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GM공장서 폐암 또 폐암…“동료들은 같은 일 없었으면”

입력 2020.09.12 (10:07) 수정 2020.09.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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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가공 작업은 장소가 협소하고 환기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A 씨/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

“기계 가공을 하는 작업장은 협소하고 환풍기가 1대밖에 없어 가공 작업을 할 때면 작업장에 연기 냄새가 진동해 겨울에도 모든 창문을 열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단 작업을 하면 발생하는 흄(용접 과정에서 고체가 녹은 후 증발과 응축을 통해 형성되는 작은 입자)으로 인해 작업장에 안개가 낀 것처럼 연기가 꽉 차서 잠시 자연 환기를 시킨 연후에 다음 작업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B 씨/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

“기계 가공 작업을 할 때 인체에 해로운 유해성 가스가 발생해 환기 문제가 발생합니다.” (C 씨/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

위에서 작업장 환경 문제를 언급한 3명의 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개선반’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부서인데, 공장 내 기계나 설비가 고장 날 때 원인을 파악하고 수리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와 더불어 작업장 내 먼지를 제거하거나 도색 작업도 도맡아 한다. 각종 하자를 보수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일종의 지원 부서인 셈이다. 총원은 3~4명에 불과하다.

이 ‘개선반’과 관련된 업무를 14년째 해 온 41살 노동자 정 모 씨가 올해 4월 폐암 4기, 즉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전까지 폐 관련 질환 이력이 없었고, 2019년 종합검진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발병한 것이었다.

정 씨를 상담한 최기일 노무사(노무사 사무소 ‘현장’)는 환기 장치가 제대로 없는 공간에서 용접·가공 작업 등을 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분진과 가스 등 유해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개선반 노동자들의 증언에 주목했다. 즉, 개선반의 작업 환경이 폐암 발병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폐암에 걸린 정 씨 역시 “좁은 공간에서 가공하다 보니 가공 시 발생하는 절삭유와 가스가 환기되지 않고, 환풍기를 켜도 공장 내부가 뿌옇게 되기 일쑤였다”며 “이런 유해물질은 배출이 쉽게 되지 않고 오랜 시간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용접·가공 작업뿐만 아니라 도색 작업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개선반 노동자들은 도색 작업 등에서 ‘바이폭시 퍼티, 크린폭시 코팅, 락카 스프레이, 로얄멜(유성도료) 등의 유기 화학 물질을 사용했는데, 이 중 일부는 유해 물질인 에틸벤젠 성분과 호흡기에 손상을 끼칠 수 있는 화학 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실제 KBS가 입수한 개선반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보면 18가지의 물질이 작업에 사용되는 거로 나오는데, 대부분 유해물질로 분류돼 관리되고 있었다. 이처럼 작업 환경이 열악한데도 회사 측에서 지급하는 안전 장구는 일회용 방진 마스크뿐이라고 노동자들은 진술했다.

결정적으로 6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도 개선반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폐암에 걸린 사실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당시 개선반 소속 40대 노동자가 ’비소세포성 폐암‘ 판정을 받은 뒤, 급성 호흡곤란으로 숨진 것이다. 6년 시차를 두고 3~4명이 일하는 소규모 부서에서 2명의 폐암 환자가 나온 건 이례적이다.

정 씨는 이런 사실을 토대로 지난 7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자신이 폐암에 걸린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작업 환경에 의한 질병 즉, 직업성 질병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정 씨는 현재 휴직 상태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며 “동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최기일 노무사는 “개선반이라는 작업장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원인 물질‘로 가득 차 있다”며 “작업 과정에서 여러 가지 유해 물질에 노출돼서 발생한 ’직업성 암‘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히 개선반을 제외한 한국GM 부평공장의 다른 부서에서는 폐암 발병 사례가 확인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개선반의 업무적 특성과 환경을 고려할 때 충분히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GM 측은 산재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별도의 입장을 낼 단계는 아니라며 앞으로 관계 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한 뒤,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재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3~4명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6년간 2명의 폐암 환자가 나왔다는 걸 고려할 때, 작업장의 환경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공유정옥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개선반은) 보통 비상 상황의 작업을 하는데,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유해물질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보건 관리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정 기간 비슷한 희귀 질환이 잇따라 발생했을 때, 사업주는 법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자기 사업장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뭘 더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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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09-12 10:16:29
    취재후·사건후
“기계 가공 작업은 장소가 협소하고 환기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A 씨/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

“기계 가공을 하는 작업장은 협소하고 환풍기가 1대밖에 없어 가공 작업을 할 때면 작업장에 연기 냄새가 진동해 겨울에도 모든 창문을 열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단 작업을 하면 발생하는 흄(용접 과정에서 고체가 녹은 후 증발과 응축을 통해 형성되는 작은 입자)으로 인해 작업장에 안개가 낀 것처럼 연기가 꽉 차서 잠시 자연 환기를 시킨 연후에 다음 작업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B 씨/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

“기계 가공 작업을 할 때 인체에 해로운 유해성 가스가 발생해 환기 문제가 발생합니다.” (C 씨/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

위에서 작업장 환경 문제를 언급한 3명의 한국GM 부평공장 노동자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개선반’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부서인데, 공장 내 기계나 설비가 고장 날 때 원인을 파악하고 수리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와 더불어 작업장 내 먼지를 제거하거나 도색 작업도 도맡아 한다. 각종 하자를 보수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일종의 지원 부서인 셈이다. 총원은 3~4명에 불과하다.

이 ‘개선반’과 관련된 업무를 14년째 해 온 41살 노동자 정 모 씨가 올해 4월 폐암 4기, 즉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전까지 폐 관련 질환 이력이 없었고, 2019년 종합검진에서도 이상 소견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발병한 것이었다.

정 씨를 상담한 최기일 노무사(노무사 사무소 ‘현장’)는 환기 장치가 제대로 없는 공간에서 용접·가공 작업 등을 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분진과 가스 등 유해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개선반 노동자들의 증언에 주목했다. 즉, 개선반의 작업 환경이 폐암 발병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폐암에 걸린 정 씨 역시 “좁은 공간에서 가공하다 보니 가공 시 발생하는 절삭유와 가스가 환기되지 않고, 환풍기를 켜도 공장 내부가 뿌옇게 되기 일쑤였다”며 “이런 유해물질은 배출이 쉽게 되지 않고 오랜 시간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용접·가공 작업뿐만 아니라 도색 작업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개선반 노동자들은 도색 작업 등에서 ‘바이폭시 퍼티, 크린폭시 코팅, 락카 스프레이, 로얄멜(유성도료) 등의 유기 화학 물질을 사용했는데, 이 중 일부는 유해 물질인 에틸벤젠 성분과 호흡기에 손상을 끼칠 수 있는 화학 물질이 포함돼 있었다.

실제 KBS가 입수한 개선반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보면 18가지의 물질이 작업에 사용되는 거로 나오는데, 대부분 유해물질로 분류돼 관리되고 있었다. 이처럼 작업 환경이 열악한데도 회사 측에서 지급하는 안전 장구는 일회용 방진 마스크뿐이라고 노동자들은 진술했다.

결정적으로 6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도 개선반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폐암에 걸린 사실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당시 개선반 소속 40대 노동자가 ’비소세포성 폐암‘ 판정을 받은 뒤, 급성 호흡곤란으로 숨진 것이다. 6년 시차를 두고 3~4명이 일하는 소규모 부서에서 2명의 폐암 환자가 나온 건 이례적이다.

정 씨는 이런 사실을 토대로 지난 7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자신이 폐암에 걸린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작업 환경에 의한 질병 즉, 직업성 질병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정 씨는 현재 휴직 상태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며 “동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최기일 노무사는 “개선반이라는 작업장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원인 물질‘로 가득 차 있다”며 “작업 과정에서 여러 가지 유해 물질에 노출돼서 발생한 ’직업성 암‘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히 개선반을 제외한 한국GM 부평공장의 다른 부서에서는 폐암 발병 사례가 확인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개선반의 업무적 특성과 환경을 고려할 때 충분히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GM 측은 산재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별도의 입장을 낼 단계는 아니라며 앞으로 관계 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한 뒤,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재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3~4명이 근무하는 부서에서 6년간 2명의 폐암 환자가 나왔다는 걸 고려할 때, 작업장의 환경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할 필요는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공유정옥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개선반은) 보통 비상 상황의 작업을 하는데,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유해물질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보건 관리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정 기간 비슷한 희귀 질환이 잇따라 발생했을 때, 사업주는 법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자기 사업장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뭘 더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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