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돼지 추적기…우리 옛그림에는 왜 ‘멧돼지’뿐일까?

입력 2020.10.0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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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돼지를 잘 기른다."

예(濊)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아니, 동예(東濊)라고 하면 좀 더 쉽게 다가오겠군요.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는 한반도 고대 국가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죠. 동예 - 옥저를 한 세트로 묶어 외운 기억이 납니다. 예(濊) 종족은 지금의 함경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친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먼 우리 역사의 일부죠.

이 사람들이 소와 돼지를 잘 길렀다는 위 기록은 《삼국지》에서 찾은 겁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실제 역사를 기록한 《삼국지》입니다. 위․촉․오 세 나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시기에 진수(陳壽, 233~297)라는 역사학자가 쓴 저작이죠. 이 가운데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위서(魏書)의 맨 끝에 동이전(東夷傳)이라 해서 위나라 동쪽에 있는 여러 나라의 역사가 정리돼 있습니다.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예, 한, 진한, 변진 그리고 바다 건너 왜(倭)의 역사가 차례로 등장하죠.

고대 한반도와 주변 국가 지도 (사진출처: 위키백과)고대 한반도와 주변 국가 지도 (사진출처: 위키백과)

아시다시피 한반도의 고대사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머나먼 옛날 한반도 이곳저곳에 터전을 닦고 산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동이전을 읽다가 예(濊)의 역사를 설명한 장에서 소와 돼지를 사육했다는 기록을 만난 겁니다. 관련 기록은 또 있습니다. 만주지역에 살던 부족인 읍루(邑婁)에 관한 설명에 이런 내용이 보입니다.

"그들은 습관상 돼지 사육을 좋아하고 돼지고기를 먹으며 돼지가죽을 입는다. 겨울에는 몸에 돼지기름을 몇 푼 두께로 발라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읍루 사람들이 돼지를 사육했을 뿐 아니라 꽤 유용하게 활용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죠. 읍루를 한반도의 역사에 포함해도 좋은지는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반도 일대에 살았던 여러 부족 국가에서 돼지를 사육했다는 것을 이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설이 길어졌네요. 그래서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토록 돼지를 사육한 유구한 역사가 있다면, 최소한 사육 돼지를 그린 그림이 있지 않을까? 갖가지 동물 그림이 그리도 많이 남아 있는데, 어째서 집돼지는 안 보일까. 제가 아는 한 우리 옛 그림 가운데 돼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 비해 돼지를 찾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죠. 또 하나, 그 돼지들이란 것도 모두 야생 멧돼지란 사실입니다.

수렵도 12폭 병풍 중 부분, 19세기, 106.5×582cm(전체), 삼성미술관 리움수렵도 12폭 병풍 중 부분, 19세기, 106.5×582cm(전체), 삼성미술관 리움

무려 2,000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돼지를 사육했는데도 옛사람들의 그림에서 왜 돼지는 안 보이는 걸까.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게 뭘까.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봤죠.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낸 동물로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개, 소, 닭, 그리고 돼지입니다. 넷의 공통점은 인간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란 겁니다.

그럼 돼지에게만 없는 건 뭘까. 개와 소, 닭은 각기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장기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개는 짖어서 집을 지켜주고, 소는 힘들여 밭을 갈아주고, 닭은 울어서 새날을 알려주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돼지에겐 아무 재주가 없습니다. 그저 먹고 싸고 자는 게 전부죠. 그래서 옛 화가들이 유독 그렇게 돼지에게만은 인색했던 게 아닐까.

사진출처: 위키백과사진출처: 위키백과

식품영양학자 정혜경의 책 《고기의 인문학》을 읽다가 또 다른 결정적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돼지고기를 먹어왔지만, 조선시대까지도 돼지는 그다지 선호되는 고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삼겹살에 대한 한국인의 광적인 사랑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죠.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돼지는 소처럼 자연에서 나는 풀 등을 먹일 수 없고 사람이 먹고 난 부산물이 있어야만 기를 수 있다. 지금 돼지 축사에서 잔반을 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 터에 백성들이 돼지를, 그것도 살이 찌도록 먹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저명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도 똑같은 점을 중요하게 지적했다고 소개합니다.

"반추동물들은 인간이 먹어야 할 곡물을 나눠 먹지 않고, 인간이 먹기에 부적절한 풀이나 짚, 건초, 잎사귀 등을 먹고 살면서 고기와 젖을 제공했다. 반면 인간과 비슷한 먹이를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돼지고기는 기피되었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돼지의 먹이가 겹친다는 것은 돼지를 먹이는 일이 힘에 부쳤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사정이 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인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돼지를 선호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조선 시대에는 돼지 사육이 그다지 활발하지는 않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눈에 잘 안 띄는 동물을 조선의 화가들이 일부러 찾아다니며 그리지는 않았겠죠. 이래저래 돼지는 적어도 조선 시대까지는 인간과 그다지 친한 동물은 아니었던 겁니다.


기산 김준근(金俊根, ?~?)이란 화가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합니다. 김준근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수수께끼의 화가입니다. 생애에 관해 밝혀진 사실이 한 줌도 안 되죠.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대표적인 개항장이었던 부산, 원산 등지에서 그림을 그려 팔았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죠. 그런데도 김준근의 그림은 전 세계에서 무려 1,800점이 넘게 확인됐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 외국인들의 방문이 활발해지던 시기에 김준근은 조선의 풍속을 그려 팔았습니다. 그렇게 판매한 그림들이 훗날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소장되면서 이 물음표 같은 화가의 이름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됐지요. 그래서 김준근의 그림을 ‘수출 풍속화’라 부르고, 김준근을 ‘미술 한류의 원조’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김준근〈넉넉한 객주〉, 1890년대, 29.1×35.7cm,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김준근〈넉넉한 객주〉, 1890년대, 29.1×35.7cm,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

집돼지다운 집돼지를 그린 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 문제의 그림입니다. 독일의 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지금의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에 소장된 <넉넉한 객주>라는 작품인데요. 어미 돼지와 새끼 두 마리가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분명하게 보이죠. 집돼지가 틀림없습니다. 독일 MARKK에는 이것 말고도 김준근의 집돼지 그림이 한 점 더 있습니다.

김준근〈촌가 여막〉, 1890년대, 27.7×35.6cm,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김준근〈촌가 여막〉, 1890년대, 27.7×35.6cm,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

시골 주막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돼지 가족이 보이죠. 어미와 새끼 세 마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명명백백한 집돼지입니다. 김준근은 유사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그림에서도 집돼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 두 점은 각각 네덜란드와 캐나다 박물관에 소장된 그림들입니다.

(좌)〈동저상〉(네덜란드 라이덴민족학박물관 소장) (우)〈시장에 돼지를 끌고 가는 모습〉(캐나다 왕립온타리오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블로그〉(좌)〈동저상〉(네덜란드 라이덴민족학박물관 소장) (우)〈시장에 돼지를 끌고 가는 모습〉(캐나다 왕립온타리오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블로그〉

왼쪽 그림의 제목은 화면 오른쪽 위에 보이는 동저상(冬猪商)입니다. 얼린 돼지고기를 파는 상인이란 뜻이겠죠. 작은 돼지 세 마리가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크기나 모양으로 보면 영락없는 집돼지입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한 노파가 돼지를 줄에 묶어서 끌고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집돼지입니다. 멧돼지라면 힘없는 할머니가 저렇게 혼자서 끌고 갈 수 없겠죠.

이렇게 보면 김준근이란 화가의 존재가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가 남긴 풍속화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전통회화에서 집돼지의 존재를 영영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띠 동물들의 달리기 시합에서 꼴등을 한 덕분에 12간지의 맨 끝을 장식했다는 설화를 잠시 떠올려봅니다. 그렇게 긴 세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돼지는 오늘날 식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기를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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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돼지 추적기…우리 옛그림에는 왜 ‘멧돼지’뿐일까?
    • 입력 2020-10-08 08:16:05
    취재K
"소와 돼지를 잘 기른다."

예(濊)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아니, 동예(東濊)라고 하면 좀 더 쉽게 다가오겠군요.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는 한반도 고대 국가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죠. 동예 - 옥저를 한 세트로 묶어 외운 기억이 납니다. 예(濊) 종족은 지금의 함경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친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먼 우리 역사의 일부죠.

이 사람들이 소와 돼지를 잘 길렀다는 위 기록은 《삼국지》에서 찾은 겁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실제 역사를 기록한 《삼국지》입니다. 위․촉․오 세 나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시기에 진수(陳壽, 233~297)라는 역사학자가 쓴 저작이죠. 이 가운데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위서(魏書)의 맨 끝에 동이전(東夷傳)이라 해서 위나라 동쪽에 있는 여러 나라의 역사가 정리돼 있습니다.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예, 한, 진한, 변진 그리고 바다 건너 왜(倭)의 역사가 차례로 등장하죠.

고대 한반도와 주변 국가 지도 (사진출처: 위키백과)
아시다시피 한반도의 고대사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머나먼 옛날 한반도 이곳저곳에 터전을 닦고 산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동이전을 읽다가 예(濊)의 역사를 설명한 장에서 소와 돼지를 사육했다는 기록을 만난 겁니다. 관련 기록은 또 있습니다. 만주지역에 살던 부족인 읍루(邑婁)에 관한 설명에 이런 내용이 보입니다.

"그들은 습관상 돼지 사육을 좋아하고 돼지고기를 먹으며 돼지가죽을 입는다. 겨울에는 몸에 돼지기름을 몇 푼 두께로 발라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읍루 사람들이 돼지를 사육했을 뿐 아니라 꽤 유용하게 활용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죠. 읍루를 한반도의 역사에 포함해도 좋은지는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반도 일대에 살았던 여러 부족 국가에서 돼지를 사육했다는 것을 이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설이 길어졌네요. 그래서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토록 돼지를 사육한 유구한 역사가 있다면, 최소한 사육 돼지를 그린 그림이 있지 않을까? 갖가지 동물 그림이 그리도 많이 남아 있는데, 어째서 집돼지는 안 보일까. 제가 아는 한 우리 옛 그림 가운데 돼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 비해 돼지를 찾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죠. 또 하나, 그 돼지들이란 것도 모두 야생 멧돼지란 사실입니다.

수렵도 12폭 병풍 중 부분, 19세기, 106.5×582cm(전체), 삼성미술관 리움
무려 2,000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돼지를 사육했는데도 옛사람들의 그림에서 왜 돼지는 안 보이는 걸까.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게 뭘까.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봤죠.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낸 동물로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개, 소, 닭, 그리고 돼지입니다. 넷의 공통점은 인간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란 겁니다.

그럼 돼지에게만 없는 건 뭘까. 개와 소, 닭은 각기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장기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개는 짖어서 집을 지켜주고, 소는 힘들여 밭을 갈아주고, 닭은 울어서 새날을 알려주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돼지에겐 아무 재주가 없습니다. 그저 먹고 싸고 자는 게 전부죠. 그래서 옛 화가들이 유독 그렇게 돼지에게만은 인색했던 게 아닐까.

사진출처: 위키백과
식품영양학자 정혜경의 책 《고기의 인문학》을 읽다가 또 다른 결정적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돼지고기를 먹어왔지만, 조선시대까지도 돼지는 그다지 선호되는 고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삼겹살에 대한 한국인의 광적인 사랑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죠.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돼지는 소처럼 자연에서 나는 풀 등을 먹일 수 없고 사람이 먹고 난 부산물이 있어야만 기를 수 있다. 지금 돼지 축사에서 잔반을 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 터에 백성들이 돼지를, 그것도 살이 찌도록 먹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저명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도 똑같은 점을 중요하게 지적했다고 소개합니다.

"반추동물들은 인간이 먹어야 할 곡물을 나눠 먹지 않고, 인간이 먹기에 부적절한 풀이나 짚, 건초, 잎사귀 등을 먹고 살면서 고기와 젖을 제공했다. 반면 인간과 비슷한 먹이를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돼지고기는 기피되었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돼지의 먹이가 겹친다는 것은 돼지를 먹이는 일이 힘에 부쳤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사정이 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인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돼지를 선호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조선 시대에는 돼지 사육이 그다지 활발하지는 않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눈에 잘 안 띄는 동물을 조선의 화가들이 일부러 찾아다니며 그리지는 않았겠죠. 이래저래 돼지는 적어도 조선 시대까지는 인간과 그다지 친한 동물은 아니었던 겁니다.


기산 김준근(金俊根, ?~?)이란 화가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합니다. 김준근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수수께끼의 화가입니다. 생애에 관해 밝혀진 사실이 한 줌도 안 되죠.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대표적인 개항장이었던 부산, 원산 등지에서 그림을 그려 팔았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죠. 그런데도 김준근의 그림은 전 세계에서 무려 1,800점이 넘게 확인됐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 외국인들의 방문이 활발해지던 시기에 김준근은 조선의 풍속을 그려 팔았습니다. 그렇게 판매한 그림들이 훗날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소장되면서 이 물음표 같은 화가의 이름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됐지요. 그래서 김준근의 그림을 ‘수출 풍속화’라 부르고, 김준근을 ‘미술 한류의 원조’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김준근〈넉넉한 객주〉, 1890년대, 29.1×35.7cm,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
집돼지다운 집돼지를 그린 그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 문제의 그림입니다. 독일의 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지금의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에 소장된 <넉넉한 객주>라는 작품인데요. 어미 돼지와 새끼 두 마리가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분명하게 보이죠. 집돼지가 틀림없습니다. 독일 MARKK에는 이것 말고도 김준근의 집돼지 그림이 한 점 더 있습니다.

김준근〈촌가 여막〉, 1890년대, 27.7×35.6cm,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MARKK)
시골 주막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돼지 가족이 보이죠. 어미와 새끼 세 마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명명백백한 집돼지입니다. 김준근은 유사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기 때문에, 다른 그림에서도 집돼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 두 점은 각각 네덜란드와 캐나다 박물관에 소장된 그림들입니다.

(좌)〈동저상〉(네덜란드 라이덴민족학박물관 소장) (우)〈시장에 돼지를 끌고 가는 모습〉(캐나다 왕립온타리오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블로그〉
왼쪽 그림의 제목은 화면 오른쪽 위에 보이는 동저상(冬猪商)입니다. 얼린 돼지고기를 파는 상인이란 뜻이겠죠. 작은 돼지 세 마리가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크기나 모양으로 보면 영락없는 집돼지입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한 노파가 돼지를 줄에 묶어서 끌고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집돼지입니다. 멧돼지라면 힘없는 할머니가 저렇게 혼자서 끌고 갈 수 없겠죠.

이렇게 보면 김준근이란 화가의 존재가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가 남긴 풍속화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전통회화에서 집돼지의 존재를 영영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띠 동물들의 달리기 시합에서 꼴등을 한 덕분에 12간지의 맨 끝을 장식했다는 설화를 잠시 떠올려봅니다. 그렇게 긴 세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돼지는 오늘날 식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기를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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