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만둘게” 박차고 나온 직원…법원이 ‘부당해고’로 본 이유는?

입력 2020.10.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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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

지난해 5월, 한 빵집 겸 카페의 제빵 생산관리 책임자로 일하던 A 씨는 업체 대표 부부의 아들 B 씨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B 씨는 사실상 이 빵집을 도맡아 운영해왔는데, A 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말했고 이에 A 씨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다음날부터 빵집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날 이후 A 씨는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잇따라 구제신청과 재심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은 모두 기각됐지만, A 씨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번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는데요.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A 씨가 부당해고를 당한 게 사실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 직원의 눈: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

우선 A 씨와 B 씨가 각각 사건 당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A 씨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B 씨가 자신에게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으니 당장 가방을 챙겨 나가라”라고 지시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다시 제빵실에서 일을 했더니, B 씨가 다가와 “왜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일 그만두고 나가라”라고 재차 말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에 A 씨는 그날과 다음날 B 씨는 물론 대표 부부에게도 전화해 해고에 대해 항의했는데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는 “업체 대표들이 일방적인 의사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이고, 이는 해고의 정당한 사유나 서면통지 절차가 빠진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 사장의 눈: “제 발로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B 씨 입장은 좀 다릅니다. B 씨는 A 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렇게 거짓말하시면 같이 일 못 한다”고 지적했더니, A 씨가 “그럼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렇게 나간 A 씨가 다시 제빵실에서 일을 하고 있자, “나가신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일을 왜 하고 계세요”라고 이야기했던 것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 씨 측은 “A 씨가 이 빵집에서 제빵 기술자이자 총 책임자를 맡고 있었으므로 갑작스럽게 해고할 이유가 없고, A 씨가 자진 퇴사한 후 두 달 넘게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빵집 운영이 어려워지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 법원의 눈: “의사에 반해 근로계약 종료…부당해고”

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B 씨 측이 주장한 것처럼 A 씨가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A 씨 의사에 반해 B 씨 측이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했다는 판단입니다. 이 과정에서 B 씨 측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 통지하지 않았으므로, 절차적으로 위법한 ‘부당해고’가 맞다고도 밝혔습니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이렇습니다. A 씨가 설령 “같이 일 못 한다”는 B 씨의 첫 번째 질책에 대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 다시 제빵실로 가서 일하고 있었다면 앞서 한 발언이 ‘진정으로 사직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는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B 씨는 다시 A 씨에게 일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고, 이 말이 A 씨가 짐을 챙겨 빵집을 떠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거죠.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요. A 씨는 그렇게 빵집을 나간 뒤에도 당일과 다음 날 B 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명하고, 또 항의했습니다. 자신의 여러 잘못에 관해 설명하고 “이런 이유로 해고하느냐”는 취지로 계속 항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해임’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B 씨는 “해고(해임)가 아니다”라거나 “A 씨가 자발적으로 사직하지 않았느냐”라는 취지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A 씨가 거짓말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같이 갈 수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A 씨의 해고 사유에 관해 설명했을 뿐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A 씨가 업체 대표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A 씨는 “갑자기 이렇게 해고 통보를 받으니까 서운하다”라며 ‘해고’, ‘해임’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는데 업체 대표는 해고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다음에 한번 보자며 서운한 마음을 위로하는 취지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재판부는 B 씨 측이 A 씨가 사건 당일 빵집을 나간 몇 시간 뒤 그날까지의 급여 2백만 원을 지급하며 근로관계 종료를 공식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두 달간 후임자를 찾지 못해 빵집 운영이 힘들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A 씨에게 사직 의사를 재고해달라거나 다시 출근해달라는 취지의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대체 인력이 있어, 빵집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2심에서 다시 다퉈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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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4 09:01:21
    취재K
“그럼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

지난해 5월, 한 빵집 겸 카페의 제빵 생산관리 책임자로 일하던 A 씨는 업체 대표 부부의 아들 B 씨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B 씨는 사실상 이 빵집을 도맡아 운영해왔는데, A 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말했고 이에 A 씨는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다음날부터 빵집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날 이후 A 씨는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잇따라 구제신청과 재심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은 모두 기각됐지만, A 씨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번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는데요.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A 씨가 부당해고를 당한 게 사실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 직원의 눈: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

우선 A 씨와 B 씨가 각각 사건 당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A 씨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B 씨가 자신에게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으니 당장 가방을 챙겨 나가라”라고 지시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다시 제빵실에서 일을 했더니, B 씨가 다가와 “왜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일 그만두고 나가라”라고 재차 말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에 A 씨는 그날과 다음날 B 씨는 물론 대표 부부에게도 전화해 해고에 대해 항의했는데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A 씨는 “업체 대표들이 일방적인 의사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이고, 이는 해고의 정당한 사유나 서면통지 절차가 빠진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 사장의 눈: “제 발로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B 씨 입장은 좀 다릅니다. B 씨는 A 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렇게 거짓말하시면 같이 일 못 한다”고 지적했더니, A 씨가 “그럼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렇게 나간 A 씨가 다시 제빵실에서 일을 하고 있자, “나가신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일을 왜 하고 계세요”라고 이야기했던 것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 씨 측은 “A 씨가 이 빵집에서 제빵 기술자이자 총 책임자를 맡고 있었으므로 갑작스럽게 해고할 이유가 없고, A 씨가 자진 퇴사한 후 두 달 넘게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빵집 운영이 어려워지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 법원의 눈: “의사에 반해 근로계약 종료…부당해고”

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B 씨 측이 주장한 것처럼 A 씨가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A 씨 의사에 반해 B 씨 측이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했다는 판단입니다. 이 과정에서 B 씨 측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 통지하지 않았으므로, 절차적으로 위법한 ‘부당해고’가 맞다고도 밝혔습니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이렇습니다. A 씨가 설령 “같이 일 못 한다”는 B 씨의 첫 번째 질책에 대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 다시 제빵실로 가서 일하고 있었다면 앞서 한 발언이 ‘진정으로 사직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는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B 씨는 다시 A 씨에게 일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고, 이 말이 A 씨가 짐을 챙겨 빵집을 떠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거죠.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요. A 씨는 그렇게 빵집을 나간 뒤에도 당일과 다음 날 B 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명하고, 또 항의했습니다. 자신의 여러 잘못에 관해 설명하고 “이런 이유로 해고하느냐”는 취지로 계속 항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해임’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B 씨는 “해고(해임)가 아니다”라거나 “A 씨가 자발적으로 사직하지 않았느냐”라는 취지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A 씨가 거짓말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같이 갈 수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A 씨의 해고 사유에 관해 설명했을 뿐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A 씨가 업체 대표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A 씨는 “갑자기 이렇게 해고 통보를 받으니까 서운하다”라며 ‘해고’, ‘해임’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는데 업체 대표는 해고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다음에 한번 보자며 서운한 마음을 위로하는 취지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재판부는 B 씨 측이 A 씨가 사건 당일 빵집을 나간 몇 시간 뒤 그날까지의 급여 2백만 원을 지급하며 근로관계 종료를 공식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두 달간 후임자를 찾지 못해 빵집 운영이 힘들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A 씨에게 사직 의사를 재고해달라거나 다시 출근해달라는 취지의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대체 인력이 있어, 빵집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2심에서 다시 다퉈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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