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3년, “국민께 배운 시간”…“숙의 방해·초법적” 지적도

입력 2020.08.19 (18:29) 수정 2020.08.1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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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이 도입 3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19일) SNS를 통해 "책임 있는 답변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시작했지만, 정부가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우리가 소홀히 해왔던 것들이 국민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공수처 설치, 윤창호법,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 주식 공매도,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등의 청원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해 나갈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셨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으로 도입된 국민청원 제도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숙의 과정'을 오히려 방해하고,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국민청원 방문자 2.4배↑…입법 과정 논의 속도 높여

청와대의 '국민청원 3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국민청원 게시판 총 방문자 수는 3억 3천여 명이다. 동의 수는 1억 5천여만 건, 청원은 87만여 건이다. 1년 차에 비해 방문자 수는 2.4배, 동의 수는 1.7배 늘었다.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은 189건이었다. 이 중 178건에 대해 답변이 완료됐다.

최근 1년 동안 가장 많은 동의 수를 얻은 청원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청원이었다.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2020년3월)' 청원이 2백7십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역대 최다 동의 수다. 2위와 10위 청원도 n번방 관련 청원이었다.

3위, 4위에 오른 청원은 정치적 지지와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청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님을 응원합니다(2020년2월)' 청원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2020년 2월)' 청원이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탄핵 촉구 청원은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던 지난 2월, 정부가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응원 청원은 이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시작됐었다.

그밖에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강제해산을 청원합니다' '렌터카를 훔쳐 사망사고를 낸 10대 엄중 처벌해주세요'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등의 청원이 많은 동의를 받았다.

분야로 보면 청원이 가장 많았던 분야는 정치개혁이었고, 인권/성평등, 보건복지, 안전환경, 외교/통일/국방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는 보고서에서 국민청원으로 제기된 여러 문제에 대해 이후 대책이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n번방 사건 이후 성범죄 처벌 강화 대책이 나왔고, 음주 운전 교통사고로 숨진 고 윤창호 씨의 친구들의 청원 이후 '윤창호법'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해당 이슈는 청원 전 이미 여론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청원 자체가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다만, 입법을 위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속도를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 동의 수를 통해 객관적으로 여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 "'흥분의 도가니' 숙의 방해…대통령이 왕인가?"

그러나 국민청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7년 11월 한 토론회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여론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 차분한 숙의 과정을 건너뛰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집단의 여론몰이 수단으로 국민청원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갈등을 조정할 국회가 약화되고,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이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삼권분립에 위반되는 국민청원은 청와대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부장판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를 파면해달라는 청원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에게 정당을 해산시켜 달라는 청원도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는 그럴 때마다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또 난민법 폐지나 동성애자 행사 개최 반대 등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청원이 무분별하게 올라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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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청원 3년, “국민께 배운 시간”…“숙의 방해·초법적” 지적도
    • 입력 2020-08-19 18:29:54
    • 수정2020-08-19 19:28:44
    취재K
청와대 국민청원이 도입 3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19일) SNS를 통해 "책임 있는 답변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시작했지만, 정부가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우리가 소홀히 해왔던 것들이 국민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공수처 설치, 윤창호법,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 주식 공매도,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등의 청원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해 나갈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셨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으로 도입된 국민청원 제도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숙의 과정'을 오히려 방해하고,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 국민청원 방문자 2.4배↑…입법 과정 논의 속도 높여

청와대의 '국민청원 3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국민청원 게시판 총 방문자 수는 3억 3천여 명이다. 동의 수는 1억 5천여만 건, 청원은 87만여 건이다. 1년 차에 비해 방문자 수는 2.4배, 동의 수는 1.7배 늘었다.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은 189건이었다. 이 중 178건에 대해 답변이 완료됐다.

최근 1년 동안 가장 많은 동의 수를 얻은 청원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청원이었다.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2020년3월)' 청원이 2백7십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역대 최다 동의 수다. 2위와 10위 청원도 n번방 관련 청원이었다.

3위, 4위에 오른 청원은 정치적 지지와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청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님을 응원합니다(2020년2월)' 청원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2020년 2월)' 청원이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탄핵 촉구 청원은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던 지난 2월, 정부가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응원 청원은 이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시작됐었다.

그밖에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강제해산을 청원합니다' '렌터카를 훔쳐 사망사고를 낸 10대 엄중 처벌해주세요'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등의 청원이 많은 동의를 받았다.

분야로 보면 청원이 가장 많았던 분야는 정치개혁이었고, 인권/성평등, 보건복지, 안전환경, 외교/통일/국방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는 보고서에서 국민청원으로 제기된 여러 문제에 대해 이후 대책이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n번방 사건 이후 성범죄 처벌 강화 대책이 나왔고, 음주 운전 교통사고로 숨진 고 윤창호 씨의 친구들의 청원 이후 '윤창호법'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해당 이슈는 청원 전 이미 여론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청원 자체가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다만, 입법을 위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속도를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 동의 수를 통해 객관적으로 여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 "'흥분의 도가니' 숙의 방해…대통령이 왕인가?"

그러나 국민청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7년 11월 한 토론회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여론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 차분한 숙의 과정을 건너뛰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집단의 여론몰이 수단으로 국민청원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갈등을 조정할 국회가 약화되고,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이 강화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삼권분립에 위반되는 국민청원은 청와대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부장판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를 파면해달라는 청원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에게 정당을 해산시켜 달라는 청원도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는 그럴 때마다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또 난민법 폐지나 동성애자 행사 개최 반대 등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청원이 무분별하게 올라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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