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 채워?…댐의 딜레마

입력 2020.08.27 (15:39) 수정 2020.08.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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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수도권발 코로나19 확산과 태풍 '바비'의 북상. 이슈가 이슈를 덮었습니다.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난리를 겪은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수해의 상처는 여전하지만, 관심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복구는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모두 지금, 현재의 일입니다. 그래서 '댐의 딜레마'를 짚어봅니다. 현재의 쟁점을 정리해 미래에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섬진강댐

섬진강댐

■ "수위 왜 낮추지 않았나?"…"기준보다 더 낮췄다"

수해 복구가 한창이던 지난 13일. 전북 순창과 임실 등 섬진강 주변 자치단체장들이 대전 수자원공사 본사를 항의 방문했습니다. 댐 관리를 부실하게 한 책임을 지라며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근거는 '미흡한 사전 방류'였습니다.

"집중호우가 사전에 예보되었음에도 선제적 방류보다는 담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가 초당 1,870톤의 기록적인 물을 긴급 방류했습니다."(황숙주 순창군수)

집중호우가 예보됐지만, 댐을 적절히 비워놓지 않다가 갑자기 많은 물을 쏟아내 피해가 커졌다는 내용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전 방류만 했어도 즉 댐의 수위만 미리, 충분히 낮춰놨어도 물난리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피해 주민들은 "물이 곧 돈이기 때문에 수자원공사가 물을 빼내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수자원공사 항의 방문 중인 섬진강 주변 지자체장들수자원공사 항의 방문 중인 섬진강 주변 지자체장들

수자원공사는 반박합니다. 섬진강댐이 홍수에 대비해 비워놔야 할 용량은 3천만 톤 정도지만, 그보다 4배 많은 1억2천만 톤 정도를 빼놨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수자원공사는 최소 10분 단위로 댐의 수위와 방류량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전북 남원의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기 하루 전까지도 댐 수위는 기준보다 낮습니다. 측정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기 때문에 조작했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결국, 예상을 훌쩍 넘은 강수량이 문제라는 해명입니다.

피해 주민들의 불만이 가라앉았을까요? 아닙니다. 주민들은 재차 묻습니다.

"기준보다 수위를 낮추는 게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수위를 낮출 수는 없었는가?"

■ "비웠다가 가뭄 오면" vs "채웠다가 큰비 오면"

'더'라는 한 글자만 붙은 채 논란은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근거는 있습니다. 물난리 하루 전인 지난 7일 섬진강댐의 저수율은 75%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름철 저수율을 보면 50, 60% 선까지 내려간 때도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 물을 빼내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피해 주민들은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방류 중인 섬진강댐방류 중인 섬진강댐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는 답합니다. "그보다 수위를 더 낮추면 물 공급이 어렵다." 섬진강댐의 방류량을 최종 승인하는 영산강 홍수통제소는 "저수율이 50, 60%일 때는 가뭄이라 용수 공급이 제한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합니다. 수자원공사가 올해 발표한 섬진강댐의 연간 용수공급량은 4억3천5백만 톤입니다. 농업용수가 3억7천만 톤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생공용수입니다. 사용량이 일정한 생공용수와 달리, 농업용수는 봄부터 가을에 수요가 집중됩니다. 여름철에 댐을 비워놓으면 물 공급에 지장이 있다는 해명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수자원공사와 환경부 안에서는 "피해 주민들 말처럼 댐을 비워놨다가 비가 적게 오면 농업용수 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는 지적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홍수에 대비해 물을 빼놔도, 가뭄에 대비에 물을 채워놔도, 예상 범위를 벗어나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을 동시에 '잘' 해야 한다. 다목적댐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 국내 댐 절반이 '다목적'…딜레마 해결책은?

수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국내에는 모두 37개의 댐이 있습니다. 다목적댐이 20개, 용수댐이 14개, 홍수조절용댐이 3개입니다. 절반 넘는 댐이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컸던 섬진강댐과 용담댐은 모두 다목적댐입니다. 강을 끼고있는 지역 대부분이 댐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섬진강 제방 붕괴로 침수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섬진강 제방 붕괴로 침수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

댐 관리를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게 수자원공사와 환경부의 일입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이번 침수 피해에 인재 측면이 있다"고 답한 이유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다목적댐이 가진 한계를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댐의 홍수 조절 기능을 강화하려면 그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댐 방류와 수해의 연관성을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지금의 상황을 넘기려는 임시방편이 아닌,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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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워? 채워?…댐의 딜레마
    • 입력 2020-08-27 15:39:44
    • 수정2020-08-27 15:40:45
    취재K
수도권발 코로나19 확산과 태풍 '바비'의 북상. 이슈가 이슈를 덮었습니다.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난리를 겪은 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수해의 상처는 여전하지만, 관심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복구는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모두 지금, 현재의 일입니다. 그래서 '댐의 딜레마'를 짚어봅니다. 현재의 쟁점을 정리해 미래에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섬진강댐

■ "수위 왜 낮추지 않았나?"…"기준보다 더 낮췄다"

수해 복구가 한창이던 지난 13일. 전북 순창과 임실 등 섬진강 주변 자치단체장들이 대전 수자원공사 본사를 항의 방문했습니다. 댐 관리를 부실하게 한 책임을 지라며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근거는 '미흡한 사전 방류'였습니다.

"집중호우가 사전에 예보되었음에도 선제적 방류보다는 담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가 초당 1,870톤의 기록적인 물을 긴급 방류했습니다."(황숙주 순창군수)

집중호우가 예보됐지만, 댐을 적절히 비워놓지 않다가 갑자기 많은 물을 쏟아내 피해가 커졌다는 내용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전 방류만 했어도 즉 댐의 수위만 미리, 충분히 낮춰놨어도 물난리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피해 주민들은 "물이 곧 돈이기 때문에 수자원공사가 물을 빼내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수자원공사 항의 방문 중인 섬진강 주변 지자체장들
수자원공사는 반박합니다. 섬진강댐이 홍수에 대비해 비워놔야 할 용량은 3천만 톤 정도지만, 그보다 4배 많은 1억2천만 톤 정도를 빼놨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수자원공사는 최소 10분 단위로 댐의 수위와 방류량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전북 남원의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기 하루 전까지도 댐 수위는 기준보다 낮습니다. 측정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기 때문에 조작했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결국, 예상을 훌쩍 넘은 강수량이 문제라는 해명입니다.

피해 주민들의 불만이 가라앉았을까요? 아닙니다. 주민들은 재차 묻습니다.

"기준보다 수위를 낮추는 게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수위를 낮출 수는 없었는가?"

■ "비웠다가 가뭄 오면" vs "채웠다가 큰비 오면"

'더'라는 한 글자만 붙은 채 논란은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근거는 있습니다. 물난리 하루 전인 지난 7일 섬진강댐의 저수율은 75%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름철 저수율을 보면 50, 60% 선까지 내려간 때도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 물을 빼내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피해 주민들은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방류 중인 섬진강댐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는 답합니다. "그보다 수위를 더 낮추면 물 공급이 어렵다." 섬진강댐의 방류량을 최종 승인하는 영산강 홍수통제소는 "저수율이 50, 60%일 때는 가뭄이라 용수 공급이 제한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합니다. 수자원공사가 올해 발표한 섬진강댐의 연간 용수공급량은 4억3천5백만 톤입니다. 농업용수가 3억7천만 톤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생공용수입니다. 사용량이 일정한 생공용수와 달리, 농업용수는 봄부터 가을에 수요가 집중됩니다. 여름철에 댐을 비워놓으면 물 공급에 지장이 있다는 해명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수자원공사와 환경부 안에서는 "피해 주민들 말처럼 댐을 비워놨다가 비가 적게 오면 농업용수 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는 지적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홍수에 대비해 물을 빼놔도, 가뭄에 대비에 물을 채워놔도, 예상 범위를 벗어나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을 동시에 '잘' 해야 한다. 다목적댐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 국내 댐 절반이 '다목적'…딜레마 해결책은?

수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국내에는 모두 37개의 댐이 있습니다. 다목적댐이 20개, 용수댐이 14개, 홍수조절용댐이 3개입니다. 절반 넘는 댐이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컸던 섬진강댐과 용담댐은 모두 다목적댐입니다. 강을 끼고있는 지역 대부분이 댐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섬진강 제방 붕괴로 침수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
댐 관리를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게 수자원공사와 환경부의 일입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이번 침수 피해에 인재 측면이 있다"고 답한 이유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다목적댐이 가진 한계를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댐의 홍수 조절 기능을 강화하려면 그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댐 방류와 수해의 연관성을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지금의 상황을 넘기려는 임시방편이 아닌,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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