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피임장치 부작용에 원치 않은 임신…배상될까?

입력 2020.10.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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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여성의 자궁 내 장치를 설치해 임신을 원천 봉쇄하는 시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술도 완벽한 건 아니라고 하는데요, 부작용이 발생해 임신하게 된 경우 병원은 환자에게 얼마를 배상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한 쟁점을 다룬 최근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자궁 내 피임장치 시술 후 4개월 만에 이탈…임신 못 막아

환자 A 씨는 2016년 5월 의사 B 씨가 운영하는 산부인과에서 피임을 목적으로 자궁 내 제이디스(Jaydess) 시술을 받았습니다. A 씨는 시술 직후 초음파를 통해 장치가 자궁 내에 정상적으로 위치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4개월만인 그해 하반기 해당 병원을 다시 방문해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자궁 내에 피임장치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A 씨의 임신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A 씨는 다음 해 아이를 출산했고, 병원에서 자궁을 벗어나 골반 쪽으로 이탈해 있는 장치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A 씨는 "피임 장치가 골반 쪽으로 이탈한 것은 시술 과정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고, 시술 당시 의사가 장치의 골반 내 유입 가능성을 설명해주지 않았으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의사를 상대로 3,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의사 B 씨는 재판에서 시술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설명의무 역시 이행했다고 맞섰습니다.

B 씨는 "설사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환자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상식적인 내용까지 설명의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A 씨가 전부터 다수의 피임 방법을 사용해 왔고 유사한 자궁 내 피임장치인 미레나 시술을 받은 적도 있는 이상 따로 장치의 골반 유입 가능성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 법원 "시술 과실은 없으나 설명의무는 위반 맞아"

서울중앙지법은 A 씨의 주된 주장인 시술 과실 주장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제이디스 장치 등 자궁 내 피임장치가 골반 쪽으로 유입되는 것은, 그 빈도는 극히 적지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이 법원의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시술 직후 장치가 자궁 내 정상적으로 위치했음이 초음파 사진으로 확인되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시술에 어떤 과실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설명의무 위반 사실에 대해선 의사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의사가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정은 '의사 측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인데, 의사 B 씨가 A 씨에게 이 사건 시술에 있어 피임장치의 골반 내 유입 가능성을 설명해줬단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법원은 "B 씨가 항변한 사정만으로 A 씨가 피임 장치가 골반 쪽으로 이탈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또한 이러한 부작용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적 내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B 씨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따라서 B 씨가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단했습니다.

■ 최종 배상액 위자료 '250만 원'

그러나 법원은 A 씨가 청구한 배상액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는 일차적으로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손해의 배상을 구하나, 이 사건 전에도 자궁 내 피임 장치 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점, 제이디스 장치가 자궁을 벗어나 골반 쪽에 유입되는 빈도가 매우 드문 점을 고려할 때 B 씨가 이러한 위험성을 설명하였더라도 A 씨가 반드시 이 사건 시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에게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의사 책임을 제한했습니다.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모든 손해를 청구하는 때에는 그 중대한 결과와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 내지 승낙 취득 과정에서의 잘못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하고, 그때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내지 치료행위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점에 비춰 환자의 생명, 신체에 대한 구체적 치료과정에서 요구되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시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원은 결국 "손해배상의 범위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A 씨가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데 대한 위자료에 한정된다"며 B 씨가 250만 원을 A 씨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선고에 대해 A 씨는 즉시 항소했지만, 법원이 보낸 인지대 등의 보정명령이 수취인 불명으로 송달이 이뤄지지 않아 항소가 결국 각하됐고,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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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피임장치 부작용에 원치 않은 임신…배상될까?
    • 입력 2020-10-03 09:00:15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여성의 자궁 내 장치를 설치해 임신을 원천 봉쇄하는 시술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술도 완벽한 건 아니라고 하는데요, 부작용이 발생해 임신하게 된 경우 병원은 환자에게 얼마를 배상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한 쟁점을 다룬 최근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자궁 내 피임장치 시술 후 4개월 만에 이탈…임신 못 막아

환자 A 씨는 2016년 5월 의사 B 씨가 운영하는 산부인과에서 피임을 목적으로 자궁 내 제이디스(Jaydess) 시술을 받았습니다. A 씨는 시술 직후 초음파를 통해 장치가 자궁 내에 정상적으로 위치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4개월만인 그해 하반기 해당 병원을 다시 방문해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자궁 내에 피임장치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A 씨의 임신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A 씨는 다음 해 아이를 출산했고, 병원에서 자궁을 벗어나 골반 쪽으로 이탈해 있는 장치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A 씨는 "피임 장치가 골반 쪽으로 이탈한 것은 시술 과정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고, 시술 당시 의사가 장치의 골반 내 유입 가능성을 설명해주지 않았으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의사를 상대로 3,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의사 B 씨는 재판에서 시술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설명의무 역시 이행했다고 맞섰습니다.

B 씨는 "설사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환자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상식적인 내용까지 설명의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A 씨가 전부터 다수의 피임 방법을 사용해 왔고 유사한 자궁 내 피임장치인 미레나 시술을 받은 적도 있는 이상 따로 장치의 골반 유입 가능성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 법원 "시술 과실은 없으나 설명의무는 위반 맞아"

서울중앙지법은 A 씨의 주된 주장인 시술 과실 주장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제이디스 장치 등 자궁 내 피임장치가 골반 쪽으로 유입되는 것은, 그 빈도는 극히 적지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이 법원의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시술 직후 장치가 자궁 내 정상적으로 위치했음이 초음파 사진으로 확인되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시술에 어떤 과실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설명의무 위반 사실에 대해선 의사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의사가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정은 '의사 측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인데, 의사 B 씨가 A 씨에게 이 사건 시술에 있어 피임장치의 골반 내 유입 가능성을 설명해줬단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법원은 "B 씨가 항변한 사정만으로 A 씨가 피임 장치가 골반 쪽으로 이탈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또한 이러한 부작용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적 내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B 씨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따라서 B 씨가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단했습니다.

■ 최종 배상액 위자료 '250만 원'

그러나 법원은 A 씨가 청구한 배상액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는 일차적으로 치료비를 포함한 모든 손해의 배상을 구하나, 이 사건 전에도 자궁 내 피임 장치 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점, 제이디스 장치가 자궁을 벗어나 골반 쪽에 유입되는 빈도가 매우 드문 점을 고려할 때 B 씨가 이러한 위험성을 설명하였더라도 A 씨가 반드시 이 사건 시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에게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의사 책임을 제한했습니다.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모든 손해를 청구하는 때에는 그 중대한 결과와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 내지 승낙 취득 과정에서의 잘못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하고, 그때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내지 치료행위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보호하기 위한 점에 비춰 환자의 생명, 신체에 대한 구체적 치료과정에서 요구되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시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원은 결국 "손해배상의 범위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A 씨가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데 대한 위자료에 한정된다"며 B 씨가 250만 원을 A 씨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선고에 대해 A 씨는 즉시 항소했지만, 법원이 보낸 인지대 등의 보정명령이 수취인 불명으로 송달이 이뤄지지 않아 항소가 결국 각하됐고,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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