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⑦ “부산에 1년째 산사태가 없었다고요?”

입력 2020.08.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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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등으로 산 중턱의 바위나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현상. 바로 산사태입니다.

만약 산 아래에 민가나 도로가 있으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산사태 피해를 막기 위해 산림청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에 '산사태 예측 정보'를 제공합니다.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이 있으면 산림청이 해당 구·군에 이를 통보하고 구·군에서 곧바로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합니다.

산림청 산사태 정보시스템 홈페이지산림청 산사태 정보시스템 홈페이지

기록적인 폭우에도 산사태 주의보·경보는 0건?

지난달 23일, 부산에 시간당 8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침수 피해와 함께 토사가 붕괴하는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이날 부산에는 단 한 건의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도 발령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의 예상대로 이날 부산에는 산사태 피해가 하나도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산에는 이날 폭우로 수영구 광안동의 한 야산이 무너져 내리는 등 산사태 피해 신고가 50여 건이나 접수됐습니다. 특히 광안동에서는 야산이 무너지면서 사찰과 주택 등 건물 4채 일부가 흙더미에 묻혔습니다. 집 안에 갇혀 있던 주민 2명은 소방대원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습니다. 산사태 피해를 본 지 2주 가까이 지났지만, 집이 여전히 흙에 파묻혀 있어 주민들은 아직 인근 경로당에서 대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번개가 치는듯한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앞집에서 119를 외쳤다. 그래서 나오니 산이 무너져서 사람이 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 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합니다. 산사태로 흙더미가 집을 덮치고 나서야 겨우 산사태가 난 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전까지는 산사태 위험을 알리는 어떤 경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흙더미에 파묻힌 주택흙더미에 파묻힌 주택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 때문에…."

산림청은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 산사태 예측정보를 제공합니다. 시간당 예상 강우량이 얼마나 되는지가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통상 부산은 시간당 강우량이 30~40mm 정도일 때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집니다. 그런데 시간당 8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이 날은 왜 아무런 산사태 예보가 없었을까요?

산림청은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 탓을 합니다. 기상청으로부터 예상 강우량 정보를 받아 산사태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이날도 예상됐던 강우량과 실제 내린 비의 양이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겁니다.

부산은 지난해 7월, 북구 금곡동과 화명동에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진 이후로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된 적이 없습니다. 산림청은 이런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기상청의 예보가 부정확해서 그렇다는 대답만 반복합니다.

부산 금정구 사면붕괴 사고 현장부산 금정구 사면붕괴 사고 현장

자연산지만 대상, 인공사면 등은 붕괴 예측 안 돼

전문가들은 예측 시스템이 산림청이 관리하는 '자연 산지'에만 한정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급경사지나 인공사면처럼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다른 산지 사면은 붕괴 우려가 커도 사전에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폭우 때도 금정구의 한 아파트 뒤편 야산이 무너졌지만, 이곳 주민들도 아무런 사전 정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사하구 구평동의 한 야산의 인공사면이 붕괴해 산 아래에 있던 주민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부산의 한 방재 전문가는 "부산은 지역적인 특성상 자연 산지보다는 인공산지나 사면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반영해 업데이트해서 시스템에 정착시키는 게 재난 예보나 대비에 나을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다른 전문가는 부산시에 아예 '산지 사면과'라는 조직을 신설해 산사태 우려 지역이나 급경사지, 인공사면 등을 총괄해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 주택 복구 작업하는 주민피해 주택 복구 작업하는 주민

"개선된 예측 시스템 개발, 정확도 90%"

다행히 산림청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에서는 현재 산사태 예측 시스템보다 한 발짝 더 개선된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예상 강우량에 더해 경사도와 지반 상태 등 다양한 변수를 계산하는 산사태 예측 시스템입니다.

과거에 발생했던 산사태 사례들을 이 시스템에 넣어 재현했더니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현재 시스템은 1시간 전에 산사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지만, 이 시스템은 하루 전에 산사태 가능성을 예보해 미리 대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지리산 일대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 이 시스템은 곧 부산 등 대도시에 먼저 적용될 예정입니다.

매번 폭우가 쏟아지면 산 아래 주민들은 산사태의 두려움에 떱니다. 국지성 집중호우로 산사태 발생 위험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안을 달래줄 보다 정확하고 빠른 예보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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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⑦ “부산에 1년째 산사태가 없었다고요?”
    • 입력 2020-08-05 16:39:48
    취재K
폭우 등으로 산 중턱의 바위나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현상. 바로 산사태입니다.

만약 산 아래에 민가나 도로가 있으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산사태 피해를 막기 위해 산림청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에 '산사태 예측 정보'를 제공합니다.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이 있으면 산림청이 해당 구·군에 이를 통보하고 구·군에서 곧바로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합니다.

산림청 산사태 정보시스템 홈페이지
기록적인 폭우에도 산사태 주의보·경보는 0건?

지난달 23일, 부산에 시간당 8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침수 피해와 함께 토사가 붕괴하는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이날 부산에는 단 한 건의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도 발령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의 예상대로 이날 부산에는 산사태 피해가 하나도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산에는 이날 폭우로 수영구 광안동의 한 야산이 무너져 내리는 등 산사태 피해 신고가 50여 건이나 접수됐습니다. 특히 광안동에서는 야산이 무너지면서 사찰과 주택 등 건물 4채 일부가 흙더미에 묻혔습니다. 집 안에 갇혀 있던 주민 2명은 소방대원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습니다. 산사태 피해를 본 지 2주 가까이 지났지만, 집이 여전히 흙에 파묻혀 있어 주민들은 아직 인근 경로당에서 대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번개가 치는듯한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앞집에서 119를 외쳤다. 그래서 나오니 산이 무너져서 사람이 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 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합니다. 산사태로 흙더미가 집을 덮치고 나서야 겨우 산사태가 난 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전까지는 산사태 위험을 알리는 어떤 경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흙더미에 파묻힌 주택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 때문에…."

산림청은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 산사태 예측정보를 제공합니다. 시간당 예상 강우량이 얼마나 되는지가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통상 부산은 시간당 강우량이 30~40mm 정도일 때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집니다. 그런데 시간당 8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이 날은 왜 아무런 산사태 예보가 없었을까요?

산림청은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 탓을 합니다. 기상청으로부터 예상 강우량 정보를 받아 산사태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이날도 예상됐던 강우량과 실제 내린 비의 양이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겁니다.

부산은 지난해 7월, 북구 금곡동과 화명동에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진 이후로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된 적이 없습니다. 산림청은 이런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기상청의 예보가 부정확해서 그렇다는 대답만 반복합니다.

부산 금정구 사면붕괴 사고 현장
자연산지만 대상, 인공사면 등은 붕괴 예측 안 돼

전문가들은 예측 시스템이 산림청이 관리하는 '자연 산지'에만 한정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급경사지나 인공사면처럼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다른 산지 사면은 붕괴 우려가 커도 사전에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폭우 때도 금정구의 한 아파트 뒤편 야산이 무너졌지만, 이곳 주민들도 아무런 사전 정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사하구 구평동의 한 야산의 인공사면이 붕괴해 산 아래에 있던 주민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부산의 한 방재 전문가는 "부산은 지역적인 특성상 자연 산지보다는 인공산지나 사면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반영해 업데이트해서 시스템에 정착시키는 게 재난 예보나 대비에 나을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다른 전문가는 부산시에 아예 '산지 사면과'라는 조직을 신설해 산사태 우려 지역이나 급경사지, 인공사면 등을 총괄해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 주택 복구 작업하는 주민
"개선된 예측 시스템 개발, 정확도 90%"

다행히 산림청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에서는 현재 산사태 예측 시스템보다 한 발짝 더 개선된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예상 강우량에 더해 경사도와 지반 상태 등 다양한 변수를 계산하는 산사태 예측 시스템입니다.

과거에 발생했던 산사태 사례들을 이 시스템에 넣어 재현했더니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현재 시스템은 1시간 전에 산사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지만, 이 시스템은 하루 전에 산사태 가능성을 예보해 미리 대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지리산 일대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 이 시스템은 곧 부산 등 대도시에 먼저 적용될 예정입니다.

매번 폭우가 쏟아지면 산 아래 주민들은 산사태의 두려움에 떱니다. 국지성 집중호우로 산사태 발생 위험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안을 달래줄 보다 정확하고 빠른 예보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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