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반대로 좌절된 역대 법안은?

입력 2020.09.03 (15: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가 이끄는 집단 휴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 대통령까지 나서서 '원점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전공의들은 '정책 철회' 명문화를 요구하며 진료 복귀를 거부했는데요, 결국엔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법'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금까지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사들의 반발로 좌절된 법안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안경사법·물리치료사법 반대…"다른 직역으로 요구 번질까 우려"

직역(職域) 특정한 직업의 영역이나 범위.

① 안경사법
2015년 안경사의 자격과 면허 등에 관해 규정한 '안경사법(노영민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됐습니다. 당시 의사협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심사를 앞두고, 협회원들에게 철폐 서명을 돌리며 입법 저지에 나섰습니다.

'타각적 굴절검사기'라는 시력검사용 기기의 사용 권한을 포함한 것이 쟁점이었는데, 의사협회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만 이 기기를 다뤄야 한다며 안경사법안을 반대했습니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반대 이유로 밝혔지만, "이번에 허용하면 다른 직역에서도 의료행위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드러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안경원에서 굴절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 빨간 지붕 집'을 바라보는 검사 아시죠? 바로 그것인데요, 안경원에 있는 것은 '자동 굴절검사기'입니다. 이것은 안경사들도 다룰 수 있는데, 이 자동 검사만으로도 안과 질환이 없는 일반인들은 시력을 재고 안경을 맞추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백내장, 녹내장 등 눈에 질환이 있으면 타각적 굴절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과 의사에게만 받을 수 있고요.

결론은, 이 기기 사용 권한을 의사협회가 문제 삼으면서 '안경사법' 제정 자체가 좌초됐습니다. 안경사는 국가고시에 합격해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는 전문가이지만, 아직 그 자격과 면허 등을 알맞게 규정한 별도 법안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② 물리치료사법
물리치료사법도 비슷합니다. 2004년 17대 국회에서부터 정당을 가리지 않고, 여러 국회의원이 꾸준히 입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굳이 별도 법안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사협회의 의견이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의사협회는 이때도 "다른 직역까지 법안 제정 요구 이어져 현행 의료법 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리치료사협회는 "물리치료 면허자가 자신의 직역에 대한 안전한 법체계를 요구하는데, 의사협회가 그 필요성 여부를 평가하고 입법 과정에 개입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의협이 다른 직역을 자신들의 하위 부류로 인식하기에 가능한 행태 아니겠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의료기사법'은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및 치과위생사까지 업무 성격과 범위가 다 다른 직역을 뭉뚱그려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19대 국회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 20대 윤소하 의원(정의당) 등이 낸 물리치료사 법안은 갈수록 의료수요가 급증하는 물리치료사에 대해 그 특성에 맞게 업무 범위와 자격, 면허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입니다.

성격이 매우 다른 직역이 같이 묶여있다 보니, 각각의 의료 행위에 대한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정부에서조차 해당 의료행위의 허용 범위 해석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치료사 협회는 "우리가 따로 시설을 차려서 진료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 치과의사·한의사 수련의 '주 80시간' 법안도 NO!

의사협회는 치과의사와 한의사 수련의들의 과도한 노동강도를 방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반대했습니다.

2019년 5월 정춘숙 의원은 '1주 80시간, 최대연속 36시간 수련, 연속수련 후 10시간 휴식보장'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전공의법'에 치과의사와 한의사도 포함하는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개정 추진을 의사협회가 반대한 것이죠. 이유는 이랬습니다.


■ 의사만 해야 한다더니…현실은 불법 천지

2017년 김상희 의원은 '담당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전제'로, 장기간 같은 질환으로 동일 처방이 반복되는 환자에 한해 간호사가 처방전을 대리 발급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또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못 해보고 폐기됐습니다. 의사협회는 "환자 건강권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는데, 과연 지금 현실은 어떨까요?

웬만한 대학병원에선 의사의 ID로 접속해 간호사가 대리 처방하는 것이 더는 비밀도 아니라고,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처벌을 감내하고 폭로했습니다. 의사가 부족해 직접 처방까지 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간호사들이 폭로한 공공연한 불법 의료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6일 <의사인력 부족이 야기하는 불법 의료 현장 고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작심하고 국내 대학병원에서 벌어지는 '무면허 불법 의료'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병원과 의사들이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불리는 인력을 대거 활용해 현행법상 명백히 불법인 '무면허 의료행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을 조사 결과로 밝힌 겁니다.

☞바로가기https://url.kr/Ts5xYd [자료집] 의사인력 부족이 만든 불법 의료 현장

지난 2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10년 차 PA 간호사는 “논문 쓰는 것 빼고 전공의 일 대신 다 한다는 말이 맞다”고 인터뷰 지난 2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10년 차 PA 간호사는 “논문 쓰는 것 빼고 전공의 일 대신 다 한다는 말이 맞다”고 인터뷰

■ "의사만큼 정부가 대화하고 협의하는 상대가 어디 있습니까?"

의사 외 의료계 직역들이 모인 보건의료노조와 환자단체는 취재기자와 얘기하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고, 대화하고 협의해 달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선 의사들의 주장이 너무하다고 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의사협회만큼 귀 기울이고 조심하는 상대가 또 어디에 있냐는 겁니다.

그런 기준이라면 의사 외 의료 직역과 환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정부와 싸워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다고, 그래서 불법을 강요받는다고 호소하는 의사 외 다수 직역의 호소와 외침은 외면한 채 지금도 의사협회만 바라보는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수술실 CCTV 의무화', '음주 수술 방지 및 처벌', '대리수술 금지 및 처벌', '성범죄자 면허 정지 및 박탈' 등등 환자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위한 입법 시도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묻히고 있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의사협회는 정부의 정책이나 법안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집단 진료거부나 휴진을 예고하며 압박했고, 그래도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이를 실행하며 수차례 실력 행사를 해왔습니다. 그때마다 국민은 의료공백과 그 피해 앞에 무력했습니다.

의사는 존중받고 보호해야 마땅한 특수직입니다. 전문성을 인정하고 정책 결정에 앞서 진지하게 협의해 달라는 요구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사가 '허락'하지 않은 정책은 시행할 수 없다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최상위 소득과 직업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의사 반대로 좌절된 역대 법안은?
    • 입력 2020-09-03 15:46:17
    취재K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가 이끄는 집단 휴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 대통령까지 나서서 '원점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전공의들은 '정책 철회' 명문화를 요구하며 진료 복귀를 거부했는데요, 결국엔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법'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금까지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사들의 반발로 좌절된 법안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안경사법·물리치료사법 반대…"다른 직역으로 요구 번질까 우려"

직역(職域) 특정한 직업의 영역이나 범위.

① 안경사법
2015년 안경사의 자격과 면허 등에 관해 규정한 '안경사법(노영민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됐습니다. 당시 의사협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심사를 앞두고, 협회원들에게 철폐 서명을 돌리며 입법 저지에 나섰습니다.

'타각적 굴절검사기'라는 시력검사용 기기의 사용 권한을 포함한 것이 쟁점이었는데, 의사협회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의사만 이 기기를 다뤄야 한다며 안경사법안을 반대했습니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반대 이유로 밝혔지만, "이번에 허용하면 다른 직역에서도 의료행위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드러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안경원에서 굴절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 빨간 지붕 집'을 바라보는 검사 아시죠? 바로 그것인데요, 안경원에 있는 것은 '자동 굴절검사기'입니다. 이것은 안경사들도 다룰 수 있는데, 이 자동 검사만으로도 안과 질환이 없는 일반인들은 시력을 재고 안경을 맞추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백내장, 녹내장 등 눈에 질환이 있으면 타각적 굴절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과 의사에게만 받을 수 있고요.

결론은, 이 기기 사용 권한을 의사협회가 문제 삼으면서 '안경사법' 제정 자체가 좌초됐습니다. 안경사는 국가고시에 합격해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는 전문가이지만, 아직 그 자격과 면허 등을 알맞게 규정한 별도 법안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② 물리치료사법
물리치료사법도 비슷합니다. 2004년 17대 국회에서부터 정당을 가리지 않고, 여러 국회의원이 꾸준히 입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굳이 별도 법안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사협회의 의견이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의사협회는 이때도 "다른 직역까지 법안 제정 요구 이어져 현행 의료법 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리치료사협회는 "물리치료 면허자가 자신의 직역에 대한 안전한 법체계를 요구하는데, 의사협회가 그 필요성 여부를 평가하고 입법 과정에 개입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의협이 다른 직역을 자신들의 하위 부류로 인식하기에 가능한 행태 아니겠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의료기사법'은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및 치과위생사까지 업무 성격과 범위가 다 다른 직역을 뭉뚱그려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19대 국회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 20대 윤소하 의원(정의당) 등이 낸 물리치료사 법안은 갈수록 의료수요가 급증하는 물리치료사에 대해 그 특성에 맞게 업무 범위와 자격, 면허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입니다.

성격이 매우 다른 직역이 같이 묶여있다 보니, 각각의 의료 행위에 대한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정부에서조차 해당 의료행위의 허용 범위 해석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치료사 협회는 "우리가 따로 시설을 차려서 진료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 치과의사·한의사 수련의 '주 80시간' 법안도 NO!

의사협회는 치과의사와 한의사 수련의들의 과도한 노동강도를 방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반대했습니다.

2019년 5월 정춘숙 의원은 '1주 80시간, 최대연속 36시간 수련, 연속수련 후 10시간 휴식보장'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전공의법'에 치과의사와 한의사도 포함하는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개정 추진을 의사협회가 반대한 것이죠. 이유는 이랬습니다.


■ 의사만 해야 한다더니…현실은 불법 천지

2017년 김상희 의원은 '담당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전제'로, 장기간 같은 질환으로 동일 처방이 반복되는 환자에 한해 간호사가 처방전을 대리 발급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또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못 해보고 폐기됐습니다. 의사협회는 "환자 건강권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는데, 과연 지금 현실은 어떨까요?

웬만한 대학병원에선 의사의 ID로 접속해 간호사가 대리 처방하는 것이 더는 비밀도 아니라고,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처벌을 감내하고 폭로했습니다. 의사가 부족해 직접 처방까지 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간호사들이 폭로한 공공연한 불법 의료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6일 <의사인력 부족이 야기하는 불법 의료 현장 고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작심하고 국내 대학병원에서 벌어지는 '무면허 불법 의료'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병원과 의사들이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로 불리는 인력을 대거 활용해 현행법상 명백히 불법인 '무면허 의료행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을 조사 결과로 밝힌 겁니다.

☞바로가기https://url.kr/Ts5xYd [자료집] 의사인력 부족이 만든 불법 의료 현장

지난 2일  KBS1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10년 차 PA 간호사는 “논문 쓰는 것 빼고 전공의 일 대신 다 한다는 말이 맞다”고 인터뷰
■ "의사만큼 정부가 대화하고 협의하는 상대가 어디 있습니까?"

의사 외 의료계 직역들이 모인 보건의료노조와 환자단체는 취재기자와 얘기하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고, 대화하고 협의해 달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선 의사들의 주장이 너무하다고 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의사협회만큼 귀 기울이고 조심하는 상대가 또 어디에 있냐는 겁니다.

그런 기준이라면 의사 외 의료 직역과 환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정부와 싸워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의사가 부족하다고, 그래서 불법을 강요받는다고 호소하는 의사 외 다수 직역의 호소와 외침은 외면한 채 지금도 의사협회만 바라보는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수술실 CCTV 의무화', '음주 수술 방지 및 처벌', '대리수술 금지 및 처벌', '성범죄자 면허 정지 및 박탈' 등등 환자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위한 입법 시도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묻히고 있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의사협회는 정부의 정책이나 법안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집단 진료거부나 휴진을 예고하며 압박했고, 그래도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이를 실행하며 수차례 실력 행사를 해왔습니다. 그때마다 국민은 의료공백과 그 피해 앞에 무력했습니다.

의사는 존중받고 보호해야 마땅한 특수직입니다. 전문성을 인정하고 정책 결정에 앞서 진지하게 협의해 달라는 요구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사가 '허락'하지 않은 정책은 시행할 수 없다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최상위 소득과 직업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