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조작으로 쌓아올린 ‘명성’…사과는 ‘아직’

입력 2020.08.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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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이라는 아픈 역사를 지닌 제주는 유독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도 많은데요.

피해자 대부분이 뒤늦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이미 파괴된 그들의 인생은 쉽게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이들 피해자에게 간첩이란 누명을 씌웠던 당사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탐사 K, 나종훈 신익환 기자가 그 당사자들을 찾았습니다.

[리포트]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 이름.

[강희철/조작간첩 피해자 : "나는 (고문만) 105일. 그것도 보안대에서 전기고문하고 풀려난 거를 5년 뒤에 또 끌고 가서 이번에는 대공에서 안기부와 세 군데서 요리해 먹은 거예요. 양승태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검사는 임채진이라고 하고 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던 계장은 고재오라고 해서 계장이고. (왜 잊지 못하세요?) 오랜 세월 있으면서 그놈들이 나에게 하던 짓거리를 생각하니까 같은 인간으로서 용납도 안 되고."]

4·3으로 피폐해진 제주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선택한 일본행.

삶을 찾아 떠났던 그때의 선택이 간첩이란 누명으로 평생을 옭아맬지 전혀 몰랐습니다.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나는 갈 때부터 일본에 정착할 마음은 없었고요. 갈 때부터 가서 몇 년만 살고 오자. 내가 어느 정도 좀 돈 모이면 들어와야겠다."]

제주인이 연루된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

빨간 낙인이 찍힌 순간 자신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파괴됐습니다.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내가 자식들에게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잘했든 못했든 간에 나로 인해 그 아이들도 인생이 망가졌으니까."]

[김성원/조작간첩 피해 김문규 씨 아들 : "우리 가족도 아버지 사건으로 남한테 말 못하는 스트레스, 심리적 충격, 경제적 손실, 그다음에 시간 잃어버린 게 얼마나 많은 거냐는 거지."]

조작된 간첩을 만들었던 수많은 수사관과 검사, 그리고 판사들 양승태, 김황식, 서성, 임채진.

특히 이들은 제주인을 간첩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던 당시 판검사들입니다.

조작간첩에 일조한 이들은 훗날 대법원장과 국무총리, 대법관과 검찰총장까지 지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986년 강희철, 오재선 씨 사건을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1977년 강우규, 김문규 등 11명이 연루된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을, 임채진 전 검찰 총장과 서성 전 대법관은 1986년 강광보 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맡았습니다.

조작간첩 사건 이후 승승장구한 이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칠 마음은 있을까요?

[양승태/대법원장 인사청문회/2011년 9월 7일 : "사과해야 할 건 기회가 오면 얼마든지 표명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권리 구제는 재심 절차나 이런 걸 통해서."]

청문회 당시 사과할 뜻을 밝혔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하지만 조작간첩 사건의 무죄가 확정된 재심 판결 이후에도 입장표명은 아직 없습니다.

[강희철/조작간첩 피해자 : "그전에도 사과하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사과 안 했잖아요. 그런 놈이에요. 양심 불량."]

취재진이 직접 양 전 대법원장을 찾아갔습니다.

높게 쌓아 올린 지위만큼이나 높은 담으로 가리어진 양 전 대법원장의 집입니다.

["그분(조작간첩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관련된 입장을 좀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6시간 동안의 기다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정농단 재판을 받고 있어서인지 입장을 묻는 문자메시지에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가족 : "지금 언론하고 만날 상황이 아니잖아요. 만날 수가 없다는 걸 기자님이 더 잘 아시는데. 그냥 돌아가세요."]

재심을 통해 43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 1977년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단 사건.

연루자만 11명, 이 가운데 9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유족들은 아픈 상처를 여전히 가슴에 묻고 있습니다.

[김호정/조작간첩 피해 김추백 씨 딸 : "분명히 피해를 입힌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들이 버젓하게 있는데 저희한테 사과하기는커녕 그들이 했던 잘못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취재진은 이 사건의 1심 배석판사였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게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과 의향을 물었습니다.

공식 인터뷰를 거절한 김 전 총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재심 판결 역시 역사나 하늘의 뜻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답변만 내놨습니다.

[김성원/조작간첩 피해 김문규 씨 아들 : "그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했다는데 피해자는 일생을 망치거든. 한마디의 사과라든지 그런 게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아직도 잘못된 과거에 순응한 사람들이 쌓아 올린 명성은 철옹성처럼 굳건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이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반헌법 행위자 열전'을 만드는 작업이 그중 하나입니다.

[한홍구/교수/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 "이 사람들(피해자)을 간첩 만들어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기득권자, 최상층에 포진해 있고, 그 기관들은 여전히 권력기관으로 행세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그 사람들을 지금 와서 감옥에 보내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

과거 간첩 조작으로 포상을 받은 사람들의 서훈을 취소하자는 목소리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변상철/‘지금여기에’ 사무국장 : "간첩으로 조작됐던 분들이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았으면 간첩에 대한 원인 무효가 되는 거죠. 그럼 그것을 통해 상장을 받거나 표창을 받거나 서훈을 받았으면 당연히 반납을 해야잖아요. 원인이 무효가 됐으니."]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 움직임도 있습니다.

[오영훈/국회의원 : "과거사 관련 문제로 특진을 했던 경우에 현행법상 취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명확히 해줘야 사법판단의 무죄 판결 의미가 전체적으로 되살아나는게 아닌가 그런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당사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탐사K 취재로 자신이 기소했던 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취재진에게 보내왔습니다.

"과거 불행한 사태가 안타깝고, 당시 피해자 강광보 씨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그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고, 그게 제일 우선이거든요. 그래야만 앞으로 우리 같은 억울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과거 이념 갈등에서 비롯된 제주 4·3과 이 때문에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어 행해졌던 수많은 조작 간첩 사건들.

가장 중요한 건 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재의 우리가 끊임없이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김성원/조작간첩 피해 김문규 씨 아들 : "역사에 관심이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역사로부터 그 실패의 교훈을 얻자는데 목적이 있잖아요."]

탐사 K 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그래픽: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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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조작으로 쌓아올린 ‘명성’…사과는 ‘아직’
    • 입력 2020-08-24 20:36:53
    뉴스7(제주)
[앵커] 4·3이라는 아픈 역사를 지닌 제주는 유독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도 많은데요. 피해자 대부분이 뒤늦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이미 파괴된 그들의 인생은 쉽게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이들 피해자에게 간첩이란 누명을 씌웠던 당사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탐사 K, 나종훈 신익환 기자가 그 당사자들을 찾았습니다. [리포트]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 이름. [강희철/조작간첩 피해자 : "나는 (고문만) 105일. 그것도 보안대에서 전기고문하고 풀려난 거를 5년 뒤에 또 끌고 가서 이번에는 대공에서 안기부와 세 군데서 요리해 먹은 거예요. 양승태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검사는 임채진이라고 하고 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던 계장은 고재오라고 해서 계장이고. (왜 잊지 못하세요?) 오랜 세월 있으면서 그놈들이 나에게 하던 짓거리를 생각하니까 같은 인간으로서 용납도 안 되고."] 4·3으로 피폐해진 제주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선택한 일본행. 삶을 찾아 떠났던 그때의 선택이 간첩이란 누명으로 평생을 옭아맬지 전혀 몰랐습니다.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나는 갈 때부터 일본에 정착할 마음은 없었고요. 갈 때부터 가서 몇 년만 살고 오자. 내가 어느 정도 좀 돈 모이면 들어와야겠다."] 제주인이 연루된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 빨간 낙인이 찍힌 순간 자신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파괴됐습니다.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내가 자식들에게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잘했든 못했든 간에 나로 인해 그 아이들도 인생이 망가졌으니까."] [김성원/조작간첩 피해 김문규 씨 아들 : "우리 가족도 아버지 사건으로 남한테 말 못하는 스트레스, 심리적 충격, 경제적 손실, 그다음에 시간 잃어버린 게 얼마나 많은 거냐는 거지."] 조작된 간첩을 만들었던 수많은 수사관과 검사, 그리고 판사들 양승태, 김황식, 서성, 임채진. 특히 이들은 제주인을 간첩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던 당시 판검사들입니다. 조작간첩에 일조한 이들은 훗날 대법원장과 국무총리, 대법관과 검찰총장까지 지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986년 강희철, 오재선 씨 사건을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1977년 강우규, 김문규 등 11명이 연루된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을, 임채진 전 검찰 총장과 서성 전 대법관은 1986년 강광보 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맡았습니다. 조작간첩 사건 이후 승승장구한 이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칠 마음은 있을까요? [양승태/대법원장 인사청문회/2011년 9월 7일 : "사과해야 할 건 기회가 오면 얼마든지 표명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권리 구제는 재심 절차나 이런 걸 통해서."] 청문회 당시 사과할 뜻을 밝혔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하지만 조작간첩 사건의 무죄가 확정된 재심 판결 이후에도 입장표명은 아직 없습니다. [강희철/조작간첩 피해자 : "그전에도 사과하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사과 안 했잖아요. 그런 놈이에요. 양심 불량."] 취재진이 직접 양 전 대법원장을 찾아갔습니다. 높게 쌓아 올린 지위만큼이나 높은 담으로 가리어진 양 전 대법원장의 집입니다. ["그분(조작간첩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관련된 입장을 좀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6시간 동안의 기다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정농단 재판을 받고 있어서인지 입장을 묻는 문자메시지에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가족 : "지금 언론하고 만날 상황이 아니잖아요. 만날 수가 없다는 걸 기자님이 더 잘 아시는데. 그냥 돌아가세요."] 재심을 통해 43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 1977년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단 사건. 연루자만 11명, 이 가운데 9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유족들은 아픈 상처를 여전히 가슴에 묻고 있습니다. [김호정/조작간첩 피해 김추백 씨 딸 : "분명히 피해를 입힌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들이 버젓하게 있는데 저희한테 사과하기는커녕 그들이 했던 잘못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취재진은 이 사건의 1심 배석판사였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게 과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과 의향을 물었습니다. 공식 인터뷰를 거절한 김 전 총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재심 판결 역시 역사나 하늘의 뜻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답변만 내놨습니다. [김성원/조작간첩 피해 김문규 씨 아들 : "그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했다는데 피해자는 일생을 망치거든. 한마디의 사과라든지 그런 게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아직도 잘못된 과거에 순응한 사람들이 쌓아 올린 명성은 철옹성처럼 굳건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이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반헌법 행위자 열전'을 만드는 작업이 그중 하나입니다. [한홍구/교수/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 "이 사람들(피해자)을 간첩 만들어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기득권자, 최상층에 포진해 있고, 그 기관들은 여전히 권력기관으로 행세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그 사람들을 지금 와서 감옥에 보내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 과거 간첩 조작으로 포상을 받은 사람들의 서훈을 취소하자는 목소리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변상철/‘지금여기에’ 사무국장 : "간첩으로 조작됐던 분들이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았으면 간첩에 대한 원인 무효가 되는 거죠. 그럼 그것을 통해 상장을 받거나 표창을 받거나 서훈을 받았으면 당연히 반납을 해야잖아요. 원인이 무효가 됐으니."]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 움직임도 있습니다. [오영훈/국회의원 : "과거사 관련 문제로 특진을 했던 경우에 현행법상 취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명확히 해줘야 사법판단의 무죄 판결 의미가 전체적으로 되살아나는게 아닌가 그런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당사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탐사K 취재로 자신이 기소했던 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취재진에게 보내왔습니다. "과거 불행한 사태가 안타깝고, 당시 피해자 강광보 씨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강광보/조작간첩 피해자 : "그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고, 그게 제일 우선이거든요. 그래야만 앞으로 우리 같은 억울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과거 이념 갈등에서 비롯된 제주 4·3과 이 때문에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어 행해졌던 수많은 조작 간첩 사건들. 가장 중요한 건 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재의 우리가 끊임없이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김성원/조작간첩 피해 김문규 씨 아들 : "역사에 관심이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역사로부터 그 실패의 교훈을 얻자는데 목적이 있잖아요."] 탐사 K 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그래픽: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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