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물과 기름’ 스가-고이케…도쿄올림픽 성화 꺼뜨리나

입력 2020.09.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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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피폐해진 (일본) 경제, 사회를 뒤덮은 패배감을 떨쳐내기 위해선 내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개최가 반드시 필요하다. 총리 취임 회견에서 올림픽 개최를 위한 강한 결의를 듣지 못한 건 지극히 유감이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22일 실은 사설 내용입니다. 신문은 "도쿄올림픽 1년 연기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은 아베 전 총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훈수했습니다. '아베 노선 계승'을 대표 공약으로 내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를 압박하고 나선 것입니다. '스가 내각'은 출범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대표적 극우 성향 신문이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뭘까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내각 총사퇴 직후 도쿄 총리관저를 떠나고 있다. [교도=연합]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내각 총사퇴 직후 도쿄 총리관저를 떠나고 있다. [교도=연합]

아베 당부에 스가 '묵묵부답'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29일 사임 표명 기자회견에서 도쿄올림픽에 대해 "개최국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내 후임자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6년 8월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슈퍼마리오 복장으로 등장했습니다. 국가 수반이 그런 퍼포먼스를 보인 건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앞장서 유치한 도쿄 올림픽에 대한 애착이 컸습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자신의 정치적 '유산(legacy)'으로 삼을 요량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선 아베 총리의 퇴장을 곧 '도쿄올림픽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꽤 있습니다. 우선 도쿄올림픽 개최의 직접적 걸림돌인 코로나19 극복이 불투명합니다. 최근엔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뒷돈이 오고 간 것으로 의심되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죠. 무엇보다 회의론 확산 배경은 대회 개최를 강력하게 추진할 정치적 리더가 사라진 데 기인합니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지금까지 유독 도쿄올림픽 개최와 관련한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16일 취임 기자회견이나, 같은 날 스가 내각이 각의 결정한 기본 방침에는 올림픽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에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강력한 추진자가 사라지면서 빨간불이 켜졌다는 위기감이 대회조직위원회 내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물과 기름’으로 불리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 총리(왼쪽)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물과 기름’으로 불리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 총리(왼쪽)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스가-고이케는 '물과 기름'

일본 언론들이 특히 주목하는 건 스가 총리와 올림픽 개최 도시 수장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와의 관계입니다. 올림픽 성공을 위해선 두 사람의 '찰떡 공조'가 필수이겠지만, 이들은 최근까지도 마치 '물과 기름'처럼 대립을 반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11일, 당시 스가 관방장관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열린 강연에서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해 "이 문제는 압도적으로 '도쿄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쿄 중심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흘 뒤엔 도쿄도의 코로나19 감염자 중 양성 판정 후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지자체(도쿄도)의 책임"이라고 강공을 퍼부었습니다.

코이케 지사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광수요 진작을 위한) '고 투(Go To) 캠페인'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감염 대책과의) 양립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는 오히려 정부의 문제"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또 감염 방지 대책을 '냉방', 고 투 캠페인을 '난방'에 비유하면서 "냉방과 난방 양쪽을 모두 켜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갈 거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여행 장려 캠페인인 '고투 트래블'을 주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가 관방장관이었습니다.

고이케 도쿄도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쓰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마스크는 ‘아베노마스크’에 빗대 ‘유리코노마스크’란 별명을 얻었다. [출처=닛칸스포츠]고이케 도쿄도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쓰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마스크는 ‘아베노마스크’에 빗대 ‘유리코노마스크’란 별명을 얻었다. [출처=닛칸스포츠]

■'뿌리 깊은' 악연 이어질까

두 사람의 악연은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코이케는 집권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독자 출마해 도쿄도의 첫 여성 지사가 됐습니다. 출마 과정에서 "자민당 도쿄도련(도쿄도지부연합회)은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불투명하다. '블랙박스' 같다"며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반면에 스가는 자민당 후보 지원 연설에서 "'극장형 인간'에게 도정을 맡길 수 없다"며 '고이케 낙선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방송국 뉴스 앵커 출신으로 이미지와 퍼포먼스를 앞세워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에만 열중한다는, 이른바 '고이케식 극장(劇場) 정치'를 비판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불패가도를 달리던 자민당 정권은 고이케가 이끄는 신생 지역 정당에 참패했습니다.

갈등은 고이케가 도지사가 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스가 총리는 아키타(秋田)현의 한 딸기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막노동을 전전한 뒤 뒤늦게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에게 '지방 창생'(지방경제 활성화)과 해외 관광객 유치는 바늘과 실의 관계였습니다. 관광입국의 사령탑이었던 스가에게 '지방 창생'은 더욱 각별했습니다.

그런 스가 관방장관이 세입 재원 편재를 시정하거나, 고향세 도입 등 지방 중시 정책을 주도하자 고이케 지사는 "(도쿄도 세수입의 지방 재분배)는 도민의 생활을 위협한다"며 발끈하기도 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아래 가운데)가 지난 16일,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다른 각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교도=연합]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아래 가운데)가 지난 16일,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다른 각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교도=연합]

"극장 정치" VS. "흑의 정치"

두 사람은 정치 스타일마저 판이합니다. 화려하고 직설적인 고이케 지사와 달리 스가 총리는 '흑의(黒衣·くろご) 정치'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흑의'는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歌舞伎) 무대에서 검은 옷을 입고 배우 뒤에서 연기를 돕는 사람을 뜻합니다.

실제로 2012년 12월 아베 정권 발족 후 8년 가까이 관방장관으로 재임했던 스가가 '아베의 입' 역할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코멘트(발언·논평)를 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민감한 이슈는 좀처럼 답변을 내놓지 않는 '철통 방어' 회견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스가 총리는 지난 2일 한 민영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관계"라고 애둘러 표현했습니다. 코이케 지사 역시 14일 "(스가 총리와) 의견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18일 회견에선 '스가 총리와 만날 예정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새로운 정권과 제휴하는 건 나라에도, 도에도 필요하다"며 확전을 경계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22일 스가 신임 총리를 향해 “도쿄올림픽 개최 결의를 듣고 싶다”는 사설을 실었다.일본 산케이신문이 22일 스가 신임 총리를 향해 “도쿄올림픽 개최 결의를 듣고 싶다”는 사설을 실었다.

'총리 자리' 두고 셈법 다를까?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도쿄도와 대회 조직위와 감염증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대책 조정 회의'를 발족시켰습니다. 내년 여름까지 코로나의 세계적인 종식은 어렵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1만 1000여 명의 올림픽 선수들의 출·입국 완화 조치 외에 검사 실시, 의료체계 확립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로써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부딪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사람에겐 올림픽 연기와 코로나19 대책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 등에서 어려운 조정 작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면서 '올-재팬(All-Japan) 전략'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정치 일정도 변수입니다. 스가 총리의 임기는 아베 전 총리 잔여 임기인 내년 9월까지입니다. 도쿄올림픽(2021년 7월 23일~8월 8일)은 이제 그의 몫입니다. 스가 총리는 우선 아베 총재의 잔여 임기를 채우고 연임을 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연임에 성공한 고이케 지사 역시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총리에 도전한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합니다.

스가 총리(당시 관방장관)는 지난 3월, 당시 아베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올림픽 1년 연기'를 결정하는 전화 협의를 하던 자리에 동석했습니다. '의사 결정'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스가 총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도쿄올림픽을 강행하는 게 자신의 장기 집권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할까요? 아니면 이미 물러난 아베 전 총리에게 '정치적 유산'을 안기고,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야망에 '비단길'을 깔아줄 뿐이라고 여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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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물과 기름’ 스가-고이케…도쿄올림픽 성화 꺼뜨리나
    • 입력 2020-09-22 14:51:34
    특파원 리포트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일본) 경제, 사회를 뒤덮은 패배감을 떨쳐내기 위해선 내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개최가 반드시 필요하다. 총리 취임 회견에서 올림픽 개최를 위한 강한 결의를 듣지 못한 건 지극히 유감이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22일 실은 사설 내용입니다. 신문은 "도쿄올림픽 1년 연기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은 아베 전 총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훈수했습니다. '아베 노선 계승'을 대표 공약으로 내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를 압박하고 나선 것입니다. '스가 내각'은 출범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대표적 극우 성향 신문이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뭘까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내각 총사퇴 직후 도쿄 총리관저를 떠나고 있다. [교도=연합]
아베 당부에 스가 '묵묵부답'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29일 사임 표명 기자회견에서 도쿄올림픽에 대해 "개최국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내 후임자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6년 8월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슈퍼마리오 복장으로 등장했습니다. 국가 수반이 그런 퍼포먼스를 보인 건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앞장서 유치한 도쿄 올림픽에 대한 애착이 컸습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자신의 정치적 '유산(legacy)'으로 삼을 요량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선 아베 총리의 퇴장을 곧 '도쿄올림픽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꽤 있습니다. 우선 도쿄올림픽 개최의 직접적 걸림돌인 코로나19 극복이 불투명합니다. 최근엔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뒷돈이 오고 간 것으로 의심되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죠. 무엇보다 회의론 확산 배경은 대회 개최를 강력하게 추진할 정치적 리더가 사라진 데 기인합니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지금까지 유독 도쿄올림픽 개최와 관련한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16일 취임 기자회견이나, 같은 날 스가 내각이 각의 결정한 기본 방침에는 올림픽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에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강력한 추진자가 사라지면서 빨간불이 켜졌다는 위기감이 대회조직위원회 내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물과 기름’으로 불리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 총리(왼쪽)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스가-고이케는 '물과 기름'

일본 언론들이 특히 주목하는 건 스가 총리와 올림픽 개최 도시 수장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와의 관계입니다. 올림픽 성공을 위해선 두 사람의 '찰떡 공조'가 필수이겠지만, 이들은 최근까지도 마치 '물과 기름'처럼 대립을 반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11일, 당시 스가 관방장관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열린 강연에서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해 "이 문제는 압도적으로 '도쿄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쿄 중심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흘 뒤엔 도쿄도의 코로나19 감염자 중 양성 판정 후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지자체(도쿄도)의 책임"이라고 강공을 퍼부었습니다.

코이케 지사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광수요 진작을 위한) '고 투(Go To) 캠페인'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감염 대책과의) 양립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는 오히려 정부의 문제"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또 감염 방지 대책을 '냉방', 고 투 캠페인을 '난방'에 비유하면서 "냉방과 난방 양쪽을 모두 켜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갈 거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여행 장려 캠페인인 '고투 트래블'을 주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가 관방장관이었습니다.

고이케 도쿄도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쓰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마스크는 ‘아베노마스크’에 빗대 ‘유리코노마스크’란 별명을 얻었다. [출처=닛칸스포츠]
■'뿌리 깊은' 악연 이어질까

두 사람의 악연은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코이케는 집권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독자 출마해 도쿄도의 첫 여성 지사가 됐습니다. 출마 과정에서 "자민당 도쿄도련(도쿄도지부연합회)은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불투명하다. '블랙박스' 같다"며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반면에 스가는 자민당 후보 지원 연설에서 "'극장형 인간'에게 도정을 맡길 수 없다"며 '고이케 낙선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방송국 뉴스 앵커 출신으로 이미지와 퍼포먼스를 앞세워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에만 열중한다는, 이른바 '고이케식 극장(劇場) 정치'를 비판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불패가도를 달리던 자민당 정권은 고이케가 이끄는 신생 지역 정당에 참패했습니다.

갈등은 고이케가 도지사가 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스가 총리는 아키타(秋田)현의 한 딸기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막노동을 전전한 뒤 뒤늦게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에게 '지방 창생'(지방경제 활성화)과 해외 관광객 유치는 바늘과 실의 관계였습니다. 관광입국의 사령탑이었던 스가에게 '지방 창생'은 더욱 각별했습니다.

그런 스가 관방장관이 세입 재원 편재를 시정하거나, 고향세 도입 등 지방 중시 정책을 주도하자 고이케 지사는 "(도쿄도 세수입의 지방 재분배)는 도민의 생활을 위협한다"며 발끈하기도 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아래 가운데)가 지난 16일,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다른 각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교도=연합]
"극장 정치" VS. "흑의 정치"

두 사람은 정치 스타일마저 판이합니다. 화려하고 직설적인 고이케 지사와 달리 스가 총리는 '흑의(黒衣·くろご) 정치'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흑의'는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歌舞伎) 무대에서 검은 옷을 입고 배우 뒤에서 연기를 돕는 사람을 뜻합니다.

실제로 2012년 12월 아베 정권 발족 후 8년 가까이 관방장관으로 재임했던 스가가 '아베의 입' 역할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코멘트(발언·논평)를 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민감한 이슈는 좀처럼 답변을 내놓지 않는 '철통 방어' 회견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스가 총리는 지난 2일 한 민영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통 관계"라고 애둘러 표현했습니다. 코이케 지사 역시 14일 "(스가 총리와) 의견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고, 18일 회견에선 '스가 총리와 만날 예정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새로운 정권과 제휴하는 건 나라에도, 도에도 필요하다"며 확전을 경계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22일 스가 신임 총리를 향해 “도쿄올림픽 개최 결의를 듣고 싶다”는 사설을 실었다.
'총리 자리' 두고 셈법 다를까?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도쿄도와 대회 조직위와 감염증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대책 조정 회의'를 발족시켰습니다. 내년 여름까지 코로나의 세계적인 종식은 어렵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1만 1000여 명의 올림픽 선수들의 출·입국 완화 조치 외에 검사 실시, 의료체계 확립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로써 스가 총리와 고이케 지사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부딪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사람에겐 올림픽 연기와 코로나19 대책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 등에서 어려운 조정 작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면서 '올-재팬(All-Japan) 전략'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정치 일정도 변수입니다. 스가 총리의 임기는 아베 전 총리 잔여 임기인 내년 9월까지입니다. 도쿄올림픽(2021년 7월 23일~8월 8일)은 이제 그의 몫입니다. 스가 총리는 우선 아베 총재의 잔여 임기를 채우고 연임을 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연임에 성공한 고이케 지사 역시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총리에 도전한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합니다.

스가 총리(당시 관방장관)는 지난 3월, 당시 아베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올림픽 1년 연기'를 결정하는 전화 협의를 하던 자리에 동석했습니다. '의사 결정'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스가 총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도쿄올림픽을 강행하는 게 자신의 장기 집권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할까요? 아니면 이미 물러난 아베 전 총리에게 '정치적 유산'을 안기고,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야망에 '비단길'을 깔아줄 뿐이라고 여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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