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 뒤 더 힘들어진 나눔의집 할머니들

입력 2020.09.15 (21:26) 수정 2020.09.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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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의기억연대 문제가 불거졌을 즈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요양시설인 나눔의 집이 ​후원금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습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취재했습니다.

내부고발 이후 경찰과 지자체가 뒤늦게 진상조사에 나섰는데, 정작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고아름, 박민철 기자입니다.

[리포트]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명.

모두 90세 이상 고령에 치매 등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병인은 2명뿐입니다.

직원들의 계속된 요구에 올해 초 간병인을 추가 고용하기로 계획했지만, 내부 고발 이후 새 운영진이 들어오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허정아/나눔의 집 사회복지사 : "(간병인) 면접 지원하신 분들이 오는 날이었는데 그때 신입 원장이 왔어요. 부임한 첫날이었어요. 불법 채용이라면서 면접 온 분들을 다 돌려보내는 거예요."]

할머니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어 내부 고발에 나섰던 직원들.

[야지마 츠카사/나눔의 집 직원 : "2019년 6월 이옥순 할머니가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안전한 침대로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냈는데요. 낭비라면서 그렇게 할 필요없다는 식으로 저희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후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대월/나눔의 집 학예실장 : "처음에는 할머니도 만나지 못하게 했어요.할머니들 만날 수 있는 직원만 이름을 적어서 벽보를 붙이기도 했어요. 제가 다음날에 벽보를 제거했거든요. 바로 고소 당했습니다."]

운영진과 직원 간의 내부 갈등이 계속되면서 할머니들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김대월/나눔의집 학예실장 : "(할머니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시는 거죠. 공익제보를 해서 할머니들이 힘들어진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저희를 힘들게 하죠."]

이제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직원들은 빠른 사태 해결을 호소합니다.

[원종선/나눔의 집 간호팀장 : "당장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전혀 지원이 안 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렇게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저희가 보고서를 올려도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KBS 뉴스 고아름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허수곤/영상편집:김은주

▼ 후원금으로 땅 사고 법당 고친 ‘나눔의 집’ ▼

나눔의 집이 지난해까지 5년간 모금한 후원금은 88억 원입니다.

후원금 운용 논란이 불거진 뒤 경기도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두 달간 조사를 벌였는데요.

조사 결과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쓴 시설운영비는 직원 인건비를 포함해도 2억 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할머니들이 여생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낸 시민들 마음과는 많이 동떨어진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돈, 어디에 썼을까요.

땅을 사거나 불교 법당을 수리하는 데 7억 원이 들어갔습니다.

일부는 조계종 사찰의 등값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후원금이 70억 원 넘게 남아 있는데, 이 돈으로 '호텔식 요양원'을 지으려고 했던 논의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2억 원 가까운 나눔의 집 공사 일감을 무면허 업체에 몰아줬다는 KBS 보도 역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조사단은 법인 이사진과 운영진을 기부금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계속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나눔의 집의 후원금 관리 실태를 송락규 기자가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촬영기자:심규일/영상편집:김종선/그래픽:고석훈

▼ 엉터리 공시해도 감독기관은 방관만…“이사진 전원 해임해야” ▼

나눔의 집 법인이 지난 6월 국세청에 공시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기부금이 얼마나 들어왔고, 어디에 썼는지를 신고한 겁니다.

'시설 및 생활관 등 운영비 외'로 10억 원 넘게 썼다는데, 구체적인 내역이 전혀 없습니다.

기부금이 실제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후원자들은 알 수 없는 겁니다.

[김형배/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회계조사반 팀장 : "지출내역이 달랑 두 줄인가 세 줄 이렇게 통합해서 올렸던데, 사실 그 부분은 월별로, 지출목적별로 구분해서 상세하게 올려야 하거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세청에 해마다 한 번 올려야 하는 결산공시는 의무사항인데,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이게 문제라는 건 본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눔의 집 이사회 관계자/음성변조/2019년 이사회 영상회의록 : "공익법인 회계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벌칙이 좀 셉니다, 이거는. 상속증여세법에 따른 가산세가 나오는데요. 그게 전 재산의 0.5%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세청이 가산세를 부과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나눔의 집 시설에 대한 감독권한이 있는 광주시도 지난 5년간 후원금 관리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특히 2015년과 지난해엔 매년 실시해야 하는 지도점검을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감독이 소홀하다 보니 나눔의 집 이사회는 시민들이 기부한 돈으로 호텔식 요양시설을 지을 계획까지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조영선/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 : "이사회는 최종의결기구고 집행기구와 같은 거거든요. (나눔의 집을) 요양시설로서 전환하려는 지점에서 그걸 결의한 이사회의 이사들의 책임이 굉장히 무겁다."]

결국 민관합동 조사단은 이사진 전원을 해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기도도 조만간 이사진 해임 처분을 위한 절차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나눔의 집 이사회 측은 후원금 관리 문제에 대해선 입장을 전하지 않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한 돈은 할머니들을 위해 잘 썼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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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부고발 뒤 더 힘들어진 나눔의집 할머니들
    • 입력 2020-09-15 21:26:24
    • 수정2020-09-15 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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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의기억연대 문제가 불거졌을 즈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요양시설인 나눔의 집이 ​후원금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습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취재했습니다.

내부고발 이후 경찰과 지자체가 뒤늦게 진상조사에 나섰는데, 정작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고 하는데요,

고아름, 박민철 기자입니다.

[리포트]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명.

모두 90세 이상 고령에 치매 등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병인은 2명뿐입니다.

직원들의 계속된 요구에 올해 초 간병인을 추가 고용하기로 계획했지만, 내부 고발 이후 새 운영진이 들어오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허정아/나눔의 집 사회복지사 : "(간병인) 면접 지원하신 분들이 오는 날이었는데 그때 신입 원장이 왔어요. 부임한 첫날이었어요. 불법 채용이라면서 면접 온 분들을 다 돌려보내는 거예요."]

할머니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어 내부 고발에 나섰던 직원들.

[야지마 츠카사/나눔의 집 직원 : "2019년 6월 이옥순 할머니가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안전한 침대로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냈는데요. 낭비라면서 그렇게 할 필요없다는 식으로 저희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후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대월/나눔의 집 학예실장 : "처음에는 할머니도 만나지 못하게 했어요.할머니들 만날 수 있는 직원만 이름을 적어서 벽보를 붙이기도 했어요. 제가 다음날에 벽보를 제거했거든요. 바로 고소 당했습니다."]

운영진과 직원 간의 내부 갈등이 계속되면서 할머니들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김대월/나눔의집 학예실장 : "(할머니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시는 거죠. 공익제보를 해서 할머니들이 힘들어진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저희를 힘들게 하죠."]

이제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직원들은 빠른 사태 해결을 호소합니다.

[원종선/나눔의 집 간호팀장 : "당장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전혀 지원이 안 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렇게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저희가 보고서를 올려도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KBS 뉴스 고아름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허수곤/영상편집:김은주

▼ 후원금으로 땅 사고 법당 고친 ‘나눔의 집’ ▼

나눔의 집이 지난해까지 5년간 모금한 후원금은 88억 원입니다.

후원금 운용 논란이 불거진 뒤 경기도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두 달간 조사를 벌였는데요.

조사 결과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쓴 시설운영비는 직원 인건비를 포함해도 2억 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할머니들이 여생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낸 시민들 마음과는 많이 동떨어진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돈, 어디에 썼을까요.

땅을 사거나 불교 법당을 수리하는 데 7억 원이 들어갔습니다.

일부는 조계종 사찰의 등값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후원금이 70억 원 넘게 남아 있는데, 이 돈으로 '호텔식 요양원'을 지으려고 했던 논의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2억 원 가까운 나눔의 집 공사 일감을 무면허 업체에 몰아줬다는 KBS 보도 역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조사단은 법인 이사진과 운영진을 기부금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계속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나눔의 집의 후원금 관리 실태를 송락규 기자가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촬영기자:심규일/영상편집:김종선/그래픽:고석훈

▼ 엉터리 공시해도 감독기관은 방관만…“이사진 전원 해임해야” ▼

나눔의 집 법인이 지난 6월 국세청에 공시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기부금이 얼마나 들어왔고, 어디에 썼는지를 신고한 겁니다.

'시설 및 생활관 등 운영비 외'로 10억 원 넘게 썼다는데, 구체적인 내역이 전혀 없습니다.

기부금이 실제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후원자들은 알 수 없는 겁니다.

[김형배/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회계조사반 팀장 : "지출내역이 달랑 두 줄인가 세 줄 이렇게 통합해서 올렸던데, 사실 그 부분은 월별로, 지출목적별로 구분해서 상세하게 올려야 하거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세청에 해마다 한 번 올려야 하는 결산공시는 의무사항인데,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이게 문제라는 건 본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눔의 집 이사회 관계자/음성변조/2019년 이사회 영상회의록 : "공익법인 회계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벌칙이 좀 셉니다, 이거는. 상속증여세법에 따른 가산세가 나오는데요. 그게 전 재산의 0.5%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세청이 가산세를 부과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나눔의 집 시설에 대한 감독권한이 있는 광주시도 지난 5년간 후원금 관리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특히 2015년과 지난해엔 매년 실시해야 하는 지도점검을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감독이 소홀하다 보니 나눔의 집 이사회는 시민들이 기부한 돈으로 호텔식 요양시설을 지을 계획까지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조영선/나눔의 집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 : "이사회는 최종의결기구고 집행기구와 같은 거거든요. (나눔의 집을) 요양시설로서 전환하려는 지점에서 그걸 결의한 이사회의 이사들의 책임이 굉장히 무겁다."]

결국 민관합동 조사단은 이사진 전원을 해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기도도 조만간 이사진 해임 처분을 위한 절차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나눔의 집 이사회 측은 후원금 관리 문제에 대해선 입장을 전하지 않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한 돈은 할머니들을 위해 잘 썼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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