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비오는 날 버스 내리다 계단서 ‘미끌’…버스 회사 배상책임은?

입력 2020.08.08 (09:12) 수정 2020.08.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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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비 오는 날 버스 이용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다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발생하곤 하죠. 그동안 버스 회사들은 이런 유형의 사고들에 대해 버스가 멈춘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 즉 '운행 중'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상을 거절해 왔는데요, 버스회사에 일부 배상책임을 인정한 주목할 만한 판례가 나와 소개해 드립니다.

■비 오는 날 정차된 버스서 내리다 미끄러져…버스 회사 "부상 100% 손님 잘못"

2018년 5월 비가 많이 내리던 날, 10대 청소년 A 씨는 버스업체 B 사가 모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버스는 충북 제천시 한 버스정류장에서 정차했고, A 씨는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버스 뒤쪽 계단을 내려오던 중 계단 끝을 밟고 미끄러져 엉덩이 부분을 계단에 충격했습니다. 당시 버스의 내부는 물기에 젖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사고로 A 씨는 사고일로부터 5년간 노동능력상실률 32%로 평가되는 제12흉추 방출성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통증과 다리에 저릿지럿한 느낌이 수반됐습니다.

A 씨는 지난해 11월 B 사와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습니다. 양자가 공동해 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였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B 사가 해당 버스를 운행하는 자이고, 연합회는 피고 차량에 대해 공제계약을 체결한 공제사업자이므로, 피고들이 공동하여 이 사건 사고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이어 "B 사는 승객인 원고와 유상의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사업자로서 운송계약상 부수의무인 승객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및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며 "채무불이행 책임 및 불법행위 책임 역시 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 사고 당시 비가 많이 내려 승객들이 미끄러질 가능성이 크므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미연에 바닥의 물기를 제거하거나 바닥을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끄러짐 사고를 예방했어야 했는데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부상을 입었단 겁니다.

그러나 B 사와 연합회는 손님의 전적인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해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들은 "이 사건 사고는 피고 차량의 운행으로 말미암은 사고가 아닐 뿐 아니라 피고 차량의 하차문 계단에는 미끄럼 방지 패드 및 미끄럼 방지 요철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에는 빗물 배수구 구멍이 있는 등 충분한 미끄러움 방지 조치가 되어 있음에도 원고의 전적인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피고들이 면책되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법원 "차량 빗물로 미끄러운 상태가 한 원인" 버스회사 일부 배상 인정

서울중앙지법 민사63단독(판사 양우진)은 지난달 말 선고공판을 열고 B 사와 연합회가 A 씨에게 1,514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제3조는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자배법 제2조 제2호는 '운행'의 의미에 대해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 여부와 관계없이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사건의 핵심 쟁점은 B 사 버스의 '운행으로' A 씨가 부상을 입었는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은 "자동차를 당해 장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한다는 것은 자동차 용도에 따라 그 구조상 설비되어 있는 각종 장치를 각각의 장치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동차가 반드시 주행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주행 전후 단계로서 주·정차상태에서 문을 열고 닫는 등 각종 부수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대법원은 이어 "자배법에서 '운행으로 인하여'라는 말은 운행과 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에서 하차할 때 주·정차하는 곳에 내재된 위험요인이나 자동차 자체에 내재된 위험요인이 하차에 따른 사고 발생의 한 원인으로 경합돼 사람이 부상한 경우에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봐 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같은 법리를 근거로 "이 사건과 같이 버스 승객인 피해자가 버스가 정차한 상태에서 열린 출입문을 통해 하차하다 넘어져 사고가 난 경우, 이를 자동차의 통상의 용법에 따른 운행 중 사고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원고는 자동차 자체에 내재된 위험 요인인 피고 차량의 빗물로 인한 미끄러운 상태가 한 원인이 되어 넘어져 부상을 입은 것으로서 이 사건 사고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따라서 피고 차량의 운행으로 원고가 부상을 입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B 사는 피고 차량의 운행자로서, 피고 연합회는 피고 차량의 공제사업자로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판사는 원고의 전적인 과실로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미끄러운 바닥 등 내재적 위험 요인을 부상의 원인으로 인정해 배상 책임을 지운 겁니다.

다만 법원은 A 씨가 청구한 금액 모두를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비 오는 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부터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단 겁니다.

법원은 "원고로서도 버스에서 하차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특히 빗물 등으로 차량 바닥 및 계단이 미끄러운 경우에는 더욱 주의하여 손잡이나 기둥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거나 계단 끝 부분을 잘못 디디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한 채 만연히 계단에 내려선 잘못이 있다"며 "원고의 이러한 잘못이 이 사건 사고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에 기여하였으므로, 이러한 점을 피고가 배상할 손해액 산정에 있어 참작하기로 하여 원고 과실을 80%로 보고, 피고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A 씨가 도시지역 보통인부 일용노임(월 가동일수 22일)을 기준으로 5년간 5,056만 원의 손해를 보았다며, 이 금액의 20%에 위자료 500만 원을 더한 "1,514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달 말 판결이 나 항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고 소송대리인 한윤기 변호사는 "버스 정차중 발생한 사고라 하더라도 하차계단의 빗물 등과 같은 내부적 위험요인이 경합하여 발생한 사고인 이상 버스회사 측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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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비오는 날 버스 내리다 계단서 ‘미끌’…버스 회사 배상책임은?
    • 입력 2020-08-08 09:12:03
    • 수정2020-08-08 13:38:18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비 오는 날 버스 이용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다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발생하곤 하죠. 그동안 버스 회사들은 이런 유형의 사고들에 대해 버스가 멈춘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 즉 '운행 중'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상을 거절해 왔는데요, 버스회사에 일부 배상책임을 인정한 주목할 만한 판례가 나와 소개해 드립니다.

■비 오는 날 정차된 버스서 내리다 미끄러져…버스 회사 "부상 100% 손님 잘못"

2018년 5월 비가 많이 내리던 날, 10대 청소년 A 씨는 버스업체 B 사가 모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버스는 충북 제천시 한 버스정류장에서 정차했고, A 씨는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버스 뒤쪽 계단을 내려오던 중 계단 끝을 밟고 미끄러져 엉덩이 부분을 계단에 충격했습니다. 당시 버스의 내부는 물기에 젖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사고로 A 씨는 사고일로부터 5년간 노동능력상실률 32%로 평가되는 제12흉추 방출성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통증과 다리에 저릿지럿한 느낌이 수반됐습니다.

A 씨는 지난해 11월 B 사와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습니다. 양자가 공동해 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였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B 사가 해당 버스를 운행하는 자이고, 연합회는 피고 차량에 대해 공제계약을 체결한 공제사업자이므로, 피고들이 공동하여 이 사건 사고로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이어 "B 사는 승객인 원고와 유상의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사업자로서 운송계약상 부수의무인 승객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및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며 "채무불이행 책임 및 불법행위 책임 역시 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 사고 당시 비가 많이 내려 승객들이 미끄러질 가능성이 크므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미연에 바닥의 물기를 제거하거나 바닥을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끄러짐 사고를 예방했어야 했는데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부상을 입었단 겁니다.

그러나 B 사와 연합회는 손님의 전적인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해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들은 "이 사건 사고는 피고 차량의 운행으로 말미암은 사고가 아닐 뿐 아니라 피고 차량의 하차문 계단에는 미끄럼 방지 패드 및 미끄럼 방지 요철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에는 빗물 배수구 구멍이 있는 등 충분한 미끄러움 방지 조치가 되어 있음에도 원고의 전적인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피고들이 면책되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법원 "차량 빗물로 미끄러운 상태가 한 원인" 버스회사 일부 배상 인정

서울중앙지법 민사63단독(판사 양우진)은 지난달 말 선고공판을 열고 B 사와 연합회가 A 씨에게 1,514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제3조는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자배법 제2조 제2호는 '운행'의 의미에 대해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 여부와 관계없이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사건의 핵심 쟁점은 B 사 버스의 '운행으로' A 씨가 부상을 입었는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은 "자동차를 당해 장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한다는 것은 자동차 용도에 따라 그 구조상 설비되어 있는 각종 장치를 각각의 장치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동차가 반드시 주행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주행 전후 단계로서 주·정차상태에서 문을 열고 닫는 등 각종 부수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대법원은 이어 "자배법에서 '운행으로 인하여'라는 말은 운행과 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에서 하차할 때 주·정차하는 곳에 내재된 위험요인이나 자동차 자체에 내재된 위험요인이 하차에 따른 사고 발생의 한 원인으로 경합돼 사람이 부상한 경우에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봐 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같은 법리를 근거로 "이 사건과 같이 버스 승객인 피해자가 버스가 정차한 상태에서 열린 출입문을 통해 하차하다 넘어져 사고가 난 경우, 이를 자동차의 통상의 용법에 따른 운행 중 사고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원고는 자동차 자체에 내재된 위험 요인인 피고 차량의 빗물로 인한 미끄러운 상태가 한 원인이 되어 넘어져 부상을 입은 것으로서 이 사건 사고는 자동차의 운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따라서 피고 차량의 운행으로 원고가 부상을 입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B 사는 피고 차량의 운행자로서, 피고 연합회는 피고 차량의 공제사업자로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판사는 원고의 전적인 과실로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동차의 미끄러운 바닥 등 내재적 위험 요인을 부상의 원인으로 인정해 배상 책임을 지운 겁니다.

다만 법원은 A 씨가 청구한 금액 모두를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비 오는 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부터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단 겁니다.

법원은 "원고로서도 버스에서 하차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특히 빗물 등으로 차량 바닥 및 계단이 미끄러운 경우에는 더욱 주의하여 손잡이나 기둥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거나 계단 끝 부분을 잘못 디디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한 채 만연히 계단에 내려선 잘못이 있다"며 "원고의 이러한 잘못이 이 사건 사고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에 기여하였으므로, 이러한 점을 피고가 배상할 손해액 산정에 있어 참작하기로 하여 원고 과실을 80%로 보고, 피고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A 씨가 도시지역 보통인부 일용노임(월 가동일수 22일)을 기준으로 5년간 5,056만 원의 손해를 보았다며, 이 금액의 20%에 위자료 500만 원을 더한 "1,514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달 말 판결이 나 항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고 소송대리인 한윤기 변호사는 "버스 정차중 발생한 사고라 하더라도 하차계단의 빗물 등과 같은 내부적 위험요인이 경합하여 발생한 사고인 이상 버스회사 측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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