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 힘내게마씸(모두 힘냅시다)” 코로나에도 나눔·기부 쑥↑

입력 2020.10.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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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황과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며 지역 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매달 늘어납니다. '파산 신청, 실업급여, 민간부채…' 어두운 통계가 한 달도 쉬지 않고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요즘입니다.

코로나19로 빠듯해진 주머니 사정에 주변 이웃들을 돌아볼 여유도 덩달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봉사와 기부가 뚝 끊겼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오히려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손길이 늘어난 곳도 있습니다.

■ 아버지에서 아들로…'얼굴 없는 천사'의 20년 기부

제주시에는 2001년부터 추석과 설 명절 때마다 쌀 10kg들이 1천 포를 기탁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습니다. 올해로 쌀 기부가 벌써 20년째. 얼굴 없는 천사는 이번 추석에도 연휴를 보름여 앞둔 지난 14일, 제주시에 쌀 1천 포를 '익명'으로 맡겼습니다.

제주시 동 주민센터에 쌓인 쌀 포대 [사진 출처 : 제주시 제공]제주시 동 주민센터에 쌓인 쌀 포대 [사진 출처 : 제주시 제공]

이름도, 나이도 알려진 바 없는 이 독지가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기를 한사코 거절하고 있습니다. 제주시에 따르면 기부자는 사업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아들로, 3년 전부터는 그의 아들이 '나눔 바통'을 이어받아 쌀 기부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수십 년 넘게 빠짐없이 선행을 이어오는 사연이 궁금해, 통화만이라도 할 수 없겠느냐는 요청을 보냈지만, '얼굴 없는 천사' 부자(父子)는 응할 수 없다는 답만 보내왔습니다.

제주시민속오일시장에서 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사장님도 2008년부터 13년째, 설·추석 명절마다 10kg 쌀 100포를 제주시에 맡기고 있습니다.

■ 삶은 팍팍해졌는데, 기부는 더 늘어나

제주도 각지에선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과 물품이 십시일반 모여들었습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이달 말까지 전달된 이웃돕기 성금과 물품도 각각 5억 원, 2억 원어치가 넘습니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사회복지 업무 담당자들은 사실 걱정이 더 컸다고 합니다. 코로나 범유행 이후 첫 명절이었던 만큼, 잔뜩 움츠러든 경제 지표에 전국 각지에서 개인이나 기업 후원이 줄었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주에선 올해 기부금이 지난해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들어 지난 28일까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된 금액은 6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억 원이 더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기부가 이어졌고, 여기에 코로나19 방역물품 등을 기탁하는 사례가 더해져서 오히려 지난해보다 절대량이 더 증가했다는 게 사랑의열매 측 설명입니다.

심정미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오늘(9월 28일) 오전도 기부자들이 직접 담가주신 김치 400kg을 홀몸노인 지원센터에 전달하고 돌아온 길"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그는 "명절은 취약계층에겐 더욱 힘든 시기인데, 코로나19 상황에서 더 어렵게 정성을 모아주신 게 아닌가 싶어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빙긋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에는 '수눌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품앗이'의 제주 방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서로 돕고 챙기고, 또 베푸는 제주의 미풍양속입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제주지역 곳곳에서 이웃들과 풍성하고 따뜻한 명절을 보내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을 두고 '제주의 수눌음 정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감염병 확산으로 어느 때보다 삶이 팍팍해졌지만, 얇아진 주머니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손길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소식이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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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치 힘내게마씸(모두 힘냅시다)” 코로나에도 나눔·기부 쑥↑
    • 입력 2020-10-04 10:00:39
    취재K
경제 불황과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며 지역 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매달 늘어납니다. '파산 신청, 실업급여, 민간부채…' 어두운 통계가 한 달도 쉬지 않고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요즘입니다.

코로나19로 빠듯해진 주머니 사정에 주변 이웃들을 돌아볼 여유도 덩달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봉사와 기부가 뚝 끊겼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오히려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손길이 늘어난 곳도 있습니다.

■ 아버지에서 아들로…'얼굴 없는 천사'의 20년 기부

제주시에는 2001년부터 추석과 설 명절 때마다 쌀 10kg들이 1천 포를 기탁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있습니다. 올해로 쌀 기부가 벌써 20년째. 얼굴 없는 천사는 이번 추석에도 연휴를 보름여 앞둔 지난 14일, 제주시에 쌀 1천 포를 '익명'으로 맡겼습니다.

제주시 동 주민센터에 쌓인 쌀 포대 [사진 출처 : 제주시 제공]
이름도, 나이도 알려진 바 없는 이 독지가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기를 한사코 거절하고 있습니다. 제주시에 따르면 기부자는 사업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아들로, 3년 전부터는 그의 아들이 '나눔 바통'을 이어받아 쌀 기부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수십 년 넘게 빠짐없이 선행을 이어오는 사연이 궁금해, 통화만이라도 할 수 없겠느냐는 요청을 보냈지만, '얼굴 없는 천사' 부자(父子)는 응할 수 없다는 답만 보내왔습니다.

제주시민속오일시장에서 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사장님도 2008년부터 13년째, 설·추석 명절마다 10kg 쌀 100포를 제주시에 맡기고 있습니다.

■ 삶은 팍팍해졌는데, 기부는 더 늘어나

제주도 각지에선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과 물품이 십시일반 모여들었습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이달 말까지 전달된 이웃돕기 성금과 물품도 각각 5억 원, 2억 원어치가 넘습니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사회복지 업무 담당자들은 사실 걱정이 더 컸다고 합니다. 코로나 범유행 이후 첫 명절이었던 만큼, 잔뜩 움츠러든 경제 지표에 전국 각지에서 개인이나 기업 후원이 줄었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주에선 올해 기부금이 지난해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들어 지난 28일까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된 금액은 6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억 원이 더 늘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기부가 이어졌고, 여기에 코로나19 방역물품 등을 기탁하는 사례가 더해져서 오히려 지난해보다 절대량이 더 증가했다는 게 사랑의열매 측 설명입니다.

심정미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오늘(9월 28일) 오전도 기부자들이 직접 담가주신 김치 400kg을 홀몸노인 지원센터에 전달하고 돌아온 길"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그는 "명절은 취약계층에겐 더욱 힘든 시기인데, 코로나19 상황에서 더 어렵게 정성을 모아주신 게 아닌가 싶어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빙긋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에는 '수눌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품앗이'의 제주 방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서로 돕고 챙기고, 또 베푸는 제주의 미풍양속입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제주지역 곳곳에서 이웃들과 풍성하고 따뜻한 명절을 보내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을 두고 '제주의 수눌음 정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감염병 확산으로 어느 때보다 삶이 팍팍해졌지만, 얇아진 주머니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손길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소식이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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