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가평·평택 산사태 현장은 모두 안전했다??

입력 2020.08.13 (16:37) 수정 2020.08.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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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3일)로 51일째, 역대 최장 장마 기간을 또다시 갈아치웠습니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내리는 국지성 호우로 올해는 유독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해 사망과 실종자가 77명에 달했던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실종자 수(42명-13일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잠정 집계)입니다.

그런데 실종자 7명을 제외한 사망자 35명 가운데 19명은 '산사태'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산사태로 희생된 셈인데, 예년과 비교하더라도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올해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려 이번 산사태 사망사고가 불가피한 '자연재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산사태 예방 대책의 사각지대 때문에 일어난 '인재(人災)'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5명 숨진 '곡성 산사태'…마을 뒷산 인접 도로 공사가 원인?

이번 집중호우 기간 발생한 산사태 사고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남긴 '곡성 산사태'. 지난 7일 밤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마을 주민 5명이 숨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으로 마을 뒷산에 인접한 15번 국도의 도로 확장공사를 지목합니다. 도로 주변부 지반이 90도 가까이 침하된 게 한눈에 보이고, 도로 공사에 쓰인 콘크리트, 아스콘 구조물 등이 마을 주변까지 굴러 내려왔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7일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 현장과 인접한 15번 국도 도로 확장 공사 현장.7일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 현장과 인접한 15번 국도 도로 확장 공사 현장.

현장을 둘러본 정규원 산림기술사는 "산사태가 발생한 마을 뒷산 계곡부는 경사도가 완만해서 토사가 급격하게 무너지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공사장 주변에 쌓인 콘크리트 구조물과 흙의 무게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산사태 사고와 관련해 수사본부를 꾸린 곡성경찰서도 15번 국도 도로 확장공사와 산사태 사이의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곡성군, 사고 지점 이미 점검했었다…"문제없음" 결론

그런데 KBS 취재 결과 곡성군은 이번 산사태가 발생하기 전 이미 한 차례 현장 점검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을 한 차례 사전 점검했다는 이들은 '산사태 현장 예방단'이었습니다. 곡성군청이 여름철 한시적으로 모집한 기간제 근로자들입니다. 곡성군의 경우 5명을 선발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모두 산사태와 관련해 이렇다 할 경력이나 경험이 전무한 곡성군 주민들로 구성됐다는 겁니다.

7일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토사와 콘크리트에 매몰된 주택.7일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토사와 콘크리트에 매몰된 주택.

산사태 발생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만한 전문성이 없다 보니, 형식적인 점검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또 예방단은 산림청이 지정하는 '산사태 위험등급'을 참고해 예찰 활동을 벌이는데, 사고가 난 곡성 성덕마을 뒷산은 5등급, '매우 낮음' 등급이었습니다.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분류돼 있지 않은 현장이다 보니 곳곳을 살피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게 곡성군의 설명입니다.

이런 비전문성의 문제는 단지 곡성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못 믿을 '산사태 위험등급'? 현장 상황 제대로 반영 안 돼

산사태 위험등급은 산림청이 각 지역의 사면경사와 사면 길이, 흙 깊이와 경사도 등 9개 인자를 활용해 지정합니다. 1등급('매우 높음')에서 5등급('매우 낮음')까지 5단계로 분류되는데, 산림청이 운영하는 산사태정보시스템에서 지역별로 등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산사태 위험등급은 지난해 말 등급이 갱신됐습니다. 곡성군 성덕마을 뒷산과 인접한 15번 국도 도로 확장공사는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착공이 시작됐습니다. 도로 공사로 인한 산사태 위험 요인이 정작 등급에 반영되지 못한 셈입니다.

그런데 현장의 위험성과 동떨어진 '산사태 위험등급'의 문제점은 비단 곡성군만의 특이 사례가 아닙니다.

평택 공장·가평 펜션 산사태 현장도 5등급…왜?

지난 3일 경기도 평택의 한 반도체 공장,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옹벽이 공장을 덮치면서 노동자 3명이 숨졌습니다. 같은 날, 공교롭게도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도 뒷산에서 무너진 흙더미가 덮치면서 일가족 3명이 숨졌습니다.

두 사고 현장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산지였던 곳의 용도를 변경해 그 자리에 공장을 짓고 펜션을 세운 겁니다. 두 곳의 산사태 위험등급은 어떨까요? 곡성 사고 현장과 마찬가지로 5등급, '매우 낮음'이었습니다.

지난 3일 산사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의 반도체 공장과 경기 가평군의 펜션. 두 곳 모두 산지를 용도 변경해 개발한 곳이다.지난 3일 산사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의 반도체 공장과 경기 가평군의 펜션. 두 곳 모두 산지를 용도 변경해 개발한 곳이다.

취재 결과, 더 이상 산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림청의 관리 대상에선 사실상 누락돼 있었습니다. 산림청은 "산사태 위험등급은 기본적으로 자연 산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산림청의 관리 대상에서 빠지면 지자체라도 챙겨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자체도 펜션이나 공장처럼 산지 용도가 변경돼(산지 전용) 소규모 개발이 이뤄진 장소의 경우 별도의 산사태 위험 관리를 사실상 하지 않습니다. 지자체가 정하는 '산사태 취약지역'은 대부분 산사태 위험등급상 1~2등급입니다.

결국, 평택과 가평처럼 산을 깎아 '소규모 개발'이 이뤄진 곳은 산림청에서도, 지자체에서도 관리를 받지 못하는 '공백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산림 개발지는 관리 공백…"산사태 컨트롤타워 구성해야"

산을 깎아 개발하면 산사태 위험은 커지는데 제도적 허점으로 관리가 되지 않는 셈인데, 이 때문에 애초에 산지를 개발할 때부터 '재해 위험 평가'를 세밀하게 따지도록 관련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민식 산림과학기술연구소장은 "2헥타르 이상 대규모 개발의 경우 '사전 재해 위험성 검토'라는 제도가 있어 안전성을 보다 꼼꼼하게 점검하지만, 2헥타르 이하의 소규모 개발의 경우 해당 검토에서 면제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산림청은 오늘 안전 사각지대 해소에 나서겠다며 산사태 취약지역 기초조사를 기존 5천 곳에서 2만 곳으로 확대하고, 산사태 예보를 하루 전에 미리 발령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정부가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산림당국을 중심으로 산사태 및 산지 재해에 대한 국가 컨트롤타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산지 위험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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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3 16:37:47
    • 수정2020-08-13 17:57:50
    취재K
오늘(13일)로 51일째, 역대 최장 장마 기간을 또다시 갈아치웠습니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내리는 국지성 호우로 올해는 유독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해 사망과 실종자가 77명에 달했던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실종자 수(42명-13일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잠정 집계)입니다.

그런데 실종자 7명을 제외한 사망자 35명 가운데 19명은 '산사태'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산사태로 희생된 셈인데, 예년과 비교하더라도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올해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려 이번 산사태 사망사고가 불가피한 '자연재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산사태 예방 대책의 사각지대 때문에 일어난 '인재(人災)'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5명 숨진 '곡성 산사태'…마을 뒷산 인접 도로 공사가 원인?

이번 집중호우 기간 발생한 산사태 사고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남긴 '곡성 산사태'. 지난 7일 밤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마을 주민 5명이 숨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으로 마을 뒷산에 인접한 15번 국도의 도로 확장공사를 지목합니다. 도로 주변부 지반이 90도 가까이 침하된 게 한눈에 보이고, 도로 공사에 쓰인 콘크리트, 아스콘 구조물 등이 마을 주변까지 굴러 내려왔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7일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 현장과 인접한 15번 국도 도로 확장 공사 현장.
현장을 둘러본 정규원 산림기술사는 "산사태가 발생한 마을 뒷산 계곡부는 경사도가 완만해서 토사가 급격하게 무너지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공사장 주변에 쌓인 콘크리트 구조물과 흙의 무게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산사태 사고와 관련해 수사본부를 꾸린 곡성경찰서도 15번 국도 도로 확장공사와 산사태 사이의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곡성군, 사고 지점 이미 점검했었다…"문제없음" 결론

그런데 KBS 취재 결과 곡성군은 이번 산사태가 발생하기 전 이미 한 차례 현장 점검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을 한 차례 사전 점검했다는 이들은 '산사태 현장 예방단'이었습니다. 곡성군청이 여름철 한시적으로 모집한 기간제 근로자들입니다. 곡성군의 경우 5명을 선발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모두 산사태와 관련해 이렇다 할 경력이나 경험이 전무한 곡성군 주민들로 구성됐다는 겁니다.

7일 전남 곡성군 성덕마을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토사와 콘크리트에 매몰된 주택.
산사태 발생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만한 전문성이 없다 보니, 형식적인 점검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또 예방단은 산림청이 지정하는 '산사태 위험등급'을 참고해 예찰 활동을 벌이는데, 사고가 난 곡성 성덕마을 뒷산은 5등급, '매우 낮음' 등급이었습니다.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분류돼 있지 않은 현장이다 보니 곳곳을 살피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게 곡성군의 설명입니다.

이런 비전문성의 문제는 단지 곡성군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못 믿을 '산사태 위험등급'? 현장 상황 제대로 반영 안 돼

산사태 위험등급은 산림청이 각 지역의 사면경사와 사면 길이, 흙 깊이와 경사도 등 9개 인자를 활용해 지정합니다. 1등급('매우 높음')에서 5등급('매우 낮음')까지 5단계로 분류되는데, 산림청이 운영하는 산사태정보시스템에서 지역별로 등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산사태 위험등급은 지난해 말 등급이 갱신됐습니다. 곡성군 성덕마을 뒷산과 인접한 15번 국도 도로 확장공사는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착공이 시작됐습니다. 도로 공사로 인한 산사태 위험 요인이 정작 등급에 반영되지 못한 셈입니다.

그런데 현장의 위험성과 동떨어진 '산사태 위험등급'의 문제점은 비단 곡성군만의 특이 사례가 아닙니다.

평택 공장·가평 펜션 산사태 현장도 5등급…왜?

지난 3일 경기도 평택의 한 반도체 공장,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옹벽이 공장을 덮치면서 노동자 3명이 숨졌습니다. 같은 날, 공교롭게도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도 뒷산에서 무너진 흙더미가 덮치면서 일가족 3명이 숨졌습니다.

두 사고 현장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산지였던 곳의 용도를 변경해 그 자리에 공장을 짓고 펜션을 세운 겁니다. 두 곳의 산사태 위험등급은 어떨까요? 곡성 사고 현장과 마찬가지로 5등급, '매우 낮음'이었습니다.

지난 3일 산사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의 반도체 공장과 경기 가평군의 펜션. 두 곳 모두 산지를 용도 변경해 개발한 곳이다.
취재 결과, 더 이상 산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림청의 관리 대상에선 사실상 누락돼 있었습니다. 산림청은 "산사태 위험등급은 기본적으로 자연 산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산림청의 관리 대상에서 빠지면 지자체라도 챙겨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자체도 펜션이나 공장처럼 산지 용도가 변경돼(산지 전용) 소규모 개발이 이뤄진 장소의 경우 별도의 산사태 위험 관리를 사실상 하지 않습니다. 지자체가 정하는 '산사태 취약지역'은 대부분 산사태 위험등급상 1~2등급입니다.

결국, 평택과 가평처럼 산을 깎아 '소규모 개발'이 이뤄진 곳은 산림청에서도, 지자체에서도 관리를 받지 못하는 '공백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산림 개발지는 관리 공백…"산사태 컨트롤타워 구성해야"

산을 깎아 개발하면 산사태 위험은 커지는데 제도적 허점으로 관리가 되지 않는 셈인데, 이 때문에 애초에 산지를 개발할 때부터 '재해 위험 평가'를 세밀하게 따지도록 관련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민식 산림과학기술연구소장은 "2헥타르 이상 대규모 개발의 경우 '사전 재해 위험성 검토'라는 제도가 있어 안전성을 보다 꼼꼼하게 점검하지만, 2헥타르 이하의 소규모 개발의 경우 해당 검토에서 면제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산림청은 오늘 안전 사각지대 해소에 나서겠다며 산사태 취약지역 기초조사를 기존 5천 곳에서 2만 곳으로 확대하고, 산사태 예보를 하루 전에 미리 발령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정부가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산림당국을 중심으로 산사태 및 산지 재해에 대한 국가 컨트롤타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산지 위험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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