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뚫고 갈 수는 없잖아요”…‘배민라이더’는 내비보다 빠르다?

입력 2020.10.01 (10:09) 수정 2020.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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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내비게이션상 15분 거리, 배달 제한 시간으로는 9분으로 표기”
‘직선거리’ 시간으로 책정…“건물 뚫고 가라는 말인가?”
“날마다 평점 매기는 시스템…라이더 입장에선 큰 압박”

■ 배민라이더스 확대 실시한 'AI 배차모드'가 뭐길래?

지난 2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래 배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배달량이 급증하면서 배달 업체 간 배달노동자, 즉 '라이더 모시기' 경쟁도 치열해졌다. 기본 배달료를 한시적으로 올리거나 하루 일정량 이상의 배달을 완료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이다.

국내 1위 배달 플랫폼 업체인 '배민라이더스'는 올해 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시범 도입했던 'AI(인공지능) 배차 모드'를 지난 7월 1일 전 지역으로 확대 실시했다.

배민라이더스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새로 도입된 'AI 모드'와 '일반 모드' 가운데 하나의 방식을 직접 선택해 배달 요청을 수락한다.

일반 모드는 음식·물품 수령 장소와 도착지 목록을 보고 배달 노동자가 '콜'을 직접 잡는 방식이다. AI 모드는 자동으로 배정된 '콜'을 라이더가 수락하는 방식이다.

배민라이더스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일반 모드’와 ‘AI 모드’ 중 하나의 방식을 선택해 배달한다.배민라이더스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일반 모드’와 ‘AI 모드’ 중 하나의 방식을 선택해 배달한다.

■ "최적의 콜 잡아준다" vs "라이더 선택권 제한"

배민라이더스는 AI 배차 모드가 라이더들에게 최적의 '콜'을 잡아준다고 홍보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라이더의 동선에서 가장 적합한 '콜'이 배정되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 입장에서도 수익이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일선 배달 노동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5년째 배민라이더스에 소속돼 일하고 있는 배달 노동자 이 모 씨는 "AI 모드는 라이더가 아닌 회사 차원에서 전체 배달량을 관리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일반 모드와 달리 AI 모드에는 배달 노동자들의 선택권이 배제된다. AI가 배정한 '콜'을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인공지능에 의해 배정된 '콜'을 연속해서 거절할 경우 지연 배차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들은 별수 없이 '콜'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실상 강제 배정인 셈이다.

배민라이더스는 ‘AI 모드’에서 배정된 ‘콜’을 과도하게 거절할 경우 지연 배차될 수 있다고 공지한다.배민라이더스는 ‘AI 모드’에서 배정된 ‘콜’을 과도하게 거절할 경우 지연 배차될 수 있다고 공지한다.

■ "건물을 뚫고 갈 수는 없지 않나"…직선거리 기반해 배달시간 책정

배달 노동자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배달 시간과 배달료를 책정하는 기준이다.

AI 모드는 지형이나 교통 정체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직선거리'에 '일정값'을 곱해 배달 시간과 배달료가 결정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배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겨 운행하기 바쁘다고 항변한다.

KBS 취재진이 배달 노동자의 협조를 구해 직접 동행 취재해보니 실제 AI 모드는 내비게이션 상 도착시간보다 더 짧게 배달시간을 책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초동에서 물건을 받아 반포동으로 배달하는 '콜'을 잡았는데, 배달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9분으로 표기됐다. 내비게이션을 켜보니 15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배달 노동자 이 씨는 "지도상 직선거리로 도착지까지 표기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산이나 건물을 뚫고 지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결국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어 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민라이더스 앱으로 9분 남은 배달 약속시간. 내비게이션으로는 15분 거리로 표기되고 있다.배민라이더스 앱으로 9분 남은 배달 약속시간. 내비게이션으로는 15분 거리로 표기되고 있다.

일부 배달 노동자들은 제시간에 배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음식이나 물품 값을 대신 물어준 경험이 있다고 했다. 배달 노동자들이 안전보다 속도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배달 노동자들이 AI모드 대신 일반 모드로 배달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모드에는 통상적으로 거리가 멀거나 배달수수료가 적거나 배달 경로가 안 좋은 '콜'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일반 모드에서는 이른바 배달 경로가 좋은 '콜'을 잡기 위한 경쟁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후순위로 밀린 '콜'들만 쏠리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들 대부분은 일반 모드를 꺼리게 된다.

또 상대적으로 1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의 배달 주문은 도보·자전거·킥보드 등을 이용한 배민커넥트 소속 인원들에게 배정된다. 배달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AI 모드 의존을 강요받는 셈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배민라이더스 사측은 "배달 시간 초과로 라이더 계약을 해지하는 등 직접적인 불이익을 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라이더의 귀책 사유가 명확하지 않는 한 배달 지연으로 인한 보상 비용은 통상 회사 측에서 부담한다"고 말했다.

쿠팡이츠 '평점시스템'도 속도 경쟁 유발 "하루하루 압박감"

배달 플랫폼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쿠팡이츠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쿠팡이츠의 경우 최근 배달 제한 시간을 없앴다. 배달 제한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짧아 사고 위험이 크다는 '라이더유니온'을 비롯한 노동단체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쿠팡이츠는 각각의 배달 노동자를 평가하는 '평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배달의 신속성과 '콜' 수락률 등을 기준으로 평점이 매겨지는데, 평점이 낮을수록 '콜'을 배정받기 어려운 구조다.

쿠팡이츠는 라이더들에게 '서비스 평가 결과(평점)가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회사는 배송사업자의 회사 배송프로그램(앱)의 접속 권한을 상실·제한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쿠팡이츠가 운영하고 있는 라이더 ‘평점 시스템’. 배달의 신속성과 ‘콜’ 수락률 등을 기준으로 평점이 매겨진다.쿠팡이츠가 운영하고 있는 라이더 ‘평점 시스템’. 배달의 신속성과 ‘콜’ 수락률 등을 기준으로 평점이 매겨진다.

쿠팡이츠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평점을 깎이지 않기 위해 속도 경쟁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쿠팡이츠 배달 노동자 김영빈 씨는 "양질의 배달을 위해 평점을 매기는 것 자체는 라이더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면서도 "다만 평점을 기준으로 배차를 제대로 안 해준다거나 계약상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라이더 입장에선 날마다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쿠팡이츠는 "평점 시스템을 활용하는 이유는 양질의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소비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라이더의 평점을 깎은 경우엔 소명 절차를 거쳐 평점을 되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까지 5년간 이륜차를 운전하다 숨진 이는 2천여 명에 달한다.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실제 주행 거리에 비례한 배달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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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을 뚫고 갈 수는 없잖아요”…‘배민라이더’는 내비보다 빠르다?
    • 입력 2020-10-01 10:09:23
    • 수정2020-10-01 10:47:34
    취재K
“내비게이션상 15분 거리, 배달 제한 시간으로는 9분으로 표기”<br />‘직선거리’ 시간으로 책정…“건물 뚫고 가라는 말인가?”<br />“날마다 평점 매기는 시스템…라이더 입장에선 큰 압박”
■ 배민라이더스 확대 실시한 'AI 배차모드'가 뭐길래?

지난 2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래 배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배달량이 급증하면서 배달 업체 간 배달노동자, 즉 '라이더 모시기' 경쟁도 치열해졌다. 기본 배달료를 한시적으로 올리거나 하루 일정량 이상의 배달을 완료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이다.

국내 1위 배달 플랫폼 업체인 '배민라이더스'는 올해 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시범 도입했던 'AI(인공지능) 배차 모드'를 지난 7월 1일 전 지역으로 확대 실시했다.

배민라이더스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새로 도입된 'AI 모드'와 '일반 모드' 가운데 하나의 방식을 직접 선택해 배달 요청을 수락한다.

일반 모드는 음식·물품 수령 장소와 도착지 목록을 보고 배달 노동자가 '콜'을 직접 잡는 방식이다. AI 모드는 자동으로 배정된 '콜'을 라이더가 수락하는 방식이다.

배민라이더스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일반 모드’와 ‘AI 모드’ 중 하나의 방식을 선택해 배달한다.
■ "최적의 콜 잡아준다" vs "라이더 선택권 제한"

배민라이더스는 AI 배차 모드가 라이더들에게 최적의 '콜'을 잡아준다고 홍보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라이더의 동선에서 가장 적합한 '콜'이 배정되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 입장에서도 수익이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일선 배달 노동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5년째 배민라이더스에 소속돼 일하고 있는 배달 노동자 이 모 씨는 "AI 모드는 라이더가 아닌 회사 차원에서 전체 배달량을 관리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일반 모드와 달리 AI 모드에는 배달 노동자들의 선택권이 배제된다. AI가 배정한 '콜'을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인공지능에 의해 배정된 '콜'을 연속해서 거절할 경우 지연 배차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들은 별수 없이 '콜'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사실상 강제 배정인 셈이다.

배민라이더스는 ‘AI 모드’에서 배정된 ‘콜’을 과도하게 거절할 경우 지연 배차될 수 있다고 공지한다.
■ "건물을 뚫고 갈 수는 없지 않나"…직선거리 기반해 배달시간 책정

배달 노동자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배달 시간과 배달료를 책정하는 기준이다.

AI 모드는 지형이나 교통 정체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직선거리'에 '일정값'을 곱해 배달 시간과 배달료가 결정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배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겨 운행하기 바쁘다고 항변한다.

KBS 취재진이 배달 노동자의 협조를 구해 직접 동행 취재해보니 실제 AI 모드는 내비게이션 상 도착시간보다 더 짧게 배달시간을 책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초동에서 물건을 받아 반포동으로 배달하는 '콜'을 잡았는데, 배달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9분으로 표기됐다. 내비게이션을 켜보니 15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배달 노동자 이 씨는 "지도상 직선거리로 도착지까지 표기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산이나 건물을 뚫고 지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결국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어 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민라이더스 앱으로 9분 남은 배달 약속시간. 내비게이션으로는 15분 거리로 표기되고 있다.
일부 배달 노동자들은 제시간에 배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음식이나 물품 값을 대신 물어준 경험이 있다고 했다. 배달 노동자들이 안전보다 속도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배달 노동자들이 AI모드 대신 일반 모드로 배달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모드에는 통상적으로 거리가 멀거나 배달수수료가 적거나 배달 경로가 안 좋은 '콜'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일반 모드에서는 이른바 배달 경로가 좋은 '콜'을 잡기 위한 경쟁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후순위로 밀린 '콜'들만 쏠리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들 대부분은 일반 모드를 꺼리게 된다.

또 상대적으로 1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의 배달 주문은 도보·자전거·킥보드 등을 이용한 배민커넥트 소속 인원들에게 배정된다. 배달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AI 모드 의존을 강요받는 셈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배민라이더스 사측은 "배달 시간 초과로 라이더 계약을 해지하는 등 직접적인 불이익을 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라이더의 귀책 사유가 명확하지 않는 한 배달 지연으로 인한 보상 비용은 통상 회사 측에서 부담한다"고 말했다.

쿠팡이츠 '평점시스템'도 속도 경쟁 유발 "하루하루 압박감"

배달 플랫폼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쿠팡이츠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쿠팡이츠의 경우 최근 배달 제한 시간을 없앴다. 배달 제한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짧아 사고 위험이 크다는 '라이더유니온'을 비롯한 노동단체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쿠팡이츠는 각각의 배달 노동자를 평가하는 '평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배달의 신속성과 '콜' 수락률 등을 기준으로 평점이 매겨지는데, 평점이 낮을수록 '콜'을 배정받기 어려운 구조다.

쿠팡이츠는 라이더들에게 '서비스 평가 결과(평점)가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회사는 배송사업자의 회사 배송프로그램(앱)의 접속 권한을 상실·제한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쿠팡이츠가 운영하고 있는 라이더 ‘평점 시스템’. 배달의 신속성과 ‘콜’ 수락률 등을 기준으로 평점이 매겨진다.
쿠팡이츠 소속 배달 노동자들은 평점을 깎이지 않기 위해 속도 경쟁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쿠팡이츠 배달 노동자 김영빈 씨는 "양질의 배달을 위해 평점을 매기는 것 자체는 라이더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면서도 "다만 평점을 기준으로 배차를 제대로 안 해준다거나 계약상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라이더 입장에선 날마다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쿠팡이츠는 "평점 시스템을 활용하는 이유는 양질의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소비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라이더의 평점을 깎은 경우엔 소명 절차를 거쳐 평점을 되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까지 5년간 이륜차를 운전하다 숨진 이는 2천여 명에 달한다.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실제 주행 거리에 비례한 배달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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