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빅히트 또 ‘광풍’? 공모주 들여다봤더니…

입력 2020.10.07 (17:29) 수정 2020.10.0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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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공모주 청약 마지막 날. 여의도 증권사 영업부에는 끊임없이 투자자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계좌와 청약 증거금, 온라인 청약 시스템 다운로드는 다 끝내 놓은 상태에서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상담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청약 시스템이 말을 안 들어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꽤 붐비는 편이 아니냐고 증권사 직원에 묻자 "그나마 카카오게임즈 때보다 훨씬 덜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투자자들이 올해 몇 차례의 공모주 청약 경험을 통해 온라인 청약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마감 결과 일반 청약에 몰린 증거금은 58조 4,236억 원. 역대 최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카카오게임즈 때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경쟁률은 평균 607:1로, 증권사별로 다르지만 거칠게 계산하면 4천만 원에 한 주 받는 정도 수준입니다. 그래도 시간 내에 청약을 마무리한 투자자들 목소리는 밝았습니다. 미용실 예약을 한 시간 남겨두고 청약부터 해결해야 해서 뛰어 왔다던 한 투자자는 "그래도 주식 받은 건 몇 배 오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두 배로 시초가가 형성된 뒤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이른바 '따상'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 보였습니다.


공모주를 받으면 일단 남는다, 는 투자자들 생각에 전문가들도 큰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이들 주식의 가격 상승세를 믿고 추격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의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외국인과 기관의 움직임에 주가가 크게 흔들리는 구조 때문입니다. KBS가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의원실에서 받은 '올해 공모주 배정 물량' 자료에서 앞서 상장한 SK바이오팜 현황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SK바이오팜은 전체 공모주 가운데 약 31%를 외국인이, 26%를 기관이 가져갔습니다. 12.5%는 우리사주에, 10%는 하이일드펀드에 배정됐죠. 금융투자협회 규정에 따라 꼭 떼어줘야 하는 우리사주나 하이일드 펀드 몫을 제외하면, 개인에 대한 배정 물량이 외국인이나 기관보다 훨씬 적었죠.


31%나 가져간 외국인은 상장 첫날인 7월 2일부터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상장 뒤 첫 한 달 동안, 단 3거래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물량을 팔았죠. 개미들에게 물량을 넘기고 수익을 실현한 셈입니다. 상장 뒤 약 석 달이 지난 10월 6일 기준 외국인 지분 보유율은 2%로 줄었습니다. 기관의 경우 의무보유확약 기간이라는 게 있어서 상장 이후 일정 기간은 주식을 팔지 않고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기간이 끝나면 가차 없었습니다. 실제로 상장 뒤 3개월 확약이 끝난 10월 5일 기관이 790억 원어치나 순매도하면서 주가가 무려 10.22% 떨어졌습니다. 6개월이 끝나는 시점에 또 약속에서 풀려난 매도 물량들이 나오겠죠. 개인 투자자가 정보 없이 이 사이에 끼어들어 갔다간 손실 보기 십상입니다.

가격이 출렁인다는 것만 문제는 아닙니다. 기관과 외국인의 경우 공모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상장하는 기업의 공모가를 얼마로 정할 것이냐? 는 기업공개 회사와 주관사가 결정합니다. 일단 회사 측이 자신들의 재무 상황과 발행 주식 수를 고려해 희망 가격을 제시하는데, 주관사는 이 가격이 타당한지를 따져보고 비슷한 업종, 비슷한 체격의 다른 회사 네다섯 곳과 비교해 가격대를 정합니다. 이 가격대를 기준으로,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외국인과 기관은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시된 가격보다 더 줘도 살 의향이 있다, 그것보단 좀 더 낮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SK바이오팜의 경우 국내와 외국 기관 투자자들이 1,076곳 수요 예측에 참여했는데, 결과가 이례적이었습니다. 869곳이나 '밴드 상단 초과', 즉 더 비싸도 사겠다고 적어 냈고, 나머지 207곳은 75~100% 이하에 있었습니다. 이 가격이 적당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그 밑으로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공모가를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하는 데도, 기관과 외국인들의 영향이 컸던 셈입니다.

이번에도 "아무리 BTS라지만,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주가가 13만5천 원이라니 높은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대부분 공모주 청약 투자자들은 '청약=로또'라는 분위기와 어쨌든 물량을 받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냉정히 판단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증권사에서 만난 투자자들에게 주가에 대한 견해를 물었지만 '잘 모른다.' 또는 '어쨌든 공모가보다는 오를 것'이라고 답변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시장경제의 수요-예측 조사나, 매출/영업이익과 발행 주식 수를 고려한 기업가치 산출은 합리성과 경험에 근거한 절차입니다. 다만 사람이 하는 일이 늘 그렇듯 중립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투자 이익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국인과 기관이 움직이면, 개인은 그저 매도 물량을 받아내는 역할만 하다 운 좋으면 이익을 보는 식에 그칠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넘치는 유동성과 주변의 성공 사례를 따라 난생처음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의 경우 더 그렇습니다. 이 경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되는 투자설명서 가운데 'Ⅳ. 인수인의 의견' 정도는 꼭 읽어보라고 전문가들은 권합니다.


빅히트는 오는 15일 코스피에 상장합니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4조 8,000억 원입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그룹을 가진 회사, 동종 업계인 SM, YG, JYP 시총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덩치가 커진 이 회사의 상장 뒤 주가 흐름이 궁금합니다. 청약 광풍으로 인한 한때의 그림자가 아니라 가능성을 반영한 실체였다는 걸 증명하는 건 이제 회사의 몫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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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7 17:29:50
    • 수정2020-10-07 17:30:58
    취재후·사건후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공모주 청약 마지막 날. 여의도 증권사 영업부에는 끊임없이 투자자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계좌와 청약 증거금, 온라인 청약 시스템 다운로드는 다 끝내 놓은 상태에서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상담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청약 시스템이 말을 안 들어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꽤 붐비는 편이 아니냐고 증권사 직원에 묻자 "그나마 카카오게임즈 때보다 훨씬 덜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투자자들이 올해 몇 차례의 공모주 청약 경험을 통해 온라인 청약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마감 결과 일반 청약에 몰린 증거금은 58조 4,236억 원. 역대 최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카카오게임즈 때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경쟁률은 평균 607:1로, 증권사별로 다르지만 거칠게 계산하면 4천만 원에 한 주 받는 정도 수준입니다. 그래도 시간 내에 청약을 마무리한 투자자들 목소리는 밝았습니다. 미용실 예약을 한 시간 남겨두고 청약부터 해결해야 해서 뛰어 왔다던 한 투자자는 "그래도 주식 받은 건 몇 배 오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두 배로 시초가가 형성된 뒤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이른바 '따상'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 보였습니다.


공모주를 받으면 일단 남는다, 는 투자자들 생각에 전문가들도 큰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이들 주식의 가격 상승세를 믿고 추격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의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외국인과 기관의 움직임에 주가가 크게 흔들리는 구조 때문입니다. KBS가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의원실에서 받은 '올해 공모주 배정 물량' 자료에서 앞서 상장한 SK바이오팜 현황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SK바이오팜은 전체 공모주 가운데 약 31%를 외국인이, 26%를 기관이 가져갔습니다. 12.5%는 우리사주에, 10%는 하이일드펀드에 배정됐죠. 금융투자협회 규정에 따라 꼭 떼어줘야 하는 우리사주나 하이일드 펀드 몫을 제외하면, 개인에 대한 배정 물량이 외국인이나 기관보다 훨씬 적었죠.


31%나 가져간 외국인은 상장 첫날인 7월 2일부터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상장 뒤 첫 한 달 동안, 단 3거래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물량을 팔았죠. 개미들에게 물량을 넘기고 수익을 실현한 셈입니다. 상장 뒤 약 석 달이 지난 10월 6일 기준 외국인 지분 보유율은 2%로 줄었습니다. 기관의 경우 의무보유확약 기간이라는 게 있어서 상장 이후 일정 기간은 주식을 팔지 않고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기간이 끝나면 가차 없었습니다. 실제로 상장 뒤 3개월 확약이 끝난 10월 5일 기관이 790억 원어치나 순매도하면서 주가가 무려 10.22% 떨어졌습니다. 6개월이 끝나는 시점에 또 약속에서 풀려난 매도 물량들이 나오겠죠. 개인 투자자가 정보 없이 이 사이에 끼어들어 갔다간 손실 보기 십상입니다.

가격이 출렁인다는 것만 문제는 아닙니다. 기관과 외국인의 경우 공모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상장하는 기업의 공모가를 얼마로 정할 것이냐? 는 기업공개 회사와 주관사가 결정합니다. 일단 회사 측이 자신들의 재무 상황과 발행 주식 수를 고려해 희망 가격을 제시하는데, 주관사는 이 가격이 타당한지를 따져보고 비슷한 업종, 비슷한 체격의 다른 회사 네다섯 곳과 비교해 가격대를 정합니다. 이 가격대를 기준으로,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외국인과 기관은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시된 가격보다 더 줘도 살 의향이 있다, 그것보단 좀 더 낮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SK바이오팜의 경우 국내와 외국 기관 투자자들이 1,076곳 수요 예측에 참여했는데, 결과가 이례적이었습니다. 869곳이나 '밴드 상단 초과', 즉 더 비싸도 사겠다고 적어 냈고, 나머지 207곳은 75~100% 이하에 있었습니다. 이 가격이 적당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그 밑으로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공모가를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하는 데도, 기관과 외국인들의 영향이 컸던 셈입니다.

이번에도 "아무리 BTS라지만,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주가가 13만5천 원이라니 높은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대부분 공모주 청약 투자자들은 '청약=로또'라는 분위기와 어쨌든 물량을 받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냉정히 판단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증권사에서 만난 투자자들에게 주가에 대한 견해를 물었지만 '잘 모른다.' 또는 '어쨌든 공모가보다는 오를 것'이라고 답변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시장경제의 수요-예측 조사나, 매출/영업이익과 발행 주식 수를 고려한 기업가치 산출은 합리성과 경험에 근거한 절차입니다. 다만 사람이 하는 일이 늘 그렇듯 중립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투자 이익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국인과 기관이 움직이면, 개인은 그저 매도 물량을 받아내는 역할만 하다 운 좋으면 이익을 보는 식에 그칠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넘치는 유동성과 주변의 성공 사례를 따라 난생처음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의 경우 더 그렇습니다. 이 경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되는 투자설명서 가운데 'Ⅳ. 인수인의 의견' 정도는 꼭 읽어보라고 전문가들은 권합니다.


빅히트는 오는 15일 코스피에 상장합니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4조 8,000억 원입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그룹을 가진 회사, 동종 업계인 SM, YG, JYP 시총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덩치가 커진 이 회사의 상장 뒤 주가 흐름이 궁금합니다. 청약 광풍으로 인한 한때의 그림자가 아니라 가능성을 반영한 실체였다는 걸 증명하는 건 이제 회사의 몫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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