠. 그런 벨기에와 비교하면 사안마다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독일은 꼭 국방비 문제 뿐이 아니라도 주둔지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주독 미군 빼내면서 다시 등장한 개념 '전략적 유연성'】 하지만 이번 독일 주둔 미군 감축과 사령부 이전 등을 '돈 문제'나 '트럼프 미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간의 불화' 때문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에스퍼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비용 효율성' 도 고려됐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돈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거시적인 국방전략 차원의 조치임을 여러차례 강조했습니다. 이틀 뒤에는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직접 기고까지 해서 이번 주독 미군 감축조치를 설명했는데요, 앞서 기자회견까지 포함해 열번 넘게 언급한 말이 '군사력 최적화'와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이라는 말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퍼 장관의 설명을 보면, 독일에서 빼내는 만2천명 가운데 5천6명은 NATO 회원국 내 재배치, 6천4백명은 미국으로 귀환시켰다가 신속대응군 '스트라이커 부대'로 편성해서 다시 흑해 연안 등에 배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폴란드와 발틱해 등 NATO의 방위선 내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전력을 증강하겠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에스퍼 장관의 설명대로라면 독일에서 병력 감축은 있겠지만 유럽에 투입되는 미군 전체 병력 수는 현재로선 큰 변화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주목되는 점은 에스퍼 장관이 이런 병력 재배치 과정에서 바로 '전략적 유연성'이 강화된다고 한 부분입니다. 전체 병력 수의 변화는 없더라도 이쪽 저쪽의 미군 병력을 기동성있게 각 지역 상황변화에 따라 투입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지금 당장은 독일에서 빼내는 병력을 유럽 이외의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신속대응군 '스트라이커 부대'로 편성된 부대는 전 세계 어느 전장에나 투입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군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출처: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United States Indo-Pacific Command (USINDOPACOM)) 홈페이지 https://www.pacom.mil/ 사실 미군 수뇌부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년 전이지만 최근에 부쩍 미 국방부의 공식 발표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한국에 있던 주한 미 2사단 병력 가운데 일부가 철수해 미 본토에서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 부대가 미국에서 재편성을 마친 뒤 이라크 등 전쟁 및 분쟁지역에 파견됐을 당시 한국에도 이 '전략적 유연성'이란 개념이 널리 각인된 바 있습니다. 즉 '인 앤 아웃(IN & OUT)'이 손쉬운, 즉 어느 지역이든 들어오고 나가는 작업이 '가벼운' 신속대응군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발표하면서 다시 이 개념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일에서 빠진 병력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NATO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순환 재배치 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주요 전장이나 국가 등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만큼 이번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돈 문제 뿐 아니라 그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온 전 세계 미군 재편 전략의 일환이기도 한 셈입니다. 미군 6천4백명을 본토로 귀환시켜서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해 다시 유럽에 파견하려면 그 비용은 독일에 가만히 주둔하고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붙박이 병력'였던 6천 4명이 전 세계에 신속 배치될 수있는 '스트라이커 부대'로 재편되면 병력 운용에서의 기동성과 효율성은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죠. 사실 독일에서 빼내는 미군 병력의 순환 재배치를 언급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는 했지만 NATO 권역 동쪽에 증강 배치되는 병력이 언제까지 '러시아 견제'를 명문으로 주둔 할지도 두고 볼 일입니다. 에스퍼 국방장관 스스로도 "그동안 NATO의 71년 역사에 변화가 많았다" 면서 "NATO에 새로운 동맹국이 합류해 NATO 국가와 러시아의 국경에 변화"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요. 듣기에 따라서는 '구 NATO 국가들과 러시아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해줄 국가들도 많이 생겼으니 그동안 핵심 역할을 해오던 미군의 역할과 위상, 규모도 바뀔 수 있다'는 함의도 있어 보입니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도 순환·재배치 이뤄질까...'대 중국 전략'이 핵심】 미 국방전략 안내 홈페이지 첫 화면 2차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이 두 나라를 상대로 동시에 군사적인 대립각을 세운 적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럴 여력이 있더라도 불필요한 국력의 소진이고 전략적 이득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유럽에서 이른바 냉전(Cold War)이 끝나기 전까지는 소련이 미국의 대결 상대였고, 냉전이 끝나고 구 소련이 해체된 뒤 지금은 중국입니다. 소련과 대결할 때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교는 물론 경제협력관계를 강화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중국과의 전방위적인 경쟁과 대결이 확산되는 지금, 러시아와의 갈등 확대는 미국에게 부담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난 2016년 선거국면에서 '러시아 스캔들'이 터진 이후 이번 2020 대선까지도 트럼프 행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건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도 부담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2018년 미 국방전략 보고서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상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관계와는 별도로 미 군사력의 예봉이 중국을 더 정조준해 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에스퍼 장관의 기자회견 이틀 뒤, 맥콘빌 미 육군참모총장은 미 육군이 40년 주기로 큰 변화를 해왔다고 전제하면서, "미 육군이 장거리 고정밀 타격능력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했습니다. 또 "(중국의)반접근·반거부 전략에 효과적 대응이 가능한 극초음속, 중거리 미사일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화상출연에서 한 말입니다. 맥콘빌 미 육군참모총장 CSIS 화상출연 맥콘빌 총장의 발언은 미 육군 군사력의 향상이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게 핵심인데요, 여기서 중국의 '제1도련선'까지 언급하면서 "일본 필리핀 한국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들과 파트너십을 강력히 하고 함께 협력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는 언급까지 내놨습니다. 주요 협력국 가운데 하나로 한국도 언급됐습니다. 여기에 "태평양을 '인도·태평양'으로 정의할 때 이미 방위협정을 맺은 일본, 호주와 더불어 (방위협정국에) 인도가 추가된다면 역내 안보와 안정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팽창을 기존 동맹국과 협력국, 그리고 인도까지 묶어서 견제하자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중국이 만든 '제1도련선' 이라는 개념은 맥콘빌 총장의 언급 그대로 'First island chain'이고 쿠릴 열도를 따라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지나 인도네시아 섬 위쪽을 돌아 길게 이어진, 중국이 설정한 가상의 선입니다. 이 선을 경계로 미국 등 해양세력의 진출을 차단하고,이어서 외곽으로 제2, 제3의 도련선을 설정해 점차 남중국해를 벗어나 태평양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맥콘빌 총장의 발언은 중국의 움직임을 역내 동맹 및 협력국과의 공조를 통해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미군 고위관계자들은 유럽에 이어 조만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최적화'도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에도 미국과 방위비 협상은 물론 전시작전권 전환 등 굵직하고 민감한 현안들이 많지만, 큰 틀에서 이뤄지는 이 같은 흐름에도 고민해야 할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는 셈입니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미군 전략 변화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NATO 국가들이나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었던 만큼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이 지난 7월 공개한 외교정책 보고서 초안에서 사실상 바이든의 대선 외교안보 공약의 일단을 볼 수 있는데요,여기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존 방위비 협상 방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동맹을 쥐어짜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동맹을 회복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선 '조정된 외교'와 '장기적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돈을 더 내라'는 노골적 압박은 상당부분 완화되더라도 '전 세계 미군 재배치 전략'이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완전히 바뀔지는 현재로선 단언하기 힘듭니다. 신중히 지켜봐야 할 부부입니다.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병력을 '붙박이 군대'로 한 곳에서 오래 전개시키지 않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은 오래전부터 '미군 재배치' 사업과 '신속기동군화'의 논리였던 만큼, 미국에서 이런 논리가 새삼 다시 떠오르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현재도 미 대선 결과를 예측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만약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트럼프 시대 헝클어졌던 NATO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세계보건기구(WHO) 재가입과 국제기구 자금지원 등 '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강화하는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외교전략에서 트럼프와 구별돼 보이는 지향성과 달리 바이든 진영이 이른 시일 내 군사전략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일지는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움직임, 특히 이를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군사전략이나 '최적화 전략'을 바꾸는 일이 현재로선 그렇게 빨리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 2000년대 초 주한미군을 포함해 전 세계 미군 재배치 작업을 추진할 당시의 'G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 미군 재배치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뜻으로 읽히는 부분입니다.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30일 기자회견 첫 일성으로 "자신이 취임한 이래, 최우선의 관심사를 NDS (National Defense Strategy (신)국방전략 ) 실행에 둬왔다"면서 '최적화' '효율화'를 언급했습니다. 군사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해야 한다는 논리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군 수뇌부의 지향점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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