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빈 집’ 낙찰받았는데 버젓이 세입자가…나라가 책임져!

입력 2020.09.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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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경매가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지도 꽤 됐습니다. 법원 경매에서 분명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란 걸 확인받고 부동산을 낙찰받았는데, 정작 집을 찾아가보니 세입자가 있다면 당황스럽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세입자에겐 아무 잘못도 없었다면, 낙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세입자에게 임대보증금을 돌려줬다면 누구에게서 배상받을 수 있을까요. 공무원들의 실수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을 전해드립니다.

2018년 A 씨는 서울북부지법 강제경매에 나온 서울 노원구 한 빌라의 111호실을 낙찰 받았습니다. 집행관은 이때 해당 지번주소와 도로명주소로 111호에 전입한 세대가 있는지 조사했지만, 전산상 이 주소로 전입한 세대는 없었습니다.

이를 믿고 부동산을 낙찰받은 A씨는 이후 해당 호실에 임차인 B 씨가 산단 사실을 뒤늦게 알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동사무소 공무원, 세입자 주소 '111호→111동' 잘못 입력

일의 발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입자 B 씨는 지난 2000년 6월 해당 빌라 111호로 이사왔습니다. B 씨는 동사무소에 찾아가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동 ****-3, OO빌라 111'에 전입했다며 정상적으로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문제는 서울시 노원구 OO 1동 동사무소의 주민등록 입력 담당공무원이 B 씨의 전입신고 업무를 처리하면서 '호' 란에 기입해야 할 숫자 '111'을 '동' 란에 잘못 입력했단 점이었습니다. B 씨의 주소가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동 ****-3, OO빌라 111동'으로 입력된 겁니다.

아무도 잘못을 눈치채지 못한 채 B씨의 잘못된 주소는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정부가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대대적으로 전환할 때도 잘못된 주소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또다른 동사무소 공무원은 2011년 10월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주소변환을 하면서 B 씨의 주소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로 ***길 OO-O, 111호'라고 되었어야 할 B 씨의 도로명주소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로 ***길 OO-O, 111동'으로 잘못 변환됐습니다.

그 결과 강제경매를 맡은 집행관은 지번주소 및 도로명 주소로 '111호'의 전입세대를 정상적으로 열람했지만, 당연하게도 전산상 전입세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A씨는 임차인이 없는 것으로 오해한 채 이 사건 부동산을 낙찰받았고, 자신도 모르게 전 주인과 부동산 임차인 B 씨와의 임대차관계를 승계하게 돼 B 씨의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를 지게 됐습니다. 잘못된 주소는 새 집주인을 맞이한 B 씨의 신고로 2018년 8월에야 고쳐졌습니다.

■경매 낙찰받고 졸지에 임대차보증금 물어내…나라에 소송

대법원은 부동산이 매매된 경우 바뀐 집주인은 세입자와의 임대차관계를 인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집주인 A 씨는 임대차기간이 종료된 2020년 5월, B 씨에게 임차보증금 2500만원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생돈을 물어준 A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동사무소 공무원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A 씨가 B 씨에게 지급한 임대차보증금만큼의 돈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대한민국 소속 동사무소 주민등록 입력 담당공무원 및 도로명주소 변환 담당공무원에게는 직무집행상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판사는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올바르게 하였는데 담당공무원의 착오로 당해 부동산의 지번이 다소 틀리게 기재된 것이므로, B 씨의 임대차는 제3자에게 효력이 있다"며 "원고의 B 씨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과 위 공무원들의 직무집행상의 과실과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판사는 "피고 대한민국은 A 씨에게 임대차보증금 2500만원만큼을 배상하라"고 결론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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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빈 집’ 낙찰받았는데 버젓이 세입자가…나라가 책임져!
    • 입력 2020-09-26 09:01:23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경매가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지도 꽤 됐습니다. 법원 경매에서 분명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란 걸 확인받고 부동산을 낙찰받았는데, 정작 집을 찾아가보니 세입자가 있다면 당황스럽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세입자에겐 아무 잘못도 없었다면, 낙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세입자에게 임대보증금을 돌려줬다면 누구에게서 배상받을 수 있을까요. 공무원들의 실수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을 전해드립니다.

2018년 A 씨는 서울북부지법 강제경매에 나온 서울 노원구 한 빌라의 111호실을 낙찰 받았습니다. 집행관은 이때 해당 지번주소와 도로명주소로 111호에 전입한 세대가 있는지 조사했지만, 전산상 이 주소로 전입한 세대는 없었습니다.

이를 믿고 부동산을 낙찰받은 A씨는 이후 해당 호실에 임차인 B 씨가 산단 사실을 뒤늦게 알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동사무소 공무원, 세입자 주소 '111호→111동' 잘못 입력

일의 발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입자 B 씨는 지난 2000년 6월 해당 빌라 111호로 이사왔습니다. B 씨는 동사무소에 찾아가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동 ****-3, OO빌라 111'에 전입했다며 정상적으로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문제는 서울시 노원구 OO 1동 동사무소의 주민등록 입력 담당공무원이 B 씨의 전입신고 업무를 처리하면서 '호' 란에 기입해야 할 숫자 '111'을 '동' 란에 잘못 입력했단 점이었습니다. B 씨의 주소가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동 ****-3, OO빌라 111동'으로 입력된 겁니다.

아무도 잘못을 눈치채지 못한 채 B씨의 잘못된 주소는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정부가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대대적으로 전환할 때도 잘못된 주소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또다른 동사무소 공무원은 2011년 10월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주소변환을 하면서 B 씨의 주소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로 ***길 OO-O, 111호'라고 되었어야 할 B 씨의 도로명주소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OO로 ***길 OO-O, 111동'으로 잘못 변환됐습니다.

그 결과 강제경매를 맡은 집행관은 지번주소 및 도로명 주소로 '111호'의 전입세대를 정상적으로 열람했지만, 당연하게도 전산상 전입세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A씨는 임차인이 없는 것으로 오해한 채 이 사건 부동산을 낙찰받았고, 자신도 모르게 전 주인과 부동산 임차인 B 씨와의 임대차관계를 승계하게 돼 B 씨의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를 지게 됐습니다. 잘못된 주소는 새 집주인을 맞이한 B 씨의 신고로 2018년 8월에야 고쳐졌습니다.

■경매 낙찰받고 졸지에 임대차보증금 물어내…나라에 소송

대법원은 부동산이 매매된 경우 바뀐 집주인은 세입자와의 임대차관계를 인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집주인 A 씨는 임대차기간이 종료된 2020년 5월, B 씨에게 임차보증금 2500만원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생돈을 물어준 A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동사무소 공무원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A 씨가 B 씨에게 지급한 임대차보증금만큼의 돈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대한민국 소속 동사무소 주민등록 입력 담당공무원 및 도로명주소 변환 담당공무원에게는 직무집행상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판사는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올바르게 하였는데 담당공무원의 착오로 당해 부동산의 지번이 다소 틀리게 기재된 것이므로, B 씨의 임대차는 제3자에게 효력이 있다"며 "원고의 B 씨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과 위 공무원들의 직무집행상의 과실과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판사는 "피고 대한민국은 A 씨에게 임대차보증금 2500만원만큼을 배상하라"고 결론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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