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8개월 만에 11살 딸 만나 ‘왈칵’…베이징으로 가는 멀고 먼 길

입력 2020.09.11 (11:46) 수정 2020.09.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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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기를 타고 10일 스자좡 정딩공항으로 입국한 교민들이 격리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사진=최영은 특파원

전세기를 타고 10일 스자좡 정딩공항으로 입국한 교민들이 격리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사진=최영은 특파원

"발열자가 나왔답니다…"

공항 밖에서 교민들이 나오길 기다리던 주중한국대사관과 베이징한국인회 관계자들 사이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10일 교민 146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출발한 전세기가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 정딩공항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난 시간이었다.

중국 당국의 발열 기준은 37.3도. 한 명으로 알려졌던 발열자는 모두 네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발 항공편 승객에게 요구하는 탑승 전 3일 이내 코로나19 핵산검사(PCR) 음성 증명서를 가졌고, 인천공항을 출발하기 전 검사에서도 모두 정상 체온이었다.

긴장한 상태 등을 고려해 재측정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열자들은 모두 허베이성 정부가 지정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스자좡 정딩공항에 대기 중인 구급차 / 사진=최영은 특파원스자좡 정딩공항에 대기 중인 구급차 / 사진=최영은 특파원

중국 당국은 발열자 주변 사람들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해 격리 호텔까지 이동하는 버스도 나눠 태웠다. 결국 146명이 비행기 착륙 후 입국 심사와 핵산 검사 등을 받고 호텔행 버스에 탑승하는 데는 4시간 가까이 걸렸다.

현장에 있던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그동안 전세기마다 열이 있는 사람이 2~3명씩 있었다"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 가운데 확진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10일 저녁 기준, 병원으로 이송된 교민들의 체온은 모두 정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의 방역 절차에 따라 병원에서 2~3일 머물며 추가 혈액 검사와 X선 촬영 등을 하고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격리 호텔에 입소할 수 있다.

통역에 자원한 정진웅 씨가 전세기를 타고 온 아내 이름을 방호복에 적고 재회를 기념하고 있다 / 사진=교민 정진웅 씨 제공통역에 자원한 정진웅 씨가 전세기를 타고 온 아내 이름을 방호복에 적고 재회를 기념하고 있다 / 사진=교민 정진웅 씨 제공

■ "딸아이 키가 10cm가 컸대요"…엄마는 울어버렸다

발열자가 나왔다는 소식에도 함께 전세기를 탄 교민들은 동요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SNS 단체방을 통해 소식을 공유하며, 병원에 간 발열자들의 짐을 누군가가 챙겨줬다. 삶의 터전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마지막 고비를 함께 넘는 '동지애' 같았다.

중국에 홀로 남았던 가족들의 기다림 역시 애틋했다. 현장에서 만난 교민 김 모 씨는 미성년인 11살 딸과 9살 아들만 한국에서 오기 때문에 함께 14일을 격리하기 위해 스자좡까지 왔다. 김 씨가 겨울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보낸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까지는 꼬박 8개월이 걸렸다.

못 본 새 큰딸 키가 10cm가 컸다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김 씨 앞에 무사한 모습으로 두 아이가 나타나자 엄마는 8개월간 쌓인 안타까움과 반가움에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 전세기 입국 과정에 스자좡 정부는 한국어 통역 요원을 우리 측에 요청했다. 이날 전세기로 들어오는 아내를 위해 통역에 자원한 정진웅 씨는 꽁꽁 싸맨 방역복을 입고나마 한국에서 온 아내를 격리 전 재회할 수 있었다. 7개월 만이다.

베이징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가 복귀 교민들을 위해 격리 기간 중 필요한 물품을 마련해 증정했다 / 사진= 베이징한국인회, 교민 정진웅 씨 제공베이징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가 복귀 교민들을 위해 격리 기간 중 필요한 물품을 마련해 증정했다 / 사진= 베이징한국인회, 교민 정진웅 씨 제공

■ 베이징 가는 멀고 먼 길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길이 참 멀고도 멀다. 중국 당국은 수도 베이징 방역을 이유로 한국에 입국 직항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베이징과 인근 지역에 사는 교민들은 랴오닝성 선양이나 산둥성 칭다오, 그리고 최근 노선이 생긴 톈진시 등으로 우선 입국해 해당 지역에서 14일의 격리를 마친 뒤 다시 항공이나 철도 등을 이용해 베이징으로 오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2시간 걸리던 하늘길이 막히면서, 14일의 격리 기간이 끝나고 다시 중국 내에서 최소 반나절 걸려 베이징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나마도 비행기 표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초부터 비자를 제한적으로나마 발급해 주기 시작했지만, 비자가 있어도 표가 없고, 표를 구해도 코로나19 전 수십만 원이던 편도 티켓값이 한때 비싸게는 수백만 원까지도 껑충 뛰었다.

그래서 결국 각 지역 총영사관과 한인 사회가 나서서 교민 전세기를 띄우고 있다. 약 10차례 띄운 교민 전세기가 한국에 발이 묶인 1800여 명을 실어날랐다.

특히 이번 전세기는 베이징과 가까운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지역 허베이성을 통한 교민 입국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주중한국대사관 측은 설명했다. 스자좡은 고속철을 이용할 경우 베이징까지 1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

베이징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환영식을 열었다 / 사진=최영은 특파원베이징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환영식을 열었다 / 사진=최영은 특파원

■ 현재로선 '징진지' 전세기..."베이징 직항은 언제쯤?"

그동안 한중 노선 확장에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를 우리 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경계하는 중국 측의 신중한 태도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래서 정기편을 협상하면서 급한 대로 전세기를 띄우는 '차선책'이 우리 측의 전략이었다.

특히 이달 3일과 4일 현대차가 3대의 전세기를 투입해 총 600여 명을 베이징 서우두 공항으로 보낸 것을 두고도 한중 관계의 '진전'으로 자평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중국 당국이 현대차 전세기가 도착한 3일부터 캐나다와 캄보디아, 파키스탄 등 8개국에서 대해서는 베이징행 직항 항공편을 재개해 주면서 무색하게 됐다.

베이징에 공장을 운영하는 현대차에는 일시적으로 전세기를 허가해 줬지만, 항공사 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한중간에 베이징 직항 노선이 가시화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전세기와 관련해, 특히 산둥성의 옌타이와 웨이하이 정부 측에서 협의에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역은 지난 2월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안 좋아지자 역유입을 막는다며 앞장서 한국발 승객들을 격리했던 지역들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통제되고 지역 경제 살리기에 속도를 내야 하는 필요성이 있으니 관내 한국인들에게 협조적인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추석 전후로 교민들이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전세기를 띄울 것이라고 우리 정부는 설명한다. 다음 주 스자좡에는 교민 전세기가 또 뜰 예정이다.

고속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라는 스자좡에서 베이징까지의 거리는, 그러나 기자가 교민 전세기 취재를 마치고 막힘없는 고속도로를 차로 달려 보니 꼬박 4시간 걸렸다. '징진지'가 아닌 '베이징' 정기편 입국은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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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1 11:46:20
    • 수정2020-09-16 10:44:24
    특파원 리포트

전세기를 타고 10일 스자좡 정딩공항으로 입국한 교민들이 격리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사진=최영은 특파원

"발열자가 나왔답니다…"

공항 밖에서 교민들이 나오길 기다리던 주중한국대사관과 베이징한국인회 관계자들 사이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10일 교민 146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출발한 전세기가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 정딩공항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난 시간이었다.

중국 당국의 발열 기준은 37.3도. 한 명으로 알려졌던 발열자는 모두 네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발 항공편 승객에게 요구하는 탑승 전 3일 이내 코로나19 핵산검사(PCR) 음성 증명서를 가졌고, 인천공항을 출발하기 전 검사에서도 모두 정상 체온이었다.

긴장한 상태 등을 고려해 재측정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열자들은 모두 허베이성 정부가 지정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스자좡 정딩공항에 대기 중인 구급차 / 사진=최영은 특파원
중국 당국은 발열자 주변 사람들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해 격리 호텔까지 이동하는 버스도 나눠 태웠다. 결국 146명이 비행기 착륙 후 입국 심사와 핵산 검사 등을 받고 호텔행 버스에 탑승하는 데는 4시간 가까이 걸렸다.

현장에 있던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그동안 전세기마다 열이 있는 사람이 2~3명씩 있었다"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 가운데 확진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10일 저녁 기준, 병원으로 이송된 교민들의 체온은 모두 정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의 방역 절차에 따라 병원에서 2~3일 머물며 추가 혈액 검사와 X선 촬영 등을 하고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격리 호텔에 입소할 수 있다.

통역에 자원한 정진웅 씨가 전세기를 타고 온 아내 이름을 방호복에 적고 재회를 기념하고 있다 / 사진=교민 정진웅 씨 제공
■ "딸아이 키가 10cm가 컸대요"…엄마는 울어버렸다

발열자가 나왔다는 소식에도 함께 전세기를 탄 교민들은 동요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SNS 단체방을 통해 소식을 공유하며, 병원에 간 발열자들의 짐을 누군가가 챙겨줬다. 삶의 터전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마지막 고비를 함께 넘는 '동지애' 같았다.

중국에 홀로 남았던 가족들의 기다림 역시 애틋했다. 현장에서 만난 교민 김 모 씨는 미성년인 11살 딸과 9살 아들만 한국에서 오기 때문에 함께 14일을 격리하기 위해 스자좡까지 왔다. 김 씨가 겨울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보낸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까지는 꼬박 8개월이 걸렸다.

못 본 새 큰딸 키가 10cm가 컸다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김 씨 앞에 무사한 모습으로 두 아이가 나타나자 엄마는 8개월간 쌓인 안타까움과 반가움에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 전세기 입국 과정에 스자좡 정부는 한국어 통역 요원을 우리 측에 요청했다. 이날 전세기로 들어오는 아내를 위해 통역에 자원한 정진웅 씨는 꽁꽁 싸맨 방역복을 입고나마 한국에서 온 아내를 격리 전 재회할 수 있었다. 7개월 만이다.

베이징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가 복귀 교민들을 위해 격리 기간 중 필요한 물품을 마련해 증정했다 / 사진= 베이징한국인회, 교민 정진웅 씨 제공
■ 베이징 가는 멀고 먼 길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길이 참 멀고도 멀다. 중국 당국은 수도 베이징 방역을 이유로 한국에 입국 직항편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베이징과 인근 지역에 사는 교민들은 랴오닝성 선양이나 산둥성 칭다오, 그리고 최근 노선이 생긴 톈진시 등으로 우선 입국해 해당 지역에서 14일의 격리를 마친 뒤 다시 항공이나 철도 등을 이용해 베이징으로 오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2시간 걸리던 하늘길이 막히면서, 14일의 격리 기간이 끝나고 다시 중국 내에서 최소 반나절 걸려 베이징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나마도 비행기 표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초부터 비자를 제한적으로나마 발급해 주기 시작했지만, 비자가 있어도 표가 없고, 표를 구해도 코로나19 전 수십만 원이던 편도 티켓값이 한때 비싸게는 수백만 원까지도 껑충 뛰었다.

그래서 결국 각 지역 총영사관과 한인 사회가 나서서 교민 전세기를 띄우고 있다. 약 10차례 띄운 교민 전세기가 한국에 발이 묶인 1800여 명을 실어날랐다.

특히 이번 전세기는 베이징과 가까운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지역 허베이성을 통한 교민 입국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주중한국대사관 측은 설명했다. 스자좡은 고속철을 이용할 경우 베이징까지 1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

베이징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 관계자들이 공항에서 환영식을 열었다 / 사진=최영은 특파원
■ 현재로선 '징진지' 전세기..."베이징 직항은 언제쯤?"

그동안 한중 노선 확장에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를 우리 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경계하는 중국 측의 신중한 태도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래서 정기편을 협상하면서 급한 대로 전세기를 띄우는 '차선책'이 우리 측의 전략이었다.

특히 이달 3일과 4일 현대차가 3대의 전세기를 투입해 총 600여 명을 베이징 서우두 공항으로 보낸 것을 두고도 한중 관계의 '진전'으로 자평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중국 당국이 현대차 전세기가 도착한 3일부터 캐나다와 캄보디아, 파키스탄 등 8개국에서 대해서는 베이징행 직항 항공편을 재개해 주면서 무색하게 됐다.

베이징에 공장을 운영하는 현대차에는 일시적으로 전세기를 허가해 줬지만, 항공사 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한중간에 베이징 직항 노선이 가시화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전세기와 관련해, 특히 산둥성의 옌타이와 웨이하이 정부 측에서 협의에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역은 지난 2월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안 좋아지자 역유입을 막는다며 앞장서 한국발 승객들을 격리했던 지역들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통제되고 지역 경제 살리기에 속도를 내야 하는 필요성이 있으니 관내 한국인들에게 협조적인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추석 전후로 교민들이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전세기를 띄울 것이라고 우리 정부는 설명한다. 다음 주 스자좡에는 교민 전세기가 또 뜰 예정이다.

고속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라는 스자좡에서 베이징까지의 거리는, 그러나 기자가 교민 전세기 취재를 마치고 막힘없는 고속도로를 차로 달려 보니 꼬박 4시간 걸렸다. '징진지'가 아닌 '베이징' 정기편 입국은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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