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에 바람맞은 기자 “빌딩풍 무서워요”

입력 2020.09.04 (17:22) 수정 2020.09.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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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멈췄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운전자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닫으려는데 문이 반대로 접혔습니다. 운전석 문이 차 앞쪽 보닛 쪽에 딱 붙어버린 상황. 운전자가 다시 되돌려 보려 끙끙거리며 밀고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문.

제9호 태풍 '마이삭'의 상륙이 임박한 지난 2일 자정을 앞둔 시간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싶어 멍하게 쳐다보고 있던 기자를 다급하게 부른 운전자와 힘을 합쳐 겨우 문을 돌려놓았지만, 성인 두 명의 힘으로도 당해내기 버거웠던 그 날의 바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날 저녁까지만 해도 바람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따금 몸을 가누기 어려운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방송이 힘들 정도는 아니었고, 취재진은 매시간 시청자 여러분께 "강풍이 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오셨다. 현장에서 겪은 마이삭의 위력

시간은 자정을 넘었고 태풍'마이삭'이 부산에 근접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몸이 제멋대로 바람 방향을 따라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나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미는 느낌이랄까요.

도저히 현장에서 방송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장소를 옮겼지만, 그곳 역시도 제대로 된 방송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급하게 전국의 시청자들께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인 채 취재진은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방송 때도 말씀드렸지만, 최대한 안전 수칙은 준수하고 방송에 임했습니다.


마린시티 '빌딩풍' 도대체 어느 정도?

궁금했습니다. 그곳의 바람은 도대체 어느 정도 세기였는지. 이날 새벽 해운대 마린시티로부터 4km 정도 떨어진 기상청 공식 관측기기가 측정한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21m. 해운대 앞바다에 떠 있는 국립해양조사원의 관측장비에도 초속 23~24m 정도의 바람이 측정됐습니다. 분명 이 정도가 강한 바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마린시티의 바람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날 마린시티에서는 취재진뿐만 아니라 '빌딩풍'을 연구하는 부산대학교 연구팀도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관심 역시 마린시티의 바람이 얼마나 강해질까였는데, 그걸 측정하고 있었던 거죠.


결과를 먼저 말씀드리면 최대 2배까지도 바람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날 새벽 1시쯤 마린시티에서 연구팀이 측정한 바람은 초속 47.6m였습니다. 밖에 있는 자체가 위험하고 차량 운행도 피해야 할 수준입니다. 같은 시각 바다 위에서 측정한 바람은 23.4m로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연구팀이 태풍 전후 등 시시각각 풍속을 측정해 평균값을 낸 결과, 해운대 마린시티의 풍속은 초속 34m로 주변보다 40%가량 높았습니다. 이유는 밀려오는 바람이 초고층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며 위력이 더욱 강해지는 이른바 '빌딩풍' 때문입니다.


21세기형 도심 재난 '빌딩풍' 대비는 걸음마 수준

"XX 층의 자부심", "XX의 랜드마크". 요즘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홍보 문구입니다. 경쟁적으로 올라가는 건물은 주요 도시의 도심을 초고층 건물의 각축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해운대 일대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가장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역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빌딩풍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정부 차원의 연구가 올해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이 이전에는 없던 '21세기형 도심 재난'인 빌딩풍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자와 만난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존 지역은 방풍림 등으로 바람을 차단하고, 새로 들어서는 시설은 설계와 허가 단계에서 빌딩풍을 고려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 교수는 이를 위한 위험도 분석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강풍이 예보될 때라도 불가피한 외출은 피하시고, 창틀은 단단하게 고정하고, 신문지나 테이프를 창문에 붙이는 정도의 대비라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벌써 또 다른 태풍 '하이선'이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끝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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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 ‘마이삭’에 바람맞은 기자 “빌딩풍 무서워요”
    • 입력 2020-09-04 17:22:20
    • 수정2020-09-04 17:24:18
    취재K
자동차가 멈췄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운전자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닫으려는데 문이 반대로 접혔습니다. 운전석 문이 차 앞쪽 보닛 쪽에 딱 붙어버린 상황. 운전자가 다시 되돌려 보려 끙끙거리며 밀고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문. 제9호 태풍 '마이삭'의 상륙이 임박한 지난 2일 자정을 앞둔 시간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싶어 멍하게 쳐다보고 있던 기자를 다급하게 부른 운전자와 힘을 합쳐 겨우 문을 돌려놓았지만, 성인 두 명의 힘으로도 당해내기 버거웠던 그 날의 바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날 저녁까지만 해도 바람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따금 몸을 가누기 어려운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방송이 힘들 정도는 아니었고, 취재진은 매시간 시청자 여러분께 "강풍이 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오셨다. 현장에서 겪은 마이삭의 위력 시간은 자정을 넘었고 태풍'마이삭'이 부산에 근접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몸이 제멋대로 바람 방향을 따라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나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미는 느낌이랄까요. 도저히 현장에서 방송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장소를 옮겼지만, 그곳 역시도 제대로 된 방송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급하게 전국의 시청자들께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인 채 취재진은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방송 때도 말씀드렸지만, 최대한 안전 수칙은 준수하고 방송에 임했습니다. 마린시티 '빌딩풍' 도대체 어느 정도? 궁금했습니다. 그곳의 바람은 도대체 어느 정도 세기였는지. 이날 새벽 해운대 마린시티로부터 4km 정도 떨어진 기상청 공식 관측기기가 측정한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21m. 해운대 앞바다에 떠 있는 국립해양조사원의 관측장비에도 초속 23~24m 정도의 바람이 측정됐습니다. 분명 이 정도가 강한 바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마린시티의 바람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날 마린시티에서는 취재진뿐만 아니라 '빌딩풍'을 연구하는 부산대학교 연구팀도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관심 역시 마린시티의 바람이 얼마나 강해질까였는데, 그걸 측정하고 있었던 거죠. 결과를 먼저 말씀드리면 최대 2배까지도 바람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날 새벽 1시쯤 마린시티에서 연구팀이 측정한 바람은 초속 47.6m였습니다. 밖에 있는 자체가 위험하고 차량 운행도 피해야 할 수준입니다. 같은 시각 바다 위에서 측정한 바람은 23.4m로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연구팀이 태풍 전후 등 시시각각 풍속을 측정해 평균값을 낸 결과, 해운대 마린시티의 풍속은 초속 34m로 주변보다 40%가량 높았습니다. 이유는 밀려오는 바람이 초고층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며 위력이 더욱 강해지는 이른바 '빌딩풍' 때문입니다. 21세기형 도심 재난 '빌딩풍' 대비는 걸음마 수준 "XX 층의 자부심", "XX의 랜드마크". 요즘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홍보 문구입니다. 경쟁적으로 올라가는 건물은 주요 도시의 도심을 초고층 건물의 각축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해운대 일대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가장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역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빌딩풍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정부 차원의 연구가 올해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이 이전에는 없던 '21세기형 도심 재난'인 빌딩풍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자와 만난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존 지역은 방풍림 등으로 바람을 차단하고, 새로 들어서는 시설은 설계와 허가 단계에서 빌딩풍을 고려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 교수는 이를 위한 위험도 분석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강풍이 예보될 때라도 불가피한 외출은 피하시고, 창틀은 단단하게 고정하고, 신문지나 테이프를 창문에 붙이는 정도의 대비라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벌써 또 다른 태풍 '하이선'이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끝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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