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공매도 없다 vs. 세상 나쁜 공매도

입력 2020.08.17 (16:10) 수정 2020.08.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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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숏(공매도) 쇼츠(반바지) 한정판이 단돈 69.42달러"
지난달 테슬라 창업자 엘런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힌 공매도 투자자를 조롱하는 듯한 이 상품, 실제로 테슬라 온라인몰에서 순식간에 매진됐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테슬라는 유통주식 4분의 1이 공매도 물량일 정도로 공매도 투자자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이 공매도 투자자들 테슬라 주가가 급등한 상반기에만 1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1조 원을 잃었습니다. 빌린 주식을 상환하기 위해 매수가 몰리면서 주가가 더 오르는 '숏스퀴즈'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자료  S3파트너스, Ihor Dusaniwsky자료  S3파트너스, Ihor Dusaniwsky

국내에도 테슬라에 견줄 공매도 '단골집'이 있습니다. 셀트리온입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과거 공매도 투자자에 선전포고를 하고 무상증자와 자사주 매입, 주식병합을 반복하며 전쟁을 치른 전력도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직전인 3월 13일, 여전히 셀트리온은 유가증권시장에서 공매도 물량이 가장 많은 종목이었습니다. 공매도가 사라진 덕분일까요? 3월 13일 장 마감 이후 이달 14일까지 공매도가 금지된 기간 셀트리온 주가는 78.6%가 올라 코스피지수 상승률(35.9%)을 2배 이상 앞섰습니다.

■공매도 금지, 주가 얼마나 올렸나?

지난 1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공매도 제도 토론회'에서도 공매도 금지 연장을 요구하는 측과 재개를 주장하는 측이 첨예하게 맞섰습니다. 공매도 금지 연장을 바라는 일부 개인투자자와 단체들은 토론회가 열리는 건물 밖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공매도는 없는 주식을 남에게 빌려와 현재가에 팔고, 약속한 시간 내에 주식을 되사서 갚는 형태의 거래입니다. 주가가 내려가면 시세차익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로 기업에 악재가 있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택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는 뚜렷한 악재 없이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엘런 머스크, 서정진 회장 같은 대주주나 소액투자자들이 공매도에 함께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금지 조치를 발표한 3월 1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공매도 거래액은 9,911억 원에 달해 지난해 일평균(3,180억 원)의 3배를 넘어섰습니다.


다음 달 공매도 재개 시점을 앞두고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자는 요구에도 이런 투자자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모처럼 개인투자자가 한국 증시의 주인공이 됐는데, 다시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증시는 코로나19의 충격을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공매도 금지 기간 코스피는 35.9%, 코스닥지수는 59.4%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 증시가 속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 지수는 22.7% 오르는 데 그쳤고, 주요국 가운데서도 미국 나스닥(39.9%), 독일(39.7%) 정도만 코스피지수를 앞섰습니다.

문제는 '공매도 금지가 주가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입니다. 공매도 상위 종목을 놓고 보면 공매도 금지의 영향이 확실해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셀트리온이 지수의 2배 폭으로 올랐고, 롯데관광개발 주가는 97.7%, 두산인프라코어는 151.9%나 올랐습니다.

지난 6월 신한금융투자 보고서는 2008년과 2011년 공매도 금지 조치 때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이 9% 정도 상승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단순하게는 공매도 금지만으로 지수를 9%가량 더 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1년 11월 9일 공매도 재개 직후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약 7.8% 빠진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세상에 나쁜 공매도 없다? 이론적으론 'O'

학계와 연구소 등의 전문가들은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내려간 게 아니고 주가가 떨어질 만한 악재가 생겨 공매도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주가 하락을 더 부추길 수는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어떤 기업의 재무제표가 투명하지 않다거나, 사업상 악재가 예상될 때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 하락에 베팅하면서 악재를 시장에 알린다는 겁니다. 대표적 사례가 회계장부 조작으로 망한 미국의 엔론입니다.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는 2000년 11월 엔론의 회계부정을 의심해 공매도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회계조작이 드러나면서 결국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문 닫을 정도의 극단적 사례가 아니어도 부정적 신호를 발견하는 공매도의 기능은 시장의 거품을 막는 데는 기여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나 전기차 같은 신기술 종목에 공매도 투자자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런 회사일수록 실적보다는 희망이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는 희망이 다른 투자자에겐 거품으로 보이는 겁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당위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터키는 지난해부터 공매도와 대차거래를 금지해오다 글로벌 지수산출회사인 MSCI가 신흥국 지수에서 제외하고 개발국 이하 등급으로 강등하겠다고 하자 지난달부터 금지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고은아 크레딧스위스증권 상무는 "공매도 금지조치가 장기화하면 지수산출회사에서 한국에 대해서도 비중변화를 고려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해외 연기금이나 펀드, ETF에서 지수를 벤치마킹해 투자하는 자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지수에서 비중이 줄면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시장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3월 코로나19 발생과 동시에 공매도를 금지했던 EU 회원국들과 대만 등이 공매도를 재개했고, 주가에 큰 문제가 없는 것도 재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공매도 금지 주장을 '개인투자자의 탐욕'이라 평가하기도 합니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세상 나쁜 공매도'

이에 대해 김동환 대안경제연구소장은 "지금 왜 이 가격에 거래되는지 의심스러운 주식은 많지만, 가격의 일시적 왜곡, 자본시장의 투기적 변동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시장이나 있다"면서 "금지를 연장해달라는 투자자 요구를 이기적 탐욕이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매도의 이론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투자자들이 느끼는 것과 괴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공매도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이 느끼는 괴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2016년 9월 29일 한미약품은 장 마감 뒤 1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호재성 공시를 내고 다음 날 장 초반 또 다른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를 공시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악재성 공시 전 평소의 20배에 달하는 주식을 공매도했고 대규모 차익을 거뒀습니다.

같은 해 11월 대우건설이 회계법인으로부터 분기 보고서 '의견거절'을 받았는데, 이때도 공시 전 상장 이후 최대 규모의 공매도 거래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악재성 공시를 앞두고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아예 법으로 금지한 무차입 공매도를 벌인 사례도 있습니다. 2018년 골드만삭스는 156개 종목, 401억 원어치의 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75억 원의 과태료를 물었습니다. 그나마 골드만삭스 이전의 무차입 공매도는 이보다 훨씬 가벼운 과태료에 그쳐 '솜방망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무차입 공매도는 위조지폐와 같은 데 걸려도 과태료 몇 푼만 내면 그만"이라며 "적발되지 않은 무차입 공매도도 상상을 초월하게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00조 원 공매도 가운데 1%만 개인 몫

우리 자본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는 구조적인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해달라는 쪽도, 재개하자는 쪽도 공감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김동환 대안경제연구소장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개인투자자의 이기적 탐욕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시장에서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이 낮다"면서 "투자자들이 인식할 정도로 개선된 안을 내놓을 때까지 공매도 제도를 유예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공매도 시장은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일까?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거래액 103조 4,936억 원 가운데 외국인(62.8%)과 기관(36.1%)의 비중은 총 98.9%에 달했습니다. 개인은 한국증권금융을 통해서만 주식을 빌릴 수 있는데 공매도가 금지된 3월 13일 기준 거래할 수 있는 종목은 409개에 그칩니다.

일반적인 주식투자는 투자한 돈 이내에서 손실이 나지만, 공매도는 주가가 한도 끝도 없이 오르면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손실이 날 수 있어 개인에게 무턱대고 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문이 좁은 것도 사실입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나는 할 수 없는데 남들은 공매도로 돈을 벌면 공매도 제도에 대한 불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돈을 빌리는 것보다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일본처럼 개인에게 주식을 효율적으로 빌려줄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 위반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 또한 양측이 한목소리를 내는 문제입니다. 9월 재개를 주장한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평상시 공매도를 허용하면서 몇 가지만 규제하는 게 적정선이라고 본다"면서도 "법규 위반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공매도 만들 것인지 고민 필요해

과거 공매도 금지·재개 사례를 돌아보면 공매도가 재개될 때 단기적으로 투자 심리와 시장에 주는 충격은 불가피합니다. 이론적 근거와 공매도 재개 국가의 시황을 보면 장기적으로는 회복할 수 있는 충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다시 대규모로 확산하는 현재 상황과 예년보다 높아진 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 비중 등을 고려해 금지 연장을 점치는 의견이 많습니다.

중요한 건 언제 공매도를 재개할 지보다 공매도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정부와 시장 모두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시장이 멈춘 반 년간 논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뒤늦게 대형주만 공매도 길을 열어주는 홍콩식, 개인의 주식 대차를 위한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일본식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차별받아온 개인투자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공매도 논란은 언제든 되풀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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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나쁜 공매도 없다 vs. 세상 나쁜 공매도
    • 입력 2020-08-17 16:10:12
    • 수정2020-08-17 16:14:10
    취재K
"테슬라 숏(공매도) 쇼츠(반바지) 한정판이 단돈 69.42달러"
지난달 테슬라 창업자 엘런 머스크가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힌 공매도 투자자를 조롱하는 듯한 이 상품, 실제로 테슬라 온라인몰에서 순식간에 매진됐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테슬라는 유통주식 4분의 1이 공매도 물량일 정도로 공매도 투자자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이 공매도 투자자들 테슬라 주가가 급등한 상반기에만 1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1조 원을 잃었습니다. 빌린 주식을 상환하기 위해 매수가 몰리면서 주가가 더 오르는 '숏스퀴즈'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자료  S3파트너스, Ihor Dusaniwsky
국내에도 테슬라에 견줄 공매도 '단골집'이 있습니다. 셀트리온입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과거 공매도 투자자에 선전포고를 하고 무상증자와 자사주 매입, 주식병합을 반복하며 전쟁을 치른 전력도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직전인 3월 13일, 여전히 셀트리온은 유가증권시장에서 공매도 물량이 가장 많은 종목이었습니다. 공매도가 사라진 덕분일까요? 3월 13일 장 마감 이후 이달 14일까지 공매도가 금지된 기간 셀트리온 주가는 78.6%가 올라 코스피지수 상승률(35.9%)을 2배 이상 앞섰습니다.

■공매도 금지, 주가 얼마나 올렸나?

지난 1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공매도 제도 토론회'에서도 공매도 금지 연장을 요구하는 측과 재개를 주장하는 측이 첨예하게 맞섰습니다. 공매도 금지 연장을 바라는 일부 개인투자자와 단체들은 토론회가 열리는 건물 밖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공매도는 없는 주식을 남에게 빌려와 현재가에 팔고, 약속한 시간 내에 주식을 되사서 갚는 형태의 거래입니다. 주가가 내려가면 시세차익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로 기업에 악재가 있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택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는 뚜렷한 악재 없이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엘런 머스크, 서정진 회장 같은 대주주나 소액투자자들이 공매도에 함께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금지 조치를 발표한 3월 1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공매도 거래액은 9,911억 원에 달해 지난해 일평균(3,180억 원)의 3배를 넘어섰습니다.


다음 달 공매도 재개 시점을 앞두고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자는 요구에도 이런 투자자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모처럼 개인투자자가 한국 증시의 주인공이 됐는데, 다시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증시는 코로나19의 충격을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공매도 금지 기간 코스피는 35.9%, 코스닥지수는 59.4%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 증시가 속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 지수는 22.7% 오르는 데 그쳤고, 주요국 가운데서도 미국 나스닥(39.9%), 독일(39.7%) 정도만 코스피지수를 앞섰습니다.

문제는 '공매도 금지가 주가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입니다. 공매도 상위 종목을 놓고 보면 공매도 금지의 영향이 확실해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셀트리온이 지수의 2배 폭으로 올랐고, 롯데관광개발 주가는 97.7%, 두산인프라코어는 151.9%나 올랐습니다.

지난 6월 신한금융투자 보고서는 2008년과 2011년 공매도 금지 조치 때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이 9% 정도 상승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단순하게는 공매도 금지만으로 지수를 9%가량 더 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1년 11월 9일 공매도 재개 직후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약 7.8% 빠진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세상에 나쁜 공매도 없다? 이론적으론 'O'

학계와 연구소 등의 전문가들은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내려간 게 아니고 주가가 떨어질 만한 악재가 생겨 공매도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주가 하락을 더 부추길 수는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어떤 기업의 재무제표가 투명하지 않다거나, 사업상 악재가 예상될 때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 하락에 베팅하면서 악재를 시장에 알린다는 겁니다. 대표적 사례가 회계장부 조작으로 망한 미국의 엔론입니다.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는 2000년 11월 엔론의 회계부정을 의심해 공매도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회계조작이 드러나면서 결국 회사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문 닫을 정도의 극단적 사례가 아니어도 부정적 신호를 발견하는 공매도의 기능은 시장의 거품을 막는 데는 기여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나 전기차 같은 신기술 종목에 공매도 투자자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런 회사일수록 실적보다는 희망이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는 희망이 다른 투자자에겐 거품으로 보이는 겁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당위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터키는 지난해부터 공매도와 대차거래를 금지해오다 글로벌 지수산출회사인 MSCI가 신흥국 지수에서 제외하고 개발국 이하 등급으로 강등하겠다고 하자 지난달부터 금지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고은아 크레딧스위스증권 상무는 "공매도 금지조치가 장기화하면 지수산출회사에서 한국에 대해서도 비중변화를 고려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해외 연기금이나 펀드, ETF에서 지수를 벤치마킹해 투자하는 자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지수에서 비중이 줄면 주식시장은 물론 외환시장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3월 코로나19 발생과 동시에 공매도를 금지했던 EU 회원국들과 대만 등이 공매도를 재개했고, 주가에 큰 문제가 없는 것도 재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공매도 금지 주장을 '개인투자자의 탐욕'이라 평가하기도 합니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세상 나쁜 공매도'

이에 대해 김동환 대안경제연구소장은 "지금 왜 이 가격에 거래되는지 의심스러운 주식은 많지만, 가격의 일시적 왜곡, 자본시장의 투기적 변동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시장이나 있다"면서 "금지를 연장해달라는 투자자 요구를 이기적 탐욕이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매도의 이론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투자자들이 느끼는 것과 괴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공매도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이 느끼는 괴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2016년 9월 29일 한미약품은 장 마감 뒤 1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호재성 공시를 내고 다음 날 장 초반 또 다른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를 공시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악재성 공시 전 평소의 20배에 달하는 주식을 공매도했고 대규모 차익을 거뒀습니다.

같은 해 11월 대우건설이 회계법인으로부터 분기 보고서 '의견거절'을 받았는데, 이때도 공시 전 상장 이후 최대 규모의 공매도 거래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악재성 공시를 앞두고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아예 법으로 금지한 무차입 공매도를 벌인 사례도 있습니다. 2018년 골드만삭스는 156개 종목, 401억 원어치의 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75억 원의 과태료를 물었습니다. 그나마 골드만삭스 이전의 무차입 공매도는 이보다 훨씬 가벼운 과태료에 그쳐 '솜방망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무차입 공매도는 위조지폐와 같은 데 걸려도 과태료 몇 푼만 내면 그만"이라며 "적발되지 않은 무차입 공매도도 상상을 초월하게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00조 원 공매도 가운데 1%만 개인 몫

우리 자본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는 구조적인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해달라는 쪽도, 재개하자는 쪽도 공감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김동환 대안경제연구소장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개인투자자의 이기적 탐욕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시장에서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이 낮다"면서 "투자자들이 인식할 정도로 개선된 안을 내놓을 때까지 공매도 제도를 유예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공매도 시장은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일까?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공매도 거래액 103조 4,936억 원 가운데 외국인(62.8%)과 기관(36.1%)의 비중은 총 98.9%에 달했습니다. 개인은 한국증권금융을 통해서만 주식을 빌릴 수 있는데 공매도가 금지된 3월 13일 기준 거래할 수 있는 종목은 409개에 그칩니다.

일반적인 주식투자는 투자한 돈 이내에서 손실이 나지만, 공매도는 주가가 한도 끝도 없이 오르면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손실이 날 수 있어 개인에게 무턱대고 빌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문이 좁은 것도 사실입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나는 할 수 없는데 남들은 공매도로 돈을 벌면 공매도 제도에 대한 불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돈을 빌리는 것보다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일본처럼 개인에게 주식을 효율적으로 빌려줄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 위반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 또한 양측이 한목소리를 내는 문제입니다. 9월 재개를 주장한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평상시 공매도를 허용하면서 몇 가지만 규제하는 게 적정선이라고 본다"면서도 "법규 위반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공매도 만들 것인지 고민 필요해

과거 공매도 금지·재개 사례를 돌아보면 공매도가 재개될 때 단기적으로 투자 심리와 시장에 주는 충격은 불가피합니다. 이론적 근거와 공매도 재개 국가의 시황을 보면 장기적으로는 회복할 수 있는 충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다시 대규모로 확산하는 현재 상황과 예년보다 높아진 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 비중 등을 고려해 금지 연장을 점치는 의견이 많습니다.

중요한 건 언제 공매도를 재개할 지보다 공매도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정부와 시장 모두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시장이 멈춘 반 년간 논의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뒤늦게 대형주만 공매도 길을 열어주는 홍콩식, 개인의 주식 대차를 위한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일본식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차별받아온 개인투자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공매도 논란은 언제든 되풀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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