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블랙리스트 작성’ 해고된 前 MBC 촬영기자, 불복소송 2심서 승소

입력 2020.09.06 (10:41) 수정 2020.09.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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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유 등으로 해고됐던 전 MBC(문화방송) 촬영기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문제가 된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재판장 윤승은)는 전 MBC 촬영기자 권 모 씨가 "해고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등의 취지로 MBC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달 28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MBC가 권 씨에 대해 2018년 5월 18일에 한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하며, 권 씨가 청구한 미지급 임금액 가운데 일부를 MBC가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본부)는 2017년 8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 소속 촬영기자들을 회사 충성도와 노조 참여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성향을 분석·평가하는 내용의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 인물 성향" 문건이 MBC 내부에서 작성됐다고 폭로했습니다. 해당 문건들은 일부 촬영기자들을 "업무능력 부족하고 게으른 성향과 개인 욕심이 많아 변절할 인원", "무능과 태만으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 "대세에 따르는 우유부단함의 회색분자들"의 표현 등으로 평가했습니다.

이후 MBC본부는 이 문건을 작성한 권 씨와 당시 보도국장 등을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MBC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이듬해 5월 권 씨를 징계 해고했습니다.

권 씨의 징계 사유는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 인물 성향"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반영한 인사이동안을 만들어 인사권자에게 보고함으로써 복무 질서를 어지럽게 한 점 ▲해당 인사이동안에 따라 2014년 3월자 인사가 시행되게 함으로써 인사권자의 부당노동행위에 공범으로 가담한 점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 등 특정 인물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내용이 포함된 문건들을 동료 기자 2명과 공유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권 씨는 해고 한 달 뒤 불복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인사권자가 권 씨와 공모해 "성향분석표" 등과 인사이동안을 만든 뒤 그에 따라 2014년 3월 인사를 했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지만, 권 씨가 복무 질서를 위반하고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표현을 포함한 문건을 작성해 동료 2명에게 전달했다는 징계 사유는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이어 인정된 두 가지 징계 사유만으로도 권 씨에게는 사회 통념상 고용 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MBC의 해임 처분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해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것으로는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권 씨가 쓴 인사이동안에 따라 실제 인사가 이루어졌다고 보이진 않지만, "인사에 미치려고 시도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비위 정도를 무겁게 평가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또 권 씨가 작성한 문건들은 "그 명단에 오른 대상자에 대한 불이익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당시 권력을 잡은 측의 특정한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사상이나 양심을 형성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고, 나아가 오히려 권력에 부합하는 사상이나 양심을 형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스스로 의문을 품게 해 내적 자기검열을 하게 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의 본질적인 영역을 침해한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인정한 징계 사유 두 개 가운데 명예훼손·모욕 부분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MBC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권 씨가 동료 2명에게 "성향분석표" 등의 문건을 전달할 당시 그 내용이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공연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권 씨가 해당 문건을 본인만이 접근 가능한 사내 인트라넷 이메일 서버에 보관해 왔던 점, 실제 사내 감사 과정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문건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점, 권 씨가 검찰에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권 씨가 동료 기자 65명을 "등급으로 분류하고 자의적, 악의적으로 평가"하는 문건들을 작성하고, 그에 따른 인사이동안을 만들어 인사권자에게 전송했던 점을 언급하며 "자칫 문건대로 실제 인사가 이루어지거나 문건이 내외부로 유출될 경우 예상 가능한 피고(MBC)의 복무 질서 문란, 근로자 간 인화 결속의 저해 등을 고려할 때 그 비난 가능성이 작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복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징계 사유 하나만으로는 "고용 관계를 더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위행위의 정도가 중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며 "이 사건 해고처분은 징계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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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6 10:41:06
    • 수정2020-09-06 10:59:02
    사회
'기자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유 등으로 해고됐던 전 MBC(문화방송) 촬영기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문제가 된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재판장 윤승은)는 전 MBC 촬영기자 권 모 씨가 "해고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등의 취지로 MBC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달 28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MBC가 권 씨에 대해 2018년 5월 18일에 한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하며, 권 씨가 청구한 미지급 임금액 가운데 일부를 MBC가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본부)는 2017년 8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 소속 촬영기자들을 회사 충성도와 노조 참여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성향을 분석·평가하는 내용의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 인물 성향" 문건이 MBC 내부에서 작성됐다고 폭로했습니다. 해당 문건들은 일부 촬영기자들을 "업무능력 부족하고 게으른 성향과 개인 욕심이 많아 변절할 인원", "무능과 태만으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 "대세에 따르는 우유부단함의 회색분자들"의 표현 등으로 평가했습니다.

이후 MBC본부는 이 문건을 작성한 권 씨와 당시 보도국장 등을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MBC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이듬해 5월 권 씨를 징계 해고했습니다.

권 씨의 징계 사유는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 인물 성향"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반영한 인사이동안을 만들어 인사권자에게 보고함으로써 복무 질서를 어지럽게 한 점 ▲해당 인사이동안에 따라 2014년 3월자 인사가 시행되게 함으로써 인사권자의 부당노동행위에 공범으로 가담한 점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 등 특정 인물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내용이 포함된 문건들을 동료 기자 2명과 공유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권 씨는 해고 한 달 뒤 불복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인사권자가 권 씨와 공모해 "성향분석표" 등과 인사이동안을 만든 뒤 그에 따라 2014년 3월 인사를 했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지만, 권 씨가 복무 질서를 위반하고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표현을 포함한 문건을 작성해 동료 2명에게 전달했다는 징계 사유는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이어 인정된 두 가지 징계 사유만으로도 권 씨에게는 사회 통념상 고용 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MBC의 해임 처분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해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은 것으로는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권 씨가 쓴 인사이동안에 따라 실제 인사가 이루어졌다고 보이진 않지만, "인사에 미치려고 시도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비위 정도를 무겁게 평가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또 권 씨가 작성한 문건들은 "그 명단에 오른 대상자에 대한 불이익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당시 권력을 잡은 측의 특정한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사상이나 양심을 형성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고, 나아가 오히려 권력에 부합하는 사상이나 양심을 형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스스로 의문을 품게 해 내적 자기검열을 하게 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의 본질적인 영역을 침해한다"라고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인정한 징계 사유 두 개 가운데 명예훼손·모욕 부분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MBC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권 씨가 동료 2명에게 "성향분석표" 등의 문건을 전달할 당시 그 내용이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공연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권 씨가 해당 문건을 본인만이 접근 가능한 사내 인트라넷 이메일 서버에 보관해 왔던 점, 실제 사내 감사 과정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문건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점, 권 씨가 검찰에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권 씨가 동료 기자 65명을 "등급으로 분류하고 자의적, 악의적으로 평가"하는 문건들을 작성하고, 그에 따른 인사이동안을 만들어 인사권자에게 전송했던 점을 언급하며 "자칫 문건대로 실제 인사가 이루어지거나 문건이 내외부로 유출될 경우 예상 가능한 피고(MBC)의 복무 질서 문란, 근로자 간 인화 결속의 저해 등을 고려할 때 그 비난 가능성이 작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복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징계 사유 하나만으로는 "고용 관계를 더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위행위의 정도가 중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며 "이 사건 해고처분은 징계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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