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했을 뿐”이라는 수의계약 싹쓸이 의원의 ‘꼼수’

입력 2020.09.11 (12:53) 수정 2020.09.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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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계약. 경쟁 계약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자치단체는 특정 사업을 진행할 때 여러 업체로부터 많은 견적서를 받아서 비교, 분석할 필요 없이 입맛대로 업체를 골라서 계약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업체도 쉽습니다. 계약 규모는 조금 작을 수 있지만 다른 업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쉬운 건 언제나 탈이 나는 법입니다.

싹쓸이. '모두 다 쓸어버리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한 사람이 뭔가를 전부 차지할 때도 사용하는 말입니다.

지방의원들은 '수의계약'을 얼마나 '싹쓸이' 했을까요?

경북, 11명, 450여 건, 57억여 원. KBS대구 탐사보도팀이 찾아낸 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맺은 경북 지역 기초 자치단체 지방의원 숫자와 계약 규모입니다. 기간도 다양합니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지방의원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이후 자치단체와 수의계약한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의원당 수의계약 금액도 수천만 원부터 수십억 원까지 다양합니다.

이 같은 수의계약현황은 각 광역, 기초자치단체에서 만들어 둔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법대로 했습니다."

지방의원이 자치단체의 수의계약을 따내는 것에 대한 의원들의 반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입니다. 줄여서 지방계약법이라 불리는 이 법 33조는 지방의원이 자치단체와 수의계약하는 것을 아주 꼼꼼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자치단체를 견제하는 지방의원의 업체가 자치단체의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낼 경우 자칫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치단체는 의원님이 견제를 살살 해주기를 바라며 알아서 의원님의 업체에 수의계약을 줄 수 있고 지방의원이 먼저 견제를 무기로 사업을 달라고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혹이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법의 취지입니다.

기준은 이렇습니다. 지방의원 본인과 배우자, 그들의 직계 존비속이 대표인 업체나 그들이 보유한 주식이 절반 이상인 업체는 지방의원이 소속된 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지방의원들이 '법대로 했습니다.'라는 건 자신이나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맺은 업체의 대표도 아니고, 자신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지닌 업체 주식도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법망을 피하는 방법 : '개인'에서 '가족'으로

사실 지방의원의 선택지는 간단합니다. 겸직 신고만 하면 본인이 대표자리에서 내려올 필요도 없고 재산 공개만 제대로 하면 주식도 굳이 양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나, 자신이 속한 자치단체와 수의계약만 맺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지방의원들은 수의계약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요? 다른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대표자리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친인척, 친구, 고향 선후배 등에게 넘겼습니다. 50%를 넘는 지분 역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친인척에게 양도합니다. 이렇게 의원 개인 소유였던 업체는 의원 가족 회사로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지방계약법에는 저촉되지 않습니다. 지방계약법은 의원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그들의 직계존비속만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든 지방계약법의 취지는 자치단체와 지방의원 간에 특혜 의혹이 불거지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원 개인회사 대신 의원 가족회사가 수의계약을 맺는 것이 법 취지에 맞는 것일까요?

[연관기사] ‘꼼수’의원님, 법망 피해 수의계약 독식

자치단체는 사업쪼개기로 화답

지방의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자 자치단체도 지방의원들과 큰 고민 없이 수의계약을 진행합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수의계약을 맺는 업체가 의원의 가족 회사인지는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대표가 의원의 형제자매인지, 지분을 의원의 친인척이 보유하고 있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법조문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도 쉬운 선택을 합니다. 하천 정비 사업, 배수로 정비공사처럼 여러 마을에 걸쳐 수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은 각 마을별로, 수천만 원짜리 공사로 모두 쪼개 지방의원 가족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습니다. 하루에 6개, 5천7백만 원어치의 사업을 따낸 업체도 있습니다.


처벌은 불가능?

지방의원 특혜 의혹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방계약법은 이렇게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지방의원들의 말처럼 그들은 '법대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의 수사도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은 지방계약법 위반 혐의 대신 직권 남용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지방의원이 지방계약법은 위반하지 않았지만 지방의원이라는 직책의 권력, 자치단체를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해 압력을 가해 수의계약을 따냈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혐의는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없게 되자 검찰은 또 다른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지방계약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대표도, 지분구조도 바꿨지만 기업 운영 방식, 지분 양도 현황 등을 볼 때 기업의 실소유주는 지방의원 본인인데 그 사실을 속여 자치단체의 수의계약 공무를 방해했다는 취지입니다. 대구지검 의성지청은 한 의원을 이 혐의로 기소해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재판 결과가 매우 중요합니다. 법원이 검찰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면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 외에, 같은 방법으로 수의계약을 따낸 다른 의원들을 수사할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연관기사] ‘꼼수’의원님 “꼼수는 위계”…형사처벌 될까?

숨어 있는 의원들

수사와 처벌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끝은 아닙니다. 꼼수가 드러나지 않은, 숨어 있는 의원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의원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업체 대표를 미리 바꿔놓고 지분 구조도 미리 조정해 뒀다면? 건설업체 대표라는 직책에 대한 겸직 신고 의무에 대해서도,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재산 공개 의무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겨우 꼬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꼼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현재 대표와 의원과의 관계, 지분 구조 등을 확인해야 의원 가족 회사인지, 수의계약으로 의원 본인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관련 정보는 모두 개인정보로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어디에서 어떤 의원은 여전히 자신의 회사로 자치단체의 수의계약을 따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특혜시비와 꼼수, 그리고 묵인

지방의원의 수의계약 특혜시비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지방계약법이 만들어졌지만 꼼수가 동원돼 법은 무력화했고 수의계약으로 지방의원이 돈을 버는 것은 관행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가장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쉬운 건 탈이 나기 쉽습니다. 수의계약은 의원 견제 회피용, 누군가의 돈벌이용이 아닙니다. 한 의원에 대한 재판 결과와는 별개로 자치단체도, 지방의원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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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대로 했을 뿐”이라는 수의계약 싹쓸이 의원의 ‘꼼수’
    • 입력 2020-09-11 12:53:35
    • 수정2020-09-11 17:12:08
    취재K
수의계약. 경쟁 계약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자치단체는 특정 사업을 진행할 때 여러 업체로부터 많은 견적서를 받아서 비교, 분석할 필요 없이 입맛대로 업체를 골라서 계약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업체도 쉽습니다. 계약 규모는 조금 작을 수 있지만 다른 업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쉬운 건 언제나 탈이 나는 법입니다.

싹쓸이. '모두 다 쓸어버리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한 사람이 뭔가를 전부 차지할 때도 사용하는 말입니다.

지방의원들은 '수의계약'을 얼마나 '싹쓸이' 했을까요?

경북, 11명, 450여 건, 57억여 원. KBS대구 탐사보도팀이 찾아낸 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맺은 경북 지역 기초 자치단체 지방의원 숫자와 계약 규모입니다. 기간도 다양합니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지방의원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이후 자치단체와 수의계약한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의원당 수의계약 금액도 수천만 원부터 수십억 원까지 다양합니다.

이 같은 수의계약현황은 각 광역, 기초자치단체에서 만들어 둔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법대로 했습니다."

지방의원이 자치단체의 수의계약을 따내는 것에 대한 의원들의 반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입니다. 줄여서 지방계약법이라 불리는 이 법 33조는 지방의원이 자치단체와 수의계약하는 것을 아주 꼼꼼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자치단체를 견제하는 지방의원의 업체가 자치단체의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낼 경우 자칫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치단체는 의원님이 견제를 살살 해주기를 바라며 알아서 의원님의 업체에 수의계약을 줄 수 있고 지방의원이 먼저 견제를 무기로 사업을 달라고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혹이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법의 취지입니다.

기준은 이렇습니다. 지방의원 본인과 배우자, 그들의 직계 존비속이 대표인 업체나 그들이 보유한 주식이 절반 이상인 업체는 지방의원이 소속된 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지방의원들이 '법대로 했습니다.'라는 건 자신이나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자치단체와 수의계약을 맺은 업체의 대표도 아니고, 자신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지닌 업체 주식도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법망을 피하는 방법 : '개인'에서 '가족'으로

사실 지방의원의 선택지는 간단합니다. 겸직 신고만 하면 본인이 대표자리에서 내려올 필요도 없고 재산 공개만 제대로 하면 주식도 굳이 양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나, 자신이 속한 자치단체와 수의계약만 맺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지방의원들은 수의계약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요? 다른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대표자리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친인척, 친구, 고향 선후배 등에게 넘겼습니다. 50%를 넘는 지분 역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친인척에게 양도합니다. 이렇게 의원 개인 소유였던 업체는 의원 가족 회사로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지방계약법에는 저촉되지 않습니다. 지방계약법은 의원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그들의 직계존비속만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든 지방계약법의 취지는 자치단체와 지방의원 간에 특혜 의혹이 불거지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원 개인회사 대신 의원 가족회사가 수의계약을 맺는 것이 법 취지에 맞는 것일까요?

[연관기사] ‘꼼수’의원님, 법망 피해 수의계약 독식

자치단체는 사업쪼개기로 화답

지방의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자 자치단체도 지방의원들과 큰 고민 없이 수의계약을 진행합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수의계약을 맺는 업체가 의원의 가족 회사인지는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대표가 의원의 형제자매인지, 지분을 의원의 친인척이 보유하고 있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법조문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도 쉬운 선택을 합니다. 하천 정비 사업, 배수로 정비공사처럼 여러 마을에 걸쳐 수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은 각 마을별로, 수천만 원짜리 공사로 모두 쪼개 지방의원 가족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습니다. 하루에 6개, 5천7백만 원어치의 사업을 따낸 업체도 있습니다.


처벌은 불가능?

지방의원 특혜 의혹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방계약법은 이렇게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지방의원들의 말처럼 그들은 '법대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의 수사도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은 지방계약법 위반 혐의 대신 직권 남용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지방의원이 지방계약법은 위반하지 않았지만 지방의원이라는 직책의 권력, 자치단체를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이용해 압력을 가해 수의계약을 따냈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혐의는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없게 되자 검찰은 또 다른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지방계약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대표도, 지분구조도 바꿨지만 기업 운영 방식, 지분 양도 현황 등을 볼 때 기업의 실소유주는 지방의원 본인인데 그 사실을 속여 자치단체의 수의계약 공무를 방해했다는 취지입니다. 대구지검 의성지청은 한 의원을 이 혐의로 기소해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재판 결과가 매우 중요합니다. 법원이 검찰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면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 외에, 같은 방법으로 수의계약을 따낸 다른 의원들을 수사할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연관기사] ‘꼼수’의원님 “꼼수는 위계”…형사처벌 될까?

숨어 있는 의원들

수사와 처벌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끝은 아닙니다. 꼼수가 드러나지 않은, 숨어 있는 의원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의원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업체 대표를 미리 바꿔놓고 지분 구조도 미리 조정해 뒀다면? 건설업체 대표라는 직책에 대한 겸직 신고 의무에 대해서도,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재산 공개 의무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겨우 꼬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꼼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현재 대표와 의원과의 관계, 지분 구조 등을 확인해야 의원 가족 회사인지, 수의계약으로 의원 본인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관련 정보는 모두 개인정보로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어디에서 어떤 의원은 여전히 자신의 회사로 자치단체의 수의계약을 따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특혜시비와 꼼수, 그리고 묵인

지방의원의 수의계약 특혜시비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지방계약법이 만들어졌지만 꼼수가 동원돼 법은 무력화했고 수의계약으로 지방의원이 돈을 버는 것은 관행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가장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쉬운 건 탈이 나기 쉽습니다. 수의계약은 의원 견제 회피용, 누군가의 돈벌이용이 아닙니다. 한 의원에 대한 재판 결과와는 별개로 자치단체도, 지방의원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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