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은 누구 탓?

입력 2020.09.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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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결국 무산됐습니다. 금호산업은 오늘(11일) 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합병(M&A)이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습니다. HDC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지 약 10개월 만입니다. 이제 아시아나항공은 KDB산업은행을 대표로 하는 채권단의 관리 체제로 들어갑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과 대주주 무상감자를 통해 '주인 없는'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작업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재무구조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2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수혈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유화가 아닌 정상화 후 매각 재추진이지만, 대한항공이 민영화된 1969년 이후 50여 년 만에 잠깐 '국영항공사'가 만들어진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2천500억 원의 계약금을 날릴 각오를 하고서 인수를 포기한 데는 항공업계 유례없는 불황을 부른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가 매각 무산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예상 밖의 손실이 발생해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계약을 깰 좋은 구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공정위 제재 때문에 아시아나 딜 깨졌다?

지난달 공정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기내식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 3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현대산업개발이 살 7개 계열사 몫은 83억 원에 달해 예상 밖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 등에서는 공정위가 산업은행의 매각작업을 고려하지 않고 엇박자를 냈다는 비난까지 나왔습니다. 2조 5천억 원짜리 인수·합병(M&A) 무산의 책임을 공정위로 돌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기업 인수·합병(M&A)은 한정된 사람만 참가하는 보석 경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각 측은 예비입찰에서 인수의향을 밝힌 후보군 가운데 인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적격후보군, '쇼트리스트'를 가려서 실사를 진행합니다. 희귀한 보석을 누구나 감정할 수 있게 내놓을 수 없듯 정해진 인수후보에게만 회계장부를 비롯해 회사의 재무 영업 상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보낸 것은 지난해 10월경입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10월 22일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공정위나 산업계가 아닌 금융투자업계에서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시는 아시아나항공 적격인수후보들이 회사에 대한 실사를 벌이던 시기인데, 실사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에 대한 고발 의견 등 심사보고서 내용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매각 측 관계자는 "실사 과정에서 다른 소송은 물론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대해서도 현대산업개발 등이 내용을 파악했다"라며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서 공정위를 상대로는 제재안을 부정했지만, 매각 과정에서 과징금이 내려질 가능성은 충분히 인지했다"고 전했습니다.

작년 12월 현대산업개발이 체결한 주식매매계약(SPA)에도 이 잠재적 손실은 반영돼 있습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과 금호그룹은 계약 이후 발생할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결국 320억 원 수준에서 정했습니다. 공정위 과징금을 내고도 충분히 남는 수준입니다.

과징금 이외의 명분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공정위가 과징금과 함께 내린 시정명령은 '향후 행위 금지명령'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을 침해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 법인이 고발당하긴 했지만, 형이 확정되더라도 과징금보다 낮은 수준의 벌금이 예상됩니다.


'재실사'요구할 때부터 현대산업개발 계약해지 염두에 뒀다?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 요구를 할 때부터 사실상 딜은 틀어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기존 실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계약금 반환 소송을 염두에 둔 메시지 같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4월 아시아나항공 주식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거래 종결의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어 7월 말에는 재무구조 악화, 회계관리 부실 등을 문제 삼아 재실사를 요구했습니다. 이 '거래 종결 선행 조건'을 지켰는지가 앞으로 벌어질 계약금 반환 소송의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와 닮은 점이 많은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 사례를 보면 '실사' 카드는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해 필요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파기했고,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산업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9년에 걸친 소송 결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이 선행 조건 일부가 제재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산업은행이 계약금 3천150억 원 중 1천260억 원과 지연이자를 한화에 돌려줘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한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조선업 현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노조 반대로 확인 실사를 하지 못해 계약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한화가 막대한 이행보증금을 지급하고도 확인 실사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이행보증금(계약금) 전액을 몰취하는 건 부당하게 과다하다"며 1, 2심 결과를 뒤집었습니다.

향후 아시아나항공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도 실사 여부는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조선업 현황 악화로 수주계약 중도해지 등 자산이 줄어들고 갑작스러운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던 대우조선해양과 코로나19로 실적이 악화한 아시아나항공을 같은 선상에 둘지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결국, 매각 깬 건 코로나19‥계약금 주인은 반환 소송 결과에

현대산업개발이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한 까닭은 항공업 역사상 유례없는 악재인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계약서에 서명하던 지난해 12월에는 없던 코로나19가 발생했으니 아시아나항공의 가치도 그만큼 하락했는데, 원래 계약했던 돈에 회사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조선업이 정점을 찍던 시절 대우조선해양을 사기로 했다가 얼마 뒤 포기했던 한화그룹과 비슷한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나 딜은 구주를 사들이는 동시에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구조인데 코로나19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써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산은이 지난달 다급히 매각대금 인하 등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지만, 결정을 뒤집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남은 것은 계약금 2천500억 원의 주인을 가리는 낯뜨거운 책임공방입니다. 국내선 비중이 낮은 나라에서 후발주자로 시작해 이례적으로 세계적 항공사로 성장했던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의 자금줄로 동원되다 매물로 나왔고, 이제는 매각 무산 소송에도 휘말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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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은 누구 탓?
    • 입력 2020-09-11 18:14:04
    취재K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결국 무산됐습니다. 금호산업은 오늘(11일) 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합병(M&A)이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습니다. HDC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지 약 10개월 만입니다. 이제 아시아나항공은 KDB산업은행을 대표로 하는 채권단의 관리 체제로 들어갑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과 대주주 무상감자를 통해 '주인 없는'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작업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재무구조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2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수혈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유화가 아닌 정상화 후 매각 재추진이지만, 대한항공이 민영화된 1969년 이후 50여 년 만에 잠깐 '국영항공사'가 만들어진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2천500억 원의 계약금을 날릴 각오를 하고서 인수를 포기한 데는 항공업계 유례없는 불황을 부른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가 매각 무산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예상 밖의 손실이 발생해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계약을 깰 좋은 구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공정위 제재 때문에 아시아나 딜 깨졌다?

지난달 공정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기내식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 3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현대산업개발이 살 7개 계열사 몫은 83억 원에 달해 예상 밖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 등에서는 공정위가 산업은행의 매각작업을 고려하지 않고 엇박자를 냈다는 비난까지 나왔습니다. 2조 5천억 원짜리 인수·합병(M&A) 무산의 책임을 공정위로 돌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기업 인수·합병(M&A)은 한정된 사람만 참가하는 보석 경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각 측은 예비입찰에서 인수의향을 밝힌 후보군 가운데 인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적격후보군, '쇼트리스트'를 가려서 실사를 진행합니다. 희귀한 보석을 누구나 감정할 수 있게 내놓을 수 없듯 정해진 인수후보에게만 회계장부를 비롯해 회사의 재무 영업 상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보낸 것은 지난해 10월경입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10월 22일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공정위나 산업계가 아닌 금융투자업계에서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시는 아시아나항공 적격인수후보들이 회사에 대한 실사를 벌이던 시기인데, 실사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에 대한 고발 의견 등 심사보고서 내용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매각 측 관계자는 "실사 과정에서 다른 소송은 물론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대해서도 현대산업개발 등이 내용을 파악했다"라며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서 공정위를 상대로는 제재안을 부정했지만, 매각 과정에서 과징금이 내려질 가능성은 충분히 인지했다"고 전했습니다.

작년 12월 현대산업개발이 체결한 주식매매계약(SPA)에도 이 잠재적 손실은 반영돼 있습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과 금호그룹은 계약 이후 발생할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결국 320억 원 수준에서 정했습니다. 공정위 과징금을 내고도 충분히 남는 수준입니다.

과징금 이외의 명분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공정위가 과징금과 함께 내린 시정명령은 '향후 행위 금지명령'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을 침해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 법인이 고발당하긴 했지만, 형이 확정되더라도 과징금보다 낮은 수준의 벌금이 예상됩니다.


'재실사'요구할 때부터 현대산업개발 계약해지 염두에 뒀다?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 요구를 할 때부터 사실상 딜은 틀어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기존 실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계약금 반환 소송을 염두에 둔 메시지 같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4월 아시아나항공 주식 인수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거래 종결의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어 7월 말에는 재무구조 악화, 회계관리 부실 등을 문제 삼아 재실사를 요구했습니다. 이 '거래 종결 선행 조건'을 지켰는지가 앞으로 벌어질 계약금 반환 소송의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와 닮은 점이 많은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 사례를 보면 '실사' 카드는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해 필요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파기했고, 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산업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9년에 걸친 소송 결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이 선행 조건 일부가 제재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산업은행이 계약금 3천150억 원 중 1천260억 원과 지연이자를 한화에 돌려줘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한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조선업 현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노조 반대로 확인 실사를 하지 못해 계약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한화가 막대한 이행보증금을 지급하고도 확인 실사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이행보증금(계약금) 전액을 몰취하는 건 부당하게 과다하다"며 1, 2심 결과를 뒤집었습니다.

향후 아시아나항공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도 실사 여부는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조선업 현황 악화로 수주계약 중도해지 등 자산이 줄어들고 갑작스러운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던 대우조선해양과 코로나19로 실적이 악화한 아시아나항공을 같은 선상에 둘지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결국, 매각 깬 건 코로나19‥계약금 주인은 반환 소송 결과에

현대산업개발이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한 까닭은 항공업 역사상 유례없는 악재인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계약서에 서명하던 지난해 12월에는 없던 코로나19가 발생했으니 아시아나항공의 가치도 그만큼 하락했는데, 원래 계약했던 돈에 회사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조선업이 정점을 찍던 시절 대우조선해양을 사기로 했다가 얼마 뒤 포기했던 한화그룹과 비슷한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나 딜은 구주를 사들이는 동시에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구조인데 코로나19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써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산은이 지난달 다급히 매각대금 인하 등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지만, 결정을 뒤집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남은 것은 계약금 2천500억 원의 주인을 가리는 낯뜨거운 책임공방입니다. 국내선 비중이 낮은 나라에서 후발주자로 시작해 이례적으로 세계적 항공사로 성장했던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의 자금줄로 동원되다 매물로 나왔고, 이제는 매각 무산 소송에도 휘말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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