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등급 ‘양호’에도 붕괴…옹벽이 위험하다

입력 2020.09.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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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등급 '양호'에도 옹벽 잇따라 붕괴 왜?

부산 금정구 한 아파트 인근의 옹벽입니다. 길이 180m가 넘는 이 옹벽 중 70m 가량이 지난 7월 잇따른 집중호우로 두 차례 무너졌습니다. 철근을 세우고 나무판자를 덧대는 임시복구를 했지만, 이 옹벽은 이후 부산을 덮친 제10호 태풍 '하이선'에 또 붕괴됐습니다.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세 번이나 무너진 겁니다.

부산 남구 운전면허시험장 인근 200m 규모 옹벽도 지난달 집중호우로 50m가량 무너졌습니다. 다행히 당시 주변에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도심 절반이 산으로 둘러싸인 부산은 산을 깎아 조성된 주거지가 많습니다. 산을 깎으면서 만들어진 급경사지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곳곳에 대규모 옹벽을 쌓아뒀는데요. 이런 옹벽들이 최근 쏟아진 집중호우와 태풍 때 잇따라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옹벽이 무너진 이 두 곳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받는 정밀안전점검에서 B 등급, 그러니까 안전등급 '양호' 수준을 받은 비교적 안전한 옹벽들이었습니다.

"옹벽 외관 상태 위주 점검 시스템 문제"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린 부산 남구 운전면허시험장 인근 옹벽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린 부산 남구 운전면허시험장 인근 옹벽

부산에서 안전점검을 받아야 하는 높이 5m, 길이 100m 이상의 2종 시설물 옹벽은 모두 292곳입니다. 이중 안전등급 A(우수) 등급이 118곳, B(양호) 등급이 170곳, C(보통) 등급이 4곳입니다. 붕괴위험이 큰 D(미흡) 등급과 E(불량) 등급은 없습니다.

옹벽 안전점검은 옹벽 소유주가 점검업체를 지정해 해야 합니다. 옹벽 소유주가 부산시면 부산시에서, 사유지면 시설물 소유주가 안전점검을 하고 그 결과를 한국시설안전공단 등에 제출해야 합니다. 정기안전점검은 매년 두 번, 정밀안전점검은 A 등급은 3년, B~C 등급은 2년에 한 번씩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안전점검을 할 때 경사면 배수 시설과 토질 등 옹벽 주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옹벽 상태 위주로만 살피는 현재의 안전점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최근 기후변화가 심각해 지면서 이번처럼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돌발상황이 많은데 이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정기안전점검 때는 단순히 옹벽 상태 등을 맨눈으로 살펴보고 이를 점검하는 업체에서 주관적으로 안전성 여부를 '양호' '보통' '불량'으로 나눠 평가합니다. 정밀안전점검 때는 점수를 매겨 옹벽의 안전등급을 정하는데 옹벽 상태와 관련한 조사는 10여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해 5개 등급으로 나눠 꼼꼼하게 점검합니다. 하지만 주변 경사면이나 배수시설에 대한 점검은 평가항목이 4개로 단순히 '적절'과 '부적절' 수준으로만 구분해 살피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점검을 맡은 업체가 대부분 토목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인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업체들이 옹벽 상태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살필 수 있겠지만, 토질이나 경사면 배수시설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최저가 업체 선정에 항구복구 난항…사유지는 더 문제

옹벽이 무너지면서 아파트 내부로 밀려 들어온 토사옹벽이 무너지면서 아파트 내부로 밀려 들어온 토사

아파트 등 사유지에 설치된 옹벽은 관리가 더욱 어렵습니다. 안전점검은 물론 사고 이후 복구 작업 등까지 시설 소유자가 나서서 하도록 하고 있는데 예산 문제 등으로 옹벽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 항구복구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구복구는 긴박하게 응급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추후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복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7월 무너진 금정구 한 아파트 옹벽 주변 주민들도 예산 문제로 아직 옹벽을 완전히 복구하지 못해 관할 구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급복구 외에 항구복구는 시설 소유주가 해야 한다"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안전진단을 할 때도 사유지 옹벽은 시설관리자가 업체를 직접 선정하게 돼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이 과정에서 정밀안전점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용을 대폭 줄인 최저가에 작업을 해주는 업체를 선정할 위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 "점검 시스템 변화 필요"

콘크리트 옹벽 정밀안전점검 상태평가 점검표콘크리트 옹벽 정밀안전점검 상태평가 점검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맞춰 옹벽 안전점검 시스템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우선 옹벽 상태뿐만 아니라 주변 배수시설과 토질, 경사면 등까지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점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를 위해 안전점검 때 지질 등 토목 분야 외 전문가도 참여하도록 해야 하고 점검 항목에서 배수시설 등 주변 환경에 대한 점검 항목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진교 부산과학기술대 교수는 "부산시 조례라도 개정해 점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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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등급 ‘양호’에도 붕괴…옹벽이 위험하다
    • 입력 2020-09-21 14:50:40
    취재K
안전등급 '양호'에도 옹벽 잇따라 붕괴 왜?

부산 금정구 한 아파트 인근의 옹벽입니다. 길이 180m가 넘는 이 옹벽 중 70m 가량이 지난 7월 잇따른 집중호우로 두 차례 무너졌습니다. 철근을 세우고 나무판자를 덧대는 임시복구를 했지만, 이 옹벽은 이후 부산을 덮친 제10호 태풍 '하이선'에 또 붕괴됐습니다.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세 번이나 무너진 겁니다.

부산 남구 운전면허시험장 인근 200m 규모 옹벽도 지난달 집중호우로 50m가량 무너졌습니다. 다행히 당시 주변에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도심 절반이 산으로 둘러싸인 부산은 산을 깎아 조성된 주거지가 많습니다. 산을 깎으면서 만들어진 급경사지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곳곳에 대규모 옹벽을 쌓아뒀는데요. 이런 옹벽들이 최근 쏟아진 집중호우와 태풍 때 잇따라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옹벽이 무너진 이 두 곳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받는 정밀안전점검에서 B 등급, 그러니까 안전등급 '양호' 수준을 받은 비교적 안전한 옹벽들이었습니다.

"옹벽 외관 상태 위주 점검 시스템 문제"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린 부산 남구 운전면허시험장 인근 옹벽
부산에서 안전점검을 받아야 하는 높이 5m, 길이 100m 이상의 2종 시설물 옹벽은 모두 292곳입니다. 이중 안전등급 A(우수) 등급이 118곳, B(양호) 등급이 170곳, C(보통) 등급이 4곳입니다. 붕괴위험이 큰 D(미흡) 등급과 E(불량) 등급은 없습니다.

옹벽 안전점검은 옹벽 소유주가 점검업체를 지정해 해야 합니다. 옹벽 소유주가 부산시면 부산시에서, 사유지면 시설물 소유주가 안전점검을 하고 그 결과를 한국시설안전공단 등에 제출해야 합니다. 정기안전점검은 매년 두 번, 정밀안전점검은 A 등급은 3년, B~C 등급은 2년에 한 번씩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안전점검을 할 때 경사면 배수 시설과 토질 등 옹벽 주변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옹벽 상태 위주로만 살피는 현재의 안전점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최근 기후변화가 심각해 지면서 이번처럼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돌발상황이 많은데 이에 대한 대비는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정기안전점검 때는 단순히 옹벽 상태 등을 맨눈으로 살펴보고 이를 점검하는 업체에서 주관적으로 안전성 여부를 '양호' '보통' '불량'으로 나눠 평가합니다. 정밀안전점검 때는 점수를 매겨 옹벽의 안전등급을 정하는데 옹벽 상태와 관련한 조사는 10여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해 5개 등급으로 나눠 꼼꼼하게 점검합니다. 하지만 주변 경사면이나 배수시설에 대한 점검은 평가항목이 4개로 단순히 '적절'과 '부적절' 수준으로만 구분해 살피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점검을 맡은 업체가 대부분 토목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인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업체들이 옹벽 상태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살필 수 있겠지만, 토질이나 경사면 배수시설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최저가 업체 선정에 항구복구 난항…사유지는 더 문제

옹벽이 무너지면서 아파트 내부로 밀려 들어온 토사
아파트 등 사유지에 설치된 옹벽은 관리가 더욱 어렵습니다. 안전점검은 물론 사고 이후 복구 작업 등까지 시설 소유자가 나서서 하도록 하고 있는데 예산 문제 등으로 옹벽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 항구복구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구복구는 긴박하게 응급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추후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복구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7월 무너진 금정구 한 아파트 옹벽 주변 주민들도 예산 문제로 아직 옹벽을 완전히 복구하지 못해 관할 구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급복구 외에 항구복구는 시설 소유주가 해야 한다"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안전진단을 할 때도 사유지 옹벽은 시설관리자가 업체를 직접 선정하게 돼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이 과정에서 정밀안전점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용을 대폭 줄인 최저가에 작업을 해주는 업체를 선정할 위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 "점검 시스템 변화 필요"

콘크리트 옹벽 정밀안전점검 상태평가 점검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맞춰 옹벽 안전점검 시스템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우선 옹벽 상태뿐만 아니라 주변 배수시설과 토질, 경사면 등까지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점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를 위해 안전점검 때 지질 등 토목 분야 외 전문가도 참여하도록 해야 하고 점검 항목에서 배수시설 등 주변 환경에 대한 점검 항목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진교 부산과학기술대 교수는 "부산시 조례라도 개정해 점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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