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맞는 日…되돌아본 한일 관계

입력 2020.09.1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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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문제로 물러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내년 9월까지만 재임하는 '1년 임기' 총리이긴 하지만, 새 총리의 등장이 한일관계에 끼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전망이 밝은 건 아닙니다. 스가 신임 자민당 총재는 이미 아베 정권 계승을 여러 차례 표방해 왔기 때문입니다.

벼랑 끝에 다다랐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한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는 과연 없는 걸까요?

정치 외에도 경제와 문화적 변수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한일 관계의 최근사를 되짚어봤습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획기적 개선 '계기'

이제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 <러브 레터>. 하지만 1999년 11월 처음 이 영화가 국내 극장가에 걸렸을 때만 해도 스크린에서 일본어가 나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1998년 전까지 국내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건 이른바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한국 영화에 일본 배우는 출연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만화나 음반을 서점에서 사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시절입니다.

이웃한 두 나라 사이 이처럼 철저하게 지켜지던 문화 장벽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안보 지형의 변화와 경제 위기 극복 등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두 정상은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동반관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입니다. 지금이야 '한류'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문화가 '왜색'에 물들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한국 정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일본 대중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이 시기 '청소년의 무분별한 일본 문화 중독'은 9시 뉴스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은 당시 경제 규모 등에서 큰 차이가 났습니다. 1995년 기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2천여 달러. 한국은 만 천여 달러로, 일본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일본이 한국 문화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우리가 지금 이른바 '저개발국가'를 대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평가하는 견해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2천 년 대들어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바꿔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합니다. 하나는 2002년 공동 주최한 한일 월드컵이고, 다른 하나는 2년 뒤 일본 열도에 <겨울연가>가 방영된 일입니다.

21세기 첫 월드컵을 그것도 아시아 최초로 함께 치르면서 일본인들은 한국의 발전상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등 유럽 강호들을 물리치고 4강 진출을 이루는 걸 지켜보면서, 같은 아시아인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등 한국에 대한 선호도 크게 올랐습니다.


2004년 <겨울연가>의 폭발적 흥행은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습니다. <겨울연가> 방영 이후 한국을 찾은 일본인의 수는 2012년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갑니다. 보아, 동방신기 등 우리 가수들의 일본 진출도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일본인이 한국 연예인을, 한국인이 일본 가수를 좋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겁니다.

갈등→봉합→재악화…부침 거듭한 8년

그런데 2012년, 한일 관계를 크게 뒤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독도를 방문한 건데요. 일본은 이례적으로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항의합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과 한국 관계를 개선하려고 해왔던 과거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일본 정치인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크게 악화합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16년 지소미아 체결 등으로 한일 갈등은 잠시 봉합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9년, 우리 대법원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합니다. 이에 일본은 수출 규제로 보복하고, 우리 국민은 'NO 재팬'을 외치며 불매 운동에 나섭니다. 정부가 지소미아 협정 종료까지 추진하면서 한일 관계는 최악의 시기를 맞습니다.

분명한 건 이런 관계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제3위 교역국인 데에다, 한해 많게는 천만 명의 양국 국민이 대한해협을 오갑니다. 스가 총리 취임 이후 막혀 있는 한일 관계를 개선할 방법이 있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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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총리 맞는 日…되돌아본 한일 관계
    • 입력 2020-09-14 17:39:17
    취재K
건강 문제로 물러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내년 9월까지만 재임하는 '1년 임기' 총리이긴 하지만, 새 총리의 등장이 한일관계에 끼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전망이 밝은 건 아닙니다. 스가 신임 자민당 총재는 이미 아베 정권 계승을 여러 차례 표방해 왔기 때문입니다.

벼랑 끝에 다다랐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한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는 과연 없는 걸까요?

정치 외에도 경제와 문화적 변수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한일 관계의 최근사를 되짚어봤습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획기적 개선 '계기'

이제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 <러브 레터>. 하지만 1999년 11월 처음 이 영화가 국내 극장가에 걸렸을 때만 해도 스크린에서 일본어가 나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1998년 전까지 국내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건 이른바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한국 영화에 일본 배우는 출연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만화나 음반을 서점에서 사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시절입니다.

이웃한 두 나라 사이 이처럼 철저하게 지켜지던 문화 장벽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안보 지형의 변화와 경제 위기 극복 등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두 정상은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동반관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입니다. 지금이야 '한류'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문화가 '왜색'에 물들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한국 정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일본 대중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이 시기 '청소년의 무분별한 일본 문화 중독'은 9시 뉴스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은 당시 경제 규모 등에서 큰 차이가 났습니다. 1995년 기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2천여 달러. 한국은 만 천여 달러로, 일본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일본이 한국 문화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우리가 지금 이른바 '저개발국가'를 대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평가하는 견해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2천 년 대들어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바꿔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합니다. 하나는 2002년 공동 주최한 한일 월드컵이고, 다른 하나는 2년 뒤 일본 열도에 <겨울연가>가 방영된 일입니다.

21세기 첫 월드컵을 그것도 아시아 최초로 함께 치르면서 일본인들은 한국의 발전상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등 유럽 강호들을 물리치고 4강 진출을 이루는 걸 지켜보면서, 같은 아시아인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등 한국에 대한 선호도 크게 올랐습니다.


2004년 <겨울연가>의 폭발적 흥행은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습니다. <겨울연가> 방영 이후 한국을 찾은 일본인의 수는 2012년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갑니다. 보아, 동방신기 등 우리 가수들의 일본 진출도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일본인이 한국 연예인을, 한국인이 일본 가수를 좋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겁니다.

갈등→봉합→재악화…부침 거듭한 8년

그런데 2012년, 한일 관계를 크게 뒤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독도를 방문한 건데요. 일본은 이례적으로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항의합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과 한국 관계를 개선하려고 해왔던 과거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일본 정치인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크게 악화합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16년 지소미아 체결 등으로 한일 갈등은 잠시 봉합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9년, 우리 대법원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합니다. 이에 일본은 수출 규제로 보복하고, 우리 국민은 'NO 재팬'을 외치며 불매 운동에 나섭니다. 정부가 지소미아 협정 종료까지 추진하면서 한일 관계는 최악의 시기를 맞습니다.

분명한 건 이런 관계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제3위 교역국인 데에다, 한해 많게는 천만 명의 양국 국민이 대한해협을 오갑니다. 스가 총리 취임 이후 막혀 있는 한일 관계를 개선할 방법이 있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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