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 전 北 대사 대리 한국 망명…남북관계 영향은?

입력 2020.10.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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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1월 초 귀임을 앞두고 돌연 자취를 감췄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국내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자진해서 왔다"며 "수차례 한국행 의사를 자발적으로 밝혔고 우리가 그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 황장엽 이후 '최고위급' 망명?…태영호 전 공사보다 직급 낮아

일부 언론에서는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을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한국 망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 전 대사대리에 대해 '최고위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 해외공관 체계는 '대사-공사-참사관-1등서기관-2등서기관-3등서기관' 순인데, 조 전 대사대리는 '1등 서기관'으로 있다가 당시 문정남 대사가 추방되자 대사직을 대리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망명 당시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직에 있었기 때문에, 태 의원보다 직급이 높다는 일부 보도 내용도 사실이 아닙니다.


■ 北 고위급 한국 망명 사례는?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탈북은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1991년에는 고영환 전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이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최초의 한국 망명입니다.

1997년엔 북한의 국가 철학인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노동당 비서, 김덕홍 노동당 부실장이 한국으로 온 사건이 북한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황 비서는 역대 알려진 탈북 사례 가운데 최고위급 인사인 동시에 북한 권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파장도 컸습니다.

이후 1996년에는 현성일 전 잠비아 주재 대사관 서기관, 1998년 김동수 전 유엔식량농업기구 북한대표부 서기관, 2000년 홍순경 태국 주재 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이 잇따라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16년 한국 망명 당시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직에 있었습니다.


■ 조성길 망명, 1년 이상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조 전 대리대사는 귀임을 앞둔 2018년 11월 10일 부인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서 종적을 감춘 뒤 지금껏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당시 제3국 망명설 등이 제기되며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탈리아 외교부에 따르면 조 전 대리대사 부부의 잠적 직후 미성년 딸이 북한으로 송환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입국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조 전 대사대리 부부가 딸의 신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국도 1년이 넘도록 한국 망명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왔습니다. 특정 탈북민의 한국 입국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것은 정부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간 철저히 숨겨져 왔던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어제 한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공개 시점과 배경을 두고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입니다.

■ 고위급 한국 망명에 '초민감' 北…남북관계 영향은?

아직 북한의 선전·관영매체들은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6년 태영호 전 공사의 망명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은 태 전 공사와 남한 당국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습니다.

당시 태 의원을 '범죄자'로 규정하면서 남한 정부까지 공격하기도 했는데요. 조선중앙통신은 "박근혜 역적 패당은 영국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일하다가 범죄 행위가 폭로되자 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 자를 남조선에 끌어들이는 비열한 놀음을 벌여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한국행을 밝히고 북한 체제 비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태 전 공사의 경우와 달리 조 전 대사대리는 침묵을 유지해왔습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색된 남북관계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 망명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비난하는 정도의 반응은 예상되지만, 조성길 전 대사대리가 특별히 대북 비난 활동 등을 하지 않고 있어 크게 문제 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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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길 전 北 대사 대리 한국 망명…남북관계 영향은?
    • 입력 2020-10-07 19:30:33
    취재K
지난 2018년 11월 초 귀임을 앞두고 돌연 자취를 감췄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국내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자진해서 왔다"며 "수차례 한국행 의사를 자발적으로 밝혔고 우리가 그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 황장엽 이후 '최고위급' 망명?…태영호 전 공사보다 직급 낮아

일부 언론에서는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을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한국 망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 전 대사대리에 대해 '최고위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 해외공관 체계는 '대사-공사-참사관-1등서기관-2등서기관-3등서기관' 순인데, 조 전 대사대리는 '1등 서기관'으로 있다가 당시 문정남 대사가 추방되자 대사직을 대리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망명 당시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직에 있었기 때문에, 태 의원보다 직급이 높다는 일부 보도 내용도 사실이 아닙니다.


■ 北 고위급 한국 망명 사례는?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탈북은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1991년에는 고영환 전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이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최초의 한국 망명입니다.

1997년엔 북한의 국가 철학인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노동당 비서, 김덕홍 노동당 부실장이 한국으로 온 사건이 북한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황 비서는 역대 알려진 탈북 사례 가운데 최고위급 인사인 동시에 북한 권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파장도 컸습니다.

이후 1996년에는 현성일 전 잠비아 주재 대사관 서기관, 1998년 김동수 전 유엔식량농업기구 북한대표부 서기관, 2000년 홍순경 태국 주재 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이 잇따라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16년 한국 망명 당시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직에 있었습니다.


■ 조성길 망명, 1년 이상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조 전 대리대사는 귀임을 앞둔 2018년 11월 10일 부인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서 종적을 감춘 뒤 지금껏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당시 제3국 망명설 등이 제기되며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탈리아 외교부에 따르면 조 전 대리대사 부부의 잠적 직후 미성년 딸이 북한으로 송환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입국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조 전 대사대리 부부가 딸의 신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국도 1년이 넘도록 한국 망명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왔습니다. 특정 탈북민의 한국 입국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것은 정부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간 철저히 숨겨져 왔던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어제 한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공개 시점과 배경을 두고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입니다.

■ 고위급 한국 망명에 '초민감' 北…남북관계 영향은?

아직 북한의 선전·관영매체들은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6년 태영호 전 공사의 망명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은 태 전 공사와 남한 당국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습니다.

당시 태 의원을 '범죄자'로 규정하면서 남한 정부까지 공격하기도 했는데요. 조선중앙통신은 "박근혜 역적 패당은 영국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일하다가 범죄 행위가 폭로되자 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 자를 남조선에 끌어들이는 비열한 놀음을 벌여놓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한국행을 밝히고 북한 체제 비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태 전 공사의 경우와 달리 조 전 대사대리는 침묵을 유지해왔습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색된 남북관계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 망명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비난하는 정도의 반응은 예상되지만, 조성길 전 대사대리가 특별히 대북 비난 활동 등을 하지 않고 있어 크게 문제 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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