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분류작업이 무임금”…올해만 택배 기사 7명 ‘과로사’

입력 2020.09.13 (08:00) 수정 2020.09.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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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의 한 물류단지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 최종설 씨. 성인 남성의 키보다 높이 쌓인 '택배 탑'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택배 탑'은 택배 업체가 서울 송파구, 강동구처럼 자치구 단위로 1차 분류한 결과물입니다. 그다음에 택배 노동자들이 택배 상자들을 동별로 세분화하고 택배 배달 차량에 싣는 '분류작업'을 또다시 해야 비로소 배송 준비가 완료됩니다.

최 씨는 "오늘은 평소보다 물량이 많아 더 바쁠 거 같다"며 "(택배업에서)가장 힘든 것이 아침에 '분류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한 그가 분류작업을 마무리한 시간은 출근한 지 6시간 뒤인 정오가 넘어서였습니다.

오후가 돼서야 첫 배송을 해서인지 최 씨는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택배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속보로 걷고 뛰는 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택배 배송이) 끝날 때 보면 2시간 정도 단축된다"며 배송을 서둘렀습니다. 하루 배정된 택배 물량인 370여 개를 다 배송하고 나니, 출근한 지 1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8시 반쯤이었습니다.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면 일요일에는 녹초가 돼 여가는 꿈도 꿀 수 없다"며 "우리도 저녁 있는 삶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택배 노동자 선효진 씨(좌)와 그의 근무 일과(우)택배 노동자 선효진 씨(좌)와 그의 근무 일과(우)

■ "출근은 6시 반에 했고요, 첫 배송 시작 시간이 오후 3시 반이 되더라고요"

택배 노동자 선효진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코로나 19 이후로 20~30% 정도 (택배)물량이 늘었다"며 "물량이 는 만큼 분류작업 시간까지 늘어났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오전 6시 반에 출근했는데, 9시간 동안 분류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에서 오후 3시 반에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 씨는 "6시 반에 출근했는데 분류 작업하고 상차하니깐 첫 배송 시간이 3시 반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는 360개의 택배 상자를 배송하고 자정이 돼서야 퇴근했습니다.

분류작업 중인 택배 노동자들분류작업 중인 택배 노동자들

■ 10시간 가까운 분류작업이 무임금?..."택배 기사들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최장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분류작업에 택배 노동자들은 회사 측에 추가 인원을 투입해달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견디다 못해 일부 택배 노동자들은 자비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분류작업을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택배 노동자들이 큰 부담을 느끼는 분류작업은 '배송 전 사전 작업'이란 이유로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택배 노동자 정승현 씨는 "물량은 많이 늘었는데 (분류작업에) 인원은 충원이 안 돼서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배송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분류 작업을 뽑았습니다.

그는 "첫 배송 시간이 오후 3~4시, 그러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또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택배 기사들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을 넘어서면 과로사 문제가 남는데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며 택배를 서두르다 다쳤다는 다리와 팔의 상처를 기자에게 보여줬습니다.

국내 1, 2위 택배회사 2분기 영업 이익(좌)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우)국내 1, 2위 택배회사 2분기 영업 이익(좌)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우)

■ 택배 물량 급증에 택배회사 영업이익 24%↑...택배 노동자 7명 과로사

코로나 19로 택배 물량은 예년보다 20~30% 늘었습니다. 또 추석이 다가오면서 지금보다도 20% 정도 더 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 강철 씨는 "택배 물량이 작년 대비 코로나로 인해 30~40% 늘어난 걸로 느껴진다"며 "추석이 다가오면 더 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택배 물량의 증가는 택배 회사들의 수익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1, 2위 택배 회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동년 대비 각각 16.8%, 24.7%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 뒷면에는 올해 들어서만 택배 노동자 7명이 숨졌다는 어두운 그늘이 존재합니다.

참여연대와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이 "코로나 19로 인해 택배업체가 누리고 있는 유례 없는 호황 속엔 택배 노동자의 땀 그리고 죽음이 있다"며 "택배 업체들의 천문학적인 영업 이익 일부를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멈추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7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전국 택배 차량 추모행진지난 7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전국 택배 차량 추모행진

■ 분류작업 논의 더딘 가운데...택배노조 "대책 없으면 분류작업 전면 거부"

분류작업에 별도의 대가를 주거나 추가 인원을 투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일명 '택배법'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에 들어와 택배법은 다시 발의됐지만 소관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의 문턱을 못 넘고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더구나 배송 수수료에 이미 분류작업에 대한 대가가 포함돼 있다는 등의 택배 회사 측 반대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이 법조문에 담길지, 시행령에 담길지 아니면 협상 과정에서 수정될지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지난 1일 민주노총 택배연대노조는 오는 16일까지 분류작업에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등 관련 대책이 없다면 분류 작업을 전면 거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인봉 전국택배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분류작업 개선 없이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줄일 수 없다"면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멈출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투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사무처장은 "오는 16일까지 대책이 없으면 전국 택배 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어 분류작업 전면 거부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추석 연휴 택배 배송에 큰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28년 만에 생긴 휴가인 '택배 없는 날'에 이어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하라는 택배 노동자들의 또 한 번의 외침이 과로사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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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시간 분류작업이 무임금”…올해만 택배 기사 7명 ‘과로사’
    • 입력 2020-09-13 08:00:58
    • 수정2020-09-13 14:17:08
    사회
서울 송파구의 한 물류단지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 최종설 씨. 성인 남성의 키보다 높이 쌓인 '택배 탑'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택배 탑'은 택배 업체가 서울 송파구, 강동구처럼 자치구 단위로 1차 분류한 결과물입니다. 그다음에 택배 노동자들이 택배 상자들을 동별로 세분화하고 택배 배달 차량에 싣는 '분류작업'을 또다시 해야 비로소 배송 준비가 완료됩니다.

최 씨는 "오늘은 평소보다 물량이 많아 더 바쁠 거 같다"며 "(택배업에서)가장 힘든 것이 아침에 '분류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한 그가 분류작업을 마무리한 시간은 출근한 지 6시간 뒤인 정오가 넘어서였습니다.

오후가 돼서야 첫 배송을 해서인지 최 씨는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택배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속보로 걷고 뛰는 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택배 배송이) 끝날 때 보면 2시간 정도 단축된다"며 배송을 서둘렀습니다. 하루 배정된 택배 물량인 370여 개를 다 배송하고 나니, 출근한 지 1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8시 반쯤이었습니다.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면 일요일에는 녹초가 돼 여가는 꿈도 꿀 수 없다"며 "우리도 저녁 있는 삶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택배 노동자 선효진 씨(좌)와 그의 근무 일과(우)
■ "출근은 6시 반에 했고요, 첫 배송 시작 시간이 오후 3시 반이 되더라고요"

택배 노동자 선효진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코로나 19 이후로 20~30% 정도 (택배)물량이 늘었다"며 "물량이 는 만큼 분류작업 시간까지 늘어났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오전 6시 반에 출근했는데, 9시간 동안 분류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에서 오후 3시 반에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 씨는 "6시 반에 출근했는데 분류 작업하고 상차하니깐 첫 배송 시간이 3시 반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는 360개의 택배 상자를 배송하고 자정이 돼서야 퇴근했습니다.

분류작업 중인 택배 노동자들
■ 10시간 가까운 분류작업이 무임금?..."택배 기사들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최장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분류작업에 택배 노동자들은 회사 측에 추가 인원을 투입해달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합니다. 견디다 못해 일부 택배 노동자들은 자비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분류작업을 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택배 노동자들이 큰 부담을 느끼는 분류작업은 '배송 전 사전 작업'이란 이유로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택배 노동자 정승현 씨는 "물량은 많이 늘었는데 (분류작업에) 인원은 충원이 안 돼서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배송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분류 작업을 뽑았습니다.

그는 "첫 배송 시간이 오후 3~4시, 그러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또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택배 기사들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을 넘어서면 과로사 문제가 남는데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며 택배를 서두르다 다쳤다는 다리와 팔의 상처를 기자에게 보여줬습니다.

국내 1, 2위 택배회사 2분기 영업 이익(좌)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모습(우)
■ 택배 물량 급증에 택배회사 영업이익 24%↑...택배 노동자 7명 과로사

코로나 19로 택배 물량은 예년보다 20~30% 늘었습니다. 또 추석이 다가오면서 지금보다도 20% 정도 더 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 강철 씨는 "택배 물량이 작년 대비 코로나로 인해 30~40% 늘어난 걸로 느껴진다"며 "추석이 다가오면 더 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택배 물량의 증가는 택배 회사들의 수익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1, 2위 택배 회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동년 대비 각각 16.8%, 24.7%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 뒷면에는 올해 들어서만 택배 노동자 7명이 숨졌다는 어두운 그늘이 존재합니다.

참여연대와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이 "코로나 19로 인해 택배업체가 누리고 있는 유례 없는 호황 속엔 택배 노동자의 땀 그리고 죽음이 있다"며 "택배 업체들의 천문학적인 영업 이익 일부를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멈추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7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전국 택배 차량 추모행진
■ 분류작업 논의 더딘 가운데...택배노조 "대책 없으면 분류작업 전면 거부"

분류작업에 별도의 대가를 주거나 추가 인원을 투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일명 '택배법'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에 들어와 택배법은 다시 발의됐지만 소관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의 문턱을 못 넘고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더구나 배송 수수료에 이미 분류작업에 대한 대가가 포함돼 있다는 등의 택배 회사 측 반대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이 법조문에 담길지, 시행령에 담길지 아니면 협상 과정에서 수정될지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지난 1일 민주노총 택배연대노조는 오는 16일까지 분류작업에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등 관련 대책이 없다면 분류 작업을 전면 거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인봉 전국택배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분류작업 개선 없이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줄일 수 없다"면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멈출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투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사무처장은 "오는 16일까지 대책이 없으면 전국 택배 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어 분류작업 전면 거부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추석 연휴 택배 배송에 큰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에게 28년 만에 생긴 휴가인 '택배 없는 날'에 이어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하라는 택배 노동자들의 또 한 번의 외침이 과로사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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