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α’ 수도권 주택 공급이 놓친 것

입력 2020.08.0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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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만원(滿員)이다.' 1966년에 발표된 이호철 작가의 소설 제목입니다. 도시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이 나올 당시 서울 인구가 370만 명이었다니, 천만 명에 이르는 지금 서울은 초만원도 한참을 넘어섰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8.4 수도권 주택공급 대책에 따라, 13만2천 호 공급 계획을 내놨습니다. 서울 어디서 이런 택지가 나온 것일까요. 서울에 주택 공급은 늘리면 늘릴수록 미덕일까요.

대통령 지시에 따른 공급계획에 대해 대놓고 반발하진 못하지만, 지자체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임대주택을 기피하는 님비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도시 차원에서 고민해 볼 대목들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유휴부지로 평가된 곳은 주택 이상의 도시 중심 기능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동안 개발을 유보해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미디어시티는 어디에? 상암동 12년 표류 끝 결론은 아파트 단지

서울 마포구에는 6,200호의 건설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시, 구, 경찰청 소유인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3,500호, 서울시 소유인 상암 DMC 미매각 부지에 2천 호, 구 소유인 상암 견인차량 보관소에 300호, 상암 자동차검사소에 400호가 예정됐습니다.

발표 이전부터 언론에 건설계획이 나오면서, 마포구에선 일찍부터 반발 여론이 일었습니다. 상암동이 지역구인 김기덕 서울시의회 부의장(더불어민주당)은 "상암지구는 서울시가 본래 계획하고 주민들과 약속한 DMC 기능에 부합되는 최첨단 미래도시로 조성되어야 한다"면서 주택 공급 계획을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상암동 랜드마크 부지 상암동 랜드마크 부지

3만7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이 부지는 2008년 당시로써는 국내 최고층인 133층의 초고층 빌딩을 세워 디지털미디어시티의 랜드마크로 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마련된 곳입니다. 그러기엔 사업성이 높지 않아 10년 넘게 사업이 표류해왔지만, 중심상업지로 기대했던 곳에 아파트 단지라는 결론이 내려지자 마포구민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도 글이 올라왔습니다.

"주말이면 턱없이 부족한 공영 주차장으로 공원 등을 찾는 방문객등으로 양쪽 한 차선이 주차장으로 변하는거 아십니까? 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라도 하거나, 하늘공원 축제라도 할라치면 수많은 차들로 교통이 혼잡하고 마포구청 - 랜드마크 부지까지 3-40분은 소요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5천세대 이상의 기존 세대들보다도 많은 임대주택을 들이시겠다고요?
랜드마크 부지 주변 제대로 된 상업시설 하나 없는 거 아십니까? 애초에 미래를 계획하고 랜드마크 건물을 계획했으면 그 구도에 맞게 가야하는거 아닙니까? (중략) 미래 서북부도심발전 중심인 dmc 랜드마크 부지를 원래 계획대로 발전시켜주시길 바랍니다." -청와대 국민청원(7.28)

문제는 교통난뿐만이 아닙니다. 김 의원은 상암중학교는 과밀 학급으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마포구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국토부의 일방적인 발표는 마포구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광역 중심 용산에 주먹구구식 주택공급이라니"

군부지인 캠프킴 부지에 3,100호 건설계획이 나온 용산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노식래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마스터 플랜 수립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면, 용산의 가능성과 기회가 박탈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용산은 서울의 최상위 법정도시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서 광역 중심으로 잠재력이 높은 곳인데, 임기응변식으로 주택 공급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용산정비창은 지난 5·6대책에서 8천 호 주택공급 계획이 발표된 데 이어 8·4대책에서 2천 호가 추가됐고 용산 캠프킴 부지는 이번 대책에 처음 포함됐습니다. 한때 국제업무지구로 추진될 만큼 용산은 업무나 상업 등 도시의 중심기능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되고, 최초의 국가공원인 용산 공원이 조성되는 등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한 곳입니다. 하지만 잇단 주택건설 계획에 용산 역시 흔한 한강 변 아파트가 될 상황입니다.

최초의 계획도시 과천, "청사 부지에 주택 공급은 난개발"

8·4 공급대책 대상지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 밖은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일대입니다. 이곳엔 4천여 호의 주택 건축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이 부지는 정부 과천청사 시절 잔디마당, 주차장, 광장 등으로 사용되다가, 10년 가까이 공원이나 수목원, 민간개발 등 다양한 계획만 세워진 채 용도가 정해지지 않았던 곳입니다.

정부과천청사 앞 유휴지정부과천청사 앞 유휴지

특히, 과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행정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곳입니다. 하지만 정부 부처들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로 옮기면서 상권이 무너지고 공실이 늘어나는 등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천시와 상인들은 정부청사 이전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면서, 이 부지의 활용도 함께 고민해왔습니다. 과천 중심부에 위치한 넓은 부지여서, 다시 도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업무 기능을 유치할 수 있다고 기대해왔습니다. 그런데 과천시에 따르면 아무런 협의 없이 이곳에 갑자기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 겁니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발상은 과천시의 도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계획되는 것이 아니라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주택공급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집을 지어서는 안 되는 곳에 집을 짓고, 개발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을 개발하는 것이 난개발이라면,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주택을 지어 공급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난개발"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천박한 도시'가 되지 않으려면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서 단가 얼마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 최근 화제가 됐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입니다. 세종시가 유튜브에 올려놓은 행사 영상을 통해 발언 전체를 볼 수 있는데요, 정계 은퇴를 앞둔 이 대표가 지역구 주민에게 고별인사를 하는 성격의 자리에서 '세종시를 품위 있는 도시'로 만들자고 독려하는 맥락이었습니다.

품격 있는 도시, 삶의 질을 고려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택, 집값도 안정되어야 하지만 그곳에 사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시설, 교육, 문화 등이 고루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앞뒤로 이어졌습니다. "서울은 천박한 도시"라는 표현에는 거부감이 들어도, 고른 기능을 갖춘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관점이라면 비판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강 변이 아파트가 병풍처럼 늘어선 풍경이 된 것은 서울의 인구가 폭발하던 개발 시기, 물량 중심의 주택 공급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비해 서울은 인구가 감소하고 정부의 재정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의 잠재력이 될 수 있는 곳까지 아파트를 채워 넣은 8·4 공급대책을 보면서 여당 대표의 발언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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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만+α’ 수도권 주택 공급이 놓친 것
    • 입력 2020-08-06 07:08:50
    취재K
'서울은 만원(滿員)이다.' 1966년에 발표된 이호철 작가의 소설 제목입니다. 도시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이 나올 당시 서울 인구가 370만 명이었다니, 천만 명에 이르는 지금 서울은 초만원도 한참을 넘어섰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8.4 수도권 주택공급 대책에 따라, 13만2천 호 공급 계획을 내놨습니다. 서울 어디서 이런 택지가 나온 것일까요. 서울에 주택 공급은 늘리면 늘릴수록 미덕일까요.

대통령 지시에 따른 공급계획에 대해 대놓고 반발하진 못하지만, 지자체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임대주택을 기피하는 님비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도시 차원에서 고민해 볼 대목들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유휴부지로 평가된 곳은 주택 이상의 도시 중심 기능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동안 개발을 유보해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미디어시티는 어디에? 상암동 12년 표류 끝 결론은 아파트 단지

서울 마포구에는 6,200호의 건설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시, 구, 경찰청 소유인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3,500호, 서울시 소유인 상암 DMC 미매각 부지에 2천 호, 구 소유인 상암 견인차량 보관소에 300호, 상암 자동차검사소에 400호가 예정됐습니다.

발표 이전부터 언론에 건설계획이 나오면서, 마포구에선 일찍부터 반발 여론이 일었습니다. 상암동이 지역구인 김기덕 서울시의회 부의장(더불어민주당)은 "상암지구는 서울시가 본래 계획하고 주민들과 약속한 DMC 기능에 부합되는 최첨단 미래도시로 조성되어야 한다"면서 주택 공급 계획을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상암동 랜드마크 부지
3만7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이 부지는 2008년 당시로써는 국내 최고층인 133층의 초고층 빌딩을 세워 디지털미디어시티의 랜드마크로 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마련된 곳입니다. 그러기엔 사업성이 높지 않아 10년 넘게 사업이 표류해왔지만, 중심상업지로 기대했던 곳에 아파트 단지라는 결론이 내려지자 마포구민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도 글이 올라왔습니다.

"주말이면 턱없이 부족한 공영 주차장으로 공원 등을 찾는 방문객등으로 양쪽 한 차선이 주차장으로 변하는거 아십니까? 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라도 하거나, 하늘공원 축제라도 할라치면 수많은 차들로 교통이 혼잡하고 마포구청 - 랜드마크 부지까지 3-40분은 소요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5천세대 이상의 기존 세대들보다도 많은 임대주택을 들이시겠다고요?
랜드마크 부지 주변 제대로 된 상업시설 하나 없는 거 아십니까? 애초에 미래를 계획하고 랜드마크 건물을 계획했으면 그 구도에 맞게 가야하는거 아닙니까? (중략) 미래 서북부도심발전 중심인 dmc 랜드마크 부지를 원래 계획대로 발전시켜주시길 바랍니다." -청와대 국민청원(7.28)

문제는 교통난뿐만이 아닙니다. 김 의원은 상암중학교는 과밀 학급으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마포구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국토부의 일방적인 발표는 마포구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광역 중심 용산에 주먹구구식 주택공급이라니"

군부지인 캠프킴 부지에 3,100호 건설계획이 나온 용산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노식래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마스터 플랜 수립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면, 용산의 가능성과 기회가 박탈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용산은 서울의 최상위 법정도시계획인 2030 서울플랜에서 광역 중심으로 잠재력이 높은 곳인데, 임기응변식으로 주택 공급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용산정비창은 지난 5·6대책에서 8천 호 주택공급 계획이 발표된 데 이어 8·4대책에서 2천 호가 추가됐고 용산 캠프킴 부지는 이번 대책에 처음 포함됐습니다. 한때 국제업무지구로 추진될 만큼 용산은 업무나 상업 등 도시의 중심기능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되고, 최초의 국가공원인 용산 공원이 조성되는 등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한 곳입니다. 하지만 잇단 주택건설 계획에 용산 역시 흔한 한강 변 아파트가 될 상황입니다.

최초의 계획도시 과천, "청사 부지에 주택 공급은 난개발"

8·4 공급대책 대상지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 밖은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일대입니다. 이곳엔 4천여 호의 주택 건축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이 부지는 정부 과천청사 시절 잔디마당, 주차장, 광장 등으로 사용되다가, 10년 가까이 공원이나 수목원, 민간개발 등 다양한 계획만 세워진 채 용도가 정해지지 않았던 곳입니다.

정부과천청사 앞 유휴지
특히, 과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행정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곳입니다. 하지만 정부 부처들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로 옮기면서 상권이 무너지고 공실이 늘어나는 등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천시와 상인들은 정부청사 이전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면서, 이 부지의 활용도 함께 고민해왔습니다. 과천 중심부에 위치한 넓은 부지여서, 다시 도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업무 기능을 유치할 수 있다고 기대해왔습니다. 그런데 과천시에 따르면 아무런 협의 없이 이곳에 갑자기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 겁니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발상은 과천시의 도시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계획되는 것이 아니라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주택공급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집을 지어서는 안 되는 곳에 집을 짓고, 개발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을 개발하는 것이 난개발이라면,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주택을 지어 공급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난개발"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천박한 도시'가 되지 않으려면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서 단가 얼마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 최근 화제가 됐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입니다. 세종시가 유튜브에 올려놓은 행사 영상을 통해 발언 전체를 볼 수 있는데요, 정계 은퇴를 앞둔 이 대표가 지역구 주민에게 고별인사를 하는 성격의 자리에서 '세종시를 품위 있는 도시'로 만들자고 독려하는 맥락이었습니다.

품격 있는 도시, 삶의 질을 고려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택, 집값도 안정되어야 하지만 그곳에 사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시설, 교육, 문화 등이 고루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앞뒤로 이어졌습니다. "서울은 천박한 도시"라는 표현에는 거부감이 들어도, 고른 기능을 갖춘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관점이라면 비판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강 변이 아파트가 병풍처럼 늘어선 풍경이 된 것은 서울의 인구가 폭발하던 개발 시기, 물량 중심의 주택 공급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비해 서울은 인구가 감소하고 정부의 재정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의 잠재력이 될 수 있는 곳까지 아파트를 채워 넣은 8·4 공급대책을 보면서 여당 대표의 발언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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