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울린 사회적기업]② 엉터리 공시자료에 줄줄 새는 지원금

입력 2020.09.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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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돈벌이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제품을 만드는 일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있도록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만들어졌고, 2012년에는 협동조합기본법도 제정됐습니다.

'사회적 경제'가 자본주의의 보완 모델로 떠오르고, 복지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 기대되면서, 각 부처들도 앞다퉈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어촌공동체 사업을, 2011년 행정안전부는 마을기업을, 2012년 보건복지부는 자활기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현재 전국에 있는 협동조합은 18,000개가 넘고, 예비사회적기업과 사회적기업도 4,000개가 넘게 있습니다.

 전국에는 협동조합 18,624개, 예비사회적기업 1,586개, 사회적기업 2,570개 세워져있다. [사진 출처 : KBS 뉴스9] 전국에는 협동조합 18,624개, 예비사회적기업 1,586개, 사회적기업 2,570개 세워져있다. [사진 출처 : KBS 뉴스9]

■ 각종 혜택…세금 감면, 인건비 지원, 공공기관의 우선 구매까지

돈 안 되는 일에도 많은 기업들을 뛰어들게 한 유인책이 무엇이었을까요? 각종 혜택입니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사업개발비와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공공부문의 투자나 융자, 보증을 통한 자금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 최대 5년동안 법인세와 취·등록세 등을 아예 안 내거나 덜 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의 준비 단계인 예비사회적기업으로만 지정받아도, 사회적기업 못지않게 최대 3년동안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꽤 많습니다. 공공기관의 우선 구매 제도에는 사회적협동조합과 마을기업까지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기업 등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 예산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 2018년 982억 400만 원에서 지난해 1,115억 7100만 원, 올해는 2020년 1,163억 2,700만 원이었습니다. 여기에 지방비 25~30%를 매칭하면, 지원금액은 훨씬 더 커집니다.

■ 강한 빛 뒤에는 짙은 그림자…느슨한 감시

강원도 춘천의 한 예비사회적기업이 각종 지원금을 받고도 장애인 직원의 월급 일부 반납을 강요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강원도 춘천의 한 예비사회적기업이 각종 지원금을 받고도 장애인 직원의 월급 일부 반납을 강요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순기능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공적 지원금을 가로챘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시와 관리,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 부실과 비리도 늘고 있습니다.

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세운 강원도 춘천의 한 예비사회적기업이 2년 동안 장애인 직원들의 월급 일부를 되돌려받고 있었습니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은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아 춘천시로부터 인건비만 2,750만 원을 지원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0%~30%의 돈만 보태 직원 월급을 주면 되는데, 오히려 직원들의 급여 일부를 돌려받음으로써 회삿돈은 한 푼도 보태지 않은 셈이 됐습니다.

또,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 매년 의무적으로 인터넷에 공개해야하는 경영공시 자료도 엉터리였습니다. 같은 해, 같은 항목의 결산 금액이 20% 이상 차이가 났고, 2018년 손실액은 서류를 작성한 연도에 따라 수백만 원씩 달라졌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 대표는 회계 수치를 임의로 조작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재무제표상으로라도 경영실적을 좋게 만들어야 사회적기업으로 갈 때 점수가 좋게 나온다는 겁니다. 경영 책임은 약자인 장애인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경영 부실은 얕은 눈가림으로 속이는 등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인건비를 지원한 춘천시, 관리 감독을 해야 할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기관 가운데 어디 한 군데도 월급 횡령과 회계 비리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작정하고 속이려들면 수천만 원의 돈을 쥐어줘도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는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기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회계 공시 수치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기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회계 공시 수치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여기만 비리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광주광역시에서도 직원 급여의 일부를 되돌려받은 사회적기업이 '지정 취소'를 당했습니다. 강원도 철원에서는 직원에게 부당 근로를 시켰다가 적발된 사회적기업에게 인증 취소는 물론, 부정 수급에 해당하는 금액 1,800만 원 전액을 환수조치하고, 최대 5배의 제재금인 9,000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의 사례를 포함한 세 기업의 부정은 모두 내부 고발로 드러났습니다.

올해 7월까지 전국에서 지정이 취소된 사회적기업은 33곳. 이 가운데 부정한 방법으로 재정 지원을 받은 기업은 6곳입니다.

■ 사회적기업의 반(反)사회적 행태, 막을 수 없나?

전문가들은 사회적경제의 양적 성장만 추구하지 말고,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고민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치용 한국 CSR연구소장은 "정부가 사회적 경제를 추진하면서, 내용이 성숙해 자리잡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아니라, 만들어서 숫자를 채우고 난 다음에 내용을 갖추도록 밀어붙인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면서 "사회적경제에 관한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큰 그림과 세부적인 정책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회적 경제의 부조리를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이석근 서강대 사회적기업가센터장은 "단순히 돈만 쥐어줄 게 아니라, 사회적기업가나 협동조합 운영자들에게 잘 쓰고 잘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보조금을 지원하는 관리감독기관 소속 공무원들의 역량도 함께 키워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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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울린 사회적기업]② 엉터리 공시자료에 줄줄 새는 지원금
    • 입력 2020-09-20 10:00:11
    취재K
■ 들어가며...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돈벌이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제품을 만드는 일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있도록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만들어졌고, 2012년에는 협동조합기본법도 제정됐습니다.

'사회적 경제'가 자본주의의 보완 모델로 떠오르고, 복지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 기대되면서, 각 부처들도 앞다퉈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어촌공동체 사업을, 2011년 행정안전부는 마을기업을, 2012년 보건복지부는 자활기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현재 전국에 있는 협동조합은 18,000개가 넘고, 예비사회적기업과 사회적기업도 4,000개가 넘게 있습니다.

 전국에는 협동조합 18,624개, 예비사회적기업 1,586개, 사회적기업 2,570개 세워져있다. [사진 출처 : KBS 뉴스9]
■ 각종 혜택…세금 감면, 인건비 지원, 공공기관의 우선 구매까지

돈 안 되는 일에도 많은 기업들을 뛰어들게 한 유인책이 무엇이었을까요? 각종 혜택입니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사업개발비와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공공부문의 투자나 융자, 보증을 통한 자금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 최대 5년동안 법인세와 취·등록세 등을 아예 안 내거나 덜 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의 준비 단계인 예비사회적기업으로만 지정받아도, 사회적기업 못지않게 최대 3년동안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꽤 많습니다. 공공기관의 우선 구매 제도에는 사회적협동조합과 마을기업까지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기업 등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 예산은 매년 늘고 있습니다. 2018년 982억 400만 원에서 지난해 1,115억 7100만 원, 올해는 2020년 1,163억 2,700만 원이었습니다. 여기에 지방비 25~30%를 매칭하면, 지원금액은 훨씬 더 커집니다.

■ 강한 빛 뒤에는 짙은 그림자…느슨한 감시

강원도 춘천의 한 예비사회적기업이 각종 지원금을 받고도 장애인 직원의 월급 일부 반납을 강요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순기능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공적 지원금을 가로챘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시와 관리,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 부실과 비리도 늘고 있습니다.

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세운 강원도 춘천의 한 예비사회적기업이 2년 동안 장애인 직원들의 월급 일부를 되돌려받고 있었습니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은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아 춘천시로부터 인건비만 2,750만 원을 지원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0%~30%의 돈만 보태 직원 월급을 주면 되는데, 오히려 직원들의 급여 일부를 돌려받음으로써 회삿돈은 한 푼도 보태지 않은 셈이 됐습니다.

또,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 매년 의무적으로 인터넷에 공개해야하는 경영공시 자료도 엉터리였습니다. 같은 해, 같은 항목의 결산 금액이 20% 이상 차이가 났고, 2018년 손실액은 서류를 작성한 연도에 따라 수백만 원씩 달라졌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 대표는 회계 수치를 임의로 조작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재무제표상으로라도 경영실적을 좋게 만들어야 사회적기업으로 갈 때 점수가 좋게 나온다는 겁니다. 경영 책임은 약자인 장애인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경영 부실은 얕은 눈가림으로 속이는 등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인건비를 지원한 춘천시, 관리 감독을 해야 할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기관 가운데 어디 한 군데도 월급 횡령과 회계 비리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작정하고 속이려들면 수천만 원의 돈을 쥐어줘도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는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춘천의 한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기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회계 공시 수치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여기만 비리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광주광역시에서도 직원 급여의 일부를 되돌려받은 사회적기업이 '지정 취소'를 당했습니다. 강원도 철원에서는 직원에게 부당 근로를 시켰다가 적발된 사회적기업에게 인증 취소는 물론, 부정 수급에 해당하는 금액 1,800만 원 전액을 환수조치하고, 최대 5배의 제재금인 9,000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의 사례를 포함한 세 기업의 부정은 모두 내부 고발로 드러났습니다.

올해 7월까지 전국에서 지정이 취소된 사회적기업은 33곳. 이 가운데 부정한 방법으로 재정 지원을 받은 기업은 6곳입니다.

■ 사회적기업의 반(反)사회적 행태, 막을 수 없나?

전문가들은 사회적경제의 양적 성장만 추구하지 말고,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고민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안치용 한국 CSR연구소장은 "정부가 사회적 경제를 추진하면서, 내용이 성숙해 자리잡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아니라, 만들어서 숫자를 채우고 난 다음에 내용을 갖추도록 밀어붙인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면서 "사회적경제에 관한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큰 그림과 세부적인 정책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회적 경제의 부조리를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이석근 서강대 사회적기업가센터장은 "단순히 돈만 쥐어줄 게 아니라, 사회적기업가나 협동조합 운영자들에게 잘 쓰고 잘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보조금을 지원하는 관리감독기관 소속 공무원들의 역량도 함께 키워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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