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 문 닫았지만…텔레그램 ‘주홍글씨’는 여전히 운영 중

입력 2020.09.11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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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이들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며 "이들의 정보를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 사이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난 뒤였습니다. 운영진은 사람들의 분노에 호응하듯 성범죄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신상을 연이어 공개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3일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한 고려대학교 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또, 신상이 공개된 가톨릭대 의대 교수에 대해 경찰은 최근 '혐의없음'이란 수사 결과를 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이 사이트는 현재 접속이 차단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성범죄자를 온라인에 공개해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디지털교도소'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3월 전국을 들끓게 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직후 만들어진 텔레그램 '주홍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수백 명의 사람을 이른바 온라인에 '박제' 했습니다. 지금도 연일 개인 정보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 "능욕글 보내주세요"...범행 부추기는 '성범죄 자경단'

지난 3월 만들어진 '주홍글씨'는 스스로 '텔레그램 자경단'을 자처합니다. 강력범죄를 규탄하며, 성범죄자들의 인권을 따지지 않고 공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일종의 '오픈소스' 대화방 성격인 주홍글씨는 링크만 있으면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9월 10일 기준으로 9,700여 명의 사람들이 이 텔레그램 대화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 대화방. 9,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텔레그램 ‘주홍글씨’ 대화방. 9,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주홍글씨 운영진은 연일 성범죄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신상을 올립니다.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뿐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번호와 학교,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와 사진까지 함께 공개합니다. 운영진이 범행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입니다.

운영진은 트위터 등에 '지인능욕방 초대해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립니다. 음란물과 지인의 얼굴을 합성해주겠다며 일종의 '함정'을 파 범행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증거를 모으는 겁니다. 연락이 온 사람에게는 지인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뒤,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특히, 피해 여성에 대해 성적 비하 발언(능욕글)을 하라고 말합니다. 실제 대화 내용을 보면 대부분 "(피해자에 대한) 능욕글 보내달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범행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냥 믿으시지. 제가 돈은 안 받고 무료인데 하시지"라고 말하거나 성적 비하 발언을 하지 않고, 사진 합성만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해주셔야 한다"고 재차 요구하는 식입니다. 이런 조건을 다 충족시키면 태도를 바꿔 피해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해 자필 반성문을 작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운영진들은 성범죄자라며 주홍글씨 방에 가해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올립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 운영진이 공개한 증거 대화 내용. 성적 비하 발언(능욕글)을 요구하고 있다.텔레그램 ‘주홍글씨’ 운영진이 공개한 증거 대화 내용. 성적 비하 발언(능욕글)을 요구하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르려고 했으니까 문제가 없는 걸까. 범행을 부추기고, 협박까지 하는 이런 행위에 대해 이은의 변호사는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 나아가 강요죄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들의 취지와 전제 상황들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미러링 방식, 즉 범죄 피해에 대해 범죄로 사적 구제하겠다는 것"이라며 "그 수단으로 범법이 되는 것이 합리화되기는 어렵고,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어주는 일이 되고, 무엇보다 그것은 별개의 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 "피해자 정보까지 그대로 노출"...2차 피해 유발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보 역시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입니다. 운영진이 범행 증거라고 올린 대화 내용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등 개인 정보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가해자의 학교라며 올려놓고선 피해자와 같은 학교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화 내용을 보면 '한 번만 봐달라'거나 '다시는 안 그러겠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가해자에게 운영진은 "중요한 건 피해자에게 정확한 사실 전달과 사과"라고 지속해서 말합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정보를 그대로 노출하는 2차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운영진은 가해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통해 알아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등을 확보해 범행과 전혀 상관없는 가족과 친구 등이 나온 사진까지 그대로 공개합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개인정보가 불특정인들에게 알려지면 다양한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이 공익적인 목적을 내걸면서 검증되지 않은 일들을 저지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건 내용을 공개하는데 매우 무책임한 방식으로 범죄 관련 정보들을 오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경찰 수사 6개월째에도 활발히 활동 중..."피해자 구제는 공적 영역에서 해야"

이른바 '디지털 자경단'을 자처하는 이런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법치국가에서 사적 처벌을 하면 안 되는 것인데 그간 사법적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분노가 표출되는 것"이라며 "결국, 피해자의 구제는 공적 영역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법기관이나 정부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4월 부산지방경찰청은 '주홍글씨' 운영진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운영진 중 일부는 오히려 역으로 가해자에게 알몸사진 등을 요구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경찰수사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논란을 보도했지만, '주홍글씨'는 최근 운영진까지 교체하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현재 논란 속에 폐쇄된 디지털교도소 역시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고 있는데 검거되는 대로 경찰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방침입니다. 경찰은 "운영진 일부를 특정해 수사 중"이라며 "운영진 검거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분노에서 촉발된 범죄자 신상 공개 활동, 단순한 분노 표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 권리 구제'라는 본연의 목적을 회복하기 위해 처벌 수준을 현실화하고, 공적 영역에서의 구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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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교도소’ 문 닫았지만…텔레그램 ‘주홍글씨’는 여전히 운영 중
    • 입력 2020-09-11 05:13:21
    취재K
성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이들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며 "이들의 정보를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 사이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난 뒤였습니다. 운영진은 사람들의 분노에 호응하듯 성범죄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신상을 연이어 공개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3일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한 고려대학교 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또, 신상이 공개된 가톨릭대 의대 교수에 대해 경찰은 최근 '혐의없음'이란 수사 결과를 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이 사이트는 현재 접속이 차단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성범죄자를 온라인에 공개해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디지털교도소'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3월 전국을 들끓게 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직후 만들어진 텔레그램 '주홍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수백 명의 사람을 이른바 온라인에 '박제' 했습니다. 지금도 연일 개인 정보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 "능욕글 보내주세요"...범행 부추기는 '성범죄 자경단'

지난 3월 만들어진 '주홍글씨'는 스스로 '텔레그램 자경단'을 자처합니다. 강력범죄를 규탄하며, 성범죄자들의 인권을 따지지 않고 공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일종의 '오픈소스' 대화방 성격인 주홍글씨는 링크만 있으면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9월 10일 기준으로 9,700여 명의 사람들이 이 텔레그램 대화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 대화방. 9,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주홍글씨 운영진은 연일 성범죄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신상을 올립니다.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뿐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번호와 학교,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와 사진까지 함께 공개합니다. 운영진이 범행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입니다.

운영진은 트위터 등에 '지인능욕방 초대해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립니다. 음란물과 지인의 얼굴을 합성해주겠다며 일종의 '함정'을 파 범행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증거를 모으는 겁니다. 연락이 온 사람에게는 지인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뒤,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특히, 피해 여성에 대해 성적 비하 발언(능욕글)을 하라고 말합니다. 실제 대화 내용을 보면 대부분 "(피해자에 대한) 능욕글 보내달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범행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냥 믿으시지. 제가 돈은 안 받고 무료인데 하시지"라고 말하거나 성적 비하 발언을 하지 않고, 사진 합성만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해주셔야 한다"고 재차 요구하는 식입니다. 이런 조건을 다 충족시키면 태도를 바꿔 피해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해 자필 반성문을 작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운영진들은 성범죄자라며 주홍글씨 방에 가해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올립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 운영진이 공개한 증거 대화 내용. 성적 비하 발언(능욕글)을 요구하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르려고 했으니까 문제가 없는 걸까. 범행을 부추기고, 협박까지 하는 이런 행위에 대해 이은의 변호사는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 나아가 강요죄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들의 취지와 전제 상황들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미러링 방식, 즉 범죄 피해에 대해 범죄로 사적 구제하겠다는 것"이라며 "그 수단으로 범법이 되는 것이 합리화되기는 어렵고,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어주는 일이 되고, 무엇보다 그것은 별개의 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 "피해자 정보까지 그대로 노출"...2차 피해 유발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보 역시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입니다. 운영진이 범행 증거라고 올린 대화 내용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등 개인 정보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가해자의 학교라며 올려놓고선 피해자와 같은 학교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화 내용을 보면 '한 번만 봐달라'거나 '다시는 안 그러겠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가해자에게 운영진은 "중요한 건 피해자에게 정확한 사실 전달과 사과"라고 지속해서 말합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정보를 그대로 노출하는 2차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운영진은 가해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통해 알아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등을 확보해 범행과 전혀 상관없는 가족과 친구 등이 나온 사진까지 그대로 공개합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개인정보가 불특정인들에게 알려지면 다양한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이 공익적인 목적을 내걸면서 검증되지 않은 일들을 저지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건 내용을 공개하는데 매우 무책임한 방식으로 범죄 관련 정보들을 오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경찰 수사 6개월째에도 활발히 활동 중..."피해자 구제는 공적 영역에서 해야"

이른바 '디지털 자경단'을 자처하는 이런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법치국가에서 사적 처벌을 하면 안 되는 것인데 그간 사법적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분노가 표출되는 것"이라며 "결국, 피해자의 구제는 공적 영역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법기관이나 정부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4월 부산지방경찰청은 '주홍글씨' 운영진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운영진 중 일부는 오히려 역으로 가해자에게 알몸사진 등을 요구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경찰수사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논란을 보도했지만, '주홍글씨'는 최근 운영진까지 교체하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현재 논란 속에 폐쇄된 디지털교도소 역시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고 있는데 검거되는 대로 경찰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방침입니다. 경찰은 "운영진 일부를 특정해 수사 중"이라며 "운영진 검거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분노에서 촉발된 범죄자 신상 공개 활동, 단순한 분노 표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 권리 구제'라는 본연의 목적을 회복하기 위해 처벌 수준을 현실화하고, 공적 영역에서의 구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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