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의원님 땅 앞에 다리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입력 2020.09.18 (17:02) 수정 2020.09.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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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거창군의회 의원이 매입한 땅

지난해 2월 거창군의회 의원이 매입한 땅

"거창군 비리를 폭로합니다."

폭 6m, 길이 7m 작은 하천 교량이 경남 거창군청 노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건 지난 2월입니다. 거창군이 지난해 12월 군비 5천5백만 원을 긴급 편성해 인적 드문 곳에 다리 하나를 놔줬는데, 다리 바로 앞 땅이 거창군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표주숙 의원의 소유라는 폭로 글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추가 폭로는 구체적이었습니다. 표 의원이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9필지 6,600㎡ 땅을 3.3㎡당 13만 원에 사들였는데, 거창군이 다리를 놔준 덕분에(?) 1년여 사이에, 매입 가격의 4, 5배까지 폭등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거창군이 군비 5천만 원 투입해 만든 교량거창군이 군비 5천만 원 투입해 만든 교량

댓글 창에는 군민들의 비난과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거창군 의원님 땅마다 보일러, 아니 다리 하나씩 놔드려야겠어요."]
["거창군 정말 심각한데요, 이게 사실이면 거창군 행정 시스템 통제불능상태 아닌가요?"]
["일반 민원인이 다리 놔달라고 하면 수십 년이 걸려도 안 되는데..."]

댓글의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자신의 땅은 물론 마을 교량을 놔달라는 민원을 군청에 넣더라도 십수 년, 하세월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거창군은 표주숙 의원이 땅을 산 지 석 달 만에 교량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수차례 설계 변경까지 하면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리 건설로 토지가격 2~3배 상승 예상"..군비로 현직 의원 재산 증식?

취재 과정에서 폭로 게시글의 작은 오류들은 바로잡았습니다. 일단 표 의원은 문제의 땅을 3.3㎡당 13만 원이 아닌 20만 원가량에 매입했고, 아직 해당 땅을 판매한 것이 아니므로 4, 5배 차익을 남겼다고 말하기에는 현시점에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근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인들은 하나같이 다리가 만들어지고 난 뒤 2, 3배 땅값 상승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거창군은 군민들을 위해 써야 할 세금으로 현직 의원의 재산을 불려준 셈입니다.

거창군의회 산업건설위 표주숙 의원거창군의회 산업건설위 표주숙 의원

해당 군의원 "다리 건설 계획, 전혀 몰랐다."

반론을 듣기 위해 표 의원을 찾았습니다. 우선 표 의원은 "문제의 교량이 자신의 땅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땅과 하천 다리는 10m가량 떨어져 있어 자신의 땅에 다리를 놓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교량이 만들어졌는지도 몰랐고, 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인지 못 했다, 군의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거창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그렇게 의정 생활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취재진은 부동산 등기상에 나와 있는 주소를 통해 표 의원에게 땅을 판 원주인과 원주인의 인척인 토지 관리인을 찾았습니다. 토지 관리인은 2년 전인 2018년, 표 의원의 남편 측에서 자신을 찾아왔다고 회상했습니다.당시 부동산중개업을 하던 표 의원 남편과 부동산중개소 직원이 '특별한' 땅 매입 조건을 제시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디 가서 아내가 군의원이라는 말 하지 마이소"

"표 의원 남편 측에서 자신들은 거창군수와 친분이 있고, (아내가) 군의원이니 땅의 일부를 팔면 거창군의 허가를 받아 다리를 놓고 도로포장은 거창군에서 해줄 것"이라며 땅을 팔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심쩍어하는 원주인을 위해 표 의원 남편 측은 실제로 토지 거래 계약서에 '교량 및 다리 건설'을 계약 조건으로 명시까지 했다고 합니다.

표 의원 남편 측은 매매 과정에서 땅 원주인에게 어디 가서 자신의 아내가 군의원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원주인은 자신의 땅 가운데 6,600㎡를 표주숙 의원 측에 팔았고, 애초에 계약서에 약속했던 다리의 위치가 조금 변경됐긴 했어도, 정확히 매도 10개월 만에 실제로 다리가 놓였습니다.

경남 거창군청경남 거창군청

담당 공무원들, 법까지 위반하며 '전광석화' 공사..굳이 왜??

다리 건설을 추진한 거창군 도시건축과 과장 등 공무원 3명도 이번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천에 다리를 놓는 일은 돈이 있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리를 놓는 것이 하천 흐름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하천정비계획에 다리 건설 계획이 상정되어야 하고, 또 상급기관 경상남도나 군청 내 담당 부서인 하천과의 협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창군 도시건축과는 이런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전광석화처럼 공사를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해당 공무원 3명은 경찰 조사를 받고, 하천법 위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지난 5월 송치됐습니다.

경찰, 기소 의견 송치...검찰 '기소 유예'로 사실상 면죄부?

하지만 검찰은 '결과적으로 다리 건설이 하천에 큰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원 기소유예 처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사를 추진한 핵심 인물인 거창군 도시건축과장은 지난달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거창군 역시 공무원 3명의 행정 행위가 정당한 민원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단순한 실수라며 별도의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결과적으로 현행법을 위반한 당사자들이 응당한 형사 처벌은 물론 행정 처분까지 모두 피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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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의원님 땅 앞에 다리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 입력 2020-09-18 17:02:57
    • 수정2020-09-22 10:29:40
    취재후·사건후

지난해 2월 거창군의회 의원이 매입한 땅

"거창군 비리를 폭로합니다."

폭 6m, 길이 7m 작은 하천 교량이 경남 거창군청 노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건 지난 2월입니다. 거창군이 지난해 12월 군비 5천5백만 원을 긴급 편성해 인적 드문 곳에 다리 하나를 놔줬는데, 다리 바로 앞 땅이 거창군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표주숙 의원의 소유라는 폭로 글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추가 폭로는 구체적이었습니다. 표 의원이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9필지 6,600㎡ 땅을 3.3㎡당 13만 원에 사들였는데, 거창군이 다리를 놔준 덕분에(?) 1년여 사이에, 매입 가격의 4, 5배까지 폭등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거창군이 군비 5천만 원 투입해 만든 교량
댓글 창에는 군민들의 비난과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거창군 의원님 땅마다 보일러, 아니 다리 하나씩 놔드려야겠어요."]
["거창군 정말 심각한데요, 이게 사실이면 거창군 행정 시스템 통제불능상태 아닌가요?"]
["일반 민원인이 다리 놔달라고 하면 수십 년이 걸려도 안 되는데..."]

댓글의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자신의 땅은 물론 마을 교량을 놔달라는 민원을 군청에 넣더라도 십수 년, 하세월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거창군은 표주숙 의원이 땅을 산 지 석 달 만에 교량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수차례 설계 변경까지 하면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리 건설로 토지가격 2~3배 상승 예상"..군비로 현직 의원 재산 증식?

취재 과정에서 폭로 게시글의 작은 오류들은 바로잡았습니다. 일단 표 의원은 문제의 땅을 3.3㎡당 13만 원이 아닌 20만 원가량에 매입했고, 아직 해당 땅을 판매한 것이 아니므로 4, 5배 차익을 남겼다고 말하기에는 현시점에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근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인들은 하나같이 다리가 만들어지고 난 뒤 2, 3배 땅값 상승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거창군은 군민들을 위해 써야 할 세금으로 현직 의원의 재산을 불려준 셈입니다.

거창군의회 산업건설위 표주숙 의원
해당 군의원 "다리 건설 계획, 전혀 몰랐다."

반론을 듣기 위해 표 의원을 찾았습니다. 우선 표 의원은 "문제의 교량이 자신의 땅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땅과 하천 다리는 10m가량 떨어져 있어 자신의 땅에 다리를 놓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교량이 만들어졌는지도 몰랐고, 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인지 못 했다, 군의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거창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그렇게 의정 생활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취재진은 부동산 등기상에 나와 있는 주소를 통해 표 의원에게 땅을 판 원주인과 원주인의 인척인 토지 관리인을 찾았습니다. 토지 관리인은 2년 전인 2018년, 표 의원의 남편 측에서 자신을 찾아왔다고 회상했습니다.당시 부동산중개업을 하던 표 의원 남편과 부동산중개소 직원이 '특별한' 땅 매입 조건을 제시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디 가서 아내가 군의원이라는 말 하지 마이소"

"표 의원 남편 측에서 자신들은 거창군수와 친분이 있고, (아내가) 군의원이니 땅의 일부를 팔면 거창군의 허가를 받아 다리를 놓고 도로포장은 거창군에서 해줄 것"이라며 땅을 팔라고 했다는 겁니다. 미심쩍어하는 원주인을 위해 표 의원 남편 측은 실제로 토지 거래 계약서에 '교량 및 다리 건설'을 계약 조건으로 명시까지 했다고 합니다.

표 의원 남편 측은 매매 과정에서 땅 원주인에게 어디 가서 자신의 아내가 군의원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원주인은 자신의 땅 가운데 6,600㎡를 표주숙 의원 측에 팔았고, 애초에 계약서에 약속했던 다리의 위치가 조금 변경됐긴 했어도, 정확히 매도 10개월 만에 실제로 다리가 놓였습니다.

경남 거창군청
담당 공무원들, 법까지 위반하며 '전광석화' 공사..굳이 왜??

다리 건설을 추진한 거창군 도시건축과 과장 등 공무원 3명도 이번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천에 다리를 놓는 일은 돈이 있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리를 놓는 것이 하천 흐름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하천정비계획에 다리 건설 계획이 상정되어야 하고, 또 상급기관 경상남도나 군청 내 담당 부서인 하천과의 협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창군 도시건축과는 이런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전광석화처럼 공사를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해당 공무원 3명은 경찰 조사를 받고, 하천법 위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지난 5월 송치됐습니다.

경찰, 기소 의견 송치...검찰 '기소 유예'로 사실상 면죄부?

하지만 검찰은 '결과적으로 다리 건설이 하천에 큰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원 기소유예 처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사를 추진한 핵심 인물인 거창군 도시건축과장은 지난달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거창군 역시 공무원 3명의 행정 행위가 정당한 민원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단순한 실수라며 별도의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결과적으로 현행법을 위반한 당사자들이 응당한 형사 처벌은 물론 행정 처분까지 모두 피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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