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순식간에 급증한 댐 방류량, 정말 불가피했을까?

입력 2020.08.13 (16:27) 수정 2020.08.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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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나자, 지역에선 댐 방류 때문이라는 지적이 곧바로 나왔습니다. 하류 지역 피해가 불 보듯 뻔한데 방류량을 급격히 늘렸고, 미리 댐을 비워놓지 않아 수위조절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댐 방류 기준과 운영현황이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공사 관계자는 "폭우로 댐이 가득차서 방류는 불가피했다. 조만간 공식 자료를 내 설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설명의 자리가 나흘이 지난 어제(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있었습니다. 촬영할 수 없는 브리핑 형식으로 하겠다고 통보해왔지만,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을 공개적으로 설명하라는 기자단의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브리핑 몇 시간을 앞두고 브리핑은 공개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 수자원공사, "매뉴얼대로 운영했다"...장마기간 댐에 물 가득 채워 놓은 용담댐은?

수자원공사 설명의 핵심은 "댐 운영은 기준에 맞게 해서 문제가 없었다." 입니다. 다만 예보를 벗어난 양의 폭우가 내려 피해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가 공개한 운영현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운영 기준을 따져볼 때 미리 알아둬야 하는 용어가 있는데요. '홍수기 제한수위'와 '계획 홍수위'입니다. 쉽게 풀자면 비가 많이 오는 6월부터는 '홍수기 제한수위'를 둬서 그 이상으로 댐에 물을 많이 담아두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중호우 때처럼 갑자기 댐 수위가 올라갈 경우를 대비하는 거죠. '홍수기 제한수위'보다 더 높은 '계획 홍수위'는 댐의 안전을 위해 물을 가둘 수 있는 최대치 수위입니다. 그야말로 물을 담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죠.


지난 7일 폭우가 시작되기 전, 섬진강댐과 합천댐의 수위는 장마 기간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담댐은 이미 '홍수기 제한수위'를 넘어서 있었습니다. 집중호우가 시작되기 전에 물그릇을 비워놨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장석환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용담댐은 홍수기 제한수위 규정을 지키지 않은것으로 보인다"며 "홍수기 제한수위에 대한 납득할만한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일정부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댐 운영 현황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용담댐 수위는 7월 중순경에도 '홍수기 제한수위'를 초과했다가 수위에 근접한 수준으로 유지됐습니다. 그러다 7월 30일 오후 1시 이후부터는 계속 초과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수위가 높아지면 방류량을 늘려 조절을 해야 하는데, 정작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방류량은 줄었습니다. 장석환 교수는 "7월 30일부터 왜 수위를 높게 유지했는지 의아하다"며 "혹시 장마가 끝났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한구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본부장은 어제(8월 12일) 브리핑에서 이번 장마가 이례적으로 50일 이상 지속되면서 수위 조절이 어려웠다면서 "7월 말에 장마가 종료된다는 예보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장마가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로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지점입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다른 댐의 경우는 좀 더 따져봐야지만 용담댐은 수위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면서 "원래 그 지역이 물이 부족해 방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기후변화로 기상 불확실성 증가...홍수 피해도 받아들여야 하나?

수자원공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섬진강댐과 합천댐은 '홍수기 제한수위'와 최대 방류량 등의 기준을 지켰지만,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규정을 지켰는데도 발생하는 이런 피해는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지난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붕괴되고 마을이 침수피해를 입었다.지난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붕괴되고 마을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기자들의 질문도 이런 문제에 집중됐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기상청 예보가 틀릴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그러면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가?",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는 겁니다.

이한구 수자원공사 본부장은 "(운영기준이) 사실상 댐 설계 당시에 설정된 것이다. 섬진강댐만 해도 몇십 년이 지나서 운영한 실적이 있는데 그동안에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라는 것을 지금 겪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댐 설계 당시에 우리가 계획했던 것과 지금 운영단계에서의 실적하고는 많이 차이가 난다."고 토로했습니다.

장석환 교수는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서 홍수기 제한수위를 지금보다 더 낮춰서 장마 기간 댐 물그릇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홍수 방어를 다목적댐으로만 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전국에 1만 개 이상 있는 농업용 댐도 치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이상기후에 대비한 범정부 홍수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보 정확성을 높이고, 유역내 댐과 저수지 연계 운영, 댐 설계기준 보강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부모 입장"

이한구 수자원공사 본부장은 댐의 운영은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가진 부모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물을 더 저장해달라는 요구와 방류해달라는 요구가 상존한다는 얘기입니다.

집중호우가 발생하기 전 용담댐이 방류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데는 농민이나 래프팅 업자 등이 물을 방류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민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수자원공사는 댐의 수위 기준을 바꾸는 것도 "상류와 하류에 미치는 홍수 피해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역사회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피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이번 수해의 정확한 원인과 이와 관련해 댐 운영에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이후에는 정부와 수자원공사, 유역 주민 등이 모여 댐 운영 정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새로운 운영기준을 마련하는 데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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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순식간에 급증한 댐 방류량, 정말 불가피했을까?
    • 입력 2020-08-13 16:27:42
    • 수정2020-08-13 19:50:28
    취재후·사건후
지난 8일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나자, 지역에선 댐 방류 때문이라는 지적이 곧바로 나왔습니다. 하류 지역 피해가 불 보듯 뻔한데 방류량을 급격히 늘렸고, 미리 댐을 비워놓지 않아 수위조절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댐 방류 기준과 운영현황이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공사 관계자는 "폭우로 댐이 가득차서 방류는 불가피했다. 조만간 공식 자료를 내 설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설명의 자리가 나흘이 지난 어제(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있었습니다. 촬영할 수 없는 브리핑 형식으로 하겠다고 통보해왔지만,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을 공개적으로 설명하라는 기자단의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브리핑 몇 시간을 앞두고 브리핑은 공개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 수자원공사, "매뉴얼대로 운영했다"...장마기간 댐에 물 가득 채워 놓은 용담댐은?

수자원공사 설명의 핵심은 "댐 운영은 기준에 맞게 해서 문제가 없었다." 입니다. 다만 예보를 벗어난 양의 폭우가 내려 피해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가 공개한 운영현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운영 기준을 따져볼 때 미리 알아둬야 하는 용어가 있는데요. '홍수기 제한수위'와 '계획 홍수위'입니다. 쉽게 풀자면 비가 많이 오는 6월부터는 '홍수기 제한수위'를 둬서 그 이상으로 댐에 물을 많이 담아두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중호우 때처럼 갑자기 댐 수위가 올라갈 경우를 대비하는 거죠. '홍수기 제한수위'보다 더 높은 '계획 홍수위'는 댐의 안전을 위해 물을 가둘 수 있는 최대치 수위입니다. 그야말로 물을 담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죠.


지난 7일 폭우가 시작되기 전, 섬진강댐과 합천댐의 수위는 장마 기간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담댐은 이미 '홍수기 제한수위'를 넘어서 있었습니다. 집중호우가 시작되기 전에 물그릇을 비워놨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장석환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용담댐은 홍수기 제한수위 규정을 지키지 않은것으로 보인다"며 "홍수기 제한수위에 대한 납득할만한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일정부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댐 운영 현황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용담댐 수위는 7월 중순경에도 '홍수기 제한수위'를 초과했다가 수위에 근접한 수준으로 유지됐습니다. 그러다 7월 30일 오후 1시 이후부터는 계속 초과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수위가 높아지면 방류량을 늘려 조절을 해야 하는데, 정작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방류량은 줄었습니다. 장석환 교수는 "7월 30일부터 왜 수위를 높게 유지했는지 의아하다"며 "혹시 장마가 끝났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한구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본부장은 어제(8월 12일) 브리핑에서 이번 장마가 이례적으로 50일 이상 지속되면서 수위 조절이 어려웠다면서 "7월 말에 장마가 종료된다는 예보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장마가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로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지점입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다른 댐의 경우는 좀 더 따져봐야지만 용담댐은 수위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면서 "원래 그 지역이 물이 부족해 방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기후변화로 기상 불확실성 증가...홍수 피해도 받아들여야 하나?

수자원공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섬진강댐과 합천댐은 '홍수기 제한수위'와 최대 방류량 등의 기준을 지켰지만,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규정을 지켰는데도 발생하는 이런 피해는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지난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붕괴되고 마을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기자들의 질문도 이런 문제에 집중됐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기상청 예보가 틀릴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그러면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가?",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는 겁니다.

이한구 수자원공사 본부장은 "(운영기준이) 사실상 댐 설계 당시에 설정된 것이다. 섬진강댐만 해도 몇십 년이 지나서 운영한 실적이 있는데 그동안에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라는 것을 지금 겪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댐 설계 당시에 우리가 계획했던 것과 지금 운영단계에서의 실적하고는 많이 차이가 난다."고 토로했습니다.

장석환 교수는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서 홍수기 제한수위를 지금보다 더 낮춰서 장마 기간 댐 물그릇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홍수 방어를 다목적댐으로만 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전국에 1만 개 이상 있는 농업용 댐도 치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이상기후에 대비한 범정부 홍수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보 정확성을 높이고, 유역내 댐과 저수지 연계 운영, 댐 설계기준 보강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부모 입장"

이한구 수자원공사 본부장은 댐의 운영은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가진 부모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물을 더 저장해달라는 요구와 방류해달라는 요구가 상존한다는 얘기입니다.

집중호우가 발생하기 전 용담댐이 방류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데는 농민이나 래프팅 업자 등이 물을 방류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민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수자원공사는 댐의 수위 기준을 바꾸는 것도 "상류와 하류에 미치는 홍수 피해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역사회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피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이번 수해의 정확한 원인과 이와 관련해 댐 운영에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이후에는 정부와 수자원공사, 유역 주민 등이 모여 댐 운영 정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새로운 운영기준을 마련하는 데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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