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획]⑧ 잦은 물난리…부산형 ‘맞춤 대책’ 세워야

입력 2020.08.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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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나 물이 범람했으니까. 비가 온다고 하면 아, 또 그 물이 넘을까..."

2주째 복구작업 중인 양옥란 씨는 젖은 상품을 아직도 다 정리하지 못해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습니다. 지난달 10일과 23일 두 차례 범람한 부산 도심 하천, 동천 옆에 상가가 있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했는데요. 온종일 수돗물에 물건들을 씻고 씻어보지만 또 비가 온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양 씨의 상점에서 10m 떨어진 곳에는 배수펌프장이 있지만 정작 비가 왔을 때는 침수돼 배수 작업이 중단됐습니다. 배수펌프장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관할 지자체인 부산 동구청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곳은 강 하천 저지대라 상습 침수구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을까요?

KBS 부산은 이번 집중호우 물난리를 계기로 모두 8편의 재난 기획보도를 보도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왜 그동안 대책이 마련되지 못했는지, 부산형 맞춤 대책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봤습니다.


예산 확보 지름길,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 … "땅값 떨어진다" 주민 반발에 철회

담당 지자체인 동구청은 이미 지난 2018년 동천 하류 일대를 정비하기 위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바로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인데요. 지형적으로 자연재해 발생 우려가 있는 지역을 정비하기 위해 자연재해대책법으로 규정해 지구 지정을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풍수해, 산사태 등을 막을 수 있는 각종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장, 하천 정비 등에 최대 국비 50%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부산에는 모두 51곳이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됐는데요.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에서는 마다할 리 없는 사업입니다.

개선지구로 지정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찬성'입니다. 아무리 전문가 검토를 거치고 구청에서 계획을 마련해도 주민 공청회에서 반대에 부딪히면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동천 하류 일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민 공청회에서 일부 주민이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사업이 좌초됐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국지성 집중호우가 왔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겁니다.


주민들은 반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꼽았습니다. 첫째, 개선지구로 지정될 경우 해당 지역이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만큼 지역 자체의 재산권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사업이 길게는 10년씩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그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동안 집행된 사업에 대한 불신입니다. 이미 배수펌프장은 2017년 용량을 늘린 바 있고, 동천 하류에는 분류식 하수관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막이를 제때 치우지 않아 동천이 범람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이미 늘린 배수펌프장 용량으로도 침수를 막지 못하자 주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습니다. 다른 사업을 한다고 근본 원인이 해결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려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부산시가 연말까지 완성해 공개할 예정인 '재해예방지도'입니다. 부산시는 수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침수 예상 지역과 대피 경로 등을 담아 제작해 시민들에게 배포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제작한 지도를 재산권 침해 우려 등으로 공개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부산시가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부산형 '맞춤 대책' 필요한 때

전문가들은 사후복구와 개선보다는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부산에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고 있어 산비탈을 깎아 집을 만들고, 강 하류 저지대는 바다와 맞닿은 부산의 지형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기후변화 적응, 이것이 부산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부산은 강가, 바닷가에 인접한 저지대에 시가지가 발달해 있습니다. 해운대 마린시티와 동천하류 등이 그렇습니다. 이 같은 곳은 홍수위뿐만 아니라 만조위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이번처럼 밀물과 집중호우가 만났을 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산비탈을 개발해 산이 물을 머금는 양이 줄었고, 비는 도로를 타고 저지대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천 전체를 관리하면서 도심의 빗물 침투력을 어떻게 늘릴지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결국, 도심 전체를 고려한 전략적인 배수시설 배치와 계획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앞서 지적했던 우수저류시설의 지역 편중화, 하수도의 용량 부족 문제 등 모든 사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물난리를 막기 위한 장기적인 관점의 고민이 다시금 시작돼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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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기획]⑧ 잦은 물난리…부산형 ‘맞춤 대책’ 세워야
    • 입력 2020-08-07 14:36:00
    취재K
"두 번이나 물이 범람했으니까. 비가 온다고 하면 아, 또 그 물이 넘을까..."

2주째 복구작업 중인 양옥란 씨는 젖은 상품을 아직도 다 정리하지 못해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습니다. 지난달 10일과 23일 두 차례 범람한 부산 도심 하천, 동천 옆에 상가가 있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했는데요. 온종일 수돗물에 물건들을 씻고 씻어보지만 또 비가 온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양 씨의 상점에서 10m 떨어진 곳에는 배수펌프장이 있지만 정작 비가 왔을 때는 침수돼 배수 작업이 중단됐습니다. 배수펌프장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관할 지자체인 부산 동구청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곳은 강 하천 저지대라 상습 침수구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을까요?

KBS 부산은 이번 집중호우 물난리를 계기로 모두 8편의 재난 기획보도를 보도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왜 그동안 대책이 마련되지 못했는지, 부산형 맞춤 대책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봤습니다.


예산 확보 지름길,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 … "땅값 떨어진다" 주민 반발에 철회

담당 지자체인 동구청은 이미 지난 2018년 동천 하류 일대를 정비하기 위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바로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인데요. 지형적으로 자연재해 발생 우려가 있는 지역을 정비하기 위해 자연재해대책법으로 규정해 지구 지정을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풍수해, 산사태 등을 막을 수 있는 각종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장, 하천 정비 등에 최대 국비 50%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부산에는 모두 51곳이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됐는데요.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에서는 마다할 리 없는 사업입니다.

개선지구로 지정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찬성'입니다. 아무리 전문가 검토를 거치고 구청에서 계획을 마련해도 주민 공청회에서 반대에 부딪히면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동천 하류 일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민 공청회에서 일부 주민이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사업이 좌초됐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국지성 집중호우가 왔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겁니다.


주민들은 반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꼽았습니다. 첫째, 개선지구로 지정될 경우 해당 지역이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만큼 지역 자체의 재산권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사업이 길게는 10년씩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그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동안 집행된 사업에 대한 불신입니다. 이미 배수펌프장은 2017년 용량을 늘린 바 있고, 동천 하류에는 분류식 하수관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막이를 제때 치우지 않아 동천이 범람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이미 늘린 배수펌프장 용량으로도 침수를 막지 못하자 주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습니다. 다른 사업을 한다고 근본 원인이 해결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려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부산시가 연말까지 완성해 공개할 예정인 '재해예방지도'입니다. 부산시는 수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침수 예상 지역과 대피 경로 등을 담아 제작해 시민들에게 배포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제작한 지도를 재산권 침해 우려 등으로 공개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부산시가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부산형 '맞춤 대책' 필요한 때

전문가들은 사후복구와 개선보다는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부산에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고 있어 산비탈을 깎아 집을 만들고, 강 하류 저지대는 바다와 맞닿은 부산의 지형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기후변화 적응, 이것이 부산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부산은 강가, 바닷가에 인접한 저지대에 시가지가 발달해 있습니다. 해운대 마린시티와 동천하류 등이 그렇습니다. 이 같은 곳은 홍수위뿐만 아니라 만조위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이번처럼 밀물과 집중호우가 만났을 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산비탈을 개발해 산이 물을 머금는 양이 줄었고, 비는 도로를 타고 저지대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천 전체를 관리하면서 도심의 빗물 침투력을 어떻게 늘릴지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결국, 도심 전체를 고려한 전략적인 배수시설 배치와 계획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앞서 지적했던 우수저류시설의 지역 편중화, 하수도의 용량 부족 문제 등 모든 사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물난리를 막기 위한 장기적인 관점의 고민이 다시금 시작돼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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