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우리가 외면해온 지적장애② 피해자는 범죄의 고통에, 가해자는 범죄에 굴레에

입력 2020.09.09 (12:46) 수정 2020.09.0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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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지난 7월,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지적장애인들을 때리고 감금한 사건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절반 이상이 지적장애인이었는데, 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수차례 반복된 지적장애인 간의 범죄가 과연 당사자들 만의 문제였을까. 탐사K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지난 몇 주간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인들을 만나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온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39살 박 모 씨. 박 씨는 지난해 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른 지적장애인들과 어울리면서 또 다른 지적장애 여성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 등이었습니다.

범행 당시 박 씨는 지적장애인 무리에서 우두머리는 아니었습니다. 함께 기소됐던 박 씨의 동생과 그 친구가 소위 '실세'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이들은 과거에도 다른 지적장애인을 강간한 혐의 등으로 복역 생활을 했는데, 출소 뒤에도 성폭행과 공갈 혐의 등으로 다시 수감 중입니다.

함께 기소된 이들이 교도소에 갇히고, 홀로 집행유예를 받아 다시 사회로 나왔던 박 씨. 박 씨는 최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일대 등에서 지적장애인들을 수차례 집단 폭행한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과거와 달리 이번엔 우두머리가 돼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되풀이되는 가해자들의 범죄…비장애인 잣대로 처벌


지난 7월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일대에서 벌어진 지적장애인 대상 범죄와 관련해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들은 박 씨를 포함해 11명. 이들은 다른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고 갈취를 일삼았는데, 가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피해자들과 같은 지적장애인들이었습니다.

우두머리 박 씨를 비롯해 가해자들의 범죄 행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일당 11명 가운데 7명은 이미 폭행 등의 전과가 있었지만,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처벌 이후에도 반복되는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의 범죄.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현 사법체계의 한계도 이유의 하나로 꼽힙니다.

지적장애인에게 적용되는 현재의 사법체계는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재판을 거쳐 징역형 외에 치료감호나 보호관찰 등의 처분이 내려지지만, 재범을 막기 위한 특별한 교육이나 절차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다 보니 지적장애인들에게 있어 현재의 사법체계는 단순히 처벌을 내리는 판결로서의 의미 말고, 재발방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일반인과 함께 받는 집단교육…효과는 의문"


재판에 넘기기 전 검찰이 결정하는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도 지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보호관찰소가 주관하는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는 제도인데, 문제는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결정을 내려도 보호관찰소에는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범죄내용만 통보될 뿐 장애 여부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일반인들과 함께 집단교육을 받게 되는데, 지적장애인들은 교육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은비 제주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지적장애인들이 집단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인식을 개선하고,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충분한 전달 방식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사법체계와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다 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재범 예방을 위한 적절한 조치 없이 가해자들의 범행이 되풀이되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 역시 재범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겁니다.

지적장애인 가해자에게 피해를 당한 한 지적장애인은 "왜 교도소에 집어넣었느냐고 가족들에게까지 해코지할까 봐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고 털어놓았고, 또 다른 피해자는 "가해자를 마주쳤을 때 공포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범죄의 고통에서, 가해자는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발달장애인 맞춤형 교육 필요…개선 가능성 충분"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의 재범을 줄일 순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적장애인 범죄 역시 교육을 통해 나아질 여지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에게 이른 시일 안에 연결하면 개선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홍부경 제주장애여성상담소장은 "직접 전문가에게 바로 연결해서 개입했을 경우는 많은 행동 수정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도 "기소가 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이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를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같은 논의 속에 현재 대전에서 시행중인 맞춤형 '발달장애인 대상 보호관찰 및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는 지적장애라는 특성에 맞춘 대표적인 제도로 꼽힙니다. 대전지방검찰청과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 대전보호관찰소가 협업해 범죄를 저지른 지적장애인을 지역 내 교육기관에 연계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반인들과 함께 집단교육을 받는 기존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제도와 달리 보호관찰관의 지도 아래 지적장애인 개인의 특성에 맞는 1대1 맞춤형 교육을 진행해 재범 방지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는데, 2018년 말 제도 도입 이래 현재까지 22명의 발달장애인 피의자가 교육기관에 연결됐습니다.

이주희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 권익옹호팀장은 "교육을 완료한 대상자 등에 대해서 현재까지 재범이 일어났다며 교육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은 현재까지 없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대전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현재 서울과 울산 지역에도 도입돼 시행되고 있습니다.

"가해자 재범 방지에 우리 사회 모두 힘써야"


물론 '발달장애인 대상 보호관찰 및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성폭력 범죄 피의자에게만 적용하고 있고, 또 전문 교육기관이 부족하다는 점은 과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재범을 줄이기 위해선 지적장애인 가해자에 대한 눈높이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지적장애가 있으니 죄를 가볍게 다뤄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지 능력이 부족한 만큼 이를 고려해 대처하자는 겁니다. 또 지적장애인 범죄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만큼, 재범을 줄이기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 모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개인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 이후 건전한 사회 복귀를 이어갈 수 있는 지속적인 관심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권오상 제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는 개인의 역량에만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교육과 병행된 지원과 지지 체계들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되풀이되는 범죄를 줄이려는 노력 없이 전과라는 낙인만 새겨지고 있는 지적장애인 가해자들. 우리 사회의 방관이 이들을 범죄의 수렁으로 내몰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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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9 12:46:24
    • 수정2020-09-09 12:46:51
    취재K
[편집자 주 : 지난 7월,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지적장애인들을 때리고 감금한 사건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절반 이상이 지적장애인이었는데, 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수차례 반복된 지적장애인 간의 범죄가 과연 당사자들 만의 문제였을까. 탐사K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지난 몇 주간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인들을 만나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온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39살 박 모 씨. 박 씨는 지난해 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른 지적장애인들과 어울리면서 또 다른 지적장애 여성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 등이었습니다.

범행 당시 박 씨는 지적장애인 무리에서 우두머리는 아니었습니다. 함께 기소됐던 박 씨의 동생과 그 친구가 소위 '실세'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이들은 과거에도 다른 지적장애인을 강간한 혐의 등으로 복역 생활을 했는데, 출소 뒤에도 성폭행과 공갈 혐의 등으로 다시 수감 중입니다.

함께 기소된 이들이 교도소에 갇히고, 홀로 집행유예를 받아 다시 사회로 나왔던 박 씨. 박 씨는 최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일대 등에서 지적장애인들을 수차례 집단 폭행한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과거와 달리 이번엔 우두머리가 돼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되풀이되는 가해자들의 범죄…비장애인 잣대로 처벌


지난 7월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일대에서 벌어진 지적장애인 대상 범죄와 관련해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들은 박 씨를 포함해 11명. 이들은 다른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고 갈취를 일삼았는데, 가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피해자들과 같은 지적장애인들이었습니다.

우두머리 박 씨를 비롯해 가해자들의 범죄 행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일당 11명 가운데 7명은 이미 폭행 등의 전과가 있었지만,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처벌 이후에도 반복되는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의 범죄.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는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현 사법체계의 한계도 이유의 하나로 꼽힙니다.

지적장애인에게 적용되는 현재의 사법체계는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재판을 거쳐 징역형 외에 치료감호나 보호관찰 등의 처분이 내려지지만, 재범을 막기 위한 특별한 교육이나 절차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다 보니 지적장애인들에게 있어 현재의 사법체계는 단순히 처벌을 내리는 판결로서의 의미 말고, 재발방지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일반인과 함께 받는 집단교육…효과는 의문"


재판에 넘기기 전 검찰이 결정하는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도 지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보호관찰소가 주관하는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는 제도인데, 문제는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결정을 내려도 보호관찰소에는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범죄내용만 통보될 뿐 장애 여부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일반인들과 함께 집단교육을 받게 되는데, 지적장애인들은 교육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은비 제주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지적장애인들이 집단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인식을 개선하고,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충분한 전달 방식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사법체계와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다 보니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재범 예방을 위한 적절한 조치 없이 가해자들의 범행이 되풀이되는 것은 물론, 피해자들 역시 재범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겁니다.

지적장애인 가해자에게 피해를 당한 한 지적장애인은 "왜 교도소에 집어넣었느냐고 가족들에게까지 해코지할까 봐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고 털어놓았고, 또 다른 피해자는 "가해자를 마주쳤을 때 공포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범죄의 고통에서, 가해자는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발달장애인 맞춤형 교육 필요…개선 가능성 충분"


지적장애인 가해자들의 재범을 줄일 순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적장애인 범죄 역시 교육을 통해 나아질 여지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에게 이른 시일 안에 연결하면 개선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홍부경 제주장애여성상담소장은 "직접 전문가에게 바로 연결해서 개입했을 경우는 많은 행동 수정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도 "기소가 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이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를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같은 논의 속에 현재 대전에서 시행중인 맞춤형 '발달장애인 대상 보호관찰 및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는 지적장애라는 특성에 맞춘 대표적인 제도로 꼽힙니다. 대전지방검찰청과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 대전보호관찰소가 협업해 범죄를 저지른 지적장애인을 지역 내 교육기관에 연계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반인들과 함께 집단교육을 받는 기존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제도와 달리 보호관찰관의 지도 아래 지적장애인 개인의 특성에 맞는 1대1 맞춤형 교육을 진행해 재범 방지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는데, 2018년 말 제도 도입 이래 현재까지 22명의 발달장애인 피의자가 교육기관에 연결됐습니다.

이주희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 권익옹호팀장은 "교육을 완료한 대상자 등에 대해서 현재까지 재범이 일어났다며 교육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은 현재까지 없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대전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현재 서울과 울산 지역에도 도입돼 시행되고 있습니다.

"가해자 재범 방지에 우리 사회 모두 힘써야"


물론 '발달장애인 대상 보호관찰 및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성폭력 범죄 피의자에게만 적용하고 있고, 또 전문 교육기관이 부족하다는 점은 과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재범을 줄이기 위해선 지적장애인 가해자에 대한 눈높이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지적장애가 있으니 죄를 가볍게 다뤄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지 능력이 부족한 만큼 이를 고려해 대처하자는 겁니다. 또 지적장애인 범죄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만큼, 재범을 줄이기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 모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개인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 이후 건전한 사회 복귀를 이어갈 수 있는 지속적인 관심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권오상 제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는 개인의 역량에만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교육과 병행된 지원과 지지 체계들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되풀이되는 범죄를 줄이려는 노력 없이 전과라는 낙인만 새겨지고 있는 지적장애인 가해자들. 우리 사회의 방관이 이들을 범죄의 수렁으로 내몰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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