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어느 항공사가 살아남을 것인가?

입력 2020.10.05 (11:40) 수정 2020.10.0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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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항공주를 모두 팔았습니다. 반값에 이른바 ‘손절’ 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항공주(Us Global jet Index)는 53%나 급등했습니다. 항공기 대신 주가가 날아올랐다(Take Off)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이 났고. "버핏은 평생 잘해왔지만, 이번엔 잘못했다. 오늘 항공주가 하늘을 찔렀다(Warren Buffett has been right in his whole life, but make a mistake selling Airlines)"고 트윗을 날렸습니다. 항공사들의 주가는 폭락을 멈추고 반등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반 토막'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버핏은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지 썰물이 돼서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위기가 계속됩니다. 실제 어느 항공사가 다시 날아오르고, 어느 항공사가 빚잔치를 할지, 하나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튀김 도넛을 판매하는 타이항공 직원들, 한 달 매출이 1천만 밧트(3억7천 만 원)을 넘는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튀김 도넛을 판매하는 타이항공 직원들, 한 달 매출이 1천만 밧트(3억7천 만 원)을 넘는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타이항공’은 결국 파산해서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독일 대표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는 90억 유로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이미 국유화됐으니까 독일 정부가 상당 부분 추가 출자하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Alitalia)’도 이참에 국유화하기로 했습니다. 부실해져서 팔려고 내놨는데 잘 안 팔리는 겁니다. 우리 아시아나항공처럼.

멕시코 대표항공사 ‘아에로멕시코(AeroMexico)’도, 중남미 최대항공사인 ‘라탐항공(LATAM)’도 파산보호신청을 했습니다. ‘델타(DELTA)’,‘에어프랑스(Air France)’와 ‘JAL’, ‘KLM’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항공사 대부분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4만 대 이상의 항공기가 있고 그중 1만 5천 대는 늘 하늘에 떠 있습니다. 지난해 지구인 40억 명이 항공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대나 하늘을 날고 있을까?

승객이 없으니 뭐든 해야 합니다. 이른바 ‘도돌이표 여행 상품’이 유행입니다. 타이항공은 태국 방콕-치앙마이-방콕 상공을 2시간 정도 비행하는 A380 상품을 내놨습니다. 가격은 5천 바트(약 18만원) 정도입니다. 물론 기내식도 줍니다. 항공사들이 앞다퉈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여행상품(Flight to nowhere)을 내놓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테마섹으로부터 16조 원 정도를 긴급 조달받은 싱가포르항공, 창이공항을 출발해 서너 시간 비행한 뒤 다시 창이공항으로 내리는 상품을 내놨지만 환경단체의 반대로 백지화됐습니다. 수익이 될까? 최소한 공항 주차료라도 아낄 수 있습니다. (인천공항은 30분 단위로 주기료를 부과한다)

인천공항 주기장의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인천공항 주기장의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항공사가 망하면, 여객기 제조사도 망합니다. 대형 여객기는 모두 보잉(미국)과 에어버스(유럽)가 만듭니다. 지독한 독점 구조입니다. 보잉은 이미 1만6천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불황은 항공사에 엔진을 공급하는 GE나 롤스로이스까지 연결됩니다(항공기와 엔진은 대부분 따로 제작된다. 그래서 항공사들이 여객기를 리스할 때 엔진은 따로 리스하는 경우도 많다) GE에비에이션과 롤스로이스는 각각 1만 3천여 명과 8천여 명의 직원을 이미 해고했습니다.

80년대 후반 항공업 규제가 풀리면서 미국의 항공업체는 우후죽순처럼 급증했다. 이후 200여 개 항공사가 흥망을 거듭했고, 2015년 무렵 4개 대형 항공사로 재편됐다. 버핏은 이 무렵 항공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80년대 후반 항공업 규제가 풀리면서 미국의 항공업체는 우후죽순처럼 급증했다. 이후 200여 개 항공사가 흥망을 거듭했고, 2015년 무렵 4개 대형 항공사로 재편됐다. 버핏은 이 무렵 항공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늘 길을 다니는 산업은 전쟁이 나면 매우 중요해집니다. 항공산업은 이른바 전략산업(Strategic industry)입니다. 자동차나 철도처럼 공공재 성격도 강합니다. 고용 효과도 막대합니다. 망하는 걸 지켜만 볼 수 없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에어프랑스와 에어버스 등에 모두 150억 유로(20조 가량)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프랑스 재무장관은 ‘항공우주 시장을 미국이 독점하는 것을 지켜만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미 의회는 지난 3월, 사우스웨스트, 델타, 유나이티드, 아메리칸항공 등 10개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50억 달러의 지원 법안을 내놨습니다. 그중 70%가 무상지원입니다. 대신 9월 30일까지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아직도 통과가 안 됐습니다. 미국인 상당수는 이번에도 기업만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합니다. (10년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는 500억 달러를 들여 GM을 살렸지만, 기업만 살아나고 국민은 손해 봤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자 항공사들이 이달(10월)부터 직원들을 대량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아메리칸항공은 1만9천 명 해고계획을 내놨습니다.


델타항공의 해고 명단에 이름이 오른 기장, 부기장만 1,941명입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이미 3만6천 명의 임직원들에게 해고예정 통보서를 보냈습니다. 생각도 못 한 감기바이러스에 항공 산업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공급도 과잉입니다. 2015년 이후 저비용항공사(LCC)가 급증하면서, 승객보다 항공사가 더 많아졌습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여객 수요는 23.8% 늘었는데, 6개 항공사의 좌석은 27.4% 늘었습니다. 지금은 항공사가 11개나 됩니다. 그러니 이제 어느 항공사가 살아남을 것인가.

코로나 이후 항공산업은 수많은 변화를 겪을 겁니다. 출입국 절차는 까다로워지고, 안전비용이 높아질 겁니다. ‘면역여권’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좌석배치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업무를 위한 항공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들의 화상회의 시스템은 놀랍도록 진화하고 있습니다(화상회의에 실시간 통역이 되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2차대전이 끝나고 다시 인류가 항공기를 타기 시작할 무렵, 항공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보잉은 그때부터 항공산업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진짜 기회는 죽음의 터널 끝에 있다고. 이 위기가 혹시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버핏은 항공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했지만, 지구인의 비행기 수요가 과연 줄어들까?

해외물류 1위라는 우리 국적기 항공사는 오너 일가의 일탈을 멈추고 미래로 갈 수 있을까? 무너지는 LCC(저비용항공사) 시장에는 당장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다시 땅이 굳으면 항공기는 다시 날아오를 겁니다. 그때쯤 항공업계는 다른 지도가 그려져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는 어느 항공사를 선택하게 될까? 땅 위의 위기에서 하늘의 기회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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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5 11:40:26
    • 수정2020-10-05 13:24:21
    특파원 리포트
지난 5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항공주를 모두 팔았습니다. 반값에 이른바 ‘손절’ 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항공주(Us Global jet Index)는 53%나 급등했습니다. 항공기 대신 주가가 날아올랐다(Take Off)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이 났고. "버핏은 평생 잘해왔지만, 이번엔 잘못했다. 오늘 항공주가 하늘을 찔렀다(Warren Buffett has been right in his whole life, but make a mistake selling Airlines)"고 트윗을 날렸습니다. 항공사들의 주가는 폭락을 멈추고 반등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반 토막'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버핏은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지 썰물이 돼서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위기가 계속됩니다. 실제 어느 항공사가 다시 날아오르고, 어느 항공사가 빚잔치를 할지, 하나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튀김 도넛을 판매하는 타이항공 직원들, 한 달 매출이 1천만 밧트(3억7천 만 원)을 넘는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타이항공’은 결국 파산해서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독일 대표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는 90억 유로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이미 국유화됐으니까 독일 정부가 상당 부분 추가 출자하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Alitalia)’도 이참에 국유화하기로 했습니다. 부실해져서 팔려고 내놨는데 잘 안 팔리는 겁니다. 우리 아시아나항공처럼.

멕시코 대표항공사 ‘아에로멕시코(AeroMexico)’도, 중남미 최대항공사인 ‘라탐항공(LATAM)’도 파산보호신청을 했습니다. ‘델타(DELTA)’,‘에어프랑스(Air France)’와 ‘JAL’, ‘KLM’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항공사 대부분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4만 대 이상의 항공기가 있고 그중 1만 5천 대는 늘 하늘에 떠 있습니다. 지난해 지구인 40억 명이 항공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대나 하늘을 날고 있을까?

승객이 없으니 뭐든 해야 합니다. 이른바 ‘도돌이표 여행 상품’이 유행입니다. 타이항공은 태국 방콕-치앙마이-방콕 상공을 2시간 정도 비행하는 A380 상품을 내놨습니다. 가격은 5천 바트(약 18만원) 정도입니다. 물론 기내식도 줍니다. 항공사들이 앞다퉈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여행상품(Flight to nowhere)을 내놓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테마섹으로부터 16조 원 정도를 긴급 조달받은 싱가포르항공, 창이공항을 출발해 서너 시간 비행한 뒤 다시 창이공항으로 내리는 상품을 내놨지만 환경단체의 반대로 백지화됐습니다. 수익이 될까? 최소한 공항 주차료라도 아낄 수 있습니다. (인천공항은 30분 단위로 주기료를 부과한다)

인천공항 주기장의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항공사가 망하면, 여객기 제조사도 망합니다. 대형 여객기는 모두 보잉(미국)과 에어버스(유럽)가 만듭니다. 지독한 독점 구조입니다. 보잉은 이미 1만6천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불황은 항공사에 엔진을 공급하는 GE나 롤스로이스까지 연결됩니다(항공기와 엔진은 대부분 따로 제작된다. 그래서 항공사들이 여객기를 리스할 때 엔진은 따로 리스하는 경우도 많다) GE에비에이션과 롤스로이스는 각각 1만 3천여 명과 8천여 명의 직원을 이미 해고했습니다.

80년대 후반 항공업 규제가 풀리면서 미국의 항공업체는 우후죽순처럼 급증했다. 이후 200여 개 항공사가 흥망을 거듭했고, 2015년 무렵 4개 대형 항공사로 재편됐다. 버핏은 이 무렵 항공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늘 길을 다니는 산업은 전쟁이 나면 매우 중요해집니다. 항공산업은 이른바 전략산업(Strategic industry)입니다. 자동차나 철도처럼 공공재 성격도 강합니다. 고용 효과도 막대합니다. 망하는 걸 지켜만 볼 수 없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에어프랑스와 에어버스 등에 모두 150억 유로(20조 가량)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프랑스 재무장관은 ‘항공우주 시장을 미국이 독점하는 것을 지켜만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미 의회는 지난 3월, 사우스웨스트, 델타, 유나이티드, 아메리칸항공 등 10개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50억 달러의 지원 법안을 내놨습니다. 그중 70%가 무상지원입니다. 대신 9월 30일까지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아직도 통과가 안 됐습니다. 미국인 상당수는 이번에도 기업만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합니다. (10년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는 500억 달러를 들여 GM을 살렸지만, 기업만 살아나고 국민은 손해 봤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자 항공사들이 이달(10월)부터 직원들을 대량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아메리칸항공은 1만9천 명 해고계획을 내놨습니다.


델타항공의 해고 명단에 이름이 오른 기장, 부기장만 1,941명입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이미 3만6천 명의 임직원들에게 해고예정 통보서를 보냈습니다. 생각도 못 한 감기바이러스에 항공 산업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공급도 과잉입니다. 2015년 이후 저비용항공사(LCC)가 급증하면서, 승객보다 항공사가 더 많아졌습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여객 수요는 23.8% 늘었는데, 6개 항공사의 좌석은 27.4% 늘었습니다. 지금은 항공사가 11개나 됩니다. 그러니 이제 어느 항공사가 살아남을 것인가.

코로나 이후 항공산업은 수많은 변화를 겪을 겁니다. 출입국 절차는 까다로워지고, 안전비용이 높아질 겁니다. ‘면역여권’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좌석배치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업무를 위한 항공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들의 화상회의 시스템은 놀랍도록 진화하고 있습니다(화상회의에 실시간 통역이 되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2차대전이 끝나고 다시 인류가 항공기를 타기 시작할 무렵, 항공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보잉은 그때부터 항공산업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진짜 기회는 죽음의 터널 끝에 있다고. 이 위기가 혹시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버핏은 항공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했지만, 지구인의 비행기 수요가 과연 줄어들까?

해외물류 1위라는 우리 국적기 항공사는 오너 일가의 일탈을 멈추고 미래로 갈 수 있을까? 무너지는 LCC(저비용항공사) 시장에는 당장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다시 땅이 굳으면 항공기는 다시 날아오를 겁니다. 그때쯤 항공업계는 다른 지도가 그려져 있을 겁니다. 그때 우리는 어느 항공사를 선택하게 될까? 땅 위의 위기에서 하늘의 기회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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