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 못해 쓴맛’ 감귤 유통…“환불도 불가?”

입력 2020.09.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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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기준에 떨어지는 이른바 '비상품 감귤'이 온라인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면서 벌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추석을 앞두고 제철이 아닌 질 낮은 감귤이 출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도가 '드론'까지 띄우며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가벼운 과태료 처분에다 일부 비양심 농가와 유통업자의 욕심으로 인해, 제주 감귤 이미지 추락과 신뢰 저하도 우려되고 있다.

한 소셜커머스 업체에 등록된 ‘비가림 감귤’ 소개 페이지. 시청자 제공한 소셜커머스 업체에 등록된 ‘비가림 감귤’ 소개 페이지. 시청자 제공

■집으로 배송된 '비가림귤'…알고 보니 '비상품 감귤'

서울에 사는 40대 주부 A 씨는 이달 초, 한 소셜커머스 업체를 통해 제주 감귤 한 상자를 구매했다. 지역민들이 가입한 카페 등에서 "싸고 좋은 귤이 올라왔다"며 입소문이 자자했던 상품이었다.

태풍 등으로 배송이 늦어진다는 판매자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기다린 지 10여 일. 집으로 배송된 상자를 열어보니, 한눈에 봐도 익지 않은 딱딱하고 새파란 귤만 가득했다. '청귤'로 잘못 주문한 줄 알았으나, 주문 내역에도 '비가림 감귤(하우스 귤의 일종)'에 표시돼 있어, A 씨의 주문 실수는 아니었다.

판매자 측에서 잘못 배송했는지 문의하기 위해 연락해도 묵묵부답. 해당 상품을 게시한 소셜커머스 업체에선 "고객님이 주문하신 비가림 일반 귤이 맞다"는 답변이 왔다.

A 씨의 집으로 배송된 ‘감귤’. 시청자 제공A 씨의 집으로 배송된 ‘감귤’. 시청자 제공

업체 측은 "상품 설명란에 '초록색을 띨 수 있다고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판매상 아무런 하자가 없으며, 환불은 불가"라는 답변도 덧붙였다.

A 씨는 하는 수 없이 10살짜리 아들과 함께 주문한 귤 하나를 꺼내 까먹어보기로 했다. 새파란 과육은 너무 딱딱한 데다, 껍질에 손톱을 밀어 넣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A 씨는 "감귤을 칼로 잘라서 힘겹게 까먹었더니, 시다 못해 쓴맛이 났다"고 말했다.

껍질이 벗겨지지도 않는 시고 쓴 귤을 받아든 것은 A 씨 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사이트에 올라온 구매자들의 댓글엔 환불 요청과 항의가 가득했다. 의견 2천여 건 대부분이 "왜 청귤을 보냈느냐",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문제의 귤이 판매된 한 소셜커머스 페이지에 올라온 항의 댓글. 시청자 제공문제의 귤이 판매된 한 소셜커머스 페이지에 올라온 항의 댓글. 시청자 제공

A 씨는 '문제의 귤은 유통될 수 없는 품질'이라는 제주도 측 답변을 받고, 소셜커머스 업체에 환불을 요구했다. 그는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이런 먹을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전자상거래 업체와 판매자가 사기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해당 소셜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오픈마켓의 특성상 모든 상품 검수가 어려운 불가피한 상황이라서, 환불 등 사후조치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이번 건처럼 상품에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땐 판매자와 협의해, 환불 요청을 하신 고객들께 환불을 해 드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소비자가 해당 사이트를 통해 똑같은 감귤 상품을 구매한 뒤 촬영한 사진. 시청자 제공또 다른 소비자가 해당 사이트를 통해 똑같은 감귤 상품을 구매한 뒤 촬영한 사진. 시청자 제공

■'감귤 단속' 비웃듯…벌써 비상품귤 70톤 적발

덜 익은 감귤이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제주도도 현장 점검과 단속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제철보다 이른 시기인 이맘때쯤에 상품 가치가 없는 극조생 비상품감귤이 유통되면, 이후 출하되는 정상적인 감귤의 가격과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길었던 장마와 연이은 태풍의 북상으로 다른 지역 과일 작황이 좋지 않은 탓에, 제주 감귤은 올해 상대적으로 호재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불량 감귤' 유통과 그로 인한 감귤 가격 하락 여파에 제주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이다.

지난 20일 제주 서귀포시의 ‘드론 단속’을 통해 적발된 비상품 감귤 수확 현장. 서귀포시 제공지난 20일 제주 서귀포시의 ‘드론 단속’을 통해 적발된 비상품 감귤 수확 현장. 서귀포시 제공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23일 현재까지 비상품 감귤을 수확해 불법 유통하려던 현장 9건을 잡아, 비상품 감귤 물량 70.6톤을 적발해 폐기 명령했다고 밝혔다. 설익은 감귤을 일찍 수확한 뒤 에틸렌 가스 등을 주입해 빨리 익히려고 하거나, 화학약품을 이용해 억지로 색을 입혀 판매하려던 것들이다.

올해 10월 10일 이전에 극조생 감귤을 출하하려는 농가와 유통인은 양 행정시 농정과에 신고해 수확 전에 당도 검사를 의뢰한 뒤, 확인을 받고 출하해야 한다.

제주도는 조례에 근거해 사전 검사를 받지 않거나, 당도나 크기 등이 기준보다 떨어지는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는 자에게 과태료 최대 500만 원을 매기고 있다. 조례가 개정되면 과태료 액수는 최대 천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지난 22일 제주시에서 적발된 비상품 감귤 4.2톤 분량. 익기 전에 수확한 뒤 약품으로 후숙 처리해 유통하려던 것들이다. 제주시 제공지난 22일 제주시에서 적발된 비상품 감귤 4.2톤 분량. 익기 전에 수확한 뒤 약품으로 후숙 처리해 유통하려던 것들이다. 제주시 제공

코로나 시대를 맞아 비대면·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상품을 직접 보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틈새를 파고드는 '비양심' 판매자들로 인해 눈 뜨고 코 베이는 소비자들의 피해 속출도 우려된다.

이상식 한국소비자원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장은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는 전자상거래로 구매한 제품에 대해 일주일 이내에 반품·환불 등을 할 수 있고, 허위과장 광고 등 선전한 제품과 다른 제품이 배송됐을 땐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청약철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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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다 못해 쓴맛’ 감귤 유통…“환불도 불가?”
    • 입력 2020-09-23 15:07:03
    취재K
품질 기준에 떨어지는 이른바 '비상품 감귤'이 온라인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면서 벌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추석을 앞두고 제철이 아닌 질 낮은 감귤이 출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도가 '드론'까지 띄우며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가벼운 과태료 처분에다 일부 비양심 농가와 유통업자의 욕심으로 인해, 제주 감귤 이미지 추락과 신뢰 저하도 우려되고 있다.

한 소셜커머스 업체에 등록된 ‘비가림 감귤’ 소개 페이지. 시청자 제공
■집으로 배송된 '비가림귤'…알고 보니 '비상품 감귤'

서울에 사는 40대 주부 A 씨는 이달 초, 한 소셜커머스 업체를 통해 제주 감귤 한 상자를 구매했다. 지역민들이 가입한 카페 등에서 "싸고 좋은 귤이 올라왔다"며 입소문이 자자했던 상품이었다.

태풍 등으로 배송이 늦어진다는 판매자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기다린 지 10여 일. 집으로 배송된 상자를 열어보니, 한눈에 봐도 익지 않은 딱딱하고 새파란 귤만 가득했다. '청귤'로 잘못 주문한 줄 알았으나, 주문 내역에도 '비가림 감귤(하우스 귤의 일종)'에 표시돼 있어, A 씨의 주문 실수는 아니었다.

판매자 측에서 잘못 배송했는지 문의하기 위해 연락해도 묵묵부답. 해당 상품을 게시한 소셜커머스 업체에선 "고객님이 주문하신 비가림 일반 귤이 맞다"는 답변이 왔다.

A 씨의 집으로 배송된 ‘감귤’. 시청자 제공
업체 측은 "상품 설명란에 '초록색을 띨 수 있다고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판매상 아무런 하자가 없으며, 환불은 불가"라는 답변도 덧붙였다.

A 씨는 하는 수 없이 10살짜리 아들과 함께 주문한 귤 하나를 꺼내 까먹어보기로 했다. 새파란 과육은 너무 딱딱한 데다, 껍질에 손톱을 밀어 넣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A 씨는 "감귤을 칼로 잘라서 힘겹게 까먹었더니, 시다 못해 쓴맛이 났다"고 말했다.

껍질이 벗겨지지도 않는 시고 쓴 귤을 받아든 것은 A 씨 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사이트에 올라온 구매자들의 댓글엔 환불 요청과 항의가 가득했다. 의견 2천여 건 대부분이 "왜 청귤을 보냈느냐",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문제의 귤이 판매된 한 소셜커머스 페이지에 올라온 항의 댓글. 시청자 제공
A 씨는 '문제의 귤은 유통될 수 없는 품질'이라는 제주도 측 답변을 받고, 소셜커머스 업체에 환불을 요구했다. 그는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이런 먹을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전자상거래 업체와 판매자가 사기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해당 소셜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오픈마켓의 특성상 모든 상품 검수가 어려운 불가피한 상황이라서, 환불 등 사후조치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이번 건처럼 상품에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땐 판매자와 협의해, 환불 요청을 하신 고객들께 환불을 해 드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소비자가 해당 사이트를 통해 똑같은 감귤 상품을 구매한 뒤 촬영한 사진. 시청자 제공
■'감귤 단속' 비웃듯…벌써 비상품귤 70톤 적발

덜 익은 감귤이 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제주도도 현장 점검과 단속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제철보다 이른 시기인 이맘때쯤에 상품 가치가 없는 극조생 비상품감귤이 유통되면, 이후 출하되는 정상적인 감귤의 가격과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길었던 장마와 연이은 태풍의 북상으로 다른 지역 과일 작황이 좋지 않은 탓에, 제주 감귤은 올해 상대적으로 호재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불량 감귤' 유통과 그로 인한 감귤 가격 하락 여파에 제주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이다.

지난 20일 제주 서귀포시의 ‘드론 단속’을 통해 적발된 비상품 감귤 수확 현장. 서귀포시 제공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23일 현재까지 비상품 감귤을 수확해 불법 유통하려던 현장 9건을 잡아, 비상품 감귤 물량 70.6톤을 적발해 폐기 명령했다고 밝혔다. 설익은 감귤을 일찍 수확한 뒤 에틸렌 가스 등을 주입해 빨리 익히려고 하거나, 화학약품을 이용해 억지로 색을 입혀 판매하려던 것들이다.

올해 10월 10일 이전에 극조생 감귤을 출하하려는 농가와 유통인은 양 행정시 농정과에 신고해 수확 전에 당도 검사를 의뢰한 뒤, 확인을 받고 출하해야 한다.

제주도는 조례에 근거해 사전 검사를 받지 않거나, 당도나 크기 등이 기준보다 떨어지는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는 자에게 과태료 최대 500만 원을 매기고 있다. 조례가 개정되면 과태료 액수는 최대 천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지난 22일 제주시에서 적발된 비상품 감귤 4.2톤 분량. 익기 전에 수확한 뒤 약품으로 후숙 처리해 유통하려던 것들이다. 제주시 제공
코로나 시대를 맞아 비대면·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상품을 직접 보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틈새를 파고드는 '비양심' 판매자들로 인해 눈 뜨고 코 베이는 소비자들의 피해 속출도 우려된다.

이상식 한국소비자원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장은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는 전자상거래로 구매한 제품에 대해 일주일 이내에 반품·환불 등을 할 수 있고, 허위과장 광고 등 선전한 제품과 다른 제품이 배송됐을 땐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청약철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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