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명절 열차표 ‘매크로’로 4백여 장 싹쓸이

입력 2020.09.16 (09:09) 수정 2020.09.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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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만 되면 귀성 열차표를 사기 위한 전쟁 아닌 전쟁이 반복됩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하기 힘든 명절 열차표. 귀성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표를 사기 힘든 줄 알았지만 사실, 숨은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열차표 사재기입니다.


■ 자동으로 반복 작업하는 '매크로'명절 열차표 싹쓸이

매크로는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쉽게 말하면 프로그램을 켜고 미리 마우스가 움직일 위치나 키보드로 입력할 값을 넣은 다음 1초에 한 번이나 2초에 한 번씩 반복하도록 설정하면 알아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동안 인기 있는 공연 입장권이나 스포츠 경기 입장권을 예매하는 데 악용됐고 최근에는 마스크를 사재기하는데도 쓰여 문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매크로 프로그램이 명절 열차표를 예매하는데도 쓰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철도경찰이 지난 설 연휴 기간 KTX와 SRT 승차권 수백 장을 매크로를 이용해 사재기한 혐의로 32살 A 씨를 붙잡았습니다.


■ 혼자 설 연휴 KTX 363장·SRT 98장 구매…웃돈 얹어 되팔아

A 씨는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3초에 한 번씩 승차권을 조회해 취소 표나 잔여석을 대량으로 구매했습니다. 명절 승차권 예매 기간이 지나면 잔여석이 풀리는데 이때를 노리고 매크로를 돌려 잔여석을 순식간에 쓸어 담았습니다. 또 일정이 변경돼 나오는 취소 표 역시 나오는 족족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예매돼 A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A 씨가 사들인 지난 설 연휴 기간 열차표가 KTX 363장, SRT는 98장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승차권은 모두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나 SNS 등을 통해 다시 팔렸습니다. 보통 승차권 정가의 25% 안팎, 만 원가량 웃돈을 붙여 팔았는데 420만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습니다. A 씨는 경찰에 2~3년 전부터 매크로 사재기를 해왔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시간대 열차표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열차표 매크로 사재기 왜 이제서야 적발?

그동안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암표가 대량으로 나돈다는 신고는 종종 있었습니다. 이때마다 철도경찰이 수사를 벌였지만, 암표 거래 행위 단속에만 그쳤습니다. 매크로를 이용한 '열차표' 사재기가 실제로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보통 명절 연휴에 팔리는 열차표가 2백만 장에 이를 정도로 많기 때문에, 매크로를 이용한 구매를 구별해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그동안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명절 승차권 암표 거래가 끊이지 않자 매크로 사용을 의심한 한국철도가 올해 초 감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매크로를 이용할 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승차권 조회 기록을 골라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코레일 앱이나 인터넷 예매 사이트상에서 일반적인 사람은 물리적으로 최대 1분에 60번 정도 승차권을 조회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분당 60번 이상 조회한 기록들을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고 따로 분류해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철도가 이 시스템으로 지난 설 연휴 구매 기록을 살펴봤더니 매크로 사재기로 의심되는 구매자 7명이 확인됐고 철도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결국 A 씨의 덜미가 잡혔습니다.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또 이번 추석 예매 의심 사례로도 수사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 '날로 먹은' 명절 열차표…매크로 사재기 처벌은?

지난해 인기 아이돌 그룹의 공연 표를 매크로를 이용해 대규모로 사들인 뒤에 암표로 되판 일당이 적발됐습니다. 이들이 사들인 표가 3년간 9천여 장에 이르고, 정가의 10배에 되판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코로나19가 확산 초기인 지난 3월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같은 수법으로 마스크를 무려 9천 장이나 사들인 뒤 두 배에 되판 20대 남성이 적발됐습니다.

이처럼 매크로를 이용해 표나 물건을 사재기해 되팔 경우,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입니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매크로로 마스크를 대량 구매한 뒤 되팔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30대에게 최근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열차표를 사재기한 A 씨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 매크로 사재기 방지 대책은?

한국철도는 명절 예매 기간 온라인의 경우 대기 순번 표를 발급하고 차례가 오면 1인당 3분 안에 편도 6매, 왕복 12매까지 예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절 예매 기간 이후 구매 수량 제한 없이 잔여석이 풀리고 취소 표가 나올 때가 문제였습니다.

한국철도는 매크로 사재기 예방을 위해 명절 연휴 전후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곧바로 IP를 차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속한 수사를 위해 비정상적인 조회 기록이 발견되면 곧바로 철도경찰에 회원 정보와 승차권 구매 내용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또 승차권 불법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암표 거래를 제보한 고객에게는 열차 할인쿠폰이나 무료 교환권 등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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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명절 열차표 ‘매크로’로 4백여 장 싹쓸이
    • 입력 2020-09-16 09:09:14
    • 수정2020-09-16 09:09:24
    취재후·사건후
명절 때만 되면 귀성 열차표를 사기 위한 전쟁 아닌 전쟁이 반복됩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하기 힘든 명절 열차표. 귀성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표를 사기 힘든 줄 알았지만 사실, 숨은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열차표 사재기입니다.


■ 자동으로 반복 작업하는 '매크로'명절 열차표 싹쓸이

매크로는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쉽게 말하면 프로그램을 켜고 미리 마우스가 움직일 위치나 키보드로 입력할 값을 넣은 다음 1초에 한 번이나 2초에 한 번씩 반복하도록 설정하면 알아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동안 인기 있는 공연 입장권이나 스포츠 경기 입장권을 예매하는 데 악용됐고 최근에는 마스크를 사재기하는데도 쓰여 문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매크로 프로그램이 명절 열차표를 예매하는데도 쓰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철도경찰이 지난 설 연휴 기간 KTX와 SRT 승차권 수백 장을 매크로를 이용해 사재기한 혐의로 32살 A 씨를 붙잡았습니다.


■ 혼자 설 연휴 KTX 363장·SRT 98장 구매…웃돈 얹어 되팔아

A 씨는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3초에 한 번씩 승차권을 조회해 취소 표나 잔여석을 대량으로 구매했습니다. 명절 승차권 예매 기간이 지나면 잔여석이 풀리는데 이때를 노리고 매크로를 돌려 잔여석을 순식간에 쓸어 담았습니다. 또 일정이 변경돼 나오는 취소 표 역시 나오는 족족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예매돼 A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A 씨가 사들인 지난 설 연휴 기간 열차표가 KTX 363장, SRT는 98장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승차권은 모두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나 SNS 등을 통해 다시 팔렸습니다. 보통 승차권 정가의 25% 안팎, 만 원가량 웃돈을 붙여 팔았는데 420만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습니다. A 씨는 경찰에 2~3년 전부터 매크로 사재기를 해왔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시간대 열차표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열차표 매크로 사재기 왜 이제서야 적발?

그동안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암표가 대량으로 나돈다는 신고는 종종 있었습니다. 이때마다 철도경찰이 수사를 벌였지만, 암표 거래 행위 단속에만 그쳤습니다. 매크로를 이용한 '열차표' 사재기가 실제로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보통 명절 연휴에 팔리는 열차표가 2백만 장에 이를 정도로 많기 때문에, 매크로를 이용한 구매를 구별해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그동안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명절 승차권 암표 거래가 끊이지 않자 매크로 사용을 의심한 한국철도가 올해 초 감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매크로를 이용할 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승차권 조회 기록을 골라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코레일 앱이나 인터넷 예매 사이트상에서 일반적인 사람은 물리적으로 최대 1분에 60번 정도 승차권을 조회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분당 60번 이상 조회한 기록들을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고 따로 분류해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한국철도가 이 시스템으로 지난 설 연휴 구매 기록을 살펴봤더니 매크로 사재기로 의심되는 구매자 7명이 확인됐고 철도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결국 A 씨의 덜미가 잡혔습니다.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또 이번 추석 예매 의심 사례로도 수사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 '날로 먹은' 명절 열차표…매크로 사재기 처벌은?

지난해 인기 아이돌 그룹의 공연 표를 매크로를 이용해 대규모로 사들인 뒤에 암표로 되판 일당이 적발됐습니다. 이들이 사들인 표가 3년간 9천여 장에 이르고, 정가의 10배에 되판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코로나19가 확산 초기인 지난 3월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같은 수법으로 마스크를 무려 9천 장이나 사들인 뒤 두 배에 되판 20대 남성이 적발됐습니다.

이처럼 매크로를 이용해 표나 물건을 사재기해 되팔 경우,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입니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매크로로 마스크를 대량 구매한 뒤 되팔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30대에게 최근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습니다. 열차표를 사재기한 A 씨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 매크로 사재기 방지 대책은?

한국철도는 명절 예매 기간 온라인의 경우 대기 순번 표를 발급하고 차례가 오면 1인당 3분 안에 편도 6매, 왕복 12매까지 예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절 예매 기간 이후 구매 수량 제한 없이 잔여석이 풀리고 취소 표가 나올 때가 문제였습니다.

한국철도는 매크로 사재기 예방을 위해 명절 연휴 전후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곧바로 IP를 차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속한 수사를 위해 비정상적인 조회 기록이 발견되면 곧바로 철도경찰에 회원 정보와 승차권 구매 내용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또 승차권 불법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암표 거래를 제보한 고객에게는 열차 할인쿠폰이나 무료 교환권 등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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