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개발한다고 ‘묘 파낸’ 농어촌공사, 유골 잃고선 “유족 탓”

입력 2020.09.16 (09:40) 수정 2020.09.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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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에 사는 김윤애 씨는 지난 4월 14일 부모님의 묘를 찾았다가 눈을 의심했습니다. 두 달 전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부모님 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2018년 10월부터 한국농어촌공사와 상주시는 국책사업인 스마트팜혁신밸리 기반조성사업을 위해 분묘 이장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김 씨 부모님 묫자리도 사업부지에 포함되면서 김 씨는 농어촌공사에 방문해 안내에 따라 자신의 부모 산소임을 증명하고, 분묘 사진 등 관련 서류도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장 장소와 날짜를 정하고, 한국농어촌공사 경북본부에 새로 이장될 공원묘지에 안착할 자리 대금까지 지급했습니다.


이장 예정일을 한 달여 앞둔 지난 4월, 김 씨는 비석 등 석물을 맞추기 위해 농어촌공사가 계약한 장례업체에 방문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업체 측은 김 씨 부모님 묘가 무연고자 묘로 처리돼 파묘됐다고 통보했습니다. 놀란 김 씨는 부모님 묘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에서 다 파헤쳐진 채 흙과 돌멩이만 널려 있는 묫자리를 목격했습니다.

■ 부모님 유골만은 있을 거라 믿었는데…유전자 검사 '감식 불가' 판정

이때까지만 해도 김 씨를 포함한 유족들은 '그래도 부모님을 모실 수는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농어촌공사 측이 파묘 후 유골은 잘 보관하고 있고, 유전자 검사도 진행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를 앞두고 눈으로 본 유골의 상태는 처참했다는데요.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농어촌공사의 태도도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합니다.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 되겠다며, 부모님 두 분 각각이 아닌, 한 사람의 뼛조각만 가지고 검사를 하자고 했다는 겁니다. 유족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수개월 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유골은 오랜 기간 부식이 진행돼 '감식 불가' 상태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 농어촌공사 "유족이 필수 서류 제출하지 않아"

농어촌공사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분묘의 경우 등기 권리자가 없어 일반 토지나 건물 등과 달리 소유자나 연고자를 찾기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정한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연고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실제 농어촌공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 따라 일간신문 등에 분묘개장 공고를 90일 이상 하기도 했고, 상주시 곳곳에 분묘개장과 보상절차 등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분묘개장 허가서'입니다. 분묘를 처리하려면 장사법에 따라 묘지 설치자 또는 연고자가 관할 시장 등에게 분묘개장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요. 농어촌공사 측은 이 분묘개장 허가서가 본인이 분묘 연고자임을 밝히는 필수 증빙 서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김 씨가 이 분묘개장 허가서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연고자임을 증명하지 못했고, 이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김 씨 부모님 묘를 무연고 분묘로 간주해 임의개장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김 씨는 이미 한참 전에 분묘개장 허가서를 받기 위해 관할 면사무소에 방문해 관련 서류를 제출했고, 이때 면사무소 직원에게서 분묘개장 작업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답변을 들어 이를 공사 측에 알렸다는 입장입니다.

■ 유족 "부모님 두 번 잃은 거나 다름없어"

이처럼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공방만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유족 측은 농어촌공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추석을 앞두고 살아계셨든 돌아가셨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게 도리인데, 성묘는 커녕 부모님의 마지막 흔적조차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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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지 개발한다고 ‘묘 파낸’ 농어촌공사, 유골 잃고선 “유족 탓”
    • 입력 2020-09-16 09:40:06
    • 수정2020-09-16 10:24:42
    취재K
경북 상주시에 사는 김윤애 씨는 지난 4월 14일 부모님의 묘를 찾았다가 눈을 의심했습니다. 두 달 전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부모님 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겁니다.


2018년 10월부터 한국농어촌공사와 상주시는 국책사업인 스마트팜혁신밸리 기반조성사업을 위해 분묘 이장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김 씨 부모님 묫자리도 사업부지에 포함되면서 김 씨는 농어촌공사에 방문해 안내에 따라 자신의 부모 산소임을 증명하고, 분묘 사진 등 관련 서류도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장 장소와 날짜를 정하고, 한국농어촌공사 경북본부에 새로 이장될 공원묘지에 안착할 자리 대금까지 지급했습니다.


이장 예정일을 한 달여 앞둔 지난 4월, 김 씨는 비석 등 석물을 맞추기 위해 농어촌공사가 계약한 장례업체에 방문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업체 측은 김 씨 부모님 묘가 무연고자 묘로 처리돼 파묘됐다고 통보했습니다. 놀란 김 씨는 부모님 묘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에서 다 파헤쳐진 채 흙과 돌멩이만 널려 있는 묫자리를 목격했습니다.

■ 부모님 유골만은 있을 거라 믿었는데…유전자 검사 '감식 불가' 판정

이때까지만 해도 김 씨를 포함한 유족들은 '그래도 부모님을 모실 수는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농어촌공사 측이 파묘 후 유골은 잘 보관하고 있고, 유전자 검사도 진행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를 앞두고 눈으로 본 유골의 상태는 처참했다는데요.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농어촌공사의 태도도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합니다.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 되겠다며, 부모님 두 분 각각이 아닌, 한 사람의 뼛조각만 가지고 검사를 하자고 했다는 겁니다. 유족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수개월 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유골은 오랜 기간 부식이 진행돼 '감식 불가' 상태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 농어촌공사 "유족이 필수 서류 제출하지 않아"

농어촌공사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분묘의 경우 등기 권리자가 없어 일반 토지나 건물 등과 달리 소유자나 연고자를 찾기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정한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연고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실제 농어촌공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 따라 일간신문 등에 분묘개장 공고를 90일 이상 하기도 했고, 상주시 곳곳에 분묘개장과 보상절차 등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분묘개장 허가서'입니다. 분묘를 처리하려면 장사법에 따라 묘지 설치자 또는 연고자가 관할 시장 등에게 분묘개장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요. 농어촌공사 측은 이 분묘개장 허가서가 본인이 분묘 연고자임을 밝히는 필수 증빙 서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김 씨가 이 분묘개장 허가서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연고자임을 증명하지 못했고, 이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김 씨 부모님 묘를 무연고 분묘로 간주해 임의개장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김 씨는 이미 한참 전에 분묘개장 허가서를 받기 위해 관할 면사무소에 방문해 관련 서류를 제출했고, 이때 면사무소 직원에게서 분묘개장 작업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답변을 들어 이를 공사 측에 알렸다는 입장입니다.

■ 유족 "부모님 두 번 잃은 거나 다름없어"

이처럼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공방만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유족 측은 농어촌공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추석을 앞두고 살아계셨든 돌아가셨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게 도리인데, 성묘는 커녕 부모님의 마지막 흔적조차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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