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온누리상품권 할인율 높였더니…‘상품권 깡’ 여전

입력 2020.10.07 (11:33) 수정 2020.10.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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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 진작을 통해 경제를 돌아가게 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비 진작 방안의 하나로 각종 상품권 발행도 확대하고 있는데요, 특히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전통시장 등의 활성화 차원에서 정부가 올해 말까지 지난해의 두 배인 4조 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입니다.

온누리상품권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달 21일부터는 한시적으로 10%까지 할인율을 높였습니다. 문제는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상품권 구매가 가능한 점을 악용해 구매한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상품권 깡'을 통한 부정유통이 근절되지 않으면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을 위한다던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


■ 시중에는 품귀 현상…'상품권 깡' 횡행

온누리상품권은 지난달 21일부터 할인율이 10%까지 늘어나면서 시중 은행에서 더욱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온누리상품권을 파는 여러 은행을 찾아가 어렵사리 상품권을 구매했는데, 30만 원어치를 사겠다는 제 말에 은행 직원은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대부분 상품권 구매 한도인 100만 원을 맞춰서 구매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적게 구매하느냐는 겁니다.

사람들은 왜 구매 한도까지 채워 온누리상품권을 사는 걸까요? 물론 실제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상품권 가맹점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구매한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할인받아 구매한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화한 뒤 차익을 챙기려는 의도도 있다고 추정됩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상품권 판매점을 찾아갔더니 바로 되팔아 현금화가 가능했습니다. 상품권 판매점 주인에게 액면가보다 현금을 조금 더 받고 온누리상품권을 팔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요즘 너무 많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 부정유통 행위, 지난 2년간 행정처분은 0건

온누리상품권의 법적 근거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입니다.

일일이 신분증을 제시해야 구매할 수 있고 환전은 정부가 지정한 금융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가맹점이 일반인인 것처럼 속여서 10%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해서 환전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규모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최근 3년 동안 3억 원에 불과한데 발행 규모보다 너무 적은 수치입니다.
부정유통을 하다가 적발된 가맹점들은 어떤 처분을 받고 있을까요? 온누리상품권을 관할하는 중소기업벤처부의 행정처분 실적을 들여다봤습니다.

부정유통으로 적발된 가맹점은 지난해와 올해 2년 동안 28곳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과태료, 가맹점 취소, 서면경고, 위반 미확인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가맹점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문의했더니 코로나 19 등 여러 다른 사안들로 행정처리가 지연됐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행정처분 실적도 봤더니, 대부분 서면경고에 그칠 뿐, 제대로 된 경고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부정유통을 해도 딱히 막을 방법도, 의지도 없으니 상품권의 본래 취지가 갈수록 퇴색하고 있는 겁니다.


■ '울며 겨자먹기'로 온누리 상품권 받는 비가맹점들

온누리상품권이 많이 풀리자, 이제는 비가맹점에 와서도 온누리상품권을 쓰겠다는 소비자들까지 늘고 있었습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전통시장 주변 식당들을 찾았습니다. 요즘 온누리상품권으로 계산하려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식당 주인들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하지 않는 식당 등 비가맹점들은 소비자들이 내미는 상품권을 냉정하게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걸 받지 않으면 손님이 떨어져 나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가맹점이 받은 온누리상품권을 환전해 직접 현금화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취재진을 만난 비가맹점 주인은 온누리상품권으로 식자재 등 필요한 물품을 전통시장에서 사는 등 사적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는데요, 일부에서는 현금화를 위해 이른바 '상품권 깡'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기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는 비가맹점도 한시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하도록 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본래 발행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 "모바일 상품권화·유효기간 축소해야"

올해 말까지 온누리상품권 4조 원어치를 발행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소상공인, 특히 전통시장 상인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전 과정에서 각종 편법이 등장하고, 이 과정을 제대로 단속도 하지 않는다면 정책의 취지는 아랑곳없이 부작용이 더 커지게 됩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4조 원의 상품권을 발행해 국민들이 4천억 원의 불로소득을 꿈꾸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안으로 추적이 가능해 불법 자금화하기 어려운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발행과 현행 5년인 상품권 유효기간을 2년이나 3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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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온누리상품권 할인율 높였더니…‘상품권 깡’ 여전
    • 입력 2020-10-07 11:33:14
    • 수정2020-10-07 11:33:39
    취재후·사건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 진작을 통해 경제를 돌아가게 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비 진작 방안의 하나로 각종 상품권 발행도 확대하고 있는데요, 특히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전통시장 등의 활성화 차원에서 정부가 올해 말까지 지난해의 두 배인 4조 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입니다.

온누리상품권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달 21일부터는 한시적으로 10%까지 할인율을 높였습니다. 문제는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상품권 구매가 가능한 점을 악용해 구매한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상품권 깡'을 통한 부정유통이 근절되지 않으면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을 위한다던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


■ 시중에는 품귀 현상…'상품권 깡' 횡행

온누리상품권은 지난달 21일부터 할인율이 10%까지 늘어나면서 시중 은행에서 더욱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온누리상품권을 파는 여러 은행을 찾아가 어렵사리 상품권을 구매했는데, 30만 원어치를 사겠다는 제 말에 은행 직원은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대부분 상품권 구매 한도인 100만 원을 맞춰서 구매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적게 구매하느냐는 겁니다.

사람들은 왜 구매 한도까지 채워 온누리상품권을 사는 걸까요? 물론 실제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상품권 가맹점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구매한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할인받아 구매한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화한 뒤 차익을 챙기려는 의도도 있다고 추정됩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상품권 판매점을 찾아갔더니 바로 되팔아 현금화가 가능했습니다. 상품권 판매점 주인에게 액면가보다 현금을 조금 더 받고 온누리상품권을 팔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요즘 너무 많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 부정유통 행위, 지난 2년간 행정처분은 0건

온누리상품권의 법적 근거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입니다.

일일이 신분증을 제시해야 구매할 수 있고 환전은 정부가 지정한 금융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가맹점이 일반인인 것처럼 속여서 10%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해서 환전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규모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최근 3년 동안 3억 원에 불과한데 발행 규모보다 너무 적은 수치입니다.
부정유통을 하다가 적발된 가맹점들은 어떤 처분을 받고 있을까요? 온누리상품권을 관할하는 중소기업벤처부의 행정처분 실적을 들여다봤습니다.

부정유통으로 적발된 가맹점은 지난해와 올해 2년 동안 28곳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과태료, 가맹점 취소, 서면경고, 위반 미확인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가맹점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문의했더니 코로나 19 등 여러 다른 사안들로 행정처리가 지연됐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행정처분 실적도 봤더니, 대부분 서면경고에 그칠 뿐, 제대로 된 경고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부정유통을 해도 딱히 막을 방법도, 의지도 없으니 상품권의 본래 취지가 갈수록 퇴색하고 있는 겁니다.


■ '울며 겨자먹기'로 온누리 상품권 받는 비가맹점들

온누리상품권이 많이 풀리자, 이제는 비가맹점에 와서도 온누리상품권을 쓰겠다는 소비자들까지 늘고 있었습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전통시장 주변 식당들을 찾았습니다. 요즘 온누리상품권으로 계산하려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식당 주인들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하지 않는 식당 등 비가맹점들은 소비자들이 내미는 상품권을 냉정하게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걸 받지 않으면 손님이 떨어져 나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가맹점이 받은 온누리상품권을 환전해 직접 현금화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취재진을 만난 비가맹점 주인은 온누리상품권으로 식자재 등 필요한 물품을 전통시장에서 사는 등 사적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는데요, 일부에서는 현금화를 위해 이른바 '상품권 깡'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기는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는 비가맹점도 한시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하도록 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본래 발행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 "모바일 상품권화·유효기간 축소해야"

올해 말까지 온누리상품권 4조 원어치를 발행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소상공인, 특히 전통시장 상인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전 과정에서 각종 편법이 등장하고, 이 과정을 제대로 단속도 하지 않는다면 정책의 취지는 아랑곳없이 부작용이 더 커지게 됩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4조 원의 상품권을 발행해 국민들이 4천억 원의 불로소득을 꿈꾸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안으로 추적이 가능해 불법 자금화하기 어려운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발행과 현행 5년인 상품권 유효기간을 2년이나 3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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