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⑥ 물난리 뒤 ‘재난 알림’…대응 체계 ‘한계’

입력 2020.08.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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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것만 세 번 보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부산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지난달 23일 밤, 호우경보 발효 1시간 만에 도심 곳곳이 침수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이 물에 잠겼고, 역사 전체는 흙탕물로 뒤덮였습니다. 부산역 지하상가 상인은 그날 밤 SNS를 통해 부산역이 잠겼다는 사실을 최초로 인지했습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이 오겠지', '상가는 괜찮겠지' 했던 그의 기대는 다음날 아침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상가 안까지 물이 들어차 못 쓰게 된 상품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산시는 비 피해를 최소화한다며 지난 2016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새롭게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왜 재난 대응은 이렇게 허술했을까요? KBS 부산이 마련한 재난 기획 보도, 오늘은 재난 매뉴얼의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살펴보면 재난 종류에 따라 많게는 수백 페이지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정도에 따라 비상 단계 기준을 나누고, 인력 동원도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기상 상황을 전광판과 SNS, 문자, 경보방송 등으로 알리고 상황 판단 회의도 열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우 예비 특보 때부터 재해 취약지를 중복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폭우가 내린 지난달 23일 밤, 시민들에게 안내는 제대로 됐을까요?

부산시는 오후 2시 호우 주의보가 발효된 이후 30여 분이 지나 처음으로 재난 문자를 보냅니다. 이후 밤 8시가 되자 호우 경보가 발효됐고, 한 시간 만에 부산지역은 물바다가 됐습니다. 도로가 물에 잠겼고, 차들은 오도 가도 못했습니다. 동천이 범람하고 지하차도가 물에 잠긴 밤 9시 30분쯤. 부산시는 그제서야 2차 재난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미 도심 곳곳에서 비 피해가 속출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잠긴 지하차도는 '통제 안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관할 지자체인 부산 동구청이 통제 알림 문자를 보낸 건 '밤 10시 53분'. 이미 사고가 난지 1시간이 훌쩍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16개 구군 가운데 7개 구군은 재난 문자를 아예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 KBS 보도국으로는 제보 전화와 영상이 물밀듯 밀려왔고, 취재진도 침수 현장에서 비 피해 취재에 한창이었습니다. 이후 밤 11시 25분, 부산시는 마지막 재난문자를 보냅니다.

밤 11시 25분/ "부산지역 폭우로 인하여 부산 전지역 도로가 침수중에 있습니다. 가능한 차량운행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상당했습니다. 왜 지하차도가 사전 통제되지 않았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나 2G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저 세 통의 재난문자도 받지 못했습니다.

부산시는 당시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말합니다. 전광판 안내가 이뤄졌고, 메신저 친구 추가를 하면 자세한 내용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시민들에게 즉각적으로 닿을 수 있는 문자 서비스는 많이 보냈을 때 오히려 시민들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지성 집중 호우는 지역마다 편차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민원이 쇄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과도한 재난 문자 피로도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상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하철역이 침수되고, 도로가 통제된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이 과연 그 정보가 피곤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집중호우 당시 사하구 괴정동, 제보자: 김정호집중호우 당시 사하구 괴정동, 제보자: 김정호

재난 대응 시나리오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로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재난 대응 매뉴얼은 호우 예비특보, 주의보, 경보에 따라 구별됩니다. 3시간, 12시간 강우량을 집계해 재난 대응 비상 단계를 결정합니다. 결국 지난번과 같은 시간당 80mm 이상의 집중 호우에는 대비할 수가 없고, 사전 대책 마련이나 알림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가 한강 수위도 비상 단계 설정 기준에 포함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산의 재난 대응 비상 단계는 하천 수위에 대한 지표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유관기관과의 협력도 단순 보고 체계가 아닌 공조의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부서별로 업무를 중첩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재난대응과에서 재난재해 문제를 총괄하지만 관련 보고와 현황은 지자체와 각 부서가 함께 처리 하도록 하는 구조가 그렇습니다.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특정 부서만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함께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지금 재난을 대하는 부산시와 지자체, 유관기관들의 자세는 아쉽기만 합니다.

지난 2014년에도 부산에는 집중호우가 내려 지하차도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지금의 상황들은 그때와 사뭇 다르면서도 닮아 있습니다.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수많은 매뉴얼이 바뀌었지만 6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전히 재난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양치기 소년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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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⑥ 물난리 뒤 ‘재난 알림’…대응 체계 ‘한계’
    • 입력 2020-08-04 16:29:44
    취재K
"똑같은 것만 세 번 보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부산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지난달 23일 밤, 호우경보 발효 1시간 만에 도심 곳곳이 침수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이 물에 잠겼고, 역사 전체는 흙탕물로 뒤덮였습니다. 부산역 지하상가 상인은 그날 밤 SNS를 통해 부산역이 잠겼다는 사실을 최초로 인지했습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이 오겠지', '상가는 괜찮겠지' 했던 그의 기대는 다음날 아침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상가 안까지 물이 들어차 못 쓰게 된 상품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산시는 비 피해를 최소화한다며 지난 2016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새롭게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왜 재난 대응은 이렇게 허술했을까요? KBS 부산이 마련한 재난 기획 보도, 오늘은 재난 매뉴얼의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살펴보면 재난 종류에 따라 많게는 수백 페이지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정도에 따라 비상 단계 기준을 나누고, 인력 동원도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기상 상황을 전광판과 SNS, 문자, 경보방송 등으로 알리고 상황 판단 회의도 열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우 예비 특보 때부터 재해 취약지를 중복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폭우가 내린 지난달 23일 밤, 시민들에게 안내는 제대로 됐을까요?

부산시는 오후 2시 호우 주의보가 발효된 이후 30여 분이 지나 처음으로 재난 문자를 보냅니다. 이후 밤 8시가 되자 호우 경보가 발효됐고, 한 시간 만에 부산지역은 물바다가 됐습니다. 도로가 물에 잠겼고, 차들은 오도 가도 못했습니다. 동천이 범람하고 지하차도가 물에 잠긴 밤 9시 30분쯤. 부산시는 그제서야 2차 재난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미 도심 곳곳에서 비 피해가 속출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잠긴 지하차도는 '통제 안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관할 지자체인 부산 동구청이 통제 알림 문자를 보낸 건 '밤 10시 53분'. 이미 사고가 난지 1시간이 훌쩍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16개 구군 가운데 7개 구군은 재난 문자를 아예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 KBS 보도국으로는 제보 전화와 영상이 물밀듯 밀려왔고, 취재진도 침수 현장에서 비 피해 취재에 한창이었습니다. 이후 밤 11시 25분, 부산시는 마지막 재난문자를 보냅니다.

밤 11시 25분/ "부산지역 폭우로 인하여 부산 전지역 도로가 침수중에 있습니다. 가능한 차량운행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상당했습니다. 왜 지하차도가 사전 통제되지 않았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나 2G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저 세 통의 재난문자도 받지 못했습니다.

부산시는 당시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말합니다. 전광판 안내가 이뤄졌고, 메신저 친구 추가를 하면 자세한 내용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시민들에게 즉각적으로 닿을 수 있는 문자 서비스는 많이 보냈을 때 오히려 시민들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지성 집중 호우는 지역마다 편차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민원이 쇄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과도한 재난 문자 피로도를 호소하는 시민들이 상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하철역이 침수되고, 도로가 통제된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이 과연 그 정보가 피곤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집중호우 당시 사하구 괴정동, 제보자: 김정호
재난 대응 시나리오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로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재난 대응 매뉴얼은 호우 예비특보, 주의보, 경보에 따라 구별됩니다. 3시간, 12시간 강우량을 집계해 재난 대응 비상 단계를 결정합니다. 결국 지난번과 같은 시간당 80mm 이상의 집중 호우에는 대비할 수가 없고, 사전 대책 마련이나 알림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가 한강 수위도 비상 단계 설정 기준에 포함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산의 재난 대응 비상 단계는 하천 수위에 대한 지표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유관기관과의 협력도 단순 보고 체계가 아닌 공조의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부서별로 업무를 중첩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재난대응과에서 재난재해 문제를 총괄하지만 관련 보고와 현황은 지자체와 각 부서가 함께 처리 하도록 하는 구조가 그렇습니다.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특정 부서만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함께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지금 재난을 대하는 부산시와 지자체, 유관기관들의 자세는 아쉽기만 합니다.

지난 2014년에도 부산에는 집중호우가 내려 지하차도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지금의 상황들은 그때와 사뭇 다르면서도 닮아 있습니다.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수많은 매뉴얼이 바뀌었지만 6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전히 재난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양치기 소년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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