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올해 추석엔 못 찾아뵙습니다”

입력 2020.09.08 (11:46) 수정 2020.09.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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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올해 추석엔 못 찾아뵙습니다."

결혼해 5살 아이가 있는 35세 전 모 씨는 추석을 앞두고 냉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경북에 계신 시가 어른들께서 올해 추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아직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이 상황에 오라고 하시진 않겠지' 하면서도 "우리 가족끼리인데 뭐 어떠냐, 잠시 들렀다가 가거라" 하시는 건 아닐까, 속만 태웁니다. 남편은 "먼저 우리가 말을 꺼내면 섭섭해하실 수 있으니 연락을 기다려 보자"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직업의 특성상 처신이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수개월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제대로 등원조차 못 시킨 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지금껏 버텨온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추석이라도 수 시간씩 걸리는 먼 지역까지 이동해 가족들과 섞여 지내기는 조심스럽습니다.


■ 오죽하면 방역당국이 "이동 자제" 요청까지
'지역 간 이동'에 '대중교통 이용'…치명적 고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추석 전에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단계 조정이 검토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예측이 상당히 어렵다"며 "추석이 끝난 이후에도 전염이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단계가 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중대본의 이러한 설명의 행간에는 '추석 때 이동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급기야 어제 중대본이 "이번 추석에는 가급적 고향과 친지 방문을 자제해 주실 것을 권고드린다"는 말까지 했겠습니까.

추석 명절 이동이 방역에 위협적인 이유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감염 확산 가능성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일상에서의 감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 간 이동, 그리고 밀폐된 구조의 항공기·열차·버스를 이용한 이동은 최근 겨우 확산세 감소를 끌어내고 있는 방역당국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징검다리 휴일이 끼었던 지난 5월과 8월, 연휴 기간이 끝난 이후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큰 폭으로 증가해 방역당국을 힘들게 했습니다. 아니, 우리 사회 모두를 다시 위기로 빠뜨렸습니다. 방역당국이 이번 추석 명절을, '코로나19 확산세의 기로'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성묘도 벌초도 '비대면'…전국 지자체 "제발 이동하지 맙시다."

국내 최대 관광도시 제주도가 올해 추석 기간 '제주행 자제령'을 내렸고, 전남 완도군과 보성군은 '추석 명절 이동 멈춤'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고흥군은 최근 귀성객 고향 방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부정적 의견이 월등히 많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조상 성묘와 벌초가 걱정이십니까? 벌초 대행이 있습니다. 국내 한 벌초 대행 업체는 올해 추석, 벌초 대행 의뢰 건수가 지난해보다 40%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벌초마저 이제는 '비대면'으로 가능한 시대입니다. 성묘 역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다 마련되었습니다. 부산의 경우, 대표 성묘지인 영락공원과 추모공원이 정부 방침에 따라 개원 이후 처음으로 '온라인 성묘'를 실시합니다. '하루 추모객 총량 예약제'도 검토하고 있는데, 사전 예약을 통해 수용 인원을 제한하거나 아예 운영을 전면 폐쇄할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정부가 올해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을까요. '제발 이동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 "무증상 감염, 전국 대확산 계기 될 수도"

아시다시피 독감 유행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와중에 독감 유행까지 막아야 하는 짐을 떠안게 됐습니다. 코로나19와 독감의 증상이 구분하기 어려워 진단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경우, 중증 환자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근 수차례 방역당국이 강조한 대로,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중환자 병상 확보입니다. 지역마다 중환자를 진료할 곳이 부족해 병상을 확보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지요. 추석 명절, 자칫 어른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돼 감염될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의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제발 이번 추석에는 움직이면 안 된다, 위험한 고비다. 무증상 감염으로 있던 사람들이 추석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와 독감 유행이 겹칠 경우, 국내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 이 시대의 연대 방식"
안부는 영상전화로도 충분합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2단계 거리 두기 시행으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장 자영업자들이 그렇고, 일인 기업, 소규모 중소기업은 폐업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수업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멀리해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빨리 종식하려면, 지금 '잠시' 멀리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부모님 댁에 모이려다 단체로 병원에 가게 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지역 곳곳에서 가족 모임을 통한 소규모 집단 감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대가 모두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현실이 된 시대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라던 정은경 본부장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고, 올해 명절만큼은 '비대면'으로 차분하게 지내는 건 어떨런지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는 것은 '영상전화'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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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님, 올해 추석엔 못 찾아뵙습니다”
    • 입력 2020-09-08 11:46:32
    • 수정2020-09-08 11:47:21
    취재K
"부모님, 올해 추석엔 못 찾아뵙습니다."

결혼해 5살 아이가 있는 35세 전 모 씨는 추석을 앞두고 냉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경북에 계신 시가 어른들께서 올해 추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아직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이 상황에 오라고 하시진 않겠지' 하면서도 "우리 가족끼리인데 뭐 어떠냐, 잠시 들렀다가 가거라" 하시는 건 아닐까, 속만 태웁니다. 남편은 "먼저 우리가 말을 꺼내면 섭섭해하실 수 있으니 연락을 기다려 보자"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직업의 특성상 처신이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수개월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제대로 등원조차 못 시킨 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지금껏 버텨온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추석이라도 수 시간씩 걸리는 먼 지역까지 이동해 가족들과 섞여 지내기는 조심스럽습니다.


■ 오죽하면 방역당국이 "이동 자제" 요청까지
'지역 간 이동'에 '대중교통 이용'…치명적 고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추석 전에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단계 조정이 검토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예측이 상당히 어렵다"며 "추석이 끝난 이후에도 전염이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단계가 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중대본의 이러한 설명의 행간에는 '추석 때 이동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급기야 어제 중대본이 "이번 추석에는 가급적 고향과 친지 방문을 자제해 주실 것을 권고드린다"는 말까지 했겠습니까.

추석 명절 이동이 방역에 위협적인 이유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감염 확산 가능성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일상에서의 감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 간 이동, 그리고 밀폐된 구조의 항공기·열차·버스를 이용한 이동은 최근 겨우 확산세 감소를 끌어내고 있는 방역당국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징검다리 휴일이 끼었던 지난 5월과 8월, 연휴 기간이 끝난 이후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큰 폭으로 증가해 방역당국을 힘들게 했습니다. 아니, 우리 사회 모두를 다시 위기로 빠뜨렸습니다. 방역당국이 이번 추석 명절을, '코로나19 확산세의 기로'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성묘도 벌초도 '비대면'…전국 지자체 "제발 이동하지 맙시다."

국내 최대 관광도시 제주도가 올해 추석 기간 '제주행 자제령'을 내렸고, 전남 완도군과 보성군은 '추석 명절 이동 멈춤'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고흥군은 최근 귀성객 고향 방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부정적 의견이 월등히 많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조상 성묘와 벌초가 걱정이십니까? 벌초 대행이 있습니다. 국내 한 벌초 대행 업체는 올해 추석, 벌초 대행 의뢰 건수가 지난해보다 40%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벌초마저 이제는 '비대면'으로 가능한 시대입니다. 성묘 역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다 마련되었습니다. 부산의 경우, 대표 성묘지인 영락공원과 추모공원이 정부 방침에 따라 개원 이후 처음으로 '온라인 성묘'를 실시합니다. '하루 추모객 총량 예약제'도 검토하고 있는데, 사전 예약을 통해 수용 인원을 제한하거나 아예 운영을 전면 폐쇄할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정부가 올해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을까요. '제발 이동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 "무증상 감염, 전국 대확산 계기 될 수도"

아시다시피 독감 유행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와중에 독감 유행까지 막아야 하는 짐을 떠안게 됐습니다. 코로나19와 독감의 증상이 구분하기 어려워 진단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경우, 중증 환자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근 수차례 방역당국이 강조한 대로,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중환자 병상 확보입니다. 지역마다 중환자를 진료할 곳이 부족해 병상을 확보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지요. 추석 명절, 자칫 어른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돼 감염될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의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제발 이번 추석에는 움직이면 안 된다, 위험한 고비다. 무증상 감염으로 있던 사람들이 추석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와 독감 유행이 겹칠 경우, 국내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 이 시대의 연대 방식"
안부는 영상전화로도 충분합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2단계 거리 두기 시행으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장 자영업자들이 그렇고, 일인 기업, 소규모 중소기업은 폐업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수업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멀리해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빨리 종식하려면, 지금 '잠시' 멀리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부모님 댁에 모이려다 단체로 병원에 가게 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지역 곳곳에서 가족 모임을 통한 소규모 집단 감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대가 모두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현실이 된 시대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라던 정은경 본부장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고, 올해 명절만큼은 '비대면'으로 차분하게 지내는 건 어떨런지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는 것은 '영상전화'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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