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집 안에 카메라 단 빌라 관리인…1심서 실형

입력 2020.09.09 (15:30) 수정 2020.09.0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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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에서 발견된 불법촬영 카메라. 끔찍하긴 하지만 더이상 낯선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다름아닌 우리집 천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카메라가 발견된다면 어떨까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20대 여성 세입자였던 A 씨는 어느날 집 안방과 거실 천장에서 카메라를 발견했습니다. 수사 결과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A 씨가 살고 있는 빌라의 관리인 50대 B 씨였습니다.

결국 B 씨는 불법촬영(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지난해 6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사는 B 씨가 젊은 여성이 이사올 것을 미리 알고,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하려는 목적으로 카메라를 몰래 설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실제 촬영이 됐는지가 확인되지 않아,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불법촬영 미수죄로 공소장을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기소 1년 3개월 만인 오늘(9일), B 씨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영수 판사는 B 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B 씨를 법정 구속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B 씨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A 씨의 집 천장에 동작감지기 모양의 카메라 2대를 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집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무단침입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방범 목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던 것이라고 공소사실을 반박해왔습니다. A 씨가 이사온 뒤 그 카메라들을 떼어내는 걸 잊었다는 것입니다.

B 씨는 또 자신이 카메라를 설치할 당시에는 곧 이사를 오게 될 입주자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B 씨가 카메라를 설치했던 당일 피해자 A 씨와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그런데도 임대 관리인이었던 B 씨가 빌라에 실제 누가 들어와서 살지를 몰랐다는 것은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B 씨가 새 임차인의 성별과 연령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방범 목적의 카메라 설치였다는 B 씨의 주장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A 씨가 살던 빌라에는 총 10가구가 살고 있었고, A 씨가 살게 될 집 외에 윗층의 다른 집도 비어 있는 상태(공실)였습니다. 그럼에도 B 씨가 유독 A 씨가 살게 될 집에만 카메라를 설치했단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특히 카메라가 설치된 위치가 안방과 거실 씽크대 천장인데다가 설치 방향도 침입자를 찾기 위한 방향이라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럽다고 했습니다. 방범 목적이라고 하면 건물 자체의 현관이나 계단, 해당 집의 현관이나 문 쪽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설치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논리입니다.

B 씨가 피해자 A 씨와 나눈 대화 역시 유죄의 중요한 증거가 됐습니다.

피해자 A 씨는 입주 전 가구 배치를 위해 집을 미리 방문했는데, 이때 B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집 안에 화재 경보기 등 센서가 많은데 왜 이렇게 많아요?"

이에 대해 B 씨는 아래와 같은 취지의 답을 했습니다.

"법이 강화돼서, 이렇게 설치를 해야 해요."

수상한 정황은 또 있었습니다.

B 씨는 A 씨가 입주한 뒤 화재경보기를 달기 위해 A 씨의 집을 방문했다고 했는데, 당시 화재경보기를 설치한 위치가 카메라가 달려 있던 위치와 동일했습니다.

재판부는 이같은 정황을 볼 때,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B 씨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텐데도 카메라를 제거하지도 않았고, A 씨에게 카메라 설치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B 씨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원을 공급한 이상, 이미 B 씨가 범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B 씨)은 이 사건 임대건물 관리인으로서 임차인인 젊은 여성이 거주하는 주거 내에 카메라 2대 설치하는 대담한 방법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하려고 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특히 피고인은 개인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중심공간으로 가장 안전하고 평온해야 할 장소인 피해자의 주거 내에 카메라 설치했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사생활, 인격권까지 심각히 침해될 위험성이 있었다"라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B 씨는 선고 이후에도 "아가씨들을 촬영할 목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다"라며 억울함을 드러내, 사건은 항소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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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여성 집 안에 카메라 단 빌라 관리인…1심서 실형
    • 입력 2020-09-09 15:30:54
    • 수정2020-09-09 15:31:51
    취재K
공중화장실에서 발견된 불법촬영 카메라. 끔찍하긴 하지만 더이상 낯선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다름아닌 우리집 천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카메라가 발견된다면 어떨까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20대 여성 세입자였던 A 씨는 어느날 집 안방과 거실 천장에서 카메라를 발견했습니다. 수사 결과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은, A 씨가 살고 있는 빌라의 관리인 50대 B 씨였습니다.

결국 B 씨는 불법촬영(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지난해 6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사는 B 씨가 젊은 여성이 이사올 것을 미리 알고,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하려는 목적으로 카메라를 몰래 설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실제 촬영이 됐는지가 확인되지 않아,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불법촬영 미수죄로 공소장을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기소 1년 3개월 만인 오늘(9일), B 씨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영수 판사는 B 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B 씨를 법정 구속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B 씨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A 씨의 집 천장에 동작감지기 모양의 카메라 2대를 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집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무단침입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방범 목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던 것이라고 공소사실을 반박해왔습니다. A 씨가 이사온 뒤 그 카메라들을 떼어내는 걸 잊었다는 것입니다.

B 씨는 또 자신이 카메라를 설치할 당시에는 곧 이사를 오게 될 입주자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B 씨가 카메라를 설치했던 당일 피해자 A 씨와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그런데도 임대 관리인이었던 B 씨가 빌라에 실제 누가 들어와서 살지를 몰랐다는 것은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B 씨가 새 임차인의 성별과 연령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방범 목적의 카메라 설치였다는 B 씨의 주장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A 씨가 살던 빌라에는 총 10가구가 살고 있었고, A 씨가 살게 될 집 외에 윗층의 다른 집도 비어 있는 상태(공실)였습니다. 그럼에도 B 씨가 유독 A 씨가 살게 될 집에만 카메라를 설치했단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특히 카메라가 설치된 위치가 안방과 거실 씽크대 천장인데다가 설치 방향도 침입자를 찾기 위한 방향이라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럽다고 했습니다. 방범 목적이라고 하면 건물 자체의 현관이나 계단, 해당 집의 현관이나 문 쪽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설치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논리입니다.

B 씨가 피해자 A 씨와 나눈 대화 역시 유죄의 중요한 증거가 됐습니다.

피해자 A 씨는 입주 전 가구 배치를 위해 집을 미리 방문했는데, 이때 B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집 안에 화재 경보기 등 센서가 많은데 왜 이렇게 많아요?"

이에 대해 B 씨는 아래와 같은 취지의 답을 했습니다.

"법이 강화돼서, 이렇게 설치를 해야 해요."

수상한 정황은 또 있었습니다.

B 씨는 A 씨가 입주한 뒤 화재경보기를 달기 위해 A 씨의 집을 방문했다고 했는데, 당시 화재경보기를 설치한 위치가 카메라가 달려 있던 위치와 동일했습니다.

재판부는 이같은 정황을 볼 때,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B 씨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텐데도 카메라를 제거하지도 않았고, A 씨에게 카메라 설치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B 씨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원을 공급한 이상, 이미 B 씨가 범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B 씨)은 이 사건 임대건물 관리인으로서 임차인인 젊은 여성이 거주하는 주거 내에 카메라 2대 설치하는 대담한 방법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하려고 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특히 피고인은 개인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중심공간으로 가장 안전하고 평온해야 할 장소인 피해자의 주거 내에 카메라 설치했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사생활, 인격권까지 심각히 침해될 위험성이 있었다"라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B 씨는 선고 이후에도 "아가씨들을 촬영할 목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다"라며 억울함을 드러내, 사건은 항소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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