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갑자기 폐업한 헬스장…회원들 “환불은 포기, 처벌이라도”

입력 2020.09.20 (08:00) 수정 2020.09.21 (09:2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환불은 포기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거짓말하고 숨기려던 대표는 처벌해야죠."

수도권에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한창이던 지난 4일, 4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오던 서울의 대형 헬스장이 갑자기 폐업했습니다. 집합금지 명령 대상이었던 실내체육시설은 아예 영업을 못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해 폐업하게 된 사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회원들과 해당 헬스장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헬스장 대표가 코로나19가 이어지는 상황을 기회 삼아 '계획적'으로 헬스장 문을 닫았다는 겁니다.

■ "힘들다는 말에 1년 회원권 연장했는데"…차명 계좌로 돈 받아

해당 헬스장을 1년 넘게 다녔던 A 씨는 폐업 직전 세 번째로 회원권을 연장했습니다. 보통 3개월 단위로 회원권을 연장했는데, 이번에는 1년 치 회원권과 개인 지도 30회권을 끊었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들다며 1년치를 끊어달라는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2백만 원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요. 다 힘든데... 코로나19로 힘들다고 해서 1년 끊어준 건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어요."

현금으로 지불하면 더 싸게 해준다는 말에 비용은 헬스장 대표가 알려주는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좌는 헬스장 대표나 법인 명의도 아니었습니다. 대표 가족 명의였습니다.

피해를 본 회원들은 대표가 올해 2월부터 현금 지불을 유도하며 차명 계좌로 돈을 받아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대표는 작년부터 헬스장으로 사용하던 두개 층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중 한개 층 임대사업자에게 올해 2월 명도소송이 걸리고 패소했습니다. 8월 말부터는 아예 해당 층은 출입이 막혀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졌습니다.

■ 운동기기 양도 계약 맺은 뒤, 회원 모집 전단지 주문해

피해를 주장하는 건 헬스장 회원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헬스장에서 일하는 트레이너, GX 강사 등 10여 명 직원들은 아직도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직원마다 체납 기간은 다르지만 밀린 임금이 천만 원이 넘습니다.

대표가 폐업을 준비하면서 신규 회원을 모집하고 기존 회원과 계약을 연장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대표는 지난 8월 10일, 지인에게 헬스장 운동기기를 양도하겠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엔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전단 8천 장을 주문해, 여름 특가라며 신규 회원들을 모집했습니다.

■ “코로나19 자체 방역 휴관 연장하자”…폐업 숨기려던 정황

폐업 나흘 전인 8월 31일, 대표는 트레이너 등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폐업 결정을 알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표는 회원들을 걱정하며 회원들 환불은 어쩔 거냐는 직원들의 질문에 대표는 환불은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코로나19 자체 방역을 이유로 자체적으로 헬스장 휴관을 1~2주일 정도 더 하자는 말도 합니다. 회원들과 직원들이 대표가 폐업 사실을 숨기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있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유입니다.


조만간 다른 동네에 헬스장을 열 계획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새로 열 헬스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들은 합류하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자금 압박으로 잠시 폐업 신고…정상 영업 위해 노력 중”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먹튀’라는 주장은 오해이며 지금도 정상 영업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겁니다.

대표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속적으로 영업이 어려워지며 자금 압박에 잠시 폐업 신고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인 명의와 대표 본인 명의로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서 가족 명의 계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폐업 신고도 비슷한 이유로 법인 명의로 사업 지속이 어려워서 선택한 절차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운동기기 양도계약은 폐업 준비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헬스장을 운영하지 못해 회원들에게 피해를 줄 상황을 방지하려는 선제조치였다는 겁니다. 만일의 사태 때, 채권자에게 운동기기가 완전히 압류돼 운영 자체를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라고 대표는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양도 계약을 맺은 지인과는 계약 당시 해당 운동기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가 완료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표는 정말 사기를 칠 의도가 있었다면, 회원들의 연락을 피하거나 법인·개인 파산을 신청했을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지금도 임대 사업자 등과 정상 영업을 위해 논의를 진행하는 등 운영을 지속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에게 한 발언들 역시 폐업을 숨기고 사기를 치려는 의도로 했던 발언이 아니라, 회원들을 굳이 불안해하게 하기 싫어서 휴관하며 사태를 해결하려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환불이 어렵다는 말이나 다른 헬스장 개관 계획도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을 때를 말한 것이며 직원들을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한편 환불이 불확실한 상황에 피해 회원 5백여 명 중 백여 명은 대표를 검찰에 사기로 고소했습니다. 직원들도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민사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갑자기 폐업한 헬스장…회원들 “환불은 포기, 처벌이라도”
    • 입력 2020-09-20 08:00:07
    • 수정2020-09-21 09:28:38
    취재후·사건후
"환불은 포기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거짓말하고 숨기려던 대표는 처벌해야죠."

수도권에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한창이던 지난 4일, 4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오던 서울의 대형 헬스장이 갑자기 폐업했습니다. 집합금지 명령 대상이었던 실내체육시설은 아예 영업을 못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해 폐업하게 된 사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회원들과 해당 헬스장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헬스장 대표가 코로나19가 이어지는 상황을 기회 삼아 '계획적'으로 헬스장 문을 닫았다는 겁니다.

■ "힘들다는 말에 1년 회원권 연장했는데"…차명 계좌로 돈 받아

해당 헬스장을 1년 넘게 다녔던 A 씨는 폐업 직전 세 번째로 회원권을 연장했습니다. 보통 3개월 단위로 회원권을 연장했는데, 이번에는 1년 치 회원권과 개인 지도 30회권을 끊었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들다며 1년치를 끊어달라는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2백만 원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요. 다 힘든데... 코로나19로 힘들다고 해서 1년 끊어준 건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어요."

현금으로 지불하면 더 싸게 해준다는 말에 비용은 헬스장 대표가 알려주는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좌는 헬스장 대표나 법인 명의도 아니었습니다. 대표 가족 명의였습니다.

피해를 본 회원들은 대표가 올해 2월부터 현금 지불을 유도하며 차명 계좌로 돈을 받아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대표는 작년부터 헬스장으로 사용하던 두개 층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중 한개 층 임대사업자에게 올해 2월 명도소송이 걸리고 패소했습니다. 8월 말부터는 아예 해당 층은 출입이 막혀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졌습니다.

■ 운동기기 양도 계약 맺은 뒤, 회원 모집 전단지 주문해

피해를 주장하는 건 헬스장 회원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헬스장에서 일하는 트레이너, GX 강사 등 10여 명 직원들은 아직도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직원마다 체납 기간은 다르지만 밀린 임금이 천만 원이 넘습니다.

대표가 폐업을 준비하면서 신규 회원을 모집하고 기존 회원과 계약을 연장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대표는 지난 8월 10일, 지인에게 헬스장 운동기기를 양도하겠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엔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전단 8천 장을 주문해, 여름 특가라며 신규 회원들을 모집했습니다.

■ “코로나19 자체 방역 휴관 연장하자”…폐업 숨기려던 정황

폐업 나흘 전인 8월 31일, 대표는 트레이너 등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폐업 결정을 알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표는 회원들을 걱정하며 회원들 환불은 어쩔 거냐는 직원들의 질문에 대표는 환불은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코로나19 자체 방역을 이유로 자체적으로 헬스장 휴관을 1~2주일 정도 더 하자는 말도 합니다. 회원들과 직원들이 대표가 폐업 사실을 숨기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있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유입니다.


조만간 다른 동네에 헬스장을 열 계획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새로 열 헬스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들은 합류하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자금 압박으로 잠시 폐업 신고…정상 영업 위해 노력 중”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먹튀’라는 주장은 오해이며 지금도 정상 영업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겁니다.

대표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속적으로 영업이 어려워지며 자금 압박에 잠시 폐업 신고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인 명의와 대표 본인 명의로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서 가족 명의 계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폐업 신고도 비슷한 이유로 법인 명의로 사업 지속이 어려워서 선택한 절차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운동기기 양도계약은 폐업 준비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헬스장을 운영하지 못해 회원들에게 피해를 줄 상황을 방지하려는 선제조치였다는 겁니다. 만일의 사태 때, 채권자에게 운동기기가 완전히 압류돼 운영 자체를 못하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라고 대표는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양도 계약을 맺은 지인과는 계약 당시 해당 운동기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가 완료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표는 정말 사기를 칠 의도가 있었다면, 회원들의 연락을 피하거나 법인·개인 파산을 신청했을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지금도 임대 사업자 등과 정상 영업을 위해 논의를 진행하는 등 운영을 지속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에게 한 발언들 역시 폐업을 숨기고 사기를 치려는 의도로 했던 발언이 아니라, 회원들을 굳이 불안해하게 하기 싫어서 휴관하며 사태를 해결하려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환불이 어렵다는 말이나 다른 헬스장 개관 계획도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을 때를 말한 것이며 직원들을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한편 환불이 불확실한 상황에 피해 회원 5백여 명 중 백여 명은 대표를 검찰에 사기로 고소했습니다. 직원들도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민사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