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에도 인술 베푼 독립운동가…‘뜻 깊은 성묘’

입력 2020.10.02 (21:29) 수정 2020.10.0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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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한 명이 중국 땅에 영면해있습니다.

의사 출신 故 이자해 선생입니다.

광복이 되자 "독립이라는 사명을 이제 다했다"면서 조국에 돌아오는 대신, 평생 중국에서 인술을 베풀었습니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안양봉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중국 네이멍구 성도 후허하오터입니다.

이곳에 네이멍구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 이자해 선생이 있습니다.

외과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입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 이자해 선생에겐 광복 60여 년이 지난 2007년에야 건국훈장이 추서됐습니다.

이자해 선생이 중국 땅에서 영면에 든지 40년 만입니다.

추석날 오전, 선생 묘소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후허하오터 교민들입니다.

저 멀리, 고향 땅에 계신 조상을 모시듯 정성껏 차례 음식을 올리고 추모합니다.

[김병주/중국 네이멍구 한인회장 : "교민들한테는 엄청 큰 위안과 뭔가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는 그런 공감대가 참 저희들 한테는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됐던 것 같습니다."]

선생의 후손은 아직 네이멍구에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훈장을 받으러, 한국에 갔던 당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리웨이민/이자해 선생 손자 : "2007년 한국에 갔을 때 손수건에 흙을 한 줌 떠서 돌아왔습니다. 흙을 할아버지 무덤에 뿌렸습니다."]

평안도 중강진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선생은 이후 중국으로 옮겨 독립투쟁을 이어갑니다.

광복군 사령부 군의처장을 맡았고, 일제 총탄에 총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1945년 마침내 되찾은 조국, 김구 선생은 같이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선생은 사명을 다했다며 중국에 남았습니다.

[리웨이싱/이자해 선생 손녀 : "할아버지는 민족이 독립됐으니 자기 임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명예와 이익을 좇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평생 가난한 이에게 인술을 베풀었습니다.

1967년 영면에 든 선생은 중국인들에겐 네이멍구의 슈바이처로, 한국인들에겐 조국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촬영기자:윤재구/영상편집:이재연/영상제공:中 네이멍구 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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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후에도 인술 베푼 독립운동가…‘뜻 깊은 성묘’
    • 입력 2020-10-02 21:29:02
    • 수정2020-10-02 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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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한 명이 중국 땅에 영면해있습니다.

의사 출신 故 이자해 선생입니다.

광복이 되자 "독립이라는 사명을 이제 다했다"면서 조국에 돌아오는 대신, 평생 중국에서 인술을 베풀었습니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안양봉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중국 네이멍구 성도 후허하오터입니다.

이곳에 네이멍구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 이자해 선생이 있습니다.

외과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입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 이자해 선생에겐 광복 60여 년이 지난 2007년에야 건국훈장이 추서됐습니다.

이자해 선생이 중국 땅에서 영면에 든지 40년 만입니다.

추석날 오전, 선생 묘소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후허하오터 교민들입니다.

저 멀리, 고향 땅에 계신 조상을 모시듯 정성껏 차례 음식을 올리고 추모합니다.

[김병주/중국 네이멍구 한인회장 : "교민들한테는 엄청 큰 위안과 뭔가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는 그런 공감대가 참 저희들 한테는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됐던 것 같습니다."]

선생의 후손은 아직 네이멍구에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훈장을 받으러, 한국에 갔던 당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리웨이민/이자해 선생 손자 : "2007년 한국에 갔을 때 손수건에 흙을 한 줌 떠서 돌아왔습니다. 흙을 할아버지 무덤에 뿌렸습니다."]

평안도 중강진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선생은 이후 중국으로 옮겨 독립투쟁을 이어갑니다.

광복군 사령부 군의처장을 맡았고, 일제 총탄에 총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1945년 마침내 되찾은 조국, 김구 선생은 같이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선생은 사명을 다했다며 중국에 남았습니다.

[리웨이싱/이자해 선생 손녀 : "할아버지는 민족이 독립됐으니 자기 임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명예와 이익을 좇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평생 가난한 이에게 인술을 베풀었습니다.

1967년 영면에 든 선생은 중국인들에겐 네이멍구의 슈바이처로, 한국인들에겐 조국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촬영기자:윤재구/영상편집:이재연/영상제공:中 네이멍구 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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