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폐업 줄어든 이유는?…“인수자 없어 보증금까지 날린다”

입력 2020.09.28 (10:20) 수정 2020.09.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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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 재유행이 시작되면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습니다. 확진자 수가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 백 명대 수준을 유지하며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9개월째 이어진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건 자영업자들입니다. 이 때문에 매달 계속되는 적자가 부담돼 차선책으로 투자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아예 폐업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폐업이라는 선택지마저 자영업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니 권리금은커녕, 임대료 때문에 보증금마저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적자 때문에 운영할 수도,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자영업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20여 년 장사 끝에 남은 건 빚...”권리금은커녕 보증금도 받지 못해“

22년간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냉면집을 운영한 박회숙 씨는 지난달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장사한 박 씨에게 남은 건 몇 달 전 받은 대출뿐입니다.

코로나19로 장사가 어려워지자 박 씨는 보증금과 권리금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올해 초 가게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임대인은 임대료를 오히려 올려 내놨고,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취재진이 박회숙 씨와 인터뷰하고 있다.취재진이 박회숙 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결국, 박 씨는 임대 계약이 만료되는 8월이 돼서야 가게를 정리했는데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권리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임대인은 박 씨에게 가게를 예전 상태로 돌려놓으라며 '원상복구비용'을 요구했습니다. 임대료까지 석 달 밀린 상태에서 박 씨는 원상복구비용을 낼 돈이 없었고, 이런 이유로 아직 보증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회숙 씨는 "1~2년 장사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오래 장사했는데 빈손으로 나오게 됐다"며 "가게를 원상복구 하고 나가라고 하니까 참담하고,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광복절 집회 이후 매출 반토막..."개천절 집회가 걱정"

폐업하고 싶어도 코로나19로 불황이다 보니 다음 임차인을 찾지 못하는 겁니다. 지난 6월 1억 원 가까이 투자해 식당을 연 심태섭 씨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갈수록 매출은 떨어졌지만, 직원 수를 줄여가며 어떻게든 버텼는데 지난달 광복절 집회 이후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떨어지자 직원 월급을 주지 못했고, 결국 가게를 정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가게를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임대료는 밀리고, 직원마저 없으니 영업할 수 없어 현재 임시 휴업 중입니다.

심태섭 씨가 다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심태섭 씨가 다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심 씨에게 가장 큰 부담은 임대료입니다. 한 달 임대료는 320만 원으로 임대인에게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별수 없이 다시 문을 여는 방법밖에 없어서 준비 중인데, 곧 다가올 개천절 집회가 걱정입니다.

심태섭 씨는 "혹시 모르니 계속 임대는 내놓겠지만, 일단 다시 가게 영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만약 개천절에 또 광화문처럼 집회해서 코로나19 확산이 커지면 그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며 "매일 빚만 늘어가는 것 보면 피가 마른다. 하루하루 버틴다는 게 너무 힘들고,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폐업 오히려 ‘감소’...소상공인 위한 ‘단계별 지원책’ 필요

폐업이라는 선택지마저 없는 자영업자들, 실제로 정부에서 집계한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폐업 건수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시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폐업한 일반음식점은 4,683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793건에 비해 20%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서울 시내 일반음식점 폐업 건수.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었다.서울 시내 일반음식점 폐업 건수.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었다.

폐업이 오히려 감소한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문가들은 매우 심각한 신호라고 지적합니다. 소상공인연합회 차남수 연구위원은 "권리금을 포기하고 내놔도 들어올 사람이 없는 건데, 자영업자들은 권리금도 못 받고, 보증금마저 밀린 임대료로 다 잃은 상태에서 가게를 나와야 한다"며 "경제가 정상적일 때는 폐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지금은 나가기도 어렵고, 들어오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경제)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영업자를 위한 단계별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급한 대로 일회성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1~3단계로 별도의 지침이 있는 것처럼 소상공인 위한 경제지원책도 단계별로 필요하다는 겁니다.

차 연구위원은 "국가가 감염병 예방뿐 아니라 소상공인 대책 역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피해를 당한 다음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감염병 단계별로 경제적 대응도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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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8 10:20:09
    • 수정2020-09-28 10:21:05
    취재K
지난달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 재유행이 시작되면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습니다. 확진자 수가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 백 명대 수준을 유지하며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9개월째 이어진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건 자영업자들입니다. 이 때문에 매달 계속되는 적자가 부담돼 차선책으로 투자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아예 폐업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폐업이라는 선택지마저 자영업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니 권리금은커녕, 임대료 때문에 보증금마저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적자 때문에 운영할 수도,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자영업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20여 년 장사 끝에 남은 건 빚...”권리금은커녕 보증금도 받지 못해“

22년간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냉면집을 운영한 박회숙 씨는 지난달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장사한 박 씨에게 남은 건 몇 달 전 받은 대출뿐입니다.

코로나19로 장사가 어려워지자 박 씨는 보증금과 권리금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올해 초 가게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임대인은 임대료를 오히려 올려 내놨고,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취재진이 박회숙 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결국, 박 씨는 임대 계약이 만료되는 8월이 돼서야 가게를 정리했는데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권리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임대인은 박 씨에게 가게를 예전 상태로 돌려놓으라며 '원상복구비용'을 요구했습니다. 임대료까지 석 달 밀린 상태에서 박 씨는 원상복구비용을 낼 돈이 없었고, 이런 이유로 아직 보증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회숙 씨는 "1~2년 장사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오래 장사했는데 빈손으로 나오게 됐다"며 "가게를 원상복구 하고 나가라고 하니까 참담하고,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광복절 집회 이후 매출 반토막..."개천절 집회가 걱정"

폐업하고 싶어도 코로나19로 불황이다 보니 다음 임차인을 찾지 못하는 겁니다. 지난 6월 1억 원 가까이 투자해 식당을 연 심태섭 씨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갈수록 매출은 떨어졌지만, 직원 수를 줄여가며 어떻게든 버텼는데 지난달 광복절 집회 이후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떨어지자 직원 월급을 주지 못했고, 결국 가게를 정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가게를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임대료는 밀리고, 직원마저 없으니 영업할 수 없어 현재 임시 휴업 중입니다.

심태섭 씨가 다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심 씨에게 가장 큰 부담은 임대료입니다. 한 달 임대료는 320만 원으로 임대인에게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별수 없이 다시 문을 여는 방법밖에 없어서 준비 중인데, 곧 다가올 개천절 집회가 걱정입니다.

심태섭 씨는 "혹시 모르니 계속 임대는 내놓겠지만, 일단 다시 가게 영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만약 개천절에 또 광화문처럼 집회해서 코로나19 확산이 커지면 그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며 "매일 빚만 늘어가는 것 보면 피가 마른다. 하루하루 버틴다는 게 너무 힘들고,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폐업 오히려 ‘감소’...소상공인 위한 ‘단계별 지원책’ 필요

폐업이라는 선택지마저 없는 자영업자들, 실제로 정부에서 집계한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폐업 건수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시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폐업한 일반음식점은 4,683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793건에 비해 20%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서울 시내 일반음식점 폐업 건수.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었다.
폐업이 오히려 감소한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문가들은 매우 심각한 신호라고 지적합니다. 소상공인연합회 차남수 연구위원은 "권리금을 포기하고 내놔도 들어올 사람이 없는 건데, 자영업자들은 권리금도 못 받고, 보증금마저 밀린 임대료로 다 잃은 상태에서 가게를 나와야 한다"며 "경제가 정상적일 때는 폐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지금은 나가기도 어렵고, 들어오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경제)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영업자를 위한 단계별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급한 대로 일회성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1~3단계로 별도의 지침이 있는 것처럼 소상공인 위한 경제지원책도 단계별로 필요하다는 겁니다.

차 연구위원은 "국가가 감염병 예방뿐 아니라 소상공인 대책 역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피해를 당한 다음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감염병 단계별로 경제적 대응도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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