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피살 공무원’ 월북으로 판단”…남는 의문점들

입력 2020.09.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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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청이 북한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원 공무원 이 모 씨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오늘(29일) 발표했습니다.

해경이 발표한 수사 내용의 핵심은 "이 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다"고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해경 수사관들이 어제(28일) 국방부를 방문해 확인한 첩보 자료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결과 발표하는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결과 발표하는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

해경 "북측, 실종자의 신상 정보 소상히 파악"

첩보 자료 내용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① 실종자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된 상태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②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본인의 이름, 나이, 고향 등 신상 정보를 북측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③ 실종자가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이 있다.

해경은 이 씨가 실종됐을 당시 소연평도 인근 조류를 분석한 국립해양조사원 등 4개 기관의 `표류 예측` 분석 결과도 월북 정황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은 "단순 표류라면 조류에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남서쪽으로 표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이 씨는 소연평도에서 북서쪽으로 38㎞ 떨어진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피격됐는데, 윤 국장은 "인위적인 노력 없이 실제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 해경은 이 씨의 상세한 채무 내역도 공개 브리핑에서 설명했습니다.

도박으로 인한 채무 규모 등을 묻는 기자 질문에 나온 대답이었는데, 해경은 이 씨의 전체 채무가 3억 3천만 원 정도인데, 그 중 인터넷 도박으로 진 빚이 2억 6천8백만 원 규모라고 답했습니다.

피살 공무원 이 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피살 공무원 이 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군 첩보 자료, 형태도 밝히기 어려워"

하지만 해경의 설명에도 남는 의문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해경이 확인한 군 첩보 자료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해경은 밝힐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해경 자체 조사로 "이 씨가 조타실에선 구명 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선원 진술은 확보했지만, 이 씨가 어떻게 구명 조끼와 부유물을 구했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떻게 북측이 이 씨의 신상 정보를 알게 됐는지 대한 설명도 없었고, `월북 의사 표현`이 어떤 내용의 대화였는지도 해경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해경이 확인한 첩보 자료가 녹취록인지, 음성 파일인지 등 자료의 형태에 대해서도 공개할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해경이 공개한 ‘표류 예측 분석 결과’. 지도에 그려진 반시계 방향은 연평도 인근 조류의 흐름.해경이 공개한 ‘표류 예측 분석 결과’. 지도에 그려진 반시계 방향은 연평도 인근 조류의 흐름.

조류 반대 방향으로 38㎞ 헤엄쳐서 월북 시도?

이 씨가 조류를 거슬러 38㎞ 거리를 헤엄을 쳐서 북측 해역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위험한 월북`을 시도한 이유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해경은 이 씨가 "10년 가까이 어업지도선을 타며 연평도 주변 해역 조류도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조류를 잘 안다면 북측으로 흐르는 바닷길을 이용하는 게 월북을 시도하는 입장에서 유리했을 겁니다.

해경은 키 180㎝에 몸무게 72㎏인 이 씨의 신체 조건과 유사한 물체를 소연평도 해상에 투하하는 실험도 해봤다면서, "건강 상태가 일정 상황이 되고 부력재, 구명조끼를 착용하면 (38㎞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씨에게 인터넷 도박 빚이 2억 원 넘게 있다는 건 오늘 처음 해경이 공개한 사실이었는데, 해경은 "남측에 채무가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월북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군과 해경 `공조 수사` 잘 될 수 있을까?

해경은 실종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 씨가 `무궁화 10호`에서 사용했던 공용 PC와 선박의 GPS 플로터(배의 항해 위성항법장치), 선박 내 CCTV 등을 다각도로 조사했습니다.

`무궁화 10호`의 CCTV에는 이 씨가 실종되기 전날인 지난 20일 오전 9시 2분까지 동영상 731개가 저장돼 있었지만 A 씨와 관련한 중요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실종 시점도 이 씨가 동료를 마지막으로 접촉한 21일 오전 2시 이후부터, 동료들이 점심시간이 되자 이 씨를 찾아 나선 오전 11시 30분 사이로만 추정했습니다.

이 씨의 휴대전화 분석 결과, 이 씨의 마지막 통화는 21일 0시 당직 근무에 들어가기 전, 고3 아들과 "공부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통화한 것이었습니다.

해경의 오늘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 군 첩보 이외에 해경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뚜렷한 `월북 징후`는 없는 셈이고, 그마저도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해경은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 추가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는데, 군의 첩보 자료도 내부 검토 끝에 해경이 가까스로 열람한 것을 보면 `공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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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경 “‘피살 공무원’ 월북으로 판단”…남는 의문점들
    • 입력 2020-09-29 14:32:03
    취재K
해양경찰청이 북한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원 공무원 이 모 씨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오늘(29일) 발표했습니다.

해경이 발표한 수사 내용의 핵심은 "이 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다"고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해경 수사관들이 어제(28일) 국방부를 방문해 확인한 첩보 자료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결과 발표하는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
해경 "북측, 실종자의 신상 정보 소상히 파악"

첩보 자료 내용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① 실종자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된 상태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②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본인의 이름, 나이, 고향 등 신상 정보를 북측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③ 실종자가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이 있다.

해경은 이 씨가 실종됐을 당시 소연평도 인근 조류를 분석한 국립해양조사원 등 4개 기관의 `표류 예측` 분석 결과도 월북 정황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은 "단순 표류라면 조류에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남서쪽으로 표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이 씨는 소연평도에서 북서쪽으로 38㎞ 떨어진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피격됐는데, 윤 국장은 "인위적인 노력 없이 실제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 해경은 이 씨의 상세한 채무 내역도 공개 브리핑에서 설명했습니다.

도박으로 인한 채무 규모 등을 묻는 기자 질문에 나온 대답이었는데, 해경은 이 씨의 전체 채무가 3억 3천만 원 정도인데, 그 중 인터넷 도박으로 진 빚이 2억 6천8백만 원 규모라고 답했습니다.

피살 공무원 이 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군 첩보 자료, 형태도 밝히기 어려워"

하지만 해경의 설명에도 남는 의문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해경이 확인한 군 첩보 자료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해경은 밝힐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해경 자체 조사로 "이 씨가 조타실에선 구명 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선원 진술은 확보했지만, 이 씨가 어떻게 구명 조끼와 부유물을 구했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떻게 북측이 이 씨의 신상 정보를 알게 됐는지 대한 설명도 없었고, `월북 의사 표현`이 어떤 내용의 대화였는지도 해경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해경이 확인한 첩보 자료가 녹취록인지, 음성 파일인지 등 자료의 형태에 대해서도 공개할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해경이 공개한 ‘표류 예측 분석 결과’. 지도에 그려진 반시계 방향은 연평도 인근 조류의 흐름.
조류 반대 방향으로 38㎞ 헤엄쳐서 월북 시도?

이 씨가 조류를 거슬러 38㎞ 거리를 헤엄을 쳐서 북측 해역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위험한 월북`을 시도한 이유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해경은 이 씨가 "10년 가까이 어업지도선을 타며 연평도 주변 해역 조류도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조류를 잘 안다면 북측으로 흐르는 바닷길을 이용하는 게 월북을 시도하는 입장에서 유리했을 겁니다.

해경은 키 180㎝에 몸무게 72㎏인 이 씨의 신체 조건과 유사한 물체를 소연평도 해상에 투하하는 실험도 해봤다면서, "건강 상태가 일정 상황이 되고 부력재, 구명조끼를 착용하면 (38㎞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씨에게 인터넷 도박 빚이 2억 원 넘게 있다는 건 오늘 처음 해경이 공개한 사실이었는데, 해경은 "남측에 채무가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월북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군과 해경 `공조 수사` 잘 될 수 있을까?

해경은 실종 사건이 발생한 이후 이 씨가 `무궁화 10호`에서 사용했던 공용 PC와 선박의 GPS 플로터(배의 항해 위성항법장치), 선박 내 CCTV 등을 다각도로 조사했습니다.

`무궁화 10호`의 CCTV에는 이 씨가 실종되기 전날인 지난 20일 오전 9시 2분까지 동영상 731개가 저장돼 있었지만 A 씨와 관련한 중요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실종 시점도 이 씨가 동료를 마지막으로 접촉한 21일 오전 2시 이후부터, 동료들이 점심시간이 되자 이 씨를 찾아 나선 오전 11시 30분 사이로만 추정했습니다.

이 씨의 휴대전화 분석 결과, 이 씨의 마지막 통화는 21일 0시 당직 근무에 들어가기 전, 고3 아들과 "공부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통화한 것이었습니다.

해경의 오늘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 군 첩보 이외에 해경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뚜렷한 `월북 징후`는 없는 셈이고, 그마저도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해경은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 추가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는데, 군의 첩보 자료도 내부 검토 끝에 해경이 가까스로 열람한 것을 보면 `공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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