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페라리 재벌3세 체포영장 그 후…

입력 2020.09.0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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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국 타이랏 신문

출처: 태국 타이랏 신문

태국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이름 대신 애칭을 부른다. 오라윳 유위티야(35). 그의 애칭은 ‘보스(boss)’다. 태국 언론도 모두 ‘보스’라고 부른다.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150개 나라에서 인터폴 적색수배(red notice)됐다. ‘경찰관 살해혐의’와 ‘뺑소니 혐의’, 그리고 난데없는 ‘마약투약 혐의’가 더해졌다. 사고 8년이 지났다. 태국 경찰이 8년 전 확보한 보스 '오라윳'의 혈액에서 코카인성분을 찾는데 8년이 걸렸다.

그야말로 홍콩 누아르다. 지난 2012년 9월, 재산이 20조 원이 넘는 재벌(레드불 그룹) 3세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을 치고 도주했다. 27살의 재벌 3세는 술을 마신 뒤 자신의 페라리를 177km로 몰았다. 페라리에 치인 경찰은 100m를 끌려갔다. 사고현장에 흘린 엔진오일은 레드불 가문의 저택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경찰은 집안에서 크게 부서진 페라리를 발견했다.


수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동료 경찰이 죽었는데, 경찰은 음주운전이 아니고, 사고 직후 술을 마셨다는 진술을 믿어줬다. 보스는 보스답게 경찰 출석에 8번이나 불응했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로 싱가포르로 도주했다. 사실은 그렇게 풀어줬다. 그는 글로벌 사법체계를 비웃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2018년 3월에는 인터폴 수배도 풀렸다. 그러던 지난 7월 24일.

2018년 3월 보스(오라윳)의 인터폴 수배가 해제됐다.2018년 3월 보스(오라윳)의 인터폴 수배가 해제됐다.

태국 경찰은 오라윳의 불기소를 발표했다. 그가 자유롭게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시속 177km였다는 당초 경찰의 조사는 시속 79km로 수정됐다. 동료 경찰이 죽었는데, 태국 경찰은 증인의 이 같은 증언 번복을 모두 받아들였다. 불기소 이유 중에는 숨진 경찰이 무리하게 페라리 앞으로 끼어들었다는 새로운 증언도 포함됐다. 그래서 죽은 경찰에게 ‘전방주시태만’ 혐의가 적용됐다. (이쯤 되면 황정민이나 조진웅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발표는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든 태국 국민들을 크게 자극했다. 여론이 격화됐다. 지난 7월부터 태국에선 매주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의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정부 진상조사위원회가 급조됐다. 그리고 25일 태국 법원은 보스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어제 면죄부를 줬던 죄인에게 오늘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경찰도 머쓱했는지 마약 혐의가 추가됐다. 태국 이민청은 모든 국경사무소에 보스가 나타나면 즉각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달 초부터 매일 진실이 터져 나온다. 이제 관건은 ‘어디까지, 누구까지 연루 됐느냐?’다.

진상조사위는 1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21명의 경찰과 1명의 검사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다고 밝혔다. 오늘 경찰청은 이들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단 입장을 내놨다. 검찰청 차장도 사건 무마의 유력한 용의자가 됐다. 태국 반부패위원회는 오라윳의 기소를 결정할 검사를 복수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국 정부는 이 사건을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까. 어디까지 덮을 수 있을까.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27년이다.

대정부 시위에 등장한 레드불 조형물(출처: 태국 스탠다드 신문)대정부 시위에 등장한 레드불 조형물(출처: 태국 스탠다드 신문)

태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빈부격차의 나라다. 국민의 상당수가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시내 시암파라곤 쇼핑몰에서는 람보르기니가 팔린다. 재산세도, 양도세도, 상속세도 유명무실하다. 공무원들은 부패했다. 보스들에게는 참 살기 편한 나라다. (태국 시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선 여전히 ‘레드불’도 잘 팔린다. 이날 타이 익제마이너 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며, 타이는 여전히 돈 많은 재벌들의 천국이며, 그래서 세계의 재벌들이 몰려올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참고> 이마저도 영화소재로 부족했는지, 오라윳이 과속을 하지 않았고 시속 79km로 운전했다고 말했던 증인은 증언 일주일만인 지난 7월 30일, 치앙마이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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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5 07:06:11
    특파원 리포트

출처: 태국 타이랏 신문

태국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이름 대신 애칭을 부른다. 오라윳 유위티야(35). 그의 애칭은 ‘보스(boss)’다. 태국 언론도 모두 ‘보스’라고 부른다.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150개 나라에서 인터폴 적색수배(red notice)됐다. ‘경찰관 살해혐의’와 ‘뺑소니 혐의’, 그리고 난데없는 ‘마약투약 혐의’가 더해졌다. 사고 8년이 지났다. 태국 경찰이 8년 전 확보한 보스 '오라윳'의 혈액에서 코카인성분을 찾는데 8년이 걸렸다.

그야말로 홍콩 누아르다. 지난 2012년 9월, 재산이 20조 원이 넘는 재벌(레드불 그룹) 3세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을 치고 도주했다. 27살의 재벌 3세는 술을 마신 뒤 자신의 페라리를 177km로 몰았다. 페라리에 치인 경찰은 100m를 끌려갔다. 사고현장에 흘린 엔진오일은 레드불 가문의 저택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경찰은 집안에서 크게 부서진 페라리를 발견했다.


수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동료 경찰이 죽었는데, 경찰은 음주운전이 아니고, 사고 직후 술을 마셨다는 진술을 믿어줬다. 보스는 보스답게 경찰 출석에 8번이나 불응했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로 싱가포르로 도주했다. 사실은 그렇게 풀어줬다. 그는 글로벌 사법체계를 비웃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2018년 3월에는 인터폴 수배도 풀렸다. 그러던 지난 7월 24일.

2018년 3월 보스(오라윳)의 인터폴 수배가 해제됐다.
태국 경찰은 오라윳의 불기소를 발표했다. 그가 자유롭게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시속 177km였다는 당초 경찰의 조사는 시속 79km로 수정됐다. 동료 경찰이 죽었는데, 태국 경찰은 증인의 이 같은 증언 번복을 모두 받아들였다. 불기소 이유 중에는 숨진 경찰이 무리하게 페라리 앞으로 끼어들었다는 새로운 증언도 포함됐다. 그래서 죽은 경찰에게 ‘전방주시태만’ 혐의가 적용됐다. (이쯤 되면 황정민이나 조진웅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발표는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든 태국 국민들을 크게 자극했다. 여론이 격화됐다. 지난 7월부터 태국에선 매주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의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정부 진상조사위원회가 급조됐다. 그리고 25일 태국 법원은 보스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어제 면죄부를 줬던 죄인에게 오늘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경찰도 머쓱했는지 마약 혐의가 추가됐다. 태국 이민청은 모든 국경사무소에 보스가 나타나면 즉각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달 초부터 매일 진실이 터져 나온다. 이제 관건은 ‘어디까지, 누구까지 연루 됐느냐?’다.

진상조사위는 1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21명의 경찰과 1명의 검사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다고 밝혔다. 오늘 경찰청은 이들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단 입장을 내놨다. 검찰청 차장도 사건 무마의 유력한 용의자가 됐다. 태국 반부패위원회는 오라윳의 기소를 결정할 검사를 복수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국 정부는 이 사건을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까. 어디까지 덮을 수 있을까.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27년이다.

대정부 시위에 등장한 레드불 조형물(출처: 태국 스탠다드 신문)
태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빈부격차의 나라다. 국민의 상당수가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시내 시암파라곤 쇼핑몰에서는 람보르기니가 팔린다. 재산세도, 양도세도, 상속세도 유명무실하다. 공무원들은 부패했다. 보스들에게는 참 살기 편한 나라다. (태국 시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선 여전히 ‘레드불’도 잘 팔린다. 이날 타이 익제마이너 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며, 타이는 여전히 돈 많은 재벌들의 천국이며, 그래서 세계의 재벌들이 몰려올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참고> 이마저도 영화소재로 부족했는지, 오라윳이 과속을 하지 않았고 시속 79km로 운전했다고 말했던 증인은 증언 일주일만인 지난 7월 30일, 치앙마이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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