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 선 한국, 미국에 한발짝 더…속내는?

입력 2020.09.11 (16:29) 수정 2020.09.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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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외교부 신임 1차관의 미국을 향한 행보가 여러모로 눈에 띕니다.

먼저 8월 31일. 최 차관은 외국 인사 중 처음으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만났습니다. 최 차관은 이 자리에서 "한미동맹의 역사성과 제도적 견고성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일엔 외국 카운터파트 중 처음으로 미국 스티브 비건 부장관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통화 직후 방미 일정을 잡았습니다. 직전 조세영 전 차관이나 조현 전 차관은 미국에 직접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행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어제(10일) 미국 워싱턴 D.C.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을 만난 최 차관. 한국의 외교가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둔 '등거리 외교'라고 보면 되냐는 취재진 질문에 "등거리는 아닙니다. 왜? 동맹은 기본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늘(11일)은 비건 부장관과 회담을 한 뒤 "70년간 한미동맹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 역할을 강력하게 해왔다"며 "지속적인 협력과 소통을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는 이를 위해 국장급 실무 협의체인 가칭 '동맹 대화'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당초 심의관이 수행하는 차관 출장에 이례적으로 고윤주 북미국장이 동행해 의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협의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한미 사이에 차관급 대화 창구는 물론, '한미워킹그룹'에, '동맹 대화'까지 채널이 신설된 셈인데, 그동안 느슨해졌다고 평가받는 한미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방위비 협상 등 현안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미국으로 한 걸음 더…속내는?

이 같은 최종건 차관의 행보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① '자주파' 새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미국 내 우려 불식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이른바 '자주파' 인사들로 외교안보라인이 교체되자, 미국 내에서는 한미 동맹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습니다.

이인영 장관이 해리스 대사와 면담한 뒤, 한미워킹그룹과 관해 이견을 표출한 일, 또 지난 2일 "한미 관계가 군사동맹을 탈피해 '평화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 생각한다"고 말한 일 등이 회자됐습니다.

최 차관은 일단 미국 측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자신도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자주파'라는 수식어에 대해 "제가 학자 시절에 쓴 논문이나 칼럼 등을 통해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 와보니 그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② 대북 정책 협력 강화

다가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든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나면 한동안은 불확실성 때문에 대북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 정부로선 대선 직전인 10월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점화하기에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를 하고, 최종건 차관이 직접 미국을 간 것도 모두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미 간 대화 계기를 찾고,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겁니다.

③ 미·중 갈등 격화에 '외교 전략' 한계

미·중 갈등이 점차 격화되는 국제 정세는 한미 동맹은 물론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한국 외교에 곤혹스러운 상황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비건 부장관이 중국 견제를 위해 제시한 '인도 태평양 안보 협의체 구상', 즉 '쿼드 플러스'에 한국이 포함되는지가 관건입니다.

이 밖에도 반중국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도 문제입니다.

그동안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하다가, 한미동맹을 재활성화할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는데, 이번 행보는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 일단 한미동맹 강조…중국과의 관계는 '숙제'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과거처럼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공간을 누리던 때는 지나갔다고 본다"며 "미·중 간의 갈등과 경쟁이 더 심해지면서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현욱 교수는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되, 중국이 사드 사태 때처럼 경제 제재를 가하는 등의 피해를 주는 것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지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첨예해진 미·중 갈등 속 일단 미국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간 한국.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놓을 수 없는 복잡한 위치에 있습니다.

중국도 미·중 갈등 속 한국에 중립에 요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중국과의 소통을 어떻게 이어가면서 균형을 유지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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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1 16:20:32
    • 수정2020-09-11 16:31:05
    취재K
최종건 외교부 신임 1차관의 미국을 향한 행보가 여러모로 눈에 띕니다.

먼저 8월 31일. 최 차관은 외국 인사 중 처음으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만났습니다. 최 차관은 이 자리에서 "한미동맹의 역사성과 제도적 견고성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일엔 외국 카운터파트 중 처음으로 미국 스티브 비건 부장관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통화 직후 방미 일정을 잡았습니다. 직전 조세영 전 차관이나 조현 전 차관은 미국에 직접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행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어제(10일) 미국 워싱턴 D.C.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을 만난 최 차관. 한국의 외교가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둔 '등거리 외교'라고 보면 되냐는 취재진 질문에 "등거리는 아닙니다. 왜? 동맹은 기본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늘(11일)은 비건 부장관과 회담을 한 뒤 "70년간 한미동맹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 역할을 강력하게 해왔다"며 "지속적인 협력과 소통을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는 이를 위해 국장급 실무 협의체인 가칭 '동맹 대화'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당초 심의관이 수행하는 차관 출장에 이례적으로 고윤주 북미국장이 동행해 의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협의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한미 사이에 차관급 대화 창구는 물론, '한미워킹그룹'에, '동맹 대화'까지 채널이 신설된 셈인데, 그동안 느슨해졌다고 평가받는 한미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방위비 협상 등 현안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미국으로 한 걸음 더…속내는?

이 같은 최종건 차관의 행보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① '자주파' 새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미국 내 우려 불식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이른바 '자주파' 인사들로 외교안보라인이 교체되자, 미국 내에서는 한미 동맹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습니다.

이인영 장관이 해리스 대사와 면담한 뒤, 한미워킹그룹과 관해 이견을 표출한 일, 또 지난 2일 "한미 관계가 군사동맹을 탈피해 '평화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 생각한다"고 말한 일 등이 회자됐습니다.

최 차관은 일단 미국 측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자신도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자주파'라는 수식어에 대해 "제가 학자 시절에 쓴 논문이나 칼럼 등을 통해 보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 와보니 그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② 대북 정책 협력 강화

다가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든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나면 한동안은 불확실성 때문에 대북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 정부로선 대선 직전인 10월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점화하기에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를 하고, 최종건 차관이 직접 미국을 간 것도 모두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미 간 대화 계기를 찾고,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겁니다.

③ 미·중 갈등 격화에 '외교 전략' 한계

미·중 갈등이 점차 격화되는 국제 정세는 한미 동맹은 물론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한국 외교에 곤혹스러운 상황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비건 부장관이 중국 견제를 위해 제시한 '인도 태평양 안보 협의체 구상', 즉 '쿼드 플러스'에 한국이 포함되는지가 관건입니다.

이 밖에도 반중국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도 문제입니다.

그동안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하다가, 한미동맹을 재활성화할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는데, 이번 행보는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 일단 한미동맹 강조…중국과의 관계는 '숙제'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과거처럼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공간을 누리던 때는 지나갔다고 본다"며 "미·중 간의 갈등과 경쟁이 더 심해지면서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현욱 교수는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되, 중국이 사드 사태 때처럼 경제 제재를 가하는 등의 피해를 주는 것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지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첨예해진 미·중 갈등 속 일단 미국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간 한국.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놓을 수 없는 복잡한 위치에 있습니다.

중국도 미·중 갈등 속 한국에 중립에 요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중국과의 소통을 어떻게 이어가면서 균형을 유지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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