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개정안 쟁점은?…여성계 “기만적, 전면 폐지하라”

입력 2020.10.08 (06:0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지난해 4월,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른 조치입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올해 말까지 국회에 개선입법을 마련하라고 정했는데, 1년 6개월여 만에 정부가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 '임신 14주 이내', '사회적·경제적 이유' 조건
핵심은 임신 14주 이내에 특별한 사유 없이도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사실상 전면 허용한 겁니다. 또 임신 15주에서 24주 사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서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담과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 낙태할 수 있게 했습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는 임신부나 배우자에게 유전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근친 관계 간 임신,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만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었던 '배우자 동의' 조항은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요건에서 삭제됐습니다. 자연유산 유도 약물 등 약물에 의한 낙태도 허용됩니다.

임신부가 심신장애인일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만으로도 낙태할 수 있습니다. 또 미성년자 임신부는 보호자나 법정 대리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상담 사실 확인서가 있으면 낙태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여성계 "정부안은 기만" vs 낙태죄 찬성론자들 "아기들 씨 말린다"
정부안에 대해 여성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등 23개 단체 모임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성명을 내고 개정안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 처벌 조항을 형법에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으로 그 자체가 위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임신 주 수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월경일을 기준으로 하는지, 착상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임신당사자의 진술과 초음파상의 크기 등을 참고하여 '유추'되는 것일 뿐 명확한 기준이 될 수가 없다"라며 법의 명확성에 어긋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정안은 "'언제부터,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을 보장할 것이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쪽 역시 반발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프로라이프'는 "국내 낙태의 95.3%가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14주라는 기준에 살아남을 태아는 없다"라며 "아기들의 씨를 말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24주 낙태는 여성의 몸과 영혼도 파괴시킨다"라며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남용해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스스로를 자해하도록 조장하는 낙태 허용 입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전국 174인 여성 교수 일동'도 이번 개정안이 "공식적으로 태아 살인을 정당화하고 생명 경시 풍토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 권고 외면한 정부안…"여성을 고려해야"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스스로 구성한 자문기구의 권고를 거부한 것도 또다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앞서 법무부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정책위)는 지난 8월 21일 법무부에 '낙태죄 조항 전면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정책위는 "여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임신과 임신 중단, 출산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태아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라며 임신 22주를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정책위는 이보다 더 나아가 주 수와 관계없이 낙태 자체를 비범죄화하라고 권고한 겁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 권고안은 '14주'라는 기준을 제시하며 정책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인 이한본 변호사는 KBS 1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안에 대해 아쉽다며 "14주, 24주 이런 건 전부 다 태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며 "여성의 권리나 성인지 감수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낙태죄 폐지는 "형벌의 폐지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낙태에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위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정부안은 (정책위의) 취지와 많이 달라졌다"라며 "낙태를 안 하기 위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여성을 배려하고 모자 보건에 집중해야지, 낙태한 여성을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 내년 1월 시행…정부안 국회 통과할 수 있을까
정부는 내년 1월 시행을 위해 이 개정안을 냈지만, 그 전에 국회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여당에서조차 정부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시켜선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은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 중단 또는 지속을 선택할 수 있는 개정안을 조속히 발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의당도 정부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수많은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외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결국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고 처벌 기준만을 완화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개정안은 40일 동안 통합입법예고센터(http://opinion.lawmaking.go.kr)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됩니다. 낙태 관련 법을 둘러싼 논쟁은 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낙태죄 개정안 쟁점은?…여성계 “기만적, 전면 폐지하라”
    • 입력 2020-10-08 06:07:19
    취재K
정부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지난해 4월,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른 조치입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올해 말까지 국회에 개선입법을 마련하라고 정했는데, 1년 6개월여 만에 정부가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 '임신 14주 이내', '사회적·경제적 이유' 조건
핵심은 임신 14주 이내에 특별한 사유 없이도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사실상 전면 허용한 겁니다. 또 임신 15주에서 24주 사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에 더해서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담과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 낙태할 수 있게 했습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는 임신부나 배우자에게 유전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근친 관계 간 임신,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만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었던 '배우자 동의' 조항은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요건에서 삭제됐습니다. 자연유산 유도 약물 등 약물에 의한 낙태도 허용됩니다.

임신부가 심신장애인일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만으로도 낙태할 수 있습니다. 또 미성년자 임신부는 보호자나 법정 대리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상담 사실 확인서가 있으면 낙태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여성계 "정부안은 기만" vs 낙태죄 찬성론자들 "아기들 씨 말린다"
정부안에 대해 여성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등 23개 단체 모임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성명을 내고 개정안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 처벌 조항을 형법에 그대로 존치시키는 것으로 그 자체가 위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임신 주 수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월경일을 기준으로 하는지, 착상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임신당사자의 진술과 초음파상의 크기 등을 참고하여 '유추'되는 것일 뿐 명확한 기준이 될 수가 없다"라며 법의 명확성에 어긋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정안은 "'언제부터,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어떤 시기에, 무엇을 보장할 것이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쪽 역시 반발하고 있습니다. '행동하는프로라이프'는 "국내 낙태의 95.3%가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14주라는 기준에 살아남을 태아는 없다"라며 "아기들의 씨를 말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24주 낙태는 여성의 몸과 영혼도 파괴시킨다"라며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남용해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스스로를 자해하도록 조장하는 낙태 허용 입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전국 174인 여성 교수 일동'도 이번 개정안이 "공식적으로 태아 살인을 정당화하고 생명 경시 풍토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 권고 외면한 정부안…"여성을 고려해야"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스스로 구성한 자문기구의 권고를 거부한 것도 또다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앞서 법무부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정책위)는 지난 8월 21일 법무부에 '낙태죄 조항 전면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정책위는 "여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임신과 임신 중단, 출산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태아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라며 임신 22주를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정책위는 이보다 더 나아가 주 수와 관계없이 낙태 자체를 비범죄화하라고 권고한 겁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 권고안은 '14주'라는 기준을 제시하며 정책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인 이한본 변호사는 KBS 1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안에 대해 아쉽다며 "14주, 24주 이런 건 전부 다 태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며 "여성의 권리나 성인지 감수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낙태죄 폐지는 "형벌의 폐지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낙태에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위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정부안은 (정책위의) 취지와 많이 달라졌다"라며 "낙태를 안 하기 위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여성을 배려하고 모자 보건에 집중해야지, 낙태한 여성을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 내년 1월 시행…정부안 국회 통과할 수 있을까
정부는 내년 1월 시행을 위해 이 개정안을 냈지만, 그 전에 국회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여당에서조차 정부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시켜선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인숙 의원은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 중단 또는 지속을 선택할 수 있는 개정안을 조속히 발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의당도 정부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수많은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를 외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결국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고 처벌 기준만을 완화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개정안은 40일 동안 통합입법예고센터(http://opinion.lawmaking.go.kr)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됩니다. 낙태 관련 법을 둘러싼 논쟁은 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